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84화. 클래스 전용 퀘스트
주위는 가로 막혀 있었다.
지금까지 있던 건물에 의해서다.
오로지 하늘만 휑- 하니 뻥 뚫려있었다.
핑쿠햄스터가 말했다.
"아마도 이 건물은, 중앙 부분이 도넛처럼 뚫려 있었나 봐요. 여기는 그 뚫려있는 중앙이고."
모두의 생각도 같았다.
사방을 가로막은 저 건물 벽은 본 기억이 있었다.
처음 이 잊혀진 세계라는 곳에 도착해 눈에 들어왔던, 건물 입구의 벽과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다만, 여기에는 무언가 자국들이 남아 있었는데, 혈액이나 몬스터의 체액 같은 것이 굳어 있는 건지... 꽤 지저분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조금도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레드문이 말했다.
"건물을 왜 이런 식으로 만든 걸까요?"
"그거야 당연히 그게 이쁘니까 그렇지! 안 그래? 그런 걸 디즈아~인이라고 한 단다. 아가야."
나비가 레드문을 가르치듯, 자신 있게 한마디 했다.
레드문은 그게 불만이었다.
"무슨 마족이 건물을 디자인 씩이나 해?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 하냐?"
"흥. 마족은뭐 다른가?몬스터 중에서는 그나마 인간과 비슷하잖아?"
"하긴. 너를 처음 봤을 때, 나도 마족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었지."
"뭐어?! 죽을래!"
아이들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세영은 주위를 둘러봤다.
사방이 벽으로 가로 막혀 있었으나, 공간은 제법 넓었다.
건물의 중앙에 이런 넓은 공간이 존재하다니, 그만큼 히부린의 던전... 이 건물 자체의 크기는 매우 거대한 것이 아닐까 세영은 추측했다.
이 회색 빛 도는 세계에 처음 진입했을 때는, 열려있던 탓이었는지 그저 '커다란 문이네'하는 감상 뿐이었다.
하지만 그 실상은, 마치 올림픽 스타디움을 방불케 할 정도로 거대했던 모양이다.
세영은 아이들이나 BI 길드원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공간의 중앙에 자라난 버섯을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버섯이 자라있는 모습이몹시 수상했다.
"모두, 이리로 좀 와줄래?"
한번에 하나의 버섯만 자라있던 건물의 내부와는 다르게, 여기에는 제법 많은 양의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버섯 집단의 중앙에, 인위적으로 채집한 듯 둥그런 원형의 맨 땅이 보였다.
마치 그 원 안에서는 절대 자라날 수 없다는 듯.
버섯은 물론 메마른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원은 제법 거대했다.
여기 있는 스무 명가까운 사람들이, 촘촘히 선다면 충분히 올라설 수 있을 만큼은 돼 보였다.
지름이 5m는 넘어 보였다
"뭘까요? 이건. 동그란 모양으로 농약이라도 친 걸까요?"
레드문의 농담에 보다 못한 빔이 답답한 듯 나섰다.
"내가 의견을 말해도 되겠나? 뭔가 수상해 보이는군. 몬스터가 숨어 있다거나 하는 게 아니겠나?"
이게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다양한 의견은 도움이 되는 법이다.
그래서 모두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둥그런 땅 밑에 지렁이나 뱀 형태의 네임드가 숨어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부터, 버섯이 자라려면 수분이 충분히 필요한데, 이런 메마른 땅에서 자라는 게 더 수상하다던가 하는 쓸모없는 이야기들 투성이였다.
레드문은 한 술 더 떠, 이상한 소리 또 꺼냈다.
"이건 혹시! 미... 미스터리 서클?"
"헛소리 하지 마 인마!"
퍽!
노랑나비는 결국 그의 후두부를 가격했다.
그동안 참아왔던 짜증을 전부 되갚아 줄 목적으로 강하게 때렸다.
"으악!! 이 힘만 쌘 마족아! 체력이 5%나 깍였잖아!"
퍽! 퍼퍽!
레드문은 몇 대나 더 맞고 나서야 조용해 졌다.
더 맞았다가는 정말 죽을지도몰랐으니, 자신의입을 급히 틀어 막은 것이다.
결국 해답은 존재하지 않았고, 그럴싸한 의견 역시 없었다.
이럴 땐, 직접 모험을 할 수 밖에 없는 법이다.
"저 원 안에 올라서 볼까요?"
"음... 방법이 없네."
"제가 할게요. 일단 제일 방어력과 체력이 높으니까."
핑쿠햄스터는 발걸음을 옮겼다.
버섯이 자라있는 곳을 지나, 수상한 맨 땅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변화가 있었다.
바닥이 화려하게 빛나며, 마법진이 떠오른 것이다.
마치 땅속에 잠들어있던 로봇이라도 솟아 오를 듯 한마법진이었다.
매우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문양과 알 수 없는 수많은 문자열들이 나열된, 말 그대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와~ 퐌타쥐이~!"
아까부터 나비는 혀를 굴리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세영의 눈에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직 그의 눈에만 비췄다.
그것은 가로 1m 세로 3m는 돼 보일 정도로 제법 거대했다.
바로 거울이었다.
"드디어 찾았네. 거울!"
하지만 누구 하나 그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빛나는 마법진이 보일 뿐, 거울 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를 않았으니까.
"거울이요?"
"응? 저게 안 보여? 엄청 큰데?"
"네. 형은 보여요?"
"응... 나만 퀘스트를 받아서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니면 뱀의 눈 스킬 때문이거나."
어느 정도 납득한 세영은 거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거울의 한쪽 끝에 살며시 손을 얹었다.
[페어리의차원 거울을 발견하셨습니다. 퀘스트 정보가 갱신 됩니다.]
들려온 시스템 메시지.
이 거울이 퀘스트에 나왔던 그 거울이 맞았다.
세영은 갱신 된 퀘스트 정보를 곧바로 확인했다.
[***퀘스트 : 위대한 선구자 히부린]
- 고대 마족 히부린은 이 거울 안의 공간 어딘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당신 역시 페어리의 차원 거울 안으로 진입해야 합니다. 절대 거울을 깨뜨리거나, 바닥의 마법진이 파괴되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마법진의 마나를 흡수하는 합성종(키메라)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거울이 깨지거나 마법진이 파괴될 경우, 퀘스트는 그 즉시 실패로 처리됩니다. 이미 거울에 진입한 상태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 즉시 당신은 사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거울 속에 진입한 시간 동안, 밖에서 거울을 수호해 줄 동료들이 있다면 큰도움이 될 것입니다.
-분류 : 클래스 전용 퀘스트 (연금술 발사자 Lv. 50 이상)
-난이도 : ???
-제한 시간 : 23시간 (2단계 제한 시간 10분)
-보상 : ???
- 목표 2단계 : 거울 안으로 진입하라!
- 목표 2단계의 제한 시간은 10분입니다. 10분 안에 거울에 진입하시기 바랍니다. 카운트가 시작됩니다.
[ 9 : 59 ]
[ 9 : 58 ]
거울의 안에 진입하라는 황당한 퀘스트.
게다가 이 퀘스트는 연금술 발사자 전용이기 때문에 혼자서 가야만 했다.
'거울을 지켜줄동료라...'
동료들이라면 지금 바로 옆에 있다.
굳이 부탁하지 않아도, 그들이라면 기꺼이 거울을 지켜줄 것이다.
아직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세영은파티원들에게 퀘스트에 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BI 길드의 사람들도 듣게 되었지만, 그들과는 정보 누설 금지 계약을 맺었으니 안심이었다.
그들이 듣지 못하게 자기들만 구석으로 가서 이야기 하기도 뭐했다.
"거울을 지킨다고 해도, 대체 뭐로부터 지키는 거예요?"
"그러니까요. 그리고 키메라가 마법진을 밟으면 마법진이 파괴된다고 하지만, 여기 키메라가 어디 있는데요?"
세영의 생각도 그와 같았다.
뭐로부터 지켜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주변은 온통 건물로 막혀있고, 건물 안에는 캡슐 안에 잠들어있는 키메라들 뿐이었으니까.
"제 생각에는 키메라가 아니라 슬라임을 말하는 거 아닐까요? 설마 우리가 그 슬라임을 처치하고 여기까지 올 줄은 아무도 몰랐던 거겠죠. 형이 그런 사기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말이예요."
"그런가? 슬라임이 이 마법진에서 마나를 흡수하면, 저 거울이 깨질지 모르니까 그걸로부터 지키라는 소리였던 건가?"
"네. 저희는 거울이 안 보이지만..."
거울은 마법처럼 공중에 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렇고, 아마 이 모든 것이 마법진의 힘이라 세영은 추측했다.
애초에 거울 속의 세상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부터 판타지고, 적당히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거라 생각했다.
깊게 생각한다고 당장 해답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으니.
"오빠! 그럼, 페어리 퀘스트는요? 그건 어떻게 됐어요?"
"음, 아무래도 뱀은 이 거울 속에 있지 않을까? 내 생각은 그래. 거울 주변에 버섯이 이렇게 많은 걸 보면, 아마 이 생각이 맞을 거야."
거울에 들어가 한 번에 두 가지 퀘스트를 동시에 수행하면 되니, 조금 이득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세영은 그 김에, 고대 마족의 탑 앞에 자라났던 요정의 날개 가루 버섯을 먹고 받아둔 퀘스트 역시 한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퀘스트 창을 열었는데, 정보 갱신 표시가 이 퀘스트에도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세영은 급히 퀘스트 정보를 불러왔다.
[*퀘스트 : 위기에 빠진 페어리 - 추가 정보가 있습니다.]
- *해당 정보는 오직 당신에게만 보이는 정보입니다*
당신은 페어리 뱀을 찾아 이장소에 당도하여, 페어리의 차원 거울을 발견하였습니다. 당신의 생각대로, 페어리 뱀은 차원 거울 속 공간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거울을 파괴해도 해당 퀘스트를 완수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선택으로 해당 퀘스트의 난이도와 보상은 변하게 됩니다.
[선택 1. 거울 안으로 들어간다.]
-분류 : 구출
-난이도 : C (요정 관련 스킬 보유자한정)
-제한 시간 : ????
-보상 : ???
[선택 2. 거울 또는 마법진을 파괴한다.]
-분류 : 파괴
-난이도 : F
-제한 시간 : ????
- 보상 :칭호 '페어리들의 구원자'
- 10분 내로 선택하지 않을 경우, 해당 퀘스트는 실패로 처리됩니다. 서둘러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선택하지 않고 거울 안에 진입하게 되면, 자동으로 페어리 구출 퀘스트가 선택 됩니다.
퀘스트의 제한 시간은 퀘스트를 수락한 뒤부터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거울에 손을 댔을 때 들려왔었던 메시지.
퀘스트 정보가 갱신 되었다던 그 이야기는, 클래스 전용 퀘스트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 페어리 퀘스트까지, 동시에 갱신이 이루어져 있었다.
"대체 뭐지?"
세영은 황당했다.
갑자기 두 가지 선택문 중, 하나의 선택을 강요받았다.
"거울을 파괴하라고?"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뱀이 거울 안의 세상에 있다는 설명까지 해 주면서, 거울을 깨뜨려 버리라니.
그런 걸 선택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보상은 더 황당했다.
두 번째 선택을 할 경우, 페어리들의 구원자라는 칭호를 준 단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난이도 F라는걸로, 설마 자신이 이걸 선택하게 유도라도 할 셈이었는가?
'뱀을 버리는데, 페어리들의 구원자가 되다니 뭐 이런 쓰레기 같은...'
세영은 분노했다.
지금껏 받은 퀘스트 중, 유일하게 짜증이 나는 퀘스트라 생각했다.
생각할 가치도 없었다.
선택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어느 쪽인지는 볼 것도 없었다.
그의마음은 확고했으니까.
[페어리 구출을 선택하셨습니다.]
**
약 10분 전.
끼기기깅-. 쿵!
히부린의 던전.
생체 실험실의 문이 닫혔다.
세영을 비롯한 모두가 마나 코어의 폭발이 두려워 도망친 이후였다.
주르륵-.
키메라 베스투는, 촉수 같은 혓바닥이 모두 잘려진 채로 입구를 향했다.
그러나 BI 길드의 트래퍼가 설치해 둔 슬라이딩 트랩을 밟고 주르륵 뒤로 밀려나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몇 번.
[00 : 05]
[00 : 04]
[00 : 03]
시간은 흘러, 어느새 폭발을 예고하는 카운트가 제로를 향해 가까워 졌다.
[00 : 01]
[00 : 00]
[ -- :-- ]
[주의 하시기 바랍니다. 마나 코어가 폭주를 견디지 못하고 폭발합니다.]
아무런 플레이어도 없는 공간에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당연히 그걸 들은 사람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퍼엉...
마나 코어가 폭발했다.
하지만 매우 조용했다.
폭발과 동시에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을 뿐이었다.
김만우가 지켜 봤다면 욕을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로 모든 것이 끝난 건 아니었다.
슈웅- 슈웅- 슈웅-
무언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 소리 역시 두꺼운 실험실의 철문을 뚫고 새어 나갈 만큼 크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막을 때릴 정도의소음은 그 이후에 들렸다.
콰자장-! 콰자장-! 콰자자장!
여러 대의 캡슐들이 산산이 조각나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 소리 역시 실험실을 가로막는 두꺼운 철문 때문에 밖으로 거의 새 나가지 않았다.
누구의 고막까지도 당도하지 못했다.
마나 코어의 폭발.
그와 함께 흩어져날아간 건,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들이었다.
또, 그 에너지 덩어리는 증폭된 마나와 다름없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수십 대가 넘는 키메라들의 캡슐에, 날아간 마나 덩어리들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총 45마리.
콰앙-!! 쾅!!
강렬한 폭발음.
BI 길드의 트래퍼가 설치한 지뢰를 키메라 몇 마리가 밟는 바람에 굉음이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 정도로 한 마리 한 마리가 네임드 급인 키메라들에게는, 딱히 별다른 데미지를 줄 수는 없었다.
오히려 폭발과 함께 실험실을 가로막던 철 문이 찌그러졌을 뿐이다.
쾅, 쾅- , 쾅!!
철문은 찌그러지며 부숴졌고, 총 45 개체의 키메라가 오랜 숙면을 마치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들이 향하는 곳은,이 히부린의 던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있는 장소였다.
세영을 비롯한 파티원들과 BI 길드원들이 모여있는 장소다.
그리고 그 장소에는 키메라가 올라서면 마나를 빼앗기고 사라져 버리는 마법진이 존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