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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화 〉54화. 마족의 종자 (54/122)



〈 54화 〉54화. 마족의 종자

쿠아만테는 동상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석탄으로 만든 조각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왜, 움직이질 않죠?"
"그러게."
"어떻게 하죠?"

이를 듣던 노랑나비가 답답한 듯이 대답했다.

"공격! 그것밖에 없잖아? 이제 와서  고민해!"
"그래. 먼저 햄스터가 도발을 써 보자."

결국은 그거다.
몬스터를 집에 데리고  펫으로 키울 것도 아니니, 도망치거나 공격하는 것 외에 길이 어디 있겠는가.
도망치지 않기로 결정했으니 남은건 공격뿐이다.

깡, 깡-!

요란하게 울려대는 방패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감고 서 있던 쿠아만테의 눈이 번쩍 뜨였다.
안구마저 시커멓다. 검은자위라 해야 할까.
흰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분명하게 향한 곳은 햄스터가  방패였다.

쉬익-.

마치 화살이 날아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터엉-!!


"크윽."

눈으로 확인하기도 힘든 속도로 이동한 쿠아만테는 무표정하게 주먹을 내질렀다.
핑쿠햄스터는 가까스로 막아냈으나, 반동으로 2미터 가량 뒤로 미끄러졌다.


"괴... 괴물"

세영은 곧장 확인했다.
파티 상태창에 보이는 그의 체력을.

"방패로 막아냈는데 체력이 30%나 줄었잖아?"
"네...  풀 희귀 아이템으로 방어구 도배됐는데도 이 정도니까, 다른 사람은 두 번 정도 공격 받으면 죽을 거예요."


다행인 점은, 마치 의지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놈의 공격이 느렸다는 점이다.


"그래도 버틸 만은 하겠어요. 이 정도 속도라면."
"그래. 계속 버텨줘."


파티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세영은 화염 탄을 사용하지 않고, 개조하지 않은 쇠뇌를 꺼내 아기살로 공격을 시작했다.
놈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면,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순식간에 죽게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전 우선. 신중하게 가자고!"
"그래!"


왠지 이 전투는 길어질 것 같았다.



*


- 스콧 님. 설마 아직도 버티고 계신 겁니까?


스콧은 마족의 등장이라는 놀라움에 더해, 눈앞에서 힘겨운 전투를 시작한 저들에게 온 신경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러다 쏟아지는 길드 대화창의 메시지로 겨우 정신을 차렸다.

- 아, 아닙니다. 지금은 다른 파티가 사냥하는 걸 지켜보고 있습니다.

- 네? 다른 파티요? 나오는 길에 못 봤는데... 설마?


- 말도 안 돼. 그 난쟁이 캐릭터들은 아니겠지?

길드 대화창은 또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자신들이 실패한 걸 어느 누가 잡는다는 것인가.
적어도 파르도 섬 내에서 시작한 플레이어 중에는 자신들이 최강이라고 자부하고 있었거늘.


- 여러분이 본 그 파티가 맞습니다.  명의 아이 캐릭터를 포함한 명이... 아니, 다섯 명이 사냥 중입니다.


- 그럼 얼른 도망치세요. 스콧 님. 괜히 옆에 있다가 같이 죽지 마시고!

- 맞아요. 스콧 님의 장비는 누구의 장비보다도 고가이지 않습니까. 다시 구하려고 해도, 구하기 쉽지 않은 아이템 뿐이잖아요.


-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걱정들 안 하셔도 됩니다.


스콧은 길드 대화를 종료했다.
저들에게 설명하는 것도 귀찮고, 한다 해도 믿어줄까 의심스러웠다.
지켜보는 자신조차 믿기 쉽지 않으니 말이다.

"저기..."

김만우가 말을 걸어왔다.


"네. 말씀하시죠."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십니까? 사냥 성공해도 템은 저희 몫이에요!"

이 남자는 자신을 오해하는 듯했다.
그리고 놀라웠다.
저들이 실패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고, 성공한 다음 아이템을 나눌 걱정을 하고 있다.
그만큼 저들을 신뢰하는 것일까?

"아닙니다. 그저 구경을 할 생각으로... 혹시 불편하신가요?"
"아, 아닙니다. 그런 거라면 뭐.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아이템은 저희 파티 몫이니까요!"
"물론입니다. 저는 동료의 시체에서 드롭 된 아이템을 회수한 것으로 충분히 만족 합니다."


그 뒤부터 김만우는 말이 없었다.
스콧도 마찬가지였다.
저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전투 장면을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

"이거, 초반 지역부터 이런 괴물이 나오면, 나중에마왕이라도 나왔다가는 도시가 불타고 그런  아닌지 모르겠네요."


레드문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그런 말을 해왔다.


햄스터의 어그로 유지를 위해, 공격을 잠시 쉬고 있는 것이다.
그건 세영 역시 마찬가지다.


"왜, 다른 게임에서도 그런 경우는 많잖아. 가상 현실이라서 좀  와닿기는 하지만."
"아하... 그렇게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네요."
"둘이서만 무슨 대화를 하는 거야!"


노랑나비가 끼어들었다.


"넌 왜 왔어!"
"나도 희귀 무기야!더 공격했다가는 나를  거라고!"


둘은 또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세영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아직 쿠아만테는 스킬을 전혀 사용하지를 않았다.
어떤 스킬을 사용할지, 체력이 바닥나가면 어떤 식으로 패턴이 추가되거나 광폭화 할지 의문스러웠다.

'이럴 때는 역시 힐러가 있으면 좋겠는데. 상태 이상도 치료하고, 힐량도 치료약보다 월등하니까...'


아이들의 친구 중 한 명인 까만 곰이 힐러를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요할 수는 없지만, 전직할 때 힘들다면 기꺼이 도와줄 의향이 있었다.

"다시 공격!"

햄스터의 외침에, 다들 공격 태세를 갖췄다.
그가 검을 집어넣고, 포션을 마시는 동안은 앞으로도 이렇게 휴식을 해야 할 것이다.

"햄스터야. 치료약 남은 건 어때?"
"네. 아직 많아요."


세영이 무려  개나 되는 치료약을 줬으니, 아직은 여유로웠다.
힘이 강한 기사가 아니었다면, 무거워 이동이 느려졌을 정도의 많은 양이었다.

"치료약 마시고, 바로 마스크 다시 착용해. 언제 이상한 상태이상 걸어올지 모르니까!"
"네."

전투는 계속됐다.
그동안 경험했던 어떤 전투보다 긴장의 연속이었고, 매우 긴 시간 동안 계속됐다.
그리고 결국 놈은 스킬 사용을 시작했다.


[고대 마족의 종자 쿠아만테가 스킬 '어둠의 영역 Lv. 1'을 발동합니다.]


"스킬이야. 다들 주의해!"
"네!"


놈의 발 아래에서 시작된 시꺼먼 그림자가 둥그렇게 공간을 좀먹어갔다.
반경 수십 미터의 거대한 원을 그리며, 최종적으로는 주변 공간이 새까맣게 어두워졌다.
스콜피온 길드가 설치한 횃불은 연기를 피워내며 꺼져 버린 지 오래다.

[어둠의 영역이 선포되었습니다. 어둠이, 범위 내의 모든 빛을 집어 삼킬 것입니다.]

"응?"
"뭐?"
"잉?"

스콧과 김만우는 온통 어두워진 탓에 당황했지만, 전투 중인 일행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카스나의 눈 스킬로 인해, 새까만 어둠 속에서도 시야 확보에 문제가 없었다.

"괜히 긴장했네요."
"하하. 그래도 주의하자. 또 다른 스킬을 사용할지도 모르니까."
"네, 오빠!"

운이 좋았다.
다른 파티였다면 엄청나게 고생했을 패턴이었다.
사제 계열 직업 정화의 불꽃 같은 스킬을 사용해 어둠을 걷어낼 수 있긴 하지만, 해당 스킬은 네임드 몬스터에게 확률적으로 드롭되기 때문에 매우 희귀했다.


"진짜 마족이 아니라, 종자라 그런지 그다지 강하진 않네요."
"글쎄... 그냥 우리가 운이 좋은거 아닐까."
"맞아. 카스나의 눈 스킬이 없었으면 전멸했을 패턴이니까."


대화를 나누며 전투를  정도로, 안정적인 사냥이 가능했다.
물론 그만큼 장시간 동안 전투가 이어졌고, 힐러가 없는 탓에 핑쿠햄스터 역시 엄청난 치료약을 소모하고 있지만 말이다.


[고대 마족의 종자 쿠아만테가 스킬 '어둠의 안개'를 사용합니다.]

[어둠의 안개 독에 저항하셨습니다.]


이번에는 히부린 마스크의 힘으로 안개 독에 저항했다.
찌릿찌릿한 자극과 함께 매초 2의 체력이 소모되어 갔지만, 상태 이상에는 저항해, 데미지는 2에서 더는 늘어나지 않았다.
 정도라면 치료약, 혹은 고블린 무기에 옵션으로 붙은 회복량 만으로도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마치 모든게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준비된것 같네요..."
"그러니까."
"진짜 운빨 쩌시네요. 형."


세영은 파티원들의 시선에 황당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혼자서 사냥하는것도 아니고!"
"히히히. 맞아요. 저희가 운이 더 좋죠. 오빠를 만났고, 같이 파티 사냥을 할 수 있으니까."
"옳소!"

세영은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졌다.

담소를 나누며 전투를 나누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마치 이들을 꾸짓기라도 하듯이, 쿠아만테의 스킬 발동 주기가 짧아지더니,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했다.
전투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고대 마족의 종자 쿠아만테가 스킬 '피의 저주 Lv. 2'을 발동합니다.]


저주는 마스크로 막아낼 수 없었다.
스킬에 의한 회복 주문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디버프였다.
그러나 파티에 힐러는 없었고,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고대 마족의 종자 쿠아만테가 스킬 '분신 Lv. 1'을 사용합니다.]

놈의 육신이 두 개로 갈라졌다.
분명 하나는 가짜일 것이다.


[고대 마족의 종자 쿠아만테가 스킬 '광기 Lv. 1'을 사용합니다.]

두 마리의 쿠아만테가 모두 발광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는 내가 맡을게."

세영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예측이긴 하나, 이제 놈의 체력이 30% 이하로 보였기 때문이다.
화염 탄을 퍼부어 한 마리씩 끝장낼작정이었다.
어차피 한 마리는 가짜일 테니, 어느 쪽이 가짜를 상대하든 금세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간단하지 않았다.

[고대 마족의 종자 쿠아만테가 스킬 '동조 Lv. 5'를 발동합니다.]


[두 마리의 쿠아만테의 체력이 동조합니다. 분신의 체력이 본체와 동등하게 상승했습니다. 앞으로 1분 안에 최소  마리를 처치하지 않으면, 쿠아만테의 동조가 종료되며  마리의 육체가 하나로 합체 합니다. 동시에 남아있던 체력이 더해집니다.]

큰일이었다.
지금놈의 체력이 30%남았고, 만약 앞으로 데미지를  준다면, 1분 후에 놈의 체력이 60%가 된다는 소리였다.


"한  빨리 처치해야겠어."
"형. 부탁해요. 버티실 수 있겠어요?"
"몰라. 하지만 할 수 밖에 없겠지."


세영은 두개의 영웅 등급 쇠뇌를 손에 쥐었다.


하나는 아기살. 하나는 화염 탄이다.

이제 쌍 쇠뇌 사용 스킬도 제법 레벨이 상승해, 데미지 패널티가 많이 줄었다.
공격력 면에 있어선 자신 있었다.

철컥. 철컥.

"간다! 연발 사격!!"


퍼퍼퍼퍼펑-!!

폭음과 함께, 둘 중 한 마리의 쿠아만테가 세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녀석이 부디 분신이길 바랬다.
분신이 본체와 공격력이 같을 리가 퍼억-!


"으윽..."

고작 두 번의 연발 사격이 명중했는데, 놈의 첫 번째 공격이 날아들었다.
엄청난 속도.
가득했던 체력의 30%가 사라졌다.


'그래도 최소 두 번은 더 버티겠네.'


놈이 분신이어서 그런 건지, 데미지가 그리 강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애초에 한 번의 공격으로 놈의 시선이 이세영을 향한 시점에, 놈은 분신이 분명했다.
본체였다면 어그로를 끌어오는데 다소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1분이고 자시고, 놈을 5초 안에 잡지 못하면 자신은 죽을 판이었다.
그만큼 놈이 주는 데미지는 엄청났다.
정말 숨도 안 쉬고 공격을 퍼부어야 했다.
살기 위한 발버둥.


퍼억.


퍽.

놈의 시커먼 주먹이, 세영의 복부를 강타했다.

[남은 HP가 20% 이하입니다. 회복이 필요합니다.]


이제 한방.
운이 좋아 무기의 옵션으로 회복되더라도, 두 번의 공격을 더 맞으면 죽게  것이다.


"하압! 회오리 베기!"

"아이스 에로우!!"


갑자기 나비와 레드문이 세영을 노리는 쿠아만테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형. 어서요! 이놈이 더 빨리 죽을 테니까!"
"아, 응!"


세영은 연발 사격을 사용했다.
반복된 사용으로 인해, 스킬 레벨이 6까지 상승하며, 6번의 폭발을 일으켰다.

[분신을 처치하였습니다. 쿠아만테의 동조 스킬이 해제되었습니다.]


"만세! 잡았다!"
"형, 빨리 체력 회복하세요!"
"그래!"


그때였다.

[고대 마족의 종자 쿠아만테가 스킬 '광폭화'를 사용합니다.]

갑작스런 메시지.
세영의 생각은, 아니 모두는 착각을 한 것이었을까?
쿠아만테는 이제서야 광폭화를 시작했다.

"뭐야, 이게?"
"설마... 그럼 데미지가 더 상승한다는 소리잖아? 어떻게 버티라는 소리야!"
"화염 탄으로 순살해 버려야 할까?"

야속한 메시지는 이어졌다.

[쿠아만테가 광폭화 했습니다. 쿠아만테의 공격력과 공격속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위기였다.
이미 광기라는 스킬을 사용해 날쌔진 쿠아만테가, 광폭화를 통해 더욱 강력하게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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