〈 51화 〉51화. 지하 동굴
고블린 지하 동굴의 입구.
"거의 길을 만들 작정으로 왔으니까, 돌아갈 때는 편하겠지."
일부러 시간을 들여 나무를 자르고 불태워 가며 이동했다.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내기 위한 작업이었다.
말들을 근처의 거목에 묶어 뒀다.
짐마차의 차체 역시 옆에 놓여있다.
판게아 행성의 초반 지역에서는, 타인 소유의 것이라면 마차든 뭐든 강탈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파르도섬 역시 섬 전체에 걸쳐 초보 지역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마차를 도둑맞을 걱정은 없었다.
물론 작정한다면 훔치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말도 안 되는 페널티 때문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도둑질이든 살인이든, 페널티는 일종의 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것이었는데, 그럴 경우 경매장과 거래소의 이용 불가능해진다.
NPC 상점의 이용도 마찬가지.
게다가 고가의 현상금까지 붙는다.
골드의 가치가 매우 높은 지금, 자신의 목에 현상금이 걸린다면?
아마 그 돈에 눈이 뒤집힌, 좀비 때 같은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제아무리 강자라 하더라도, 포션이 남아돌지 않는 이상은, 눈에 띄지 않고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되팔지도 못하는 걸 훔쳐봐야 자신만 손해니 아무도 시도하지 않는것이다.
물론, 이건 초반 지역에 한정된 이야기다.
"여기가, 형이 말한 동굴이에요?"
"그래."
"바로 들어가죠."
곧장 지하 동굴 안으로 향하는 모두를 김만우가 가로 막았다.
"이봐요들. 뭐 잊은 거 없어?"
"아, 맞다!"
씨익하고 웃더니, 손에 쥔 낡은 피리를 불기 시작한 김만우.
"응? 뭐예요?"
"웬 피리?"
아이들의 얼굴은 금세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뭐야? 우와-!"
"요정들 귀여웡!"
"아저씨. 아저씨도 히든 클래스세요?"
[산들 바람의 시가 낭송 되었습니다.]
[당신은 바람의 요정들의 찬트를 감상했습니다. 축복의 효과로 한 시간 동안 이로운 효과를 부여 받았습니다.]
- 이동 속도 +3, 공격 속도 +1
몸이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신체가 가벼워져, 더 빨리 이동할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쩐다."
"형. 어떻게 한 거에요?"
"역시 우리 오빠의 부하 답네요."
노랑나비의 놀리는 듯한 발언에도, 김만우는 턱을 자랑스럽게 치켜 들었다.
"흥. 봤냐 꼬맹이들. 이것이 이 몸의 스킬이라고."
김만우는 기세등등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만족감이었다.
"그럼 이제, 서둘러 들어가자."
"네!"
"넵! 오빠!"
동굴 안을 향했다.
그런데 작은 문제가 있었다.
"뭐야. 너무 깜깜하잖아."
김만우가 투덜댔다.
그에게는 카스나의 눈 스킬이 없었기 때문이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캄캄한 지하 동굴인 탓에, 한 발을 내딛기조차 쉽지 않았다.
"아, 맞다. 형은 스킬이 없지."
"저, 횃불 있어요. 옛날에 사둔 건데, 그동안 전혀 사용하지를 않아서 아직 그대로 가지고 있어요."
역시 핑쿠 햄스터. 그는 가방에서 횃불을 꺼내 김만우에게 건넸다.
주로 파티를 리드하는 직업인 탱커를 선택한 만큼, 준비가 철저했다.
타닥. 탁.
횃불에 불이 붙었다.
혹시나 해 화염의 정수를 뿌려 뒀더니 화력이 대단했다.
이제 이 불빛에 의지해 앞을 향하면 된다.
하지만 김만우는 자신만 횃불에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금 짜증이 났다.
"젠장!"
"나중에, 페어리 카스나를 만나게 되면 부탁해 볼게요. 형."
피리를 불 때 까지만 해도 넘쳐나던 자신감이, 순식간에 급 하락해 버린 김만우.
짧은 시간에 온탕, 냉탕.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만 같았다.
'어라?'
이상한 일이었다.
"몬스터가 보이지 않네요? 원래 그런가요?"
"그러게. 이상하네. 원래 여기부터 수십 마리가 쌓여있었는데."
동굴에 진입한 이후로, 몬스터가 전혀 나타나질 않았다.
이대로라면 고블린의 개체 수를 줄여 달라 던 시장의 의뢰가, 의미 없어 보일 정도였다.
"몬스터의 리스폰 기간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최소 하루는 걸릴 거에요. 게임 시간으로."
세영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동굴에 떨어졌을 때, 그가 화염의 정수와 화염 탄을제작하는 동안, 몬스터는 리젠 되지 않았었다.
"그럼 누군가, 저희보다 먼저 동굴에 들어간 거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지. 고블린을 사냥하는 건 우리만이 아니니까."
동굴의 첫 번째 갈림길이 보일 때까지도, 단 한 마리의 일반 고블린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봐."
"네."
세영은 은신을사용해 두 개의 통로를 번갈아 다녀왔다.
"모두 조심해! 오른쪽 통로에는 몬스터가 그대로 있어.아마 다른 사람들은 왼쪽으로 갔나 봐."
은신이 풀렸다.
공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요정의 날개 가루 버섯을 복용하지 않은 탓에, 타리뮤의 날개 스킬 레벨이 낮았다.
하필 고블린의 정예 정찰병과 맞닥뜨릴 줄이야.
다만 축복의 효과로 이동 속도가 빨라진 덕분에, 간단히 도망 나왔을 뿐이다.
깡- 깡-!
뒤쫓아온 많은 고블린들.
파티는 곧바로 전투에 돌입했다.
기사의 도발 스킬에, 쫓아오던 고블린 때가 일제히 핑쿠햄스터를 향했다.
"난... 뭐하지?"
"형은, 뒤로 피하세요. 아! 형은 불꽃 채집해 보실래요."
김만우의 임무는, 이제부터 파티원들이 사냥하는 뒤에서 굳어버린 불꽃을 채집하는 것이 되었다.
"젠장... 역시 전투 가능한 직업을 할 걸 그랬어."
푸념을 털어놨지만, 그도 채집레벨은 꽤 높았다.
어찌보면 딱 알맞는 역할이었다.
다들 전투 중인 탓에, 김만우의 푸념을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알파 형. 이거 수가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괜찮아."
철컥.
세영은 곧장 화염 탄을 쏘기 시작했다.
가장 뒤에 있던 고블린 정예 정찰병이 타겟이었다.
퍼퍼엉-!
화르륵.
다음은 정예 창병.
퍼엉, 펑.
두 마리가 쓰러지니, 남은 건 몇 마리의 일반 고블린들 뿐이었다.
이정도 쯤, 파티원들에게 맡기면 알아서 처리 된다.
"제법 강한데요? 이 고블린들."
"응. 밖에 있는 고블린들 보다 레벨이 5에서 10 정도는 높을 거야."
강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합이 척척 맞는 파티원들에게는 매우 간단한 상대였다.
네임드 몬스터를 상대로 전투를 반복하는 동안, 호흡이 더 좋아졌다.
"형은, 이런 데서 혼자 사냥을 하신 거에요? 진짜 사기네요."
"맞아. 특히 화염 탄."
"멋져요. 오빠!"
뒤에서 이야기를 듣던 김만우는 입술을 삐죽였다.
"좋겠다. 아주 연예인 나셨네."
세영은 고개를 저었다.
"다 너희들 덕분이야. 내가 히든 클래스를 얻은 건. 그리고 영웅 등급 장비를 얻으면, 너희도 충분히 강해질 거야. 형. 형도 금방 세질 거에요. 자기도 히든 클래스면서."
김만우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굳어버린 불꽃의 채집은, 첫 시도였던 만큼 실패하고 말았다.
그 때문에 더 짜증이 났다.
"채집 안 되는데? 채집 스킬 레벨이 부족한 거 아냐?"
"아니에요. 저도 처음에 세 번 정도 실패했으니까. 형도 몇 번 하다 보면 성공할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쉬워지고."
그런 소리를 들어도, 김만우는 회의적이었다.
이세영과 자신의 채집 능력 차이를 분명하게 깨닫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레벨 업 속도는 엄청 빨랐다.
30레벨에 가까운 고블린들은, 이제 막 클래스 전직을 마친 10레벨 초반의 그에게는, 엄청난 경험치를 선물했다.
일행은 동굴 깊숙이 전진했다.
벌써 여러 번의 전투를 겪었고, 수십 마리가 넘는 고블린을 쓰러뜨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정예 고블린만 여러 마리가 등장했다.
다소 긴장된 아이들.
핑쿠 햄스터의 어그로 관리가 실패한다면, 위험해 빠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철컥.
그러나 그건 기우에 불과했다.
퍼퍼퍼퍼엉!
화르륵.
세영의 활약 덕분에, 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별 힘 들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 간단하게 모든 정예 고블린을 증발 시켰다.
"형. 뭐에요? 방금 그거?"
"맞아요. 무슨 정예 고블린이 한 방에 죽어요?"
개조 된 영웅 등급의 쇠뇌.
거기에 사용한 스킬은 연발 사격 Lv. 4.
화염 탄 4 발이 거의 동시에 발사되어 날아갔고, 정예 고블린은 일행의 근처에 접근조차 못해보고 순식간에 불타 사라졌다.
이걸 보고 놀라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응. 새로운 얻은 스킬이야."
단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엄청나게 변해버린 이세영.
강해진 그를 보고, 모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부럽다..."
"형. 저희 버리면 안 돼요! 나중에도 같이 파티 사냥해요."
"오빠가 이 게임에서 제일 샌 거 아니에요?"
이세영은 어느덧, 모두에게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
"제 3 파티 진입합니다."
"OK"
"오늘도 한탕 합시다."
"힐러 형님. 잘 부탁 드립니다."
"근딜 분들. 횃불 챙겨주세요."
고블린 지하 동굴의 입구에서, 새로운 파티가 안으로 진입 중이었다.
"파티장님 2 파티는 어디랍니까?"
"지금 중간 보스 방까지 진입했다고 합니다. 1 파티가 벌써 도착했다네요. 서두릅시다."
적어도 자신들은 파르도 섬 내에서는 최고라 자부하는 길드.
파밍 기업이 아닌, 오로지 최강을 목표로 하는 길드.
길드원 한 명, 한 명. 금액은 차이가 있었지만, 누구 하나 현질을 하지 않은 이는 없다는 과금러들의 길드.
스콜피온 길드의 3번 파티가, 서둘러 지하 동굴로 진입했다.
"오늘 네임드 드랍템은 길드 내부 경매라고 했죠?"
"왜요? 오늘은 총알 장전 좀 넉넉히 하셨습니까."
"지난번에 나온 영웅 지팡이 돈 모자라서 못샀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5억 써서 골드
싸매 들고 왔습니다."
한 남자가 너스레를 떨었다.
"저번에 지팡이 낙찰 받으신 거 부길마님 아니에요? 부길마님 말고도 1 파티나 2 파티에도 마법사님들 많잖아요."
"그래도 5 천 골드면 낙찰 받겠죠."
"그건 또 모르죠. 지금 경매장에 올라와 있는 영웅 지팡이 경매가가 얼만데."
이세영이 경매장에 등록한 영웅 등급의 고블린 지팡이.
경매 기간이 많이 남은 탓에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지만, 벌써 최고 입찰가 5억 CC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길드 내에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넘기는 게 원칙 아닙니까?"
"네. 당연하죠. 하지만 누구든 큰 금액만 써내면 살 수 있으니까, 산 다음에 경매장에 더 비싸게 되팔면 그만 아닙니까?"
"끄응... 그럼 안 되는데..."
이들은 길드의 2번 파티가 몬스터를 정리해 둔 방향을 따라, 동굴 깊숙이 들어갔다.
오늘의 사냥 목표는 지하 동굴의 중간 보스 격인 고블린 돌격 대장.
길드의 정예 18명. 무려 세 개의 파티가 힘을 합쳐, 놈을 처치하기 위해 나섰다.
*
"여기 지난번에는 주술사들 미어터지던 방 아니었어?"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거 보면, 다른 길드에서 사냥한 거 아닐까요?"
스콜피온 길드의 1번 파티는 길드 마스터가 포함된 최정예 파티였다.
길드 마스터 전갈 왕 스콧이 목소리를 냈다.
"우리 길드에는 행운이 따로 없지.이런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네임드를 사냥할 때, 제일 짜증 나는 게 그림자에 숨어서 접근하는 잔챙이 놈들이니까."
부 길드 마스터가 포함된 2번 파티가, 지하 동굴에서 파밍 하던 중 발견한 고블린 돌격 대장.
발견 당시만 해도, 주변에 몬스터들이 들끓고 있었다.
"우리가 숲에서 여러 번 잡았던 고블린 족장보다 훨씬 강하다 그랬지?"
"네. 스콧님. 그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저희 파티 단독으로도 처리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놈의 광역 스킬에 견디지 못하고 도망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변에 고블린들의 개체 수도 너무 많았고."
2번 파티는 지난 전투에서 괴멸 적인 타격을 받고 후퇴했다.
파티원 둘이나 사망하고, 겨우 도망칠 수 있었다.
"그렇게 강해?"
"네. 사용하는 스킬은 족장과 별 다를 게 없는데, 위력이 차원이 다릅니다. 레벨이 더 높아서 가 아닐까 합니다."
분명 동굴 내부인데도 괴상하게 넓은 공간.
그 공간의 너머에, 뒤돌아 앉아있는 근육질 거체의 고블린이 보인다.
"일단은 시야 확보야. 횃불 설치 서둘러!"
"네!"
길드의 3번 파티를 기다리며, 시야 확보 작업에 한창이었다.
"지금 시세를 생각하면, 적어도 1인 당 3 천 만원은 돌아가겠군."
"그 이상이겠죠. 최소한 영웅 아이템 두 개는 드롭 하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벌써 사냥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지, 보상템에 신경이 팔려있었다.
자신감의 근거는 분명했다.
무엇보다 안전하게 사냥하는 게 중요해, 길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18명을 불러 모았으니까.
실패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템을 분배해야 할 인원이 늘어나더라도 죽지 않는 게 먼저였다.
페널티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손해이기 때문이다.
"횃불 설치 끝마쳤습니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놈의 시선을 끌 것 같아, 여기까지가 한계입니다."
"네. 수고들 하셨습니다."
넓은 공간의 절반.
벽을 타고 여러 개의 횃불이 불타고 있다.
전투가 시작되면 놈이 이리로 달려들 테니, 이 정도면 충분해 보였다.
"그런데 스콧 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요?"
"저 네임느 놈. 뭐 때문에 저리 조용할까요. 보통 시스템 메시지가 요란하게 떠들어 대면서 등장하는 게 정상 아닙니까?"
턱에 난 수염을 문지르며 생각해 봤지만,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졸고 있는건 아닌 거 같은데요. 저렇게 씩씩거리며 어깨를 들썩이는 걸 보면."
"위치 고정형 네임드인 거겠죠. 전투가 끝나면 제 자리로 돌아가 대기하는."
그렇게 대화를 나누던 때, 갑자기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 퍼졌다.
[고블린 돌격 대장 '쿠아만'이 폭식을 끝마쳤습니다.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뒤돌아 앉은 어깨 근육이 크게 팽창했다.
놈의 주변에는 고블린들의 피가 흥건했다.
모두 고블린 주술사들의 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