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83화. 클래스 전용 퀘스트
날아간 탄환 몇 발은, 놈의 촉수에 닿으며 폭발했다.
그러나 8 발 모두가 그런 건 아니다.
세 발은 정확히 놈의 주둥이 안을 직격 했다.
쿠에엑!
괴물 다운 비명이다.
놈의 입에서 뻗어 나온 촉수들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얘들아, 촉수 잘라!"
세영이 급히 소리쳤다.
이에, 검을 사용해 촉수를 자르는 햄스터와 나비.
레드문은 얼어붙은 대지 스킬을 사용했다.
놈의 혓바닥인지 촉수 인지가 바닥에서 얼어붙기 시작했다.
주둥이는 벌어진 그대로.
세영은 매 쿨이 돌아올 때마다, 연발 사격을 사용했다.
폭발하는 탄환을 놈의 목구멍 깊숙이 집어넣을 작정으로 쉬지 않고 쏴 갈겼다.
퍼퍼퍼펑-!
놈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히잉... 내 귀중한 영웅 대검으로, 이런 징그러운 거나 잘라야 하다니..."
나비는 그런 푸념을 하면서도, 회오리 베기 스킬을 사용해 놈의 모든 촉수를 잘라내 갔다.
베스투는 마나 코어의 힘으로 공격력이대폭 강화되었다.
하지만 놈의 최대 체력량은 변화가 없었던 것 같다.
아니면 목구멍 안으로 들어간 몇 개의 탄환이 폭발하며, 기대 이상의 데미지를 준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놈의 육체는 매우 손쉽게 무너져 갔다.
"형! 완전 정답이었던 것 같은데요?"
"이제 촉수도 전부 잘라냈고, 놈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니까, 잡는 건 시간 문제겠어요. 팔 휘두르는 거야 제가 방패로 막을 수 있고!"
놈은 강력했지만, 가장 강력했던 공격 수단 자체를 잃었다.
이쯤 되면, 그저 힘이 강한 고블린과 다름없다.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 집중을 잃지는 말자. 또 모르는 거니까."
"네, 오빠!"
"네!"
전투는 그렇게 종료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인조 마나 코어의 활성화 에너지가 300%를 넘어섰습니다.에너지가 폭주합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이 게임은 쉽게 끝내주는 법이 없다니까!"
"그래도 이제 촉수가 없으니까 조심만 하면 될 거야."
"나비야 조심해. 놈의 공격력이 더 괴물 같아졌을 테니까, 방패도 없이 공격 당하면 위험할 거야."
"네!"
하지만 이번 메시지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잠시 후, 합성종 no. e-222 '베스투'의 인조 마나 코어가 마나 폭발을 일으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00 : 59]
필요 이상의 과도한마나가 주입 된 탓인지 한계를 넘어선 마나 코어가 폭주했다.
마나 코어는 주입 된 마나를 키메라 혹은 골렘들의 활동 에너지로 증폭해 주는 역할을 한다.
일종의 증폭기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지나치게 많은 마나가 주입 된 탓에, 에너지가 과도하게 누적된 모양이었다.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다.
그것도 겨우 60초.
이미 몇 초가 지나고 있었다.
"뭐야. 대체?"
"형?"
"폭발 한다는 데요? 저희 다 죽는 거 아니에요?"
"모르겠어. 그래도 위험해 보이네. 일단 도망치자! 저 키메라를 잡기에는 1분 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해 보이니까, 지금은 도망치는 게 옳아."
세영은 누라라가 없는 것이 몹시 아쉬웠다.
이럴 때 그녀가 줄기의 속박을 걸어주면, 도망칠 시간을 벌 수 있고 좋았으련만...
키메라에게는 쿠아만테의 어둠의 영역이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BI 길드 여러분도 모두 피해요! 폭발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니까요!"
세영이 말하기 전부터, 그들은 이미 그럴 마음이었다.
시스템 메시지는 그들에게도 또렷이 들려왔으니까.
"이쪽으로 가면 되는 건가?"
"아니요. 거긴 방이랑 창고밖에 없어요. 출구로 달려요!"
그때 한 남자가 세영에게 외쳤다.
"저에게 마나 회복을 부탁드립니다. 알파님!"
"네?"
"제가, 시간을 벌겠습니다."
다급한 상황.
의심할 여유는 없었다.
세영은 바로 그의 마나를 회복 시켜줄 탄환을 몇 발 발사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신호하면 몇 번 더회복 시켜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는 BI 길드 유일의 트래퍼(trapper)였다.
"슬라이딩 트랩!"
그는 모두가 달아난 출구 앞에 함정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세영의 도움을 받아 마나를 회복해 가며, 그는 총 열 개가 넘는 함정을 설치했다.
적이 밟으면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형태의 것이었다.
더 많이 설치해 두고 싶었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랜드 마인!"
마지막으로 지뢰를 몇 개 추가로 설치해 두고는,냉큼 출구를 향해 달렸다.
"됐습니다!"
모두가 빠져나간 장소.
입구에 김만우와 이세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세요. 문 닫게!"
김만우는 또 어떻게 출입문 레버를 발견했는지, 트래퍼가 빠져나오자마자 생체 실험실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레버를 돌리면 문이 점점 닫히는 방식이었다.
끼깅...
"씨발. 세영아 니가 좀 닫아 봐!"
힘 스텟이 낮아서였는지, 문은 좀처럼 닫히지 않았다.
결국 세영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끼기기기기- 기기기깅.
녹이 슬었는지 요란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레버는 쉬지 않고 돌아갔다.
"잘 닫히는데요?"
세영은 많은칭호의 영향으로 힘 스텟도 제법 높아져 있었다.
김만우는 그 모습에 불만스러운 표정을 했고, 옆에서 지켜보던 트래퍼는 세영을 보며 다시금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완전히 닫아 버려. 못 나오게."
이제 출입문이 거의 다 닫혀간다.
그 틈 사이로, 키메라가 트랩에 걸려 뒤로 쭈욱- 미끄러지는 것이 보였다.
*
슬라임이 나왔던 왼쪽 통로.
키메라가 있던 오른쪽 통로.
나머지 하나는 출구로 향하는 통로이다.
무려 열 일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물론, 폭발의 여파가 여기까지 들이닥칠지 몰라, 모퉁이를 돌아 출구를 향하는 통로에서 대기 중이었다.
"왜, 여기서 출구를 향하지 않고 망설이는 거지?"
"그야 당연히 퀘스트를 하려고 그러죠. 그리고 망설이는 거 아닌데요?"
"시 의회의 의뢰는 정보를 얻는 거였지 않은가. 이 정도면 완수 된 것일 터인데?"
BI 길드의 대표로, 부길마 빔이 나서 세영에게 물었다.
"저는 별도의퀘스트도 두 개나 있어서요. 여러분은 먼저 돌아가셔도 돼요. 저희는 폭발이 지나가면 왼쪽 길로 가볼 생각이에요."
빔은 놀랐다. 두 번 놀랐다.
하나는 퀘스트가 두 개나더 있다는 사실이다.
대체 무슨 퀘스트가 또 있다는 말인가. 그는 그게 몹시 궁금해졌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이들이 겁이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자신의 길드원들과 마찬가지로 눈앞의 알파 역시 괴물 슬라임에게 삼켜졌었다.
제법 공포심이 생겼을 텐데, 아직 되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 것이다.
심지어 징그러운 촉수를 찔러 대는 그 괴수 영화에 나올 법 한, 흉악한 몬스터까지 상대한직후에 말이다.
"그럼 우리도 함께하겠네. 물론, 우리 몫의 아이템 분배는 필요 없네."
더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알파의 다음 행보를...
그리고 그의 파티원 일행이 이 앞에서 뭘 더 하는 지에 대해, 궁금해서 참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뒤에 있던 BI 길드원들도마찬가지였다.
부길마의강요 섞인 선택에도, 누구 하나 빼놓지 않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지켜보며 미소 짓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만우.
'이거, 이거... 이건데?'
그는 BI 길드원들의 표정을 지켜 보며 눈치채고 있었다.
그들이 아이템 분배조차 포기하며, 위험을무릅쓰고 죽을지도 모르는 세영을 뒤따라 가려는 이유가 훤히 보였다.
'그래. 좀 전의 전투를 지켜 봤으면 궁금해서 견딜 수가없겠지.'
김만우는 짙은 돈의 향기를 맡았다.
파밍기업.
판게아 플레이어들 중, 누구보다 앞장서 최전선에서 싸우며, 아이템을 주워 먹고 사는 그들이다.
그런 그들조차세영의 행보가 궁금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하긴...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 못지않을 거야. 그것도 라이브로 지켜보고 있으니까.'
얼마 전 출연한 생방송처럼, 알려지지 않은 아이템이나 스킬을 공개해 어그로를 끄는 것도 좋겠지만, 새로운 스킬, 새로운 아이템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무슨 수로 얻을 수있겠느냐 이 말이다.
'처음에는 그런 거로 어그로를 끌고, 구독자가 늘어난 다음에는...'
유명세를 탄 다음에는 모험 그자체를 공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강력한 네임드 보스와의 전투 장면이나, 난이도 높은 퀘스트를 클리어해 나가는 모습.
분명 사람들은 보고 싶어 안달할 게 틀림없을 것이다.
눈앞의 BI 길드원들처럼.
아직 자기 채널에 영상을 단 하나도 공개한 적 없는 그는, 벌써 먼 미래까지 설계 중이었다.
'빨리 콕핏을 사야 해!'
아마 콕핏 없이방송을 진행 중인 웹튜버들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일단 시작부터 하라고.
짧은 영상이라도 하나 올려놓고 난 후에 말하라고.
현재 김만우의 채널 구독자 수는 0이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김만우가 탐욕적인 생각으로 눈을 빛내고 있는 동안, 시간은 벌써 1분이 경과했다.
"뭐지?"
"이상하네요. 폭발이 없네요."
문을 닫아서 그런 건지,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음... 시스템 메시지도 안 뜨는 걸 보면, 엄청 방음 효과가 좋은 모양이네요."
"그런가?"
"어차피 그 방에는 더 볼일도 없으니까, 일단 왼쪽 통로를 향하자. 아까 말 못했는데 나 클래스 전용 퀘스트가 떴거든."
세영은 파티원들에게 퀘스트에 대해 설명했다.
"와... 거기에서 얼마나 더 강해 지시려는 거에요? 미쳤다."
"하하... 아직 클리어 한 것도 아니니까. 어떤 보상일지 정확히 모르고."
"페어리의 거울이라면, 오빠가 버섯 먹고 받으신 그 퀘스트와 연관되어 있지 않을까요?"
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도 그럴 거 같아."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다른 것에 더 깊은 관심을 보였다.
퀘스트 보상은 당연히 세영 만 받게 될 테니까.
"역시 히부린은 엄청나게 강하겠죠?"
"당연하지. 저런 슬라임과는 비교도 안 될 걸? 그 대신 보상도 엄청난 걸 주겠지만... 으흐흐..."
"멍청아! 넌 지팡이 있잖아! 이제 다른 사람 차례야!"
세영은 그런 아이들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아무튼 서둘러 찾아보자."
일행은 출발했다.
세영과 햄스터가 가장 앞장섰고, 뒤로 다른 파티원들과 BI 길드원까지 늘어선, 긴 행렬이 만들어졌다.
"음? 여긴 뭐지?"
"여기가, 우리가 처음 슬라임과 마주한 장소라네."
"아, 그렇습니까?"
깨져 버린 유리 파편이 곳곳에 보였다.
"저 반대쪽 통로는 안 가보셨죠?"
"그렇습니다. 슬라임 때문에..."
BI기츠가 대답했다.
"그럼 저쪽으로 가면 되겠네요. 아무도 가본 적 없는 장소니까."
그때멀리서 소음이 들려왔다.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였는데, 여러 번 반복됐다.
"아무래도, 제가 설치한 지뢰가 폭발한 모양입니다."
"그래요? 그럼 이제서야 폭발했나 보네요. 아마 키메라가 폭발하며 그 파편으로 지뢰까지 터진 거겠죠."
"이게 무슨 1분이야! 3분은 됐겠네. 슬라임 이름을 히부린으로 지어서 낚더니, 이번에는 카운트 다운 시간까지 속인 건가? 무슨 게임이 이래?"
김만우는 불만스러운지 투정을 부렸다.
어쨌거나 소리만 들려올 뿐, 폭발의 여파는 여기까지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냥 무시하고 더 깊숙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옮길 뿐이다.
다음 도착한 장소부터는 통로 양 쪽으로 많은 방이 존재했다.
그리고 통로도 중간 중간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어디부터 가야 할지, 방을 하나 하나 전부 뒤져야 할지 일행은 매우 고민스러웠다.
게다가 방마다 모양도 비슷해, 작은 미로처럼 길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때 세영은 무언가를 감지했다.
고대 마족의 탑 앞에서 먹었던 요정의 날개 가루 버섯.
그 효과로 대폭 상승한 뱀의 눈 스킬의 효과 덕분이다.
그의 시야에 등장한 레이더 시스템.
미지의 공간인 만큼 지도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군데군데 요정의 날개 가루 버섯 있는 방향이 표시되고 있었다.
세영은곧장 가까운 버섯을 찾아가며, 복잡한 통로를 헤쳐나갔다.
"대체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마치 길을 아시는 듯한..."
BI기츠가 김만우의 옆에서 물어왔다.
김만우 역시 처음 세영의 저 스킬을 봤을 때는, 놀랍고 부러운 기분이 들었었다.
지금은 그러려니 하지만.
"쟤는 그런 애니까 그러려니 하세요."
"네?"
"그냥 그러려니 하시라고요. 쟨 원래 좀 그런 애니까."
BI기츠는 김만우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퀘스트가 위치를 표시해 주는 건가 생각하며 납득했을뿐이다.
가다 말고 멈춰서 버섯을 채집하는 모양이, 채집 퀘스트라도 하는가 싶었다.
알려진 알파의 직업은 연금술사였으니까.
"이 앞이에요."
가장 앞장서던 세영이 갑자기 멈춰 섰다.
"이 문 안에 있는 게 마지막 버섯이 분명해요. 더는 주위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아요."
다른 방들과는 멀리 떨어진 하나의 문 앞에 당도했다.
제법 커다란 문이었다.
문은 잠겨있었고, 열쇠 구멍이 보였다.
구멍의 크기는 히부린의열쇠가 들어가기에 적절해 보였다.
세영은 인벤토리에서열쇠를 꺼내 들었다.
딸깍.
열쇠를 넣고 돌렸다.
드드드드.
문은 곧바로 열리지 않고, 마치 태옆이 맞물리는 듯한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쇠가 풀렸다.
이윽고 문은 열렸고, 그 장소는 예상과 벗어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건물 내부가 아니었다.
금방 쏟아져 내릴 듯 한, 짙은 회색 빛깔의 어두운 하늘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