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66화. 대족장
바라만이 쓰러졌지만, 아직 세 마리의 고블린 족장이 남았다.
"야호! 전설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쿠아만테가 있는 장소로 가자."
"네!"
"아저씨 아이템 잘 부탁드려요."
이번에도 아이템 회수는 김만우의 몫이다.
이제 남은 네임드 세 마리는 잔챙이일 뿐이다.
이 모든 게호문클루스 쿠아만테가 열심히 버텨 준덕분이기도 하다.
만약 세 마리의 족장들까지 동시에 상대해야만 했었다면,이렇게 무사히 바라만을 처리하는 건 도무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다른 호문클루스와 비교하면, 이 녀석은 진짜 엄청나네요."
"그러게, 특히 어둠의 영역 스킬이 사기적이네요."
누라라가 사용하는 나무의 저주는 주변 적의 눈을 멀게 한다.
반면, 쿠아만테가 사용한 어둠의 영역 안에 들어온 모든 대상은 시야를 잃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 전자는 독 공격인 만큼 아이템에 의해 저항하거나 정화를 통해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이고, 후자는 스킬의 범위에 해당하는 지역 그 자체를 암흑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이다.
당연하게도 누라라의 저주는 네임드 몬스터에게 통하지 않는다.
놈들은 하나같이 저항력이 꽤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다르다.
새까만 암흑 속에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움직이는 극히 일부의 몬스터를 제외하고는, 정예 몬스터고 보스 몬스터고 가리지 않고 시야를 잃게 된다.
"그런데, 고블린들은 지하 동굴의 어둠 속에서도 잘만 살아가지 않나요?"
"응? 듣고 보니 그렇네?"
"뭐지? 설정 오류인가?"
그건 아니었다.
어둠의 영역은 단순한 빛만 사라지게 만드는 어둠이 아니었다.
자신보다 하등한 몬스터나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들의 시각 그 자체를 봉쇄하는 마족 특유의 스킬이다.
"우린 그때, 카스나의 눈 스킬 덕분에 멀쩡했으니까 잘 모르겠지만, 뭔가 디버프 같은 게 걸리는 거 아니야?"
"그런가?"
언제 아이템을 회수하고 따라왔는지, 대화를 조용히 듣던 김만우가 나섰다.
"저 스킬은 그런 단순한 게 아니야.그 당시에는 소리도 전혀 안 들렸다고. 파티 대화는 들을 수 있었지만 말이야. 디버프 같은 게 아니었어."
어둠의 영역은 오감 자체를 어둠에 묻어버리는 스킬.
소리는 물론, 향기마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럼 우린 왜멀쩡했지?"
"카스나의 눈이라는 스킬이 그만큼 엄청난 거 아닐까?"
"그거 말고는 생각하기 힘드네. 카스나의 눈 스킬 설명에는, 짙은 어둠 속에서 사물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고 쓰여 있으니까, 어둠의 영역 안에서도 적용될 뿐 인 건가?"
열심히 토론 중인 아이들을 보며, 세영은 힘이 빠졌다.
"얘들아, 슬슬 정리하자."
"네,형. 근데 세 마리의 족장이 하나같이 어둠 속에서 발광 중인데요?"
"그러게...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쿠아만테에게 바라만이나 피히히의 탱킹을 맡길 걸 그랬어."
"그렇네요! 근데 좀 무섭기도 해요. 만약 앞이 안 보이게 된 놈들이 아무 데나 마법을 난사할 거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엄청 곤란하니까요."
아슬아슬한 위기 속에서 살아남았다.
대족장을 처치한모두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왠지 다들 수다쟁이가 된 듯하다.
"자! 아이템들 내놔라!"
"한 마리 한 마리 순서대로 처리하죠!"
남은 세 마리의 족장은, 심지어 하품이 나올 정도로 간단하게 정리 되었다.
최후에는 광폭화를 시도했으나 파티원 모두의 폭풍 같은 집중 공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쓰러져 버렸다.
"얘들 이렇게 약했나..."
이런 소리가 나올 정도로, 파티원 모두는 이전과는 비교조차 안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정리 되셨으면 이리 오셔서 차와 과자 드세요!!"
저 멀리 까만 곰의 외침이 들려왔다.
"응? 과자?"
"안 그래도 배고프던 참이었는데."
"야, 그건 실제로 배고픈 거 아니야?"
"그런가? 하긴, 게임 한지 벌써 10시간 이나 지났네."
일행은 모두 까만 곰이 차려 놓은 테이블을 향해 이동했다.
족장들이 드롭 한 아이템은 김만우가 모두 회수한 뒤였다.
*
"아, 안녕하십니까. 정말 멋진 전투였습니다."
뮬란의 파티원들은 깍듯이 세영의 파티를 맞이했다.
네임드 몬스터와의 전투를 지켜볼 수록, 자신들과는 비교조차 불가능 할 정도로 강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생각을 고쳐먹고, 친분이나 쌓아 두기로 결심했다.
다만, 뮬란은 뒤에서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다.
김갑부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있었다.
그에게 다행인 건 김갑부가 오로지 드롭 된 아이템에만 눈이 팔려,뮬란의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있던 것이다.
"캬아. 고생했어. 다들. 내덕분에 아무도 안 죽었군. 후후."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저씨 덕분 만은 결코 아니라고요. 알파 오빠 덕분이지!"
모두의 얼굴은 해맑았다.
다들 기대하고 있다.
노란 빛의 영웅 아이템과 붉게 빛나던 전설급 아이템을.
김만우는 뮬란의 파티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까만 곰을 비롯한 요리사 일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전투에 참여한 파티원들과 아이템을 나누기 위해서.
이들이 거리를 벌리자 비로소 분배가 시작됐다.
"그럼 아이템 분배 시작해 볼까. 일단 희귀 아이템. 장비하고 스킬북. 이건 어떻게 할래?"
아이들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
"음, 제 생각에는 배우고 싶은 스킬이 있는 사람이 먼저 갖는 대신, 그 사람은 다른 아이템은 포기하는 게 어떨까요?"
"난, 좋아."
"찬성!"
결국 4개나 드롭 된 희귀 스킬북은 전부 경매장에 올리기로 결정났다.
족장에게 드롭 된 스킬북은 지난 번에 주웠던 것과 비슷한 것 들이었고, 또 다른 건 주술왕 피히히가 사용하던 화염의 대지 스킬북이었다.
레드문은 얼음 마법사인 관계로 필요가 없었다.
"그럼, 희귀 방어구는 없는 부위에 골라 착용하고, 나머지는 전부 거래소에 올리자."
희귀템의 분배는 일사천리로 끝이 났다.
"잡템은 이전처럼, 전부 형이 가지세요. 저희에게 나눠주신 치료약이나 포션 값도 어마어마하니까.바라만의 호문클루스라도 만드신다면,상상만 해도 엄청날 거 같네요."
"찬성!"
"저도 찬성이에요."
김만우는 왜 자신의 의견은 묻지 않느냐 하는 표정이었지만, 잡템이 결국세영의 몫이 되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뭐, 필요한 게 있으면 나중에 받으면 그만이지.'
결국 세영이 강해져야, 함께 파티 사냥을 하는 이들도 편하기 때문이다.
"그럼, 고대하던 아이템을 꺼낼 차례가 왔나?"
모두는 김만우를 향해 눈을 반짝였다.
*
"뮬란님. 왜 이렇게 조용하십니까?"
이들은 조금 먼 장소로 이동했다.
10분만 거리를 벌려 달라는 김갑부의 요청 때문이었다.
보스몬스터의 드롭 아이템에는 신규 레시피 같은 귀중한 정보를 담은 것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아무나 지켜보는 장소에서 분배를 시작하기에는 곤란했다.
"아닙니다..."
"뮬란님도 조금 부러우시죠? 저도 얼핏 들었는데, 영웅급 아이템이 나왔다고 하네요. 팔면 수천만 원에서 몇억씩 하는 것도 있을 텐데."
"잠시 후에 불러서 함께 과자를 나눠준다고 하니, 그때 친분이나 좀 쌓는 게 어떨까요. 떡고물이라도 떨어질지 모르잖아요!"
기분이 상했다.
자신을 찬양하던 이들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을 칭찬하기 바쁘다.
"저는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네? 왜요. 뮬란님. 사냥 더 안하십니까?"
"네. 오늘은 이만 하려고요. 그럼 이만."
뮬란은 짜증을 내며 언덕 아래의 숲으로 금세 사라져버렸다.
"왜 저러시지?"
"아마, 질투라도 하시는게 아닐까요? 엄청 허세 부리시던데. 훨씬 강한 사람들이 등장했으니 말이죠."
"하하. 일리있는 말이네요."
뮬란이 사라지자 마자 험담을 하는 사람들.
하이에나 같은이들이, 세영의 파티와 친분을 쌓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까만 곰이 얼른 자신들을 불러 주기만 쪼그리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
"와우!"
"여, 여섯 개나요?"
"두 개는 스킬북 이네요?"
영웅등급의 아이템은 무려 여섯 개나 등장했다.
[스킬북 : 차원의 문(고블린)]
- 차원의 문을 열어 몬스터를 소환합니다. 레벨이 증가함에 따라, 다수의 몬스터를 소환하거나, 더욱 강력한 몬스터를 불러낼 수 있습니다.
- 해당 스킬은 오로지 고블린 종족만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신이 몬스터를 조종하는 능력을 보유하지 않았다면, 고블린들은 당신을 공격할지도 모릅니다. (소환계열 클래스 권장.)
- 소환자의 레벨에 따라 등장하는 몬스터의 레벨이 결정됩니다.
- 경매장에 등록하실 수 있습니다.
"이거 바라만이 쓰던 스킬이네요. 영웅 등급 스킬이라니 처음 봐요."
세영은 머리를 긁적였다.
호문클루스 소환이나, 생기 흡수 스킬은 전설급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사용할 사람 있어?"
"팔죠."
"맞아요. 우린 소환사도 없고, 팔면 몇천만원은 가뿐히 넘을 텐데."
첫 번째 스킬북은 경매장에 등록됐다.
그리고 두 번째.
[스킬북 : 공간의 틈]
- 마나의 힘을 사용해 공간의 틈을 순간적으로 빠져나갑니다. 스킬의 숙련도가 상승할수록, 이동 거리와 소모되는 마나량이 감소합니다.
- 물체나 벽에 가로막힌 장소를 통과해 이동할 수는 없습니다.
- 경매장에 등록 가능합니다.
순간이동과 흡사한 스킬!
이 역시 바라만의 스킬이었다.
"와, 블링크!"
"흠... 이거 내가 가져도 될까? 난 이걸 가지고, 영웅 아이템 분배에서 빠질게."
세영이욕심을 냈다.
"저는 좋아요. 그런데, 순간이동까지 가능해 지시면, 오빠는 정말 괴물이 되는거 아니에요?"
"저도 찬성이에요. 이건 원거리 딜러가 갖는 게 좋을거 같아요. 어차피 근딜이 사용하기에는 마나 소모량도 너무 크고."
"저도 갖고 싶지만, 저는 아이스 스틱을 얻었으니까..."
모두 흔쾌이 찬성해 줬다.
추가로 나온 영웅 장비는 방어구 하나와 무기 셋 이었는데.
"방패랑 장검이네."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대검 축하해."
"와- 고맙습니다!"
쑥스러움을 감추려 오히려 뻔뻔하게 나간 핑쿠햄스터.
그의 고생을 알기에 두 가지의 영웅 장비를 그 혼자 받았어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애초에 검과 방패는 세트나 마찬가지고.
오히려 안심했다.
파티의 탱커가 좀 더 단단해질 테니까.
노랑나비도 영웅 등급의 무기에 폴짝폴짝 뛰며 기뻐했다.
"남은 무기는 지팡이네."
"저는 아이스 스틱으로 만족 합니다요. 욕심 안 부릴게요."
"그럼 팔아야겠죠? 엄청 비쌀 거 같은데."
"맞아요. 팔죠!"
지난번 세영이 주웠던 지팡이보다 더 좋았다.
네임드 몬스터의 이름이 박힌 지팡이다웠다.
[주술왕 피히히의 지팡이]
- 내구도 80/80 <영웅 등급>
- 고블린 최강의 주술사. 피히히가 사용하던 지팡이입니다. 대족장의 존재가 있음에도 피히히는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할정도로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는 존재입니다. 모든 고블린 주술사들의 정점에 선 존재가 사용하던 강력한 힘이 담긴 지팡이입니다.
- 마법 공격력 +35, 마력 증폭 +20, 최대 MP +100
- *공격을 적중시킬 때마다 체력을 2만큼 회복합니다. 디버프에 의한 추가 데미지에도 체력 회복 효과가 적용됩니다.
- 거래소 및 경매장에 등록 가능합니다.
"와, 최대 마나 증가도 붙어있네. 이거 엄청 비싸겠다."
"그래도 니가 지금 낀 마나 스틱에 비하면 쓸모 없는 거 아냐?
세영은 곧장 지난번 경매장에 올려 뒀던 영웅 등급 지팡이. 고블린 샤먼 주술사의 지팡이의 현재 경매가를 확인했다.
[현재 최고 입찰가 : 420,000,000CC]
"사... 사억 이천?"
입을 떡 하니 벌리며 놀라는 세영을 모두 의아하게 바라봤다.
"형, 갑자기 왜 그러세요?"
"응. 그게 실은..."
세영은 자신이 경매장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털어놨다.
"와... 그럼 이거 10억 쯤 하는 거 아니야?"
"잠깐. 그럼 내가 쓰는 이 아이스 스틱은 얼마나 비싼건데?"
모두 머리속으로 숫자를 굴리고 있었다.
김만우가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니가올린 지팡이 경매 기간 아직 많이 남았지?"
"네. 아직 30시간 넘게 남았어요."
"그럼, 이 지팡이는 내가 보관하다가 다음에 올리자. 괜히 지금 올렸다가 니가 올려둔 지팡이 낙찰가만 하락할 테니까, 그거 팔린 다음에 올리자."
"그렇네요. 오~ 아저씨 똑똑하시네."
"까불지 마라 꼬맹이들아. 지금 얼마나 큰 돈이 오고 가고 있는데."
결국 김만우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아이템은 당연히 파티 경매로 등록할 예정이다.
지난번 영웅 무기를 얻은 레드문과오늘 분배받은 아이들.
영웅급 스킬북을 얻은 이세영까지.
본래라면 아무런 아이템도 얻지 못한 김만우가 독차지해도 충분했지만, 웬일인지 그는 양보를 해 왔다.
"모두 동등하게 나누자."
"네? 정말 그래도 돼요?"
"그래. 사실 난, 별 도움도 못 된 거 같고."
"그렇게 치면, 아이템 전부 알파형이 독차지 해도 저희는 할 말 없는데..."
김만우 답지 않은 양보였다.
결국 다섯 이서 동등하게 낙찰금을 분배 받기로 결정이 났다.
물론 지팡이는 이틀 후에 경매장에 등록할 예정이었다.
"자! 이제 마지막 남은 아이템을 꺼내 볼까?"
"와! 와와와!!"
"호들갑 떨기는."
비어있던 김만우의 손 위에, 갑자기 아이템이 나타났다.
인벤토리에 있던 아이템이 김만우의 의지에 의해 마법처럼 등장한 것이다.
붉은 빛이 감도는 아이템은, 역시나 지팡이였다.
"또 지팡이?"
"아오! 왜 맨날 지팡이만 나오는 거야!"
"뭐 어때. 팔 때 비싸니까 좋지 뭘!"
지팡이 파티를 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