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53화. 지하 동굴
터엉!
"크윽..."
길드원은 모두 떠났다.
공간에 남겨진 건 네임드 몬스터, 고블린 돌격 대장 쿠아만.
그리고 스콧 한 명 뿐이었다.
바닥에는 두 명의 클래릭 클래스 시체가 보인다.
'진작, 발을 뺐어야 했어. 빌어먹을! 나 때문에...'
이제 와 후회해도 부질없는 일.
길드에서 가장 아쉬울 게 없는 것이 클래릭 클래스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전직 난이도도 높은 만큼, 아무리 마나 포션이 비싸고 스킬 사용에 제약이 있다지만,그들이 전투 시 귀족의 입장인 건 변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을 길드 마스터이자 탱커로서 지켜주지 못한 건 뼈아픈 실책으로 남을 것이다.
꿀꺽. 꿀꺽.
"씨발, 치료약도 다 써가네."
스콧은 어떻게든 기회를 틈타 바닥에 쓰러진 클래릭의 시체에서, 혹시 드롭 했을지 모르는 아이템을 회수하려 했다.
최소 수백에서 억 소리나는 고가의 장비들일 테니까.
그거라도 회수해 돌려주지 못하면, 길드 마스터로서 그들의 희생에 대한 면목이 서질 않는다.
자신도 결국은 죽겠지.
비싼 장비 중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무리야. 포기하자. 그냥 돈 주고 새로 사줘야겠어. 매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검도 제대로 뽑지 못하고 방패로 공격을 막으며 치료약 만 축내고 있을 뿐이다.
놈의 끊임없는 공격 속에서, 아이템을 회수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스콧은 방패를 쥐었던 왼 손의 힘을 스르르 풀었다.
방패로 막지 않으면, 한두 번의 공격이면 자신은 쓰러지리라.
'하아...'
그때였다.
"응? 사람이 남아 있는데요?"
"와! 정말이네. 설마 혼자서 버티는 건가? 다른 사람들 빠져 나간지도 꽤 지났는데."
세영과 파티원들이 쿠아만이있는 장소에 당도했다.
"어떻게 하죠? 저 사람 죽기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요?"
"걍 공격해.선타 치면 된다거나 하는, 그런 룰 같은 거 없잖아? 이 게임은."
세영은 레드문이 하는 말을 이해하진 못했다.
다짜고짜 스킬을 날릴 뿐이었다.
보스를 상대하고 있는 남자가, 위험해 보였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 였다.
퍼엉!
화염 탄은 쿠아만의 뒤통수에 정확히 적중했다.
광기에 휩싸인 쿠아만의 시선이 서서히 세영에게로 옮겨갔다.
크르르르.
어느 정도말을 알아들을 수 있던 지난 보스들과 다르게, 쿠아만은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저 보스, 이미 광폭화 했나?"
"그럴까? 미친 거 같아 보이기는 하는데..."
이들이 경험으로 알고 있는 광폭화의 특징 중 하나는, 몬스터의 안광이 붉게 빛난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래 보이진 않았다.
단지 붉게충혈되어 있을 뿐이었다.
"너희는 누구지!?"
생존을 포기했던 스콧이 외쳤다.
"저희는 네임드 몬스터 사냥하려고 왔는데요. 저희가 대신 잡아도 될까요?"
핑쿠햄스터가 정중하게 말하자,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 인원수로 말인가? 불가능하다.얼른 도망쳐라! 내가 30초는 버틸 수 있으니 그 안에 서둘러!"
스콧은 다시 치료약을 마시기 시작했다.
쿠아만은 뒤돌아봤을 뿐, 여전히 스콧에게만 공격을 가했다.
"도망치라는 데요?"
"하긴... 딱 보기에 어른은 둘 뿐이고, 어린애 세 명 처럼 보이니까. 우리 파티는."
이번에는 세영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사냥하러 온거지 도망치러 온 게 아니거든요. 잡는 게 아니라 버티신다는 소리는, 저희가 그냥 사냥해도 되는 거라 생각하면 될까요?"
스콧의 답변은 한참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쿠아만의 공격을 막느라 그런 것이였는지, 아니면 다른생각을 하느라 그런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마음대로 해라. 난 분명히 경고 했어."
곧바로 파티원들의 스킬이 난사됐다.
어차피 눈앞의 남자나, 동굴을 빠져나간 일행이 사냥 중이었다면, 도발 한두 번으로 시선을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그로 따위 신경쓰지 않고, 폭풍같은 공격을 휘몰아 쳤다.
"그나저나, 언제 봤다고 반말이람."
"크크, 뭐 저 아저씨의 캐릭터는 중후한 기사니까. 그러려니 하자고."
농담을 할 정도로 여유로웠다.
쿠아만의 시선이 좀처럼 스콧에게서 떨어지지않은 까닭이다.
덕분에 모두가 신나서 공격을 반복했다.
그리고 파티 최강의 공격력답게, 쿠아만의 시선은 최종적으로 이세영을 향했다.
[돌격 대장 쿠아만이 스킬 '돌격 Lv 7'을 사용합니다.]
"조심해. 놈의 돌격은 매우 위험하다. 너희 파티에 힐러는 없나?"
그런 게 어딨어.
스콧은 자기 길들 힐러들의 목숨을 앗아갔던 위험한 스킬의 발동을 지켜 보며, 심란한 마음이 앞섰다.
결국 눈앞의 저들도 죽게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보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할 거라는걸 세영은 이미 알고 있었다.
생각해 둔 것처럼, 곧장 인벤토리에서 영웅 무기를 꺼냈다.
개조하지 않았던 무기다.
아기살을 장착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너희는 공격 계속해. 내가 버텨 볼게."
이세영은 이미 체력이 가득 차 있음에도, 양손에 든 쇠뇌를 쉼 없이 쏴 갈기기 시작했다.
퍼억-!
강력한 공격에 눈가를 찌푸렸다.
쿠아만은 이리저리 달리며, 무려 일곱 번이나 반복된 돌진 공격을 그를 향해 퍼부었다.
[체력이 20%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체력이 10% 이하로 감소했습니다.]
[무기의 효과로 인해 체력을 회복합니다.]
+4
+4
+4
.
.
.
아슬아슬 했지만 어떻게든 버텨냈다.
방어구에 붙은 옵션으로 회복되는 양은 미미했다.
하지만 양 손에 든, 두 개의 영웅 등급 무기. 두 무기의 옵션을 더하면 체력 회복량이 무려 +4나 된다.
그 뿐이랴. 공격속도는?
찬트의 축복으로 인한 공속 증가까지 더해, 총 +6이나 연사 속도가 증가해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빠르기로 탄환이 발사 되고 있었다.
한방 한방 강력한 공격 이었지만, 견디고 버텨내고 말았다.
새로 교체한 방어구들로 인해 상승한 방어력은 물론, 레벨업 포인트로 체력 스텟에 투자한 것도 그렇고, 아까 먹은 요리로 HP가 100이나 증가해 있던 것 까지.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정말, 아슬아슬했어. 더 강력한 적이 나타나면 위험하겠는 걸.'
세영은 전에도 그랬지만, 적의 공격할 기회를 최소한으로 만드는 데 그 목적을 뒀다.
연사는 끝없이 반복됐다.
상대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방어 수단이자, 공략법이었다.
"연발 사격!"
스킬도 쉼 없이 사용했다.
쿠아만이 스킬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왼손의 무기를 집어넣고, 마나 포션과 치료약을 마셨다.
"형. 진짜 제가 뭐가 돼요. 탱킹까지 하시면."
"미안... "
"하하. 아니에요. 저야 편하고 좋죠."
화염 탄의 엄청난 공격력 때문에, 쿠아만의 잡아 먹을 듯 한 시선은, 오롯이 이세영의 몫이 되었다.
놈은 가끔 광역 스킬을 사용했지만, 치료약은 충분했기 때문에 누구도 위험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뭐지... 이 녀석들은?'
이를 지켜보던 스콧은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서 이세영의 전투를 지켜볼 뿐이었다.
쇠뇌를 든 직업이면, 정찰 계통이나 헌터 계열 클래스 일 것이다.
저 강력한보스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다.
심지어 힐러 조차 없이.
노랗게 빛나는 쇠뇌를 보니 영웅 등급의 무기인 건 분명했으나, 방어구는 자신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말도 안 돼... 게다가 저 폭발하는 화살은 또 뭐지? 파티에 기사가 있으면서도 도발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저 공격이 강력해 어그로 확보를 포기한 건가?'
스콧은 클래릭들의 시체에서 아이템을 회수해 둬야 하는 것조차 잊은 채, 온 정신을 이세영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꿀꺽.
김만우는 멀리 떨어져서 지켜 볼 뿐 이었으니, 단 넷.
파르도 최강이라 자부했던 자신의길드원 18명이 도전해, 아무것도 못해보고 패퇴했다.
그걸 단 네 명이서 잡는다고?
스콧은 마치 꿈이라도 꾸는것 같았다.
[돌격 대장 쿠아만이 스킬 '광폭화'를 사용합니다.]
드디어 놈의 체력이 30% 이하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세영은 놀람을 금할 수 없었다.
"뭐?"
"형. 왜 그러세요?"
"이놈, 체력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건가 해서. 이제서야 광폭화라니..."
케르니와 비슷할 줄 알았으나, 전혀 달랐다.
화염 탄을 벌써 50발 이상 사용했건만. 게다가 지금은 파티원들 역시 함께 공격 중이지 않은가.
"딱 봐도, 쌔 보이잖아요."
"그런가..."
그런데 갑자기 의외의 상황이 발생했다.
[쿠아만이 광폭화에 실패했습니다.]
"뭐지?"
"그러게요. 이상하네."
"뭐, 어때요. 오히려행운이지."
레드문의 말처럼 행운일까?
파티원은 모두 신나서 공격하기 바빴다.
30% 남았다니까, 분명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다.
그럼 엄청난 양의 경험치와 아이템들이 쏟아질 테니까. 즐겁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가까이 있던 넷과는 다르게, 멀리서 지켜보던 스콧. 거기에 김만우는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허공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는 김만우.
스콧은 겨우 클래릭들의 시체에서 아이템을회수하고 김만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당신도 보이십니까? 저거."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통에, 김만우는 스콧을 수상쩍게 생각했다.
스콧은 김만우에게는 왜인지 존대를했다.
"네에... 근데, 보스는 원래 저런가요?"
"아닙니다. 저도 처음 보는 장면입니다. 근데 당신은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겁니까?"
김만우는 갑작스런 태클에 짜증이 날뻔했으나간신히 참고 대답했다.
"저는 버퍼니까요. 버프만 돌리면 제 임무는 끝입니다."
"아, 네. 실례했습니다."
둘의 대화가 계속되는 동안, 의아함은 우려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수상쩍은 변화를, 전투 중이던 이들도 눈치채기 시작했다.
"이상한데요? 이거, 보스의 몸이 점점 변해가는 듯한..."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왜 이런 거지? 오빠는 아세요?"
세영도 놀라고 있었다.
쿠아만의 주변에 검은 안개가 피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히부린의 실험실 더 깊은 곳.
마나를 머금은 허브 밭을 발견한 곳에서 봤던, 차원의 균열과 검은 안개.
그때 보았던 것과 비슷한 안개가, 왜 이런 장소에서?
'뭐지?'
검은 안개는 짙어지더니,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느리게. 그리고 점점 빠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빨라진 그것은, 쿠아만의 육체를 둘러싸며, 생명을 좀먹기 시작했다.
결국, 일행의공격이 멈췄다.
쿠아만의 공격 역시 멈췄기 때문이다.
거대한 고블린이 변화 하는 이 놀라운 광경이, 모두를 멍하니 바라보게했다.
때마침,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고블린 돌격 대장 쿠아만의 육체가, 어둠의 마나와 동조합니다. 흡수한 고블린 샤먼 주술사들의 소화가 완료되었습니다. 마력 핵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마족의 씨앗이 싹을 틔웠습니다.]
드드드드.
대지가 요동쳤다.
그동안 경험한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진동이었다.
당황하지 않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뭐, 뭐야?"
"꺄악. 이거 진짜 지진 아니야?"
"이번 건 진짜 위험한 거 같은데? 동굴 안은 너무 위험한 거 아냐? 매몰되면 어떻게 해."
진동과 비명이 섞여, 더욱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돌격 대장 쿠아만이 변태(metamorphosis, 變態)를 시작합니다.]
쩌저저적.
무언가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꺄악-! 징그러워!"
노랑나비의 비명과 함께 쿠아만의 등이 갈라졌다.
갈라진 곳에서 푸욱- 하고, 시커먼 손이 튀어나왔다.
게임의 장르가 뒤바뀐 줄 알았다.
"뭐지? 변신이라도 하는가 본 데?"
"저기, 이런 거 게임에서 자주 등장하지 않아? 2페 돌입한 거 아닐까? 패턴바뀌는..."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광폭화를 하지 말았어야지. 거의 다 잡으니까 갑자기 이러는건 반칙 아니냐. 게다가 고블린은초반 몬스터잖아!"
아이들의 설전은 아랑곳 않고, 마치 허물이라도 벗듯이 괴물의 변화는 계속됐다.
"아, 알파야. 우리 도망쳐야하는 거 아니냐?"
뒤에서 지켜보던 김만우가 소리쳤다.
그는 심상치 않음을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흠... 너희들 생각은 어때?"
"저희는 괜찮아요. 어차피 죽을 각오로 왔으니까. 페널티가 짜증 나긴 하지만..."
"아마, 제가 탱킹하면, 놈이 더 강해 지더라도 상대할 수 있을 거에요. 시간은 훨씬 오래 걸려도, 형이 화염 탄 만 안 쓰시면 어떻게 되는 거 아닐까요?"
누구도 후퇴하려는 이는 없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페널티 때문에 게임에 접속하지 못했던 그들이지만 말이다.
용기가 가상했다.
"그래. 한번 끝까지 가 보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세영은 김만우에게 외쳤다.
"저희는 도전해볼게요. 혹시 모르니 형은 마차까지 먼저 가던지 하세요."
김만우가 그럴 리가 없었다.
경험치도 그렇고, 여기서 내빼고 어찌 아이템 분배에 참여하겠는가.
"나도 뒤에서 기다릴게. 난 이 파티의 히든 클래스 버퍼니까."
세영은 그를 향해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윽고 기다리던 메시지가 들려왔다.
[돌격 대장 쿠아만의 변태가 종료되었습니다. 돌격 대장 쿠아만이 마족의 씨앗 양분이 되어 소멸했습니다.]
[마족의 씨앗이 성장을 마쳤습니다.고대 마족의 종자 '쿠아만테'가 등장합니다.]
변해버린 외형은 놈이 고블린이었다는 진실을, 결코 떠올릴 수 없게 만들었다.
체구는 오히려 작아져 일반 고블린의 크기와 흡사해졌을지 모르나, 외형은 인간의 그것과 비슷했다.
마치 온몸이 칠흑으로 뒤덮인 어린아이가 서 있는 것 처럼 보였다.
공포 영화가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