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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64화. 대족장 (64/122)



〈 64화 〉64화. 대족장

"모두 조심해! 놈은 아직 살아있어!"

분노한 세영의 외침이 파티 대화 메시지를 통해 모두에게 전달됐다.


"저희도 봤어요. 지면에도 여기저기서 불기둥이 솟아 올랐고요."
"오빠. 아이템은 회수 하셨어요?"

세영은 말문이 막혔지만, 억지로 대답을 짜냈다.


"미안, 누라라가 회수하다가 공격 받고 죽어버렸어."
"에고, 아깝네요. 땅속에파묻혀 다시  줍겠죠?"
"아마도..."

세영은 급히지상으로 올라왔다.
여기저기 무너지고 비좁아진 지하에서 또 다시 바라만의 광역 마법 공격을 당했다가는, 피할 시도조차  번 못 해보고 당해버릴지도 모르니까.
또, 그게 아니더라도 진동에 의해 순식간에 흙더미에 파묻힐 가능성 역시 높았다.

'그나저나, 누라라도 나름 강력한 네임드 몬스터인데... 아무리 놈의 공격이 강해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 죽어 버리다니...'


세영은 조금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생기 흡수를 통해 체력을 가득 회복한 누라라.
아무리 공격에 약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빨리 쓰러진 건 말이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의문을 품고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콰앙-!

강력한 폭발 소리와 함께, 더러운 로브를 둘러 입은 뚱보 고블린이 등장했다.

"모조리 용서치 않겠다-! 인간 놈들!"

[고블린 대족장 바라만이 스킬 '화염구 Lv. 2'를 사용합니다.]

화르르르.


 틈도 없이 시작된 공격.
핑쿠햄스터는 바라만의 지팡이 위에서 만들어지는 불덩이가 채 완성되기도 전에, 놈을 향해  살 같이 튀어나갔다.


깡. 깡.


"니 상대는 나라고!"


바라만의 등 뒤로 이동했다.


결국 놈은, 시선을 빼앗기고 몸과 고개를 햄스터를 향해 반대로 돌렸다.
탱킹의 기본 중의 기본적인 움직임.
모두에게 뚱보의 거대한 등짝이 들어났다.

곧이어 빛의 사슬이 놈을 휘감았다.

콰앙-!!

지팡이 끝에서 떠나간 거대한 화염구의 폭발을, 온전히 혼자서 받아냈다.

세영은 곧바로 힐링 탄을 발사했다.
불타오르는 햄스터의 체력을 삽시간에 회복 시켰다.

"이제, 딜링 부탁해요!"
"OK"
"맡겨두라고!"

바라만의  뒤에서, 파티원들은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다.


공격을 하는 아이들은 해맑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템? 다른 잡템 따위 개나 주라지.
진정한 꿀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가.


최강의 고블린!
고블린 대 족장 바라만.
보물 고블린이 존재한다면 그건 바로 네 녀석이 틀림없다.


최종 보스 답게, 노란 빛을 띄는 아이템을 떨어뜨릴 것이 분명했다.

"영웅 아이템  놔!"
"야. 너는 아이스 스틱 있잖아!"
"나만 비싼 거 받아서 부담스럽다고. 빨리 다들 하나씩 주워야지!"
"웃기시네."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자, 분노했던 감정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잡템은 둘째 치고, 고대 마족의 주머니는 엄청나게 아끼는 아이템이다.
무려 마차 세 대 분량의 아이템이 들어가는 마법의 주머니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되찾아야 한다.

'놈을 빨리 처리하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겠어.'

세영은 몹시 마음이 급했다.

"연발 사격!"

바라만을 상대로는 처음으로 연발 사격 스킬을 사용했다.
그만큼 햄스터의 탱킹이 안정적이었으니까.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바라만의 전신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놈은 불 마법사지만, 화염 저항이 높은 건 아니었던 모양이라.
결국 바라만의 체력이 30% 아래로 하락했다.


생각해 보면, 고블린 돌격 대장이나, 마족의 종자 쿠아만테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양의 체력을 보였다.
놈에게 그 동안 입힌 데미지가 얼마 인데 이제야 30%라니.
그래도 결국은 끝이 보여갔다.


[고블린 대족장 쿠아만테가 스킬 '차원의  Lv 3'을 발동합니다.]

쩌저저적.


허공이 갈라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탑의 마나를 흡수하고도 레벨 1 단계의 차원의 문 스킬을 사용하던 바라만.
갑자기 레벨 3의 문을 열었다.

"뭐지?"
"아마 체력 30%이하로 내려간  아닐까? 광폭화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지만."
"설마... 엄청난 수의 고블린때가 몰려 나오거나 하진 않겠죠?"
"에이, 설마."

찢겨진 공간의 틈 안에서 고블린의 실루엣이 보였다.
레드문은 당연하게도,  장소에 얼음의 대지 스킬을 발동했다.

"딱 한 마리 인가 본데요?"


한 마리였으나, 문제가 심각했다.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온 것이다.
소환된 건 네임드 고블린이 분명해 보였다.

[고블린 주술왕 '피히히'가 등장합니다.]


피히히는 등장과동시에 바닥을 바라봤다.
얼음의 대지.
차갑고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도 그 어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네임드 몬스터답게, 미끄러짐과 동상 효과에 내성이라도 있던 건지.
제자리에 선 채 서서히 지팡이를 들어 올릴 뿐이었다.


[주술왕 피히히가 스킬'화염의 대지'를 발동합니다.]

화르르르.


"으악. 뜨거워!"
"뭐야. 미친. 범위가 내 다섯 배는 되겠네."

주변의 대지가 온통 화염으로 뒤 덮였다.


"모두 체력 관리해."

세영은 급히 누라라의 반지를 벗었다.
마법 방어력 증가 옵션이 있었지만,  속성 내성이 감소하는 탓에 손해가 막심했다.


"햄스터야.1분만 혼자 버틸 수 있겠어?"
"네. 어떻게든 해 볼게요. 광폭화 건 아니라서 데미지는 그대로 이니까요."
"그럼 나는지하로 내려가서 호문클루스 만들어 올게. 레드문! 너는 주변에 얼음의 대지 깔아서 땅이 불타는   없애버려!"
"네, 형."

세영은 급히 하급 정화 탄을 발사했다.
이 역시 신규 개발한 탄환이다.
파티원들의 화염 디버프를 모조리 해제 했다.

그 뒤 세영은 마음이 급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하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커다란 문제가 있었음을.


"으악. 저 놈까지 엄청나게 강력한 마력 탄을 쏘잖아!"

탱커인 핑쿠햄스터가 주술왕 피히히의 공격까지 동시에 버텨야 한다는 사실을.

두 네임드가 동시에 쏴 대는 마력 탄은, 방패를 무시하듯 엄청난 데미지를 입혔다.


"드디어 내 차례네. 내가 한 마리 상대 할게."

노랑 나비가 나섰다.
그녀의 신규 스킬 역시 아직선보인 적 없었다.

"회오리 베기!"

우선은 대검을 빙글빙글 돌려, 피히히를  뒤에서가격했다.
일단은 어그로를 자신이 가져올 작정이었다.


"버틸  있겠어? 방패도 없이?"
"당연하지. 지켜보라니까."

피히히의 시선은 금세 노랑나비를 향했다.
놈은 이제  등장했을 뿐이어서, 누적된 어그로 양이 적었던 덕분이다.

피히히의 마력 탄은 이제 그녀를 향해 발사되기 시작했다.


"패링(parrying)!!"


신규 스킬 패링.
레벨이 낮아 반격까지는 아직 불가 했다.
그러나 대검을 기울여 날아오는 마력 탄을 교묘히 흘려보낼  있었다.

"와, 그거 뭐야? 완전 사기적 인데?"
"히히.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닥쳐 봐! 집중 안 되니까."

스킬은 몰라도,평범한 일반 공격이라면 전부 튕겨내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그녀의 작은 도박이었다.
그리고 그 도박에서 멋지게 승리를 쟁취했다.



*

"뮬란님. 저 사람들 다 뭡니까?"
"무슨 네임드 몬스터를 두 마리나 동시에 상대하는데요? 아까 보셨습니까? 네임드 몬스터가 사용하는 그 굉장한 마법? 막 불기둥이 여기저기서솟아 오르는..."

뮬란은 멀리 떨어져서, 세영 일행의 전투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위험해 보였다.

"네... 그렇네요."
"저 사람들, 설마 뮬란님보다도 강한 걸까요?"
"......"


그래 보였다.
허나 자존심 상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하필 저들  김갑부가 있을  또 뭐람.


"근데, 뮬란님.  소동은 전부 사람들 때문 아니에요?"
"네?"
"그렇잖아요. 괜히 저 사람들이 난리 피우니까, 다른 사람들은  강해진 몬스터를 상대하게 생겼잖아요. 신규 퀘스트가 생겼다고 하지만, 아무나 주지도 않을 테고, 50레벨 찍으면 섬을 떠나게 될 터인데 지금은그럴 수도 없게 됐잖아요?"


현재 온라인상 공개된 정보에 의하면, 초보 지역은 50레벨까지로 알려져 있다.
파르도 섬 내의 가장 강한 몬스터의 출몰지인, 고블린 지하 동굴에서 획득 가능한 경험치 역시 50레벨까지 가 한계였다.
물론, 새로 등장한 고대 마법사의 탑은 예외적이긴 하다.

"그... 그렇군요. 정말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이네요. 흠."
"그렇죠? 네임드 잡는 거 유세 떠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하하... 네, 뭐."

뮬란을 향해 지나치게 아부성 멘트를 날리는 일행.
그들은 무슨 수가 있어도 뮬란과 고정 파티를 짤 목적이었다.

"뮬란님이 직접 가서 한마디 하시는 게 어떨까요?"
"네? 제, 제가요?"
"네. 저희보단 뮬란님처럼 장비도 번쩍번쩍 한 사람이 가야, 면이 서지 않겠어요? 그리고 저희는 자칫 했다간 광역 마법에 끔 살 당할지도 모르잖아요. 뮬란님이나 돼야 버티죠."
"네에..."

뮬란은 결국 등이 떠밀리며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도 마찬가지로 전투가 한창인 장소까지는 다가가지 못했다.
그만큼 폭음과 화염이 휩싸인 전장은 보기에는 화려했지만 가까이하기에는 두려움이 앞섰다.
결국 뒤에서 지켜보던 셰프 까만 곰과 보조인 포크와 나일의 곁을 향했을 뿐이다.

"저, 저기."
"네?"
"다, 당신들 때문에, 이 사단이..."


말을 더듬었다.
까만 곰만 있었다면 모를까, 뒤에 서 있는 나일은, 턱수염을 기른 건장한 남성이었다.


"뭐요? 확실하게 말씀해 주세요. 저희는 바쁘니까."

뮬란은,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은 이들이 대체 뭐가 바쁘다는 건지 의아해 물었다.


"네? 바쁘다고요?"
"네. 저희는 스낵을 준비 중이니까요."
"스, 스낵? 스네이크? 뱀 이요?"

뮬란은 이들이 소환술사 종류의 클래스 인가 생각했다.


까만 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스낵! 스낵 몰라요? 과자요 과자. 간식!"


 이후론 뮬란을 무시하고, 셋은 조리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뮬란은 멀뚱멀뚱 모습을 지켜  뿐이었다.

콰앙-!!


또 폭음이 들려왔다.
거대한 화염구가 폭발했다.

"아무래도, 너무 가까운 게 아닐까요? 기름 냄비 엎어지겠어요."
"예. 셰프. 그럼 조금 떨어질까요?"
"네 그러죠. 포크님, 냄비 뜨거우니까 조심히 옮겨요."


결국 이들은, 뮬란의 다른 파티 멤버가 있던 장소 근처까지 물러나 조리를 재시작했다.
멀리서 벌어지는전투보다, 오히려 이쪽을 모두가 흥미롭게 지켜봤다.

"저기 여러분. 지금  하고 계신 건가요?"
"당연히 요리죠. 저기서 위험한 적과 전투 중이시지 않나요. 그러니 저분들이 전투를 끝내고 오시면, 즐겁게 과자라도 먹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하려고요."


뮬란과 파티원들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 하며 지켜볼 뿐이었다.
 소리 크게 하려고 했던 계획은 잊어 버린 지 오래다.



*


"알파형! 언제 와요. 한계에요."
"미안! 이제 거의 끝났어. 조금만 기다려 줘. 정예 고블린 사체를 찾는데 시간이 조금 걸려 버렸거든."


무너져 내린 지하에서, 무언가를 찾는 건 매우 어려웠다.
나무 뿌리가 얽혀 안으로 진입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파티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으윽, 한계인데... 바라만이 차라리 광역 스킬이라도 사용해야, 치료약 마실 틈이라도 생기는데..."

핑쿠햄스터의 한계에 가까운 목소리가 스며 나왔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좀 만 버텨봐. 너 죽으면 전멸이라고!"

레드문이 소리쳤다.

"아, 씨. 치료약은 피가 너무 조금 차."


다들 급박한 순간에 얼굴을 찡그렸지만, 유일하게 한 사람 미소 짖는 이가 존재했다.

바로 김만우였다.


'지금 이로군. 지하 동굴 안에서는 세영이에게 타이밍을 빼앗겼지만...'


휠리리~

전투 와중에 갑자기, 뱀이라도 나올 듯한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이런 상황에 뭐해요! 집중 안되게!"

노랑나비가 소리쳤지만, 김만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피리를 불어야 했으니까.

[구슬픈 선율에 원혼들이 반응합니다. 이들은  땅. 고블린의 숲에서 잠들어 있었습니다. 고블린에게 목숨을 빼앗긴 자들입니다.]

- 원혼들이 피리의 선율에 맞춰 고블린들을 휘감기 시작했습니다.
- 고블린들의 공격속도가 대폭 감소합니다. 효과는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지속됩니다. 주변 고블린의 공격 속도 -90%

마치고블린들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매 초 한 번의 마력 탄이 날아오던 게, 10초에  번 날아왔다.


포션이고 치료약이고,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 시간이었다.


"뭐, 뭐야."
"꺅- 귀신! 흐아앙, 무서워..."
"말도 안 돼. 네임드 몬스터까지 적용되잖아. 이거? 아저씨! 이거 뭐예요?"

김만우의 어깨는 한껏 우쭐해졌다.
그러나 대답할 수는 없었다.
피리를 연주해야 했으니까.
그의 손가락이 멈추는 순간 영혼들도 사라져 버릴 테니까.

"아저씨, 이런 방법이 있으면 진작 쓰지 그러셨어요."

그럴 수는 없었다.
연주하는 동안 꾸준히 엄청난 양의 마나가 소모되는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피리를 부는 동안은 포션도 마실 수 없었기에, 한계가 분명한 스킬이었다.
정말 필요할 때만 사용해야 했다.


[위혼곡 1장의 연주가 종료되었습니다. 원혼들은 당신의 연주에 매우 흡족해하며 물러났습니다.]

[위혼곡의 스킬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더 깊은 원한을 가진 영혼들을 소환해 낼 수 있게 됩니다. 연주시 매 초 소모되는 마나량이 다소 감소합니다.]

"헉, 헉. 숨차네. 거 꼬맹이들 연주나 들을 것이지, 말 오질라게 많아요!"


겨우 입을 땐 김만우는 피리를 부는 동안 답답하게  못했던 걸 하나 하나 따지듯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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