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62화. 힐러는 필요 없어
"야! 지금 뭐 하는 거야?"
김만우가 황당해 하며, 세영을 향해 호통을 쳤다.
그가 쏘아 낸 탄환이 바라만을 향해 날아간 게 아닌,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필, 체력이 바닥나며 죽기 일보 직전인 핑쿠햄스터의 캐릭터를 향해서.
"지켜보세요."
세영은 호통을 듣고도, 탄환을 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으윽."
핑쿠햄스터 역시 깜짝 놀라 회피하려 했지만, 날아오는 쇠뇌의 탄환을 피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순발력이 뛰어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탄환에 의한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무척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HP +100
HP +100
HP +100
체력이 회복되는 것이 아닌가.
"형? 이거 어떻게 한 거예요?"
"새로 개발한 탄환이야."
[최하급 힐링 탄환]
- 최하급 힐링 포션이 담긴 개조 탄환입니다. 공격 받은 대상의 체력을 최하급 힐링 포션의 회복량만큼 증가 시킵니다. 개조 쇠뇌 전용 아이템입니다.
- 거래가 불가능합니다.
이는 세영이 빈 개조 탄환에 이런저런 약품을 집어넣어 보다가, 탄생한 신규 탄환이다.
히부린의 연금술 레시피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만들어 낸 자체 만으로도 기적에 가까웠다.
단순하게 빈 개조 탄환에 포션을 넣는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레시피가 존재하지 않는 연금술을 이용한 제작은, 올바른 제작 법과 재료들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단 번에 완성품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확률에 의해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도 하기 때문에, 또 그 확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신규 레시피를 찾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반면 이세영의 경우, 높은 행운 스텟 덕분에 확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높았고, 그 결과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애초에 개조 탄환을 사용하는 클래스, 거기에 연금술을 동시에 해야 하는 클래스는 이세영이 유일했기에, 이런 시도를 한 사람이 존재할 리도 없었다.
"형의 조언 덕분이에요. 저도 열심히실험을 해봤거든요. 이런 저런 실패를 거듭한 끝에 찾아 낸 거에요."
인공지능 '엔젤'이 창조해 낸 프로젝트 클라우드의 세상.
얼마나 많은 수의 레시피며, 숨겨진 아이템들이 존재하는 지는 오직 엔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뭐? 너는 그걸 왜 이제야 말해! 그 중요한 정보를!"
"그야 깜짝 놀래게 하려고 그랬죠. 지금까지는 딱히 사용할 기회를 포착하지 못했었을 뿐이에요."
김만우는 자신이 깜짝 놀란 걸 성질을 부리며 표현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아... 이제 힐러까지... 형 혼자 모든 직업 다 하시게요?"
"맞아. 헌터에,힐러에, 네크로맨서에. 완전 사기 캐릭."
"오빠. 완전 멋있어요!"
이게바로 세영이 상상했던 그림이다.
한명. 다른 반응을 해 오는 아이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변명도 미리 준비해 뒀다.
"힐러까지는 아니야. 나 스스로에게는 사용할 수 없거든. 그리고 치료약으로는 못 만들어. 그러니 한 발, 한 발에 얼마나 비싼데."
돈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수긍하는 분위기다.
"그건 그렇겠네요."
"형 아니면 맘대로 쓰지도 못하겠어요."
"나라도 마음껏 쓸 수 있는 건 아니야. 위급할 때만 쓸 거니까, 너무 의지하지는 말아줘."
"네."
"네, 오빠!"
지금은 이런 대화를 한가로이 주고받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힐링 탄환 덕분에 체력을 가득 회복한 핑쿠햄스터를 향해, 바라만은 또 다시 스킬을 사용했다.
[고블린 대족장 바라만이 스킬 '화염의 비 Lv.4'를 사용합니다.]
몇 번이나 지켜 본 스킬이지만, 직접 공격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화염구에 비하면, 스킬의 공격 범위가 엄청 넓었다.
"늦었어. 못 피해."
불의 비가, 파티원 전체에게 쏟아져 내렸다.
세영은 힐링 탄환을가장 먼져 김만우에게, 그리고 레드문을 향해 발사했다.
가장 체력이 낮고, 레벨도 낮으며, 방어구도 안 좋은 게 이 두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위기는 간단하게 넘어갔다.
"형도 조심하세요."
레드문은 걱정 되는지 그런 말을 해 왔다.
체력 스텟에 투자를 많이해 괜찮을 줄 알았는데,엄청난 데미지를 입었다.
아마 누라라의 반지에 붙은 화염 저항력 감소 옵션 때문 이리라.
"화염 저항 수치가 마이너스인 탓에 더 큰 데미지를 입은 모양이야."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이놈 완전 불 마법사인데."
"다음 공격 받을 때는 반지를 잠깐 빼든지 해야지 뭐."
이세영의 가세로, 전투는 급격히 이쪽으로 기울었다.
최강의 딜러에 힐러까지 더해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빛의 사슬!"
기사 특유의 어그로 확보 스킬이 사용됐다.
눈부신 사슬이 나타나며, 바라만의 온몸을 칭칭 감아 강력하게 조였다.
"크윽. 어리석은 인간 놈들... 모조리 쓸어 주마!"
놈도 결국은 최약체의 몬스터인 고블린 일 뿐이다.
거친 말투로 위협해 오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모두 공격 시작!"
본격적인 대족장 공략이 시작됐다.
"햄스터야. 검으로 공격해. 힐링 탄환으로 체력 회복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네, 형."
세영의 놀라운 점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쌍 쇠뇌의 사용.
한 손으로는 화염 탄을 이용해 누구보다 강력한 공격을 퍼붓고, 다른 한 손으로는 힐링 탄환을 이용해 파티원의 체력을 회복 시켜 준다.
딜러와 힐러의 역할을 동시에 실행하고 있는 놀라운 플레이.
"이거, 형이있고 없고 차이가 너무 엄청난데요?"
"그러니까. 말도 안돼."
"오빠 때문에 우리는 그냥 들러리가 된 기분이에요."
전투 중 잡담이 늘었다.
지나치게 여유로운 탓이다.
이제 이세영의 힐링 탄을 믿으며, 제 자리에 서서 공격만 하면 됐으니까.
패턴을 파악하고 이리저리 이동하며, 강력한 공격을 피해야 하거나 하는 등의 어려움이 현저히 줄었다.
"그래도 긴장해 들.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체력이 30% 아래로내려가면 보스가 어떻게 변화 할지 모르니까."
가끔 화염구를 사용하는 타이밍에 탱커만 제외하고 거리를 벌렸다.
화염의 비 스킬은, 대놓고 맞으면서 공격을 계속했다.
공략 난이도가 몇 단계나 하락했다.
잡을 수 있다.
지하 동굴의 최종 보스인 바라만.
이대로면 얼마 안 가 놈을 사냥할 테고, 어마어마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겠지?
파티원 모두의 얼굴에는 묘한기대감이 부풀고있었다.
하지만 놈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고블린 대족장 바라만이 스킬 '공간의 틈'을 사용합니다.]
"뭐지?"
갑자기 바라만의 온몸을 검은 안개 같은 것이 두르더니, 놈의 거대하고 뚱뚱하던 육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저 안개, 어제 쿠아만테가 마족으로 변할 때랑 비슷하지 않아요?"
"맞아... 근데 왜 사라졌지?"
모두가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고블린 대족장 바라만이 결계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힘을 흡수합니다. 능력이 대폭 향상됩니다.]
절대 못 하게 막으려 갖은 노력을 해왔던 일이, 수포가 되었다.
모두의 얼굴에 실망의 기운이 역력했다.
"언제 저기까지 간 거지?"
"빌어먹을! 성가신 놈이네!"
"아무래도 놈이 사용한 스킬은 일종의 '블링크'였던 모양이에요."
"블링크?"
"네. 다른 게임 같은 데서 등장하는 순간이동 마법이에요."
순간이동을 사용하는 고블린이라니.
파티원은 하나같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지금은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바라만이 결계에서 흡수한 마나를 이용해, 강력한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블린 대족장 바라만이 스킬 '화염의 비 Lv. 7'를 사용합니다.]
"어떻게 하지..."
그때 핑쿠 햄스터가 나섰다.
"모두들 여기서 기다려요. 형만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힐 좀 주시고요."
"그, 그래."
그는 이미 달리고 있었다.
세영과 비교하면 엄청난 빠르기였다.
기사 클레스 답게, 몸을 쓰는 일에 있어서는 마법사나 세영에 비해 차원이 다른 것이 당연했다.
깡. 깡-!
"고블린아! 이쪽이다."
그는 대 족장의 시선을 끌며, 대지를 가로 질렀다.
다행히 바라만의 스킬 시전에 제법 시간이 걸린 덕분에, 그가 원하던 장소 가까이 도달할 수 있었다.
수많은 화염 덩어리가 어두운 동굴 내부를 밝히며, 핑쿠햄스터의 머리 위와 그 주변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쿠엑-
화르르.
고블린들이 불에 타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댔다.
일반고블린들은 단 하나의 불덩이 공격으로 쓰러졌고, 정예 고블린들은 살아남은 만큼 여러 번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여기저기서 불타고 있는 수백 마리의 고블린들.
핑쿠햄스터가 향한 곳은, 고블린 무리가 대기하고 있던 장소였다.
바라만의 강력한 광역 마법으로부터 파티원을 지키고, 주변 고블린들 까지 처리하려는 일거양득을 노린 것이다.
HP +100
HP +100
HP +100
.
.
.
"고마워요. 형."
세영은 그런 핑쿠 햄스터를 따라오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달려왔다.
자칫하다가 파티 유일의 탱커가 죽기라도 하면 곤란했으니.
"하아, 그래. 그나마 쇠뇌 사거리가 길어서 다행이다. 그보다 잘했어."
큰 위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다급한 상황에 매우 적절한 대처가 아닐 수 없었다.
세영은 핑쿠햄스터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뭘요. 형에 비하면야."
하지만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바라만은 자신의 본래 실력을 한탄하기라도 하듯이, 중앙에 놓인 물체로부터 흘러나오는 힘을 의존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되면 앞으로 모든 공격이 증폭되어 발사될 지 모르는 일.
"또, 흡수하기 시작했어!"
"놈을 저기서 떨어뜨릴 방법이 없을까?"
"소용없어. 또 다시 순간이동을 사용하면 말짱 꽝이잖아."
어떻게 해야 좋을까.
머리를 쥐어 짜냈다.
그리고 세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저 물체부터 파괴해야겠어. 시스템 메시지를 보면 결계라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로 봐서, 바위 동굴의 봉인석과 비슷하지 않을까?"
"그럼 마나를 흘려 보내면 파괴 되는 걸까요?"
"알 수 없지만, 그 방법밖에는 없잖아?"
처음부터 생각했던 내용이지만, 실행할 수 없었다.
수천 마리의 고블린이 중앙을,저 물체를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여전히 고블린의 수는 엄청났지만, 호문클루스 누라라 덕분에 대부분의 고블린들은 실명 상태에 빠져있으니까.
"그럼 제가 할게요."
노랑나비가 나섰다.
"햄스터는 보스의 시선을 끌어야 하고,오빠는 힐 담당이니까. 여긴 저밖에 없죠!"
"나도 있잖아!"
레드문이 끼어들었지만, 서로 장난인 걸 알고 있다.
한 마디 내뱉었을 뿐, 노랑나비의 의견에진심으로 반대하는 건 아니었다.
"그럼 부탁할게."
"네. 오빠!저만 믿으세요. 히히."
노랑나비는 자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된 것에 크게 만족했다.
계획을 세웠다.
단순한 계획이었지만, 호흡이 중요했다.
자칫 실패했다가는 24시간 접속 불가라는 강력한 페널티가 존재했기 때문에, 모두의 긴장감은 극도로 상승했다.
이제 계획을 실행에 옮길 차례다.
[고블린대족장 바라만이 스킬 '차원의문 Lv.1'을 사용합니다.]
"나한테 맡겨!"
레드문은, 차원의 문이열림과 동시에 해당지역에 마법을 사용했다.
얼어붙은 대지.
멋모르고 나타나던 고블린들은 즉시 차가운 얼음 바닥 위에서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퍼퍼펑-!
곧바로 정예 고블린을 처리한 세영.
탱커인 햄스터는 자신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바라만을 중앙의 결계에서 조금씩 떨어뜨리고 있었다.
언제 중앙으로 순간이동 할지 모르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자칫했다가는 노랑나비가 위험해진다.
"잔챙이들 정리 완료!"
"그럼, 이제 보스 극딜하죠. 형도 마음껏 공격하세요. 이 정도면 웬만해서는 어글 안 튈 꺼에요.튀더라도 곧바로 되찾아 올 테니까 안심하세요."
대족장 바라만을향한, 집중 공격이 재개됐다.
아직 누라라의 저주에 의한 실명에 빠지지도 않았고, 좀 전 바라만이 사용한 화염의 비스킬에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멀쩡한고블린들이 다수 존재한다.
누라라가 힘내고 있지만, 단독으로 수천 마리의 놈들을 상대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놈들이 일행이나 누라라에게 아직 달려들지 않은 이유는 온 시선을 중앙의 물체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 놈은, 중앙의 물체를 향해 절을 하며 마치 숭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금 누군가 저 물체를 파괴하려 한다면, 아니 단순히 손을 가져가기만 해도, 남겨진 모든 고블린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것이다.
그러나 노랑나비는 매우 간단하게 중앙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타리뮤의 날개.
스킬을 사용해 눈에 보이지 않게 은신한 덕분에, 들키지 않고 간단하게 도착한 것이다.
정예 고블린들과는 거리가 먼 덕분에, 간파 스킬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었다.
'으으... 너무 징그러워...'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물체가 지나치게 흉측하게 생긴 것이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겁이 많고, 비위가 엄청 약했으니까.
'그래도... 손을 대야겠지?'
노랑나비는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다잡고, 중앙의 물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지지지.
찌릿찌릿한 정전기가 일었지만, 그리 강하지 않았다.
[결계를 향해 마나를 주입합니다. 매우 많은 양의 마나가 필요하므로, 마나 번(Mana burn)에 빠지는 걸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손을 댄 건 실수였을까?
노랑나비의 마나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며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의도한 게 아니었다.
닿는 순간 제멋대로 빨려 나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