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4화 〉74화. 을에서 갑으로 (74/122)



〈 74화 〉74화. 을에서 갑으로

[고용 허가서]

파르도 섬 내라면 어디에서도, NPC를 고용할  있는 허가서 입니다. 시장의 직인이 찍혀 있습니다. 타인에게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 NPC를 고용하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임금 협상은 비교적 자유로우며,당신과 고용 대상의 관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 당신의 명성이 높다면, 더욱 적은 돈을 받고도 주민들은기꺼이 당신에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고용 허가서를 획득하셨습니다. NPC 고용 시스템이 개방됩니다.]


이제 NPC를 자유롭게 고용할  있게 되었다.
파르도  한정이긴 하지만, 그게 어디인가.
어차피 허브 농장을 차릴 땅은 이 파르도 섬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었다.
뒤이어 반갑게 들려온 시스템 메시지.


[당신은 이제부터 퀘스트를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합니다. 플레이어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있게 됩니다. 다만, 충분한 보상을 지급하지 못한다면, 누구도 참여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 플레이어가 만들어낸 퀘스트는 정보 경매에 등록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퀘스트 참가 당사자를 직접 대면하거나 접수 창구를 내고 NPC를 고용해 이를 대리 시킬 수 있습니다.
- 현재는 난이도 F등급까지 모집 범위가 제한됩니다.


NPC는 물론 플레이어들 역시 임시 고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예를 들어 허브 농장이 완성되면, 농장에서 허브를 채집해 오라는 퀘스트를 만들어 플레이어들에게 보상을 내걸고 일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와-!  게 다 있네. 재밌겠다.'

기뻐하는 세영을 보며, 심각한 표정의 시장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알파님은 고블린 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용병을 얼마나 쓰셨소?"
"네? 용병요? 저희 끼리 했는데요."

세영은 주변 동료들을 둘러봤다.


"뭐라?!"


언제나 지쳐 보이고 피로에 절어있는 듯한 시장이, 이런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신기했다.


"그것이정령 사실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거 잘됐군. 믿을 만 하겠어!  그래도 내일 시 의회에서 대표자 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회의에 알파 님도 꼭 좀 참가해 줬으면 좋겠군. 내 이리 부탁하오."

어찌나 강하게 바라보며 거칠게 이야기하는지, 세영은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당장 몬스터를 사냥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수락해."

뒤에 있던 김만우가 거들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고맙군. 좋아 내일 회의에서 봅시다.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 먼저 나가 보겠소."

시장은 인사를  틈도 없이 사라졌다.

"왠지, 지난번 봤을 때랑 인상이 전혀 다른데..."
"그야. 상황이 변했으니까."
"그래도 어쨌거나 목표 달성이네요."
"형. 아저씨. 다들 수고하셨어요."
"오빠 덕분에 퀘스트 완료했어요!"


하나의 퀘스트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세영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여전히 인간을 닮은 존재와 전투를 벌이는 페어리의 문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

"200골드 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공헌도의 계산이 종료되었다.

[최종 공헌도]


알파 : 16500
레드문 : 9700
노랑나비 : 8100
핑쿠햄스터 : 8040
김갑부 : 7100

놀라운 양의 공헌도가 누적되어 있었다.
대족장같은 네임드는 물론, 수천 마리의 고블린을 처치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렇다고 의미있는 수치는 아니었다.

다섯 명 전원 200골드의 보상을 받았다.
모두가 맥시멈 이상의 공헌도를 쌓은 덕분이다.


"와. 200골드면 얼마지?"
"이천만 원."
"헉. 진짜? 대박이네."

아이들은 매 번 크게 반응했다.
그만큼 아직 실감이 나질 않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아직 학생인 그들에게는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세영에게는 사실 돈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명성.


[명성을 200 획득하셨습니다.]


- 총 명성 : 310


칭호나 네임드 처치, 각종 퀘스트를 처리하고 받은 명성을 더해 310 이 되었다.

'이게 많은 건지 어떤지 모르겠네.'

세영은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파르도 섬 내에서는 가장 높은 수치임이 틀림없었다.


불만 가득한 표정의 김만우가 말을 꺼냈다.

"생각보다 보상이 시시하네."
"그래도 네임드 잡고 많이 벌었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게 중요하니까."

세영은 고용 허가서를 보였다.


"하긴... 이제 어떻게 하지? 일단 풍차 마을로 돌아가야 하겠지?"
"네. 어차피 회의도 내일이니까, 아직 서너 시간은 여유 있을 거 같아요. 얼른 가서 개간을 시작하죠!"
"다들 마족의 탑으로 난리인데, NPC가 느긋하게 땅이나 개간하러 와 줄까?


그런 건 직접 시도하지 않으면 알  없는 일이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돈도 많으니, 이런저런 하고 싶은 일 역시 많아진 것 같다.
대부분은 또 새로운 스킬이라도 배우러 마스터를 찾아간  같지만.


그리고 이세영과 김만우는 풍차 마을에 도착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허브 농장을 만들 차례였다.


**




"촌장님도 개간에 참여하시게요?"
"아닐세. 내가 이 나이 먹고, 그런 힘든 일을 할 수나 있겠나. 그냥 걱정돼서  게야."


작은 풍차 마을은 엄청난 인파로 붐볐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한층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나의 원인은 김만우.
그가 생방송에 출연한 덕분에, 하급 치료약 제조 법을 공개한 뒤 썰렁했었던 치료약 전문점은, 또 다시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들은 결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사유지는 시스템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물의 1층 역시 사람들로 매우 붐볐다.
플레이어들로 가득 찬 것은 아니다.

 번째 이유.
무려 300을 넘는 명성치를 보유한 이세영.
그가 개간을 도와줄 사람들을 모집한다는 소문이 섬 이곳 저곳에 퍼졌기 때문이다.
풍차 마을의 주민은 물론, 파르도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까지 방문할 정도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알파님."
"네?"
"저는 병사 견습입니다. 마족의 탑 등장으로 저 같은 15세 이하의 훈련병은 한동안 훈련 일정이 취소되어 할 일도 없었는데, 이렇게 용돈도 벌고 알파 님의 얼굴도 뵐 겸 찾아왔습니다."

힘이 좋아 보이는 소년을 채용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미성년자 고용 금지 법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견습 병사 파울만과 고용 계약을 체결하셨습니다.]


- 고용 기간 : 1주일
- 임금(1일 기준) :  50실버
목적 : 토지 개간
특이 사항 : 14세의 어린 나이이지만, 병사 견습으로 오랜 시간 수련을 거듭 해, 높은 체력과 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만 개간이나 농사 경험은 전무합니다.



"야. 알파. 그런 식으로 아무나 고용하지 말래도?"
"네? 하지만 파르도에서 여기까지 저를 찾아와 주었는데 어떻게 거절해요."
"답답하네. 아, 난 모르겠으니까 너 알아서 해라. 임금이 비싼 것도 아니니까."

세영은 지금껏 찾아온 대부분의 NPC들을 고용했다.

"그래도 이제 슬슬 마무리해라. 몇 백 명이나 고용할  아니라면."
"네... 저도 100명 채우고 멈추려고 했어요."

100명을 투입해 개간하면, 엄청난 속도로 일이 진행 될 거라 생각했다.
이들의 임금을 다 더하면 하루에 약 50골드.
1주일이니 350골드나 된다.
이런 큰 돈을 들이고도 개간이 지지부진하면 그거야말로 문제다.


'이거, 금전 감각이 마비되는  같은데.'


어쨌거나 허브 농장의 운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치료약 시세가 아무리 저렴해 지더라도 꽤 나쁘지 않은 수입이 들어 올 거라는 생각이었다.

"찾아와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인원이 백 명 가득 채워져, 모집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돌아가실 때 하급 치료약 무료로 나눠드리니 10병씩 받아 가세요."

아쉬워 하던 이들도, 세영의 말에 얼굴이 밝아졌다.
발품을 판 비용 정도는 충당이 됐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명성이 10 증가합니다.]


'뭐지?'

세영의 자연스러운 행동에서 가끔 의외의 보상이 따라오기도 했다.



"오늘 계약하신 분들은, 바로 개간을 시작해 주세요."


세영은 결국 촌장을 고용했다.
관리자로서 임명한 것이다.
임금을 넉넉히 건넸더니, 아주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대체 얼마나 큰 땅을 소유하려고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내 자네라면 얼마든지 도와 줌세. 허브 농장이라니 그런 게 생겨서 치료약만 넉넉하게 확보할 수 있다면 주민들 모두 걱정 -없이 발 뻗고 잘 테니까."

그간 쌓아둔 신뢰와, 높은 명성치는 고용에 있어 매우 큰 효과를 보였다.


"형도 같이 가실 거죠?"
"그러지 뭐. 여기 있으면 너무 사람들이 몰리니까."
"그럼, 마차를 몰고 가죠. 오늘은 한 대로 같이 가요."
"그래. 그러자."


게임  시간은, 시장을 만나고 난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
고용 계약을 하느라 오전 시간을 전부 사용했으니, 도시에선 이미 대표자 회의가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비켜 주세요! 마차 지나갑니다."


전문점 앞에 몰린 인파를 뚫고 마차를 달렸다.


"봤어? 그 사람이야."
"그래. 김갑부랬나?  촌스러운 이름. 그러고 보니 나 전에 여기서 치료약 살 때 본 것도 같은데."
"갑부님~ 친구 추가 좀 해주세요!"
"싸인은 안되나요?"

플레이어들의 외침을 뒤로 하고 말은 열심히 달렸다.


이렇게 마음 놓고 갈  있는 것도, 다 촌장을 고용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자신이 옆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토지의 개간은 제대로 진행될 것이다.



*

대표자 회의 역시 파르도의 궁전에서 열렸다.

이세영은 단 한번도 들어가 본적 없던, 궁전의 연회실.
과거 이 섬을 지배하던 세력이 제법 강력한 권력을 자랑했었는지, 매우 거대한 장소였다.


"지금 바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대표님들은이제 막 식사를 끝마치셨습니다."

이미 이야기가 전해졌는지, 문 앞을 지키던 기사는 세영과 김만우를 흔쾌히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로브로 온몸을 칭칭 두르고 있는 쿠아만테는 덤이다.

"와, 영화에서나 보던 것 같네."

김만우는 둘러보며 감탄을 자아냈다.

벽과 천장 구석구석이 세밀하게 조각 돼 있음을 볼 때, 과거 이곳은 무척 화려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놓여져 있는 긴 회의 용 탁자나 의자들은 하나같이 매우 심플하고 실용적인 것이, 최근에 들여놓은  같았다.
일에 절어 사는 저 시장의 취미가 틀림없어 보였다.


"알파님. 오셨는가."
"아... 네."

둘의 등장에, 식사 후 담소나 나누며 조용했던 실내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가장 큰 원흉은 잡화점의 제이크였다.

"응? 알파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하하. 난 이럴 줄 알았다니까. 어서 오게! 알파!"

반면 목공소의 알라바는 흔쾌히 맞이해 주었다.

이외에도 처음 보는 많은 사람이 보였는데, 하나같이 험상 궂은 얼굴이 다들 도시 안에서  자리씩 꿰차고 있는 자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자, 자! 다들 조용히 해 주시지요. 여기  젊은이들은 여러분도 들어 보셨겠지만, 일전에 고블린 족장을 쓰러뜨리고, 며칠 전에는 제가 발주한 의뢰를 해결해 준 알파 님과 그 동료분들이십니다."

이야기를 듣던 알라바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며 인정하는 반면, 제이크는 깜짝 놀라 눈이 뒤집어 질 정도였다.
당연했다.
자신의 가게에 하급 치료약을 납품하던 약제사가 갑자기 영웅 대접을 받아도 시원찮을 대단한 소문의 주인공과 동일 인물 이라니.
놀라지 않는  오히려 이상할 정도였다.

시장은 말을 덧붙혔다.

"자, 그럼 여기 세 분을 더해 회의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의가 있는 분 있소?"


조용했다.
고블린 족장은 물론, 동굴 깊숙이 사는 강력한 고블린까지 처단했다고 소문이 자자한 알파야말로,  회의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럼 바로 진행하기에 앞서 알파 님에게 묻겠소."
"네? 무엇을요?"
"마족의 탑 말입니다. 그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는지요."
"음... 고블린 지하 동굴에서 갑자기 솟아 올랐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김만우가 시킨 대로 자신들 때문에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감췄다.
절대  된다며  번이나 강조했으니 따라줄밖에.


"그렇군. 알파 님은 그 탑이 무어라 생각하시는가?"
"저는 일종의 던전이라 생각합니다. 안에 몬스터들이 있겠죠.당연히 강력한 네임드 보스 역시 존재 할 테고, 놈들은 당연히 마족들이겠죠?"


마족이 없는데 마족의 탑이란 이름을 사용할 이유가 없었고, 쿠아만테를 통해 마족이 가까운 시일 내에 적으로 등장할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의에 참석한 대표들은 하나같이 불안감을 내비쳤다.


"갑자기 마족이라니... 그런 전설 속에서나 듣던 이야기가 갑자기 왜..."
"그렇습니다. 저도 이번 계기로 저희 집안의 대 고모님께 여쭈어보았더니 마족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건 벌써 수백 년도 더 지난 이야기라 합니다. 그것도 그저 조상님들의 옛날이야기 에서 듣던 정도로..."


대부분은 마족이란 단어 자체를 처음 들어보는 듯했고, 일부 들어봤다는 내용도 고서나 노인들을 통해 구전 되는 이야기였다.


김만우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마 오래 전 과거에 봉인되어 있던 마족의 탑이, 어떤 계기를 통해 등장했다고 생각하는 게 옳겠네요. 저희 파티가 시장님의 의뢰를 수행하며, 고블린 세력이 활개치는 이유를 찾아 냈는데 말이죠. 고블린 대족장이 그 탑에서 흘러나오는 마나를 흡수해 끊임없이 고블린들을 소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거든요? 아마  고블린놈이 너무 욕심을 부리다가 이런 사단이 벌어진  아닌가 합니다."

김만우는 모든 걸 고블린 대족장 바라만의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놈은 이미 사냥당하여 자신의 인벤토리에 지팡이로 남아 있다.
어떤 증거도 없으니 알게 뭐냐는 생각이었다.

세영은 그런 뻔뻔한 그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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