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9화 〉59화. 바라만 (59/122)



〈 59화 〉59화. 바라만

김만우는 스킬 사용을 아꼈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짠- 하고 사용하고 싶었던 탓이다.
일반 고블린이나 정예 고블린 따위는 이제 그의 성에 차지 않았다.
적어도 네임드 몬스터. 그전까지는 꼭꼭 숨겨둘 작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직도 일행의 제일 뒤에서 굳어버린 불꽃이나 채집하고 있는 신세였다.


"아저씨는 전투 안 하고 채집만 해요?"
"흥. 내가 채집 안 하면, 저 폭발하는 탄환도 만들  없다고."
"피리를 불어서 독침을 피슉- 하고 공격하거나 하면 되는  아니에요?"


까만 곰은 김만우의 신경을 긁었다.
셰프인 자신도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마당에 처음에는 심심해서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김만우는 조금 자존심이 상했다.

"꼬맹아, 너의 요리는 대단했지만, 나의 연주도 엄청날 거거든? 두고 보면 알게  단다."
"그래요? 그거 기대되는데~"

까만 곰은 오히려 매번 발끈하는 김만우의 반응이 재미있어, 놀리는  멈추지 않았다.


나일과 포크 역시 김만우처럼 횃불에 의지해야만 했다.
이들은 까만 곰의 조수를 자처했지만, 설마 이런 위험한 동굴에 들어올 줄 꿈에도 몰랐다.
다만, 세영일행의 전투를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감탄 중이었다.

"와. 저건 무슨 직업이죠?"
"무슨 로켓을  없이 쏴 대는  같네요."

 바람에 김만우는  짜증이 났다.
자신도 저렇게 칭찬 받고 싶었으니까.

'네임드 몬스터는 언제 나오는 거야!'


그런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바람은 곧 현실이 되었다.



**


"우와악-!"

터억.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질 뻔한 햄스터를, 간신히 붙잡았다.


"헉, 헉... 형, 고마워요. 죽는 줄 알았네."

현실이라면 불가능 했겠지만, 게임인 만큼 세영의 힘으로도, 떨어지는 햄스터의 캐릭터를 가뿐히 들어 올렸다.


"캐릭터가 작은 게 도움이 된 건가? 키킥."

노랑나비는 웃었지만, 그녀의 캐릭터 역시 소녀의 외형으로 매우 작았다.

"와- 이게 다 뭐야?"
"엄청 넓네."


좁은 동굴의 통로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길이끊겼다.
이윽고 드러난 공간은 단순한 낭떠러지가 아니었다.


바위 동굴에서 본 것과 비슷한 크기의
축구장보다 넓은 거대한 공간이 등장했다.
일행이 서 있던 장소는  공간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절벽의 중간 쯤이었다.
수십 미터 아래에 바닥이 보였고 수십 미터 위로는 동굴의 천장이 가로막고 있는 돔의 형태로 보였다.


"어떻게 내려가죠?"
"그냥 점프하면 안될까?"
"뭐? 미쳤냐. 죽을 거라고! 무슨 번지 점프도 아니고!"


레드문은 높은 곳을 무서워했다.


"밧줄 같은  없을까?"
"그런 게 갑자기 어디 있어."

그런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움직임이 저 아래에서 보였다.


"저건 뭐지?"

마치 거대한 뚱보가, 마법사의 로브를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손에는 거대한 나무 지팡이를 쥐고, 뒤뚱뒤뚱 걸음을 옮겼다.

[고블린 대족장 '바라만'이 등장하였습니다.]


"우와, 드디어 최종 보스!?"
"아마 여기가 동굴의 가장 깊은 장소인가 봐요. 시장의 의뢰도 아마 여기서 클리어 가능할  같은데... 근데 설마 저거 전부 고블린?"

지면 위에는 온통 고블린천지였다.
수천 마리, 혹은  마리가 넘는 고블린이 있는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때 바라만의 수상한 움직임이 또 다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고블린 대족장 바라만이 결계에서 흘러 나오는 마나의 힘을 흡수합니다.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넓은 공간의 중앙 부근에 놓여있는 거대한 핵. 또는 알이라 불러야 어울리는 기이한 물체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댔다.

바라만이 주변에 서서 지팡이를 가져다 댔더니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온 것이다.
그리고 메시지는 멈추지 않고 계속됐다.

[고블린 대족장 바라만이 스킬 '차원의 문 Lv.1'을 사용합니다.]

놈의 앞.
허공에서 스파크가 일더니, 갑자기 공간이 찢어졌다.
대지가 가볍게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윽고  틈새에서,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이 밀려 나오는  아닌가.

"저게, 다 뭐야?"
"고블린 숫자가더 늘어났는데?"
"형. 어떻게 하죠? 안 그래도 지금 저 아래에 수천 마리의 고블린이 있는데, 무슨 수로 대족장을 처리하죠?"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심지어 종류도 다양했다.
일반, 정예 가리지 않았고. 창병, 정찰병, 주술사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게다가, 놈은 마법사인  같은데요? 지팡이도 들었고 말이에요. 햄스터야. 너 마법을 방패로 막으면서 탱킹 할 수 있겠어?"


지난번 상대했던 드라이어드 역시 마법을 사용했으나, 주된 공격은 식물 줄기로 변이  팔을 이용한 채찍 같은 물리 공격이었다.
하지만 마법이 주가 되는 공격이라면 이야기가달라진다.


"글쎄... 힐러라도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

마법을 방패를 사용해 방어해 내더라도, 많은 데미지를 입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마법은 물리 공격보다 공격 속도가 느리지만,  방 한 방의 공격력이 매우 강력하기 때문인 이유 하나와 고블린 시리즈 방어구는 마법 방어보다 물리 방어력이 높은 장비이기 때문이다.

"어그로 확보하기도 쉽지 않겠는데? 단순한 도발 스킬 사용 만으로는 어그로 확보가 힘들잖아. 가까이 붙어서 도발 쿨 타임마다 공격도 반복해야  텐 데, 가능 하겠어?"


걱정스럽던 햄스터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건 걱정 마. 새로운 스킬을 배웠으니까. 놈의 마법 공격이 얼마나 강력한 지가 문제지, 어그로는 이제  잡을 수 있다고!"

자신감이 묻어 나오는목소리.
그는 새로운 스킬 빛의 사슬을 배웠다.
마법으로 만들어진 사슬이, 적을 옭아매며 강력하게 시선을 끌어  것이다.
기존의 도발 스킬과 함께 사용하면, 웬만해선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형의 화염 탄은 예외에요. 그건 너무 강력해서."

모두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세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보스는 그렇다고 하고, 저 개미 때 같은 수많은 고블린을 처리할 방법이 없을까? 아니면, 보스만 조용히 빼내서 잡거나... 흠..."

마땅한 수단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전부  잡는 방법은 어때?"
"네?"
"그게 가능할까요? 아무리 네임드 이외에는 간단하다고 하지만, 저런 숫자면..."

조금 욕심을 부릴 작정이었다.
이번에도 마차를 채우지 못하고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모든 몬스터가 한 번에 달려오는 것도 아니지 않겠어? 구석에 조용히 내려갈 수만 있다면, 각 개 격파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대로 된다면 모르지만, 갑자기 우르르 몰려오면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생쥐 꼴 되는 거 아니에요?"


의견이 분분했다.
먼저 방법을 제시한 이세영조차, 안전을 확신할  없었으니 당연했다.

"적어도 완벽하게 도망칠 방법을 만든 다음에야 실행할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죽는 건 안 되지."


이를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까만 곰이 의견을 제시했다.

"저기, 오빠나 레드문은 여기서 바로 공격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응?"

모두가 그녀를 주목했고, 노랑나비가 반문했다.


"우리가 있는 바로 절벽아래였다면 모를까, 저렇게 멀리 떨어져 있잖아?"
"그건 지금이나 그런 거고, 소리를 지르거나 해서 이쪽으로 유인한 다음에, 위에서 공격하면 되는 거 아냐?"

일부러 시선을 끌어 유인한다.
제법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지금 일행의 위치는 바닥에서 수십 미터나 떨어진 절벽의 중간 부분이다.
위험해 지면, 등 뒤에 있는 동굴의 통로 안으로 도망치면 될 뿐이고.

"좋은데? 한번 해 볼까?"
"그래요. 고블린 정찰병이나 주술사의 사거리는 그리 길지 않으니까, 우리가 훨씬 유리할 거에요."

의견이 모아졌다.
곧장 실행할 뿐이다.

까앙-! 까앙-!

핑쿠햄스터가 방패를 강하게 내리쳤다.
거대한 공동 전체에 몬스터의 귀를 찌르는 소음이 퍼져나갔다.

키이익.
쿠엑.

그나마 위치가 가까웠던 고블린들이 일제히 햄스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마 수백마리는 넘어 보였다.
그리고 곧장 일행이 서 있는 절벽 아래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


꾸에엑-.

카악-.

"와- 정말 대단하네요. 이 무기."
"당연하지. 10억 짜리 무기인데."

레드문의 신규 스킬은 놀라웠다.
일대를 얼음 지대로 만드는범위 지정 마법이었는데, 다행히 절벽 아래까지 그 범위가 유효했다.

아이스 필드.
위에 올라선 몬스터는 처음에는 빙판처럼 미끄러운 탓에 넘어지거나 이동에 제약을 받고, 시간이 흐르면 바닥에 닿은 부위부터 점차 얼어붙어 갔다.
마법 저항력이 약한 고블린들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것이다.
단순한 스킬의 효과는 아니었다.
영웅 무기인 아이스 스틱의 효과로 동상 디버프가 누적되며, 점차 체력을 잃어버리게 된 탓이다.
수십 마리의고블린들을 스킬 한 번 사용해서, 싹 쓸어버리고 있었다.


"마나 회복은 어때?"
"엄청나요. 동시에 여러 마리를 사냥하기 때문인 거 같아요. 포션도 거의 마시지 않았어요."


10억은 무슨.
아이스스틱을 경매장에 올린다면, 이들의 생각보다도 훨씬 비쌀  틀림없다.
마나 회복 옵션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화염 탄은 언제 봐도 사기적 이네요. 사거리도 엄청나고."


언제나 그렇듯 이세영의 활약 역시, 마법사 못지않았다.

레드문의 마법에 견뎌낸 건, 당연 하게도 정예 고블린들이었다.
그러나 놈들이 차가운 얼음의 대지를 벗어나 마주한 건, 세영이 쏘아  폭발하는 탄환 이었으니.
 몬스터 임에도 심지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템들은 언제 회수하러 가지?"
"아깝다... 그냥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니겠지?"


절벽 아래인 탓에, 아이템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었다.
벌써 천 마리가 넘는 고블린의 시체가  아래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런 보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칭호가 주어집니다.]


[칭호 : 정예 고블린 학살자]


무려  마리 이상의 정예 고블린을 처치하셨습니다. 대다수의 고블린들은 당신만 보면오금이 저릴 것입니다.
- 힘 +5, 체력 +2

현재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세영과 레드문 뿐이었다.
모두는 그저 앉아서 구경 중이었다.

"원거리 딜러의 장점은 이런 점에 있지. 후훗."
"그래.  잘났다. 어차피 파티라 나도 경험치 먹거든?"


노랑나비는 몸이 근질근질  모양이었다.
그녀도 신규 스킬을 선보이고 싶었던 걸까?


"이제 슬슬 정리됐네요. 더는 방패를 아무리 두드려도 이쪽을 돌아보지 않는데요?"
"그러니까. 정말로 안 들리나?"


노랑나비가 외쳤다.

"야 이~ 뚱보 고블린아! 이쪽이야! 여기로 와보라고!"

대족장을 향해 외친 소리였다.
그러나 바라만은 지팡이를 들어 중앙의 생명체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할 뿐이었다.


"뭐하냐. 바보 같아."
"도발해도 안 보는데 소리지른다고 보겠냐? 멍청이."
"죽을래? 너희! 확 절벽 아래로밀어버릴까 보다."


이젠 세영이 편해졌는지, 눈치도  보고 험한 발언을 해 댔다.
하지만 세영의 눈에는 모두 귀엽게 만 느껴졌다.


"진정해. 이제 슬슬 내려갈 방법을 생각해 보자."


노랑나비는 금세 조용해졌다.
항상 그의 말이라면 잘 따르는 소녀였다.


이제 절벽을 내려가 아이템을 회수할 차례다.
남겨진 살아있는 고블린들은 아직도 수천 마리에 달하지만, 절벽의 바로 아래는 놈들의 인식 범위에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내려가는 방법만 확보하면 될  같았다.

하지만 그건 모두의 착각이었다.
갑자기 바라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블린 대족장 바라만이 스킬 '화염구 Lv. 5'를 사용합니다. 흡수한 결계의 에너지로 인해 스킬의 공격력과 범위가 대폭 상승합니다.]

"뭐, 뭐야? 갑자기?"
"저거 파이어볼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근데 엄청 커."

마치 작은 태양처럼 보일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다.
육체와 비슷한 크기의 거대한 화염구가 놈이 쥔 지팡이 위에서 갑자기 화르르- 불타오르며 생성됐다.
그리고 놈은 곧장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향한 곳은 절벽. 이세영과 그 파티원들이 있는 장소였다.

"서... 설마?"
"다들 서둘러. 빨리 통로 안으로 들어가."
"이게 다 노랑나비의 목소리가 커서 그런 거야!"
"너 진짜 죽을래!"

이윽고 거대한  덩어리가, 그들이 있던 절벽을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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