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79화. 잊혀진 세계 (79/122)



〈 79화 〉79화. 잊혀진 세계

펄펄 끓는 물처럼 기포를 내던 액체 탓인지, 유리관에 점점금이 가기 시작했다.


"피, 피해라. 서둘러!"
"저, 저게 뭐지? 사람 같은데?"
"으으..."


길드원들은 급히 유리관에서 멀리 벗어났다.


쩌저적.

금이 간 틈새로 액체가 스며 나오더니, 결국 유리관 통째로 박살나 버렸다.
바닥이 온통 초록빛 도는 액체로 흥건했다.

"부길마님. 저건 뭔가요?"
"인간의 그림자를  것 같은데, 어디에도 없습니다."


메시지를 통해 히부린이라는 존재가 등장했음을 알게 됐지만, 눈앞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바닥에 붙어 꿈틀거리는 초록빛의 액체가 보였을 뿐이다.


"애, 액체가 모여들고 있습니다."
"흐익. 뭐, 뭐가 벌어지고 있는 거야?"

당황스러운  누구나   가지였다.

액체는 꿈틀꿈틀  군데로 뭉치더니, 거대한 덩어리가 되었다.
꿈틀꿈틀... 마치 살아있는  몸을 흔들었다.

"스... 슬라임일지도 모릅니다. 모두 전투태세!"

BI기츠는 그렇게 외쳤다.
그제야 정신들을 차리고 대형을 짜기 시작했다.

"부길마님. 탱킹 부탁 드립니다."
"그래..."

그러나, 놈은 탱킹을  수 있는 종류의 몬스터가 아니었다.
도발은 무시 당하기 일수였고, 물리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았다.


마법에는 데미지를 입는지, 아니면 그것도 아닌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쏘아 낸 화염구의 폭발에 마치 비가 쏟아지듯 흩어졌던 물방울들.
비산했던 액체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고, 다시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처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거대한 녹 빛의 액체 덩어리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 액체 덩어리가 말을 했다.

"더... 더 줘."

그러더니 다시 움직였다.
보자기처럼 넓게 펼쳐지더니, 가장 앞에 서 있던 부 길드 마스터 빔을 거대한 파도처럼 덮쳤다.
그를 통째로 삼켜버린 것이다.

"부길마님!"

순식간이었다.
당연히 탱킹을 도맡아 하는 빔은, 파티원들과 거리를 벌린 채 누구보다 가장 앞에 홀로  있었다.
 때문에 누군가 다가갈 도와줄 틈이 없었다.
그는 거대한 액체 덩어리에 홀로 삼켜지고 말았다.


"저, 저대로 지... 질식사 하시는  아닙니까?"
"그렇다고 뭐 어떻게 하겠어요. 기사들의 검은 전혀 통하지 않고, 마법을 썼다가는 부길마님까지..."

BI기츠는 외쳤다.

"그냥 불덩이 날리세요. 그렇게 하더라도 꺼내야 합니다. 제가 타이밍 맞춰서  넣어 볼 테니까, 과감하게 공격 하세요!"


그러나 좀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펑-!


"으윽..."

날아가던 불덩이가 놈의 거대한 몸에 도달하기 직전에, 부길마의 육체를 직격  버렸다.
이 슬라임 녀석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있던 부길마의 육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여, 마법을 막는 방패로 이용한 것이다.


"부, 부길마님!"
"무슨 액체 덩어리주제에 저런 지능을..."
"기츠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놈의 육체가 사방으로 감싸고 있는 탓인지,부길마를 향해서 힐과 같은 스킬을 사용하기란 불가능했다.
한시가 급한 상황.

'어떻게 해야 하지...'


BI기츠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판게아 행성은 판타지 월드라 하지만 물에 빠져 익사 하는 경우가 있었고, 높은 곳에서 떨어져 강한 데미지를 입는 경우도 있었다.
만약 아주 높은 공중에서 떨어진다면, 체력에 따라 사망하는 경우도 있으리라.

그러니  슬라임으로 보이는 물 덩어리의 몸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부길마는,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얼마 안 가 사망하고 말리라.
그는 부길마이자 여기 있는 모두가 다니는 직장의 부사장이다.
정말 죽게 내버려뒀다가는, 오늘 참가한 모든 사원들의 보너스와 휴가는  건너 갈 것이다.


투욱-!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무언가 더 시도해 보기도 전에, 부길마의 육체는 이제 막 태어난 송아지 마냥 온몸이 젖은 채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부, 부길마님!"

다른 파티의 기사들이 빠르게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마... 마나 포션."

빔의 첫 마디는 마나 포션을 찾는 것이었다.
그의 체력은 파이어 볼에 의한 데미지를 입은  이외에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다만, 아까 전 마셨던 마나 포션으로 회복되었을 마나가, 다시금 제로가 되어 있었다.

"헉, 헉. 빌어먹을. 물속에 빠졌는데, 갈증을 느낀 사람은 내가 최초일 거야."


빔은 마나 포션을 마시고  후에 이런 소리를 했다.
마나가 회복되며, 찾아왔던 극심한 갈증이 겨우 해소되었다.
이제 농담을 뱉을 수준인 걸 보면, 몸에 다른 문제 없는 모양이다.

"설마, 놈이 마나를 빼앗는 것입니까?"
"그래. 다들 조심해. 방패로 막아도 저 덩치로 덮쳐오면 답이 없으니까."


애초에 저 녹조 낀 강물 색을 한 놈의 몸속에는,누구도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부길마님! 이제 어떻게 하죠?여기는 일단 후퇴해 제 정비를 하는 것이...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다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다. 마나를 빼앗을 뿐, 공격력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분명 사냥할 수단이 있을 거니까, 다들 머리들 좀 짜내 봐. 아무리 스펙은  보고 뽑았다지만,우리 블루 아이템 사원으로서 그 정도 머리쯤은 다들 가지고 있지 않나?"

일순 소리가 사라진 듯했다.
누군가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떤 소리조차 들려오지 않는, 이곳은 그런 세계이다.

"저... 처음의 유리관처럼, 거대한 그릇에 넣고 뚜껑을 닫으면 되지 않을까요?"
"자네, 지금 나랑 농담하자는 건가? 그런  지금 어디서 구해?"
"죄... 죄송합니다."


그 뒤로  가지 추가적인 방안이 나왔지만, 지금 당장 써먹을 정도로 괜찮아 보이는 건 없었다.

"역시, 일시 후퇴하는 것이..."


그때 멈춰있던 녀석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흡수한 마나를 모두 소화하기라도  건지, 부길마를 뱉어낸  조용히 멈춰있다가 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어... 더 줘..."

대체 저 액체 덩어리 어디에서 음성이 들려오는 건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중요한  아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누군가 또 마나를 빼앗길 겁니다!"

그 말 대로다.
지금 길드원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얼마 없었다.

"우리 회사에 이렇게 인재가 없나!  의견을 말하겠다. 일단 빙결 계통 마법 쓰는 마법사들만 공격한다. 꽁꽁 얼려버려!"
"역시 부길마님 이십니다. 자! 공격!"

그래 봐야 빙결 마법사는 단 두 명 뿐이었다.
나머지는 전부 화염 계통 공격이 전문이었다.

"멈추지 않는 우박!!"


주변의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며, 찬 바람과 함께 냉기의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윽고 거대한우박 덩어리들이 날아가 녹 빛을 띈 물 덩어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무려 5억 짜리 스킬북을 통해 배운 상급 얼음 마법이었다.

나머지 마법사는 얼음의 대지 스킬을 사용해놈이 서 있는 주변을 온통 얼음으로 뒤덮었다.


"이 정도면 놈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방심하지 마! 아직 안 끝났어!"

얼어붙은 바닥.
그 위에 고고하게 서 있는 히부린이라 불리는 슬라임 덩어리.
몸속에는 크고 작은얼음 알갱이를 가득 들어있는 채였다.


이상했다.
액체인 만큼 간단히 얼어붙어도 좋으련만, 전혀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놈이 서있는 바닥에 얼음들이 하얀 김을 내며 사라져갔다.
몸 속에 들어있는 얼음알갱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야. 펄펄 끓는 거 같더니 설마 뜨거운 물이라는 소리야?"
"아니다. 놈은 뜨겁지 않아!"
"그럼 대체 왜 저런 겁니까? 부길마님!"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렴풋이 예측은 가능했다.

"아마, 저 얼음들이 마법으로 만들어진 만큼, 놈에게 마나를 흡수 당해 마법 자체가 소멸해 버리는 거겠지. "
"그럼, 마법이전혀 소용 없다는 소리 아니십니까?"
"내 생각은 그런  같다. 안 되겠군. 기츠의 말대로 일시 철수한다! 서둘러라!"


하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생각한 것이 언제나 뜻처럼 간단하게 실행된다면, 애초에 이들이 지금 이곳에  있을 리가 없었다.


마나를 흡수한 탓인지, 놈은 처음보다 더 재빨랐다.
뿐이랴.
왜 인지 모르겠으나, 놈의 전체적인 부피가 종전보다 훨씬 거대해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놈이 입구를 막아버렸습니다."
"당장 화염구 날려서 폭발 시켜 버려!"

화염구는 날아가지 않았다.

마법사가 둘, 방금 놈에게 삼켜져 버렸기 때문이다.
 마법사의 생사를 무시하고 공격할 수는 없는 일.
기다리기만 하면 마나만 빨리고 무사하게 뱉어질 테니까 그런 수단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틈을 타 도망치는 게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놈이 저 육중한 몸뚱이로, 여전히 입구를 틀어 막고 있었으니까.



**

세영은 비장의 수단을 썼다.


"생기 흡수!"

[스킬 '생기 흡수 Lv. 2'를 사용해 외 뿔 마수 덩굴의 모든 생기를 흡수합니다.]


슈우우우-.


"와, 그 스킬 정말 보면 볼수록 짱이네요."
"맞아요. 오빠! 제 대검은 물론, 얼음이나 심지어 오빠의 화염 탄에도 끄떡 없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시들어 버리다니."

세영은 생기 흡수 스킬을 사용했다.
항아리들을 숨 막힐 정도로 칭칭 감고 있던, 덩굴 식물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24시간 쿨 타임을 가진 전설 스킬.
정말 아끼고 아껴서 중요한 타이밍에만 사용해야 하는 귀중한 스킬이었다.
하지만 이때가 아니라면 대체 언제 쓰겠나.
더 아꼈다가는  되는 법이다.




기껏 히부린의 보물이 잠들어 있을 법한 장소에 들어섰건 만.
있는 거라고는 온통 이상한 형태의 항아리들 뿐.
그렇다고 낙담하긴 일렀다.
적어도 내용물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이 확인 작업이 매우 어려웠다.
덩굴 때문이다.
심지어 이놈의 덩굴 식물은 칼로 베어지지도 않고, 불로 태워도 멀쩡했다.
무엇 하나 꺼내갈 수도, 내용물을 확인해 볼 수조차 없게 것이다.
그건 너무 아까우니까, 과감하게 비장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결정!
방금 막 실행한 참이다.


[당신의 체력은 이미 가득 차 있습니다.  때문에 흡수한 에너지가  길을 잃고 역류합니다. 넘치는 에너지는 모두 소멸해 버렸습니다. '외 뿔 마수 덩굴'의 일부는 흡수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외 뿔 마수 덩굴의 열매]


- 외 뿔 마수 덩굴의 열매로, 독성이 매우 강해 식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연금술의 재료로사용됩니다. 열매 자체가 씨앗과 동일하며, 심을 경우 외 뿔 마수 덩굴이 자라납니다. 이미 열매를 맺고 별도의 개체가 되어, 생기 흡수 스킬로는 흡수하지 못하였습니다.

-  뿔 마수 종족이 즐겨 먹는 열매입니다. 외 뿔 마수는 이 열매의 독에 강한 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복용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이 덩굴 자체에 외 뿔 마수 덩굴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 마나가 전혀 없이도 성장 가능한 식물이지만,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며 더욱 강력하게 성장합니다. 다 자라난 덩굴을 가공해 마법은 물론, 마나를 사용한 물리 공격에도 매우 강력한 내성을 가진 물건을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덩굴 자체의 내성이 지나치게 뛰어난 탓에, 가공을 위해서는 장인 이상의 기술과 특수한 가공 장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길고도  설명문을 한참이나 읽어야 했다.

'와, 방어구의 재료로 쓰면 딱 맞겠네.'

처음보는 열매가 무려 수십 개나 나온 데다가, 심어서 기를 수도 있다고 한다.
방어구 제작에 뛰어난 사람만 있다면, 좋은 방어구가 완성될 것 같았다.
지금 그런 사람을 어디서 구하겠냐 마는.


'다행이다. 몬스터가 아니라서 그런가? 부작용은 없네.'

생기 흡수 스킬때문에 생기는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어쨌거나 제거 목적이던 덩굴은 깔끔히 사라져 버렸고, 항아리들은 모두 무사하다.
유일하게 덩굴의 뿌리가 있었을 항아리만 텅 비어 있었다.

[고대 마족의 비밀 항아리]

- 고대 마족 히부린이 만들어 낸 특수 항아리입니다. 특수한 연금술을 사용해 제작되었습니다. 항아리의 뚜껑을 덮어두면 시간이 지나더라도 내용물이 그대로 보존됩니다. 반드시 뚜껑과 함께 사용하시길 권장합니다.


항아리 이름이 참 거창하기도 하다.

세영은 서둘러 옆에 있던 다른 항아리 하나를 조심히 열었다.

"오빠, 조심하세요. 또 이런 덩굴이 나와서 온몸을 휘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으으..."


그런 일은 없었다.


[마나 허브 티]

마나를 머금고자라난 던전 허브를 사용한 차입니다.
- 휴식 상태에서 복용 시 마나의 자연 회복 속도가 상승합니다.
거래소와 경매장에 등록할 수 없는 아이템입니다.

첫 번째 열어 본 항아리에는 무려 마나 허브 티가 넘칠 정도로 가득 담겨있었다.
무려 마나를 머금은 던전 허브를 끓여 만들어야 하는 허브 티.
모든 포션의 주요 재료이다.


"오우, 예!!"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런 양이면 수천 혹은 수만 개의 포션이 제작 가능할 것이다.
지금 시세로 10억 이상. 아니 그보다 훨씬 큰 돈이 될지도 모른다.


혹시나 마족의  안에 던전 허브가 자라고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었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와, 나무꾼이 나무 하러 갔다가 휘발유가 가득 들어있는 통을 발견한 셈이네요!"
"아니지. 달걀 후라이를 했는데, 후라이드 치킨이 나온 거지!"
"음...  생각은 다른데. 물고기를 낚으려다 어묵을 낚은 것 아닐까?"

세영의 비유에 모두 황당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봤다.

그는 행운을 부르는 사나이였지만,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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