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85화. 클래스 전용 퀘스트
"형 혼자 가시는 거예요?"
"응, 아마도... 퀘스트가 없으면 진입 가능한지도 모르겠고... 혹시, 다른 사람들도 들어갈 수 있다면 다 같이 가 줄래?"
"네! 오빠! 저는 같이 가고 싶어요. 거울 속 세계라니 완전 판타지하고 멋지잖아요. 헤헤."
세영은 그럴 수 있다면 모두와 함께 거울 안으로 진입하고 싶었다.
안 그래도 자신 혼자만 퀘스트를 받아 몹시 미안한 기분이었다.
시 의회의 정찰 퀘스트는, 지금도 충분히 완료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세영의 퀘스트가 아니라면 아이들이 여기 더 있을 의무는 없었다.
거울 안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 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거울을 지켜야 한다면서요?"
"응... 하지만 적이 없잖아? 금방 들어갔다가 나오면 되지 않을까?"
"갑자기 나타나면 어쩌시려고요?"
핑쿠햄스터의 질문을 뒤로 하고, 이를 지켜보던 김만우가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야, 그러다 저 사람들이 일부러 방해하면 어쩔 거야? 이 아이들은 몰라도...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 법이야. 너무 믿지 마."
그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세영이 거울에 진입한 후, BI 길드원들이 거울을 깨뜨릴 정도로 악인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만일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음... 어떻게 하지... 8분 안에 선택해야 하는데..."
차라리 명백한 적이 존재하는 거라면 마음이 편할 뻔했다.
여기 남아있는 모두는 세영의 퀘스트가 아니라면 고블린 숲으로 되돌아가도 무방한 사람들이다.
고민하던 세영은 일단 거울의 안으로 다른 사람들도 진입 가능한지 실험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모두와 함께 들어갈 생각이었다.
BI 길드원 모두를 포함해서 다같이.
그러는 편이 가장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일단 들어갈 수 있는지 실험해 보자. 햄스터야 부탁해."
이번 실험에도 햄스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네!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죠?"
"아직 들어가지는 말고, 거울에 손가락을 가져가 봐."
"네? 거울이 어디 있는데요?"
아차 싶었다.
거울이 보이는 건 자신 뿐이란 걸 잊고 있었다.
저렇게 눈앞에 훤히 보이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니.
이미 알고 있던 사실임에도, 자꾸 그 사실을 망각하고 만다.
"내가 위치를 알려줄게. 여기 서서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손을 가져가 줄래?"
"네. 여기요? 이쯤?"
"응... 거기."
햄스터의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세영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의 손은 거울과 겹쳐졌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거울이 마치 환영인 것처럼.
"안 되나 봐..."
"어쩔 수 없네요. 저희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얼른 다녀오세요."
"제가 지켜 드릴게요. 오빠!"
실망감을 드러낸 사람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세영이 가장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대한 빨리 다녀오자. 얼른 뱀을구해야 하고...'
거울에 진입해야 하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영은 이들에게 무언가 보답이라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럼 다녀올게. 모두 잘 부탁..."
세영은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갑자기 멈췄다.
그의 시야에 불안을 엄습하는 그림자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저, 저게 다 뭐지?"
마법진 위에 있는 세영을 지켜보던 모두는, 그가 말하다 말고 눈을 크게 뜨자, 무의식 적으로 그 시선의 끝을 향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키, 키메라가..."
"저, 수는 대체 뭐야? 그리고 아직도 문에서 나오고 있잖아!"
열 마리가 넘는 키메라들이 이들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일행이 통과한 문 안에서 추가로 들어오는 키메라들까지... 모두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저, 전투 준비!"
"형. 이게 어떻게 된 거에요?"
"글쎄. 나도 모르겠어."
세영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 착각한 것이다.
이 모든 게 거울 안으로 진입하는 선택을 한 바람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도, 세영은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페어리 뱀을 포기하다니, 그가 그런 선택을할 리가 없었다.
결국 문제는, 당장 들이닥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다.
[ 07 : 33 ]
그는 7분 안에 거울에 진입해야 하니 시간이 없었다.
그 시간 안에 저 많은 키메라를 전부 처치할 수도 없다.
놈들의 공격력은 둘째 치더라도, 파티원 모두가 쉬지 않고 공격해도 한 마리를 사냥하는 데에만 최소 5분은 필요한 네임드 몬스터다.
"이제 끝인가?"
"아마 저놈이 마지막 같습니다."
"그래서 몇 마리야?"
"정확히 서른아홉 마리 입니다."
BI 길드원들 역시 다급하게 사태를 파악 중이었다.
다가오는 키메라들의 수를 보면, 아무리 알파와 그의 파티원들이 강해도, 전부 상대하기에는무리가 있어 보였다.
키메라의 수는 마흔 다섯 마리.
하지만 이들이 확인한 건 서른 아홉 마리다.
왜냐하면 가장 덩치가 큰 키메라가, 문에 끼어통로가 막혀버린 것이다.
놈은 피부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진 건지, 눌려버린 찐빵 같은 모습으로 문 사이에 낀 상태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덕분에 그 뒤에 있던 키메라 몇 마리가 더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없었다.
"저희는 마나가 거의 바닥난 상태인데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부길마님!"
"역시, 아까 출구를 빠져나갔어야 했던 거 아닙니까? 저런 식으로 막혀 버리다니."
"놈들의 이동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이라도 도망칠 방법을..."
그때였다.
모두의 몸통에 탄환이 날아와 박혔다.
"흐익."
"헉... 뭐, 뭡니까?"
세영이 발사한 마나 회복 탄이었다.
"여러분 부탁 드립니다. 여기 보이는 마법진에 놈들이 올라오면 안됩니다. 부탁드려요."
모두 황당해 하며 세영을 바라보다가, 자신들의 마나가 회복된 사실에 눈치채고는 부 길드 마스터 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서둘러 선택을 내려달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좋다! 해 보지! 하지만, 우리는 마나 포션 가진 게 없다네. 그리고 위험해지면 도망칠 테니까. 의지는 하지 말게나."
빔의 이야기를 듣고, 그나마 안심한 세영.
하지만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형. 어떻게 하죠?"
"음..."
세영이 고민하는 찰나, BI 길드의 부길마 빔이 소리쳤다.
"보조 파티의 기사 둘은, 도발을 쓰고 바깥으로 크게 돌아라. 방향은 시계 방향! 힐러들은 기사들의 체력 관리에 힘써라!"
"예!"
역시 다수의 인원을 통제하는 건, 세영보다 BI 길드 쪽이 한 수 위였다.
하지만 그들은 마나 포션이 없을 터.
아직도 문제의 해결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럴 때, 쿠아만테의 어둠의 영역이 통하면 좋았으련만.'
키메라들은 왜 인지 어둠의 영역이 전혀통하지 않았다.
네임드 몬스터이기 때문인 확률이 높아 보였다.
"형. 우리도 뭔가 해야죠."
마흔다섯 마리의 키메라가 긴 행렬로 공간을 크게 빙빙 돌고 있다.
하지만 놈들의 이동 속도가 각자 다른 탓인지, BI 길드의 기사들은 한바퀴 이후부터 뒤에 처진 키메라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세영은 기사들을 가장 많이 공격하는 키메라한 마리에게 화염 탄을 갈겼다.
"이놈부터 순식간에 처리하자. 마법진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다행히 놈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아마 흡수한 마나량이 크지 않아, 마나 코어의 가동률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키메라들은 각자 흡수한 마나의 크기가 달랐지만, 코어의 가동률이 100%를 넘는 녀석은 없었다.
오직 놈들의 숫자가 문제였다.
*
[ 01 : 56 ]
이제 채 2분이 남지 않았다.
그 시간 안에 거울 안에 진입하지 못하면, 세영의 퀘스트는 실패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 난장판을 두고, 어찌 그 혼자만 거울 안으로 빠져나갈 수 있겠는가.
이제 겨우 키메라 한 마리를 쓰러뜨렸을 뿐인데.
"형. 어떻게 하죠? 이제 퀘스트 하셔야지 않아요?"
세영의 머리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복잡했는데, 깊게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다.
'이놈을더 빨리 잡았어야 했어.'
중간중간 BI 길드에서 소리치면, 그들의 마나를 회복 시켜줘야 했기에 딜 로스가 심했다.
마나를 회복 시켜주는 시간에 연발 사격을 사용하면, 엄청난 데미지를 퍼붓는 게 가능하니까.
그렇다고 그들을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일이다.
그들이 없으면 마흔 마리 가까운 모든 키메라가 여길 향해 달려올 것이다.
"일단, 비장의 수단을쓰는 수밖에 없겠네."
"네? 그게 뭔데요?"
세영은 아끼던 플라스크를 꺼냈다.
그건 바로, 고블린 대족장 바라만의 호문클루스이다.
"연성!"
[합성종 no. e-126 '키나보'의 신체를 호문클루스 바라만의 그릇으로 사용합니다. 연성을 시작합니다.]
모두는 감탄을 자아냈다.
"우와!"
"캬~ 이럼, 이야기가 다르죠! 완전 든든하네."
"그, 그, 고블린 족장 소환하는 스킬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아쉽게도 호문클루스는 다른 몬스터를 소환하거나, 아군으로 만드는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바라만이 누구인가.
세영 일행을 개고생 시킨 고블린의 최강자 아닌가.
세영은 바라만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일단, 저기 키메라를 공격해 줄래?"
바라만은 세영을 보며 미소지었다.
녀석의 지팡이에서는 화염구가생성됐다.
"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세영이 말하기도 전에 제법 커다란 화염구가, BI 길드의 기사들을 공격하는 키메라들을 향해서 날아갔다.
콰앙-!
"으윽... 이건뭡니까...체력이..."
기사들은 갑자기 날아온 거대한 화염에 깜짝 놀랐다.
그 공격력이 얼마나 강한지 체력이 급속도로 줄었다.
이를 본 세영은 급히 힐링 탄환을 발사해 두 기사의 체력을 가득 채웠다.
'역시, 호문클루스 공격에 저 사람들도 데미지를...'
예상대로였다.
호문 클루스의 공격에 데미지를 입지 않는 건, 세영과 파티원뿐이다.
혹은 같은 길드원이나, 특수한 퀘스트를 동시에 참여한 경우.
즉 아군이라 인식되어야만 데미지가 무효화 됐다.
'광역 공격은 못 쓰게 해야겠네... 아니면...'
다행이었다.
몇 번이나 반복된 도발 스킬 덕에 키메라들의 시선은 아직 기사들을 향해 있었다.
화염구는 매우 강력하긴 했지만, 겨우 한 발로는 시선을 빼앗지 못했다.
공격 당한 모든 키메라가 바라만을 향해 달려들었다면, 얼마 버티지 못했을지 모른다.
세영은 서둘러 명령을 변경했다. 좀 더 자세하게.
"바라만. 광역 스킬은 이것저것 곤란한 일이 많으니까 사용 금지야. 마력 탄으로 저기 보이는 키메라 한 마리만 공격해 줘. 절대로 여기 보이는 마법진 위로 놈들이 오지 못하게 막아줘!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뚱보에 거구인 바라만은 눈을 찡긋했다.
알았다는 신호였던 모양이다.
'이놈, 어느 정도 말할 줄 아는 거 아니었나?'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그래도 세영이 가진 호문클루스 중 이보다 믿을 맨은 없었다.
바라만은 가장 최근에 쓰러뜨린 최강의 보스 몬스터였으니까.
광역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도 말이다.
바라만의 마력 탄이 겨우 세 발 적중했을 뿐인데, 기사를 공격하던 키메라 한 마리가 고개를 돌렸다.
일반 공격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강력한 마력 탄.
이게 바로 그가 고블린의 정점에 선 이유였다.
"또, 적인줄 알았습니다. 대체 그 고블린은 뭡니까?"
BI기츠가 세영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아군이니까 걱정 마세요."
세영은 안심시키려 그리 말했지만, 그걸로 모든 의문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BI 길드원들은 전에 본 누라라를 비롯해 바라만까지 지켜보며, 이것이 세영이 가진 또 하나의 능력이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저 사람 대체 뭐야? 진짜 미쳤네. 사기 아니야?"
"그러니까. 완전 생태 교란 종이네."
"다들 조용! 집중해라!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들은 부길마의 중후한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정말 이럴 때가 아니었다.
"마나가 없습니다. 알파님!"
세영은 또다시 BI 길드의 힐러 한 명을 향해 마나 회복 탄을 발사했다.
'이제 시간이... 뱀을 구해야 하는데...'
세영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눈치챈 아이들이 말했다.
"형. 그냥 가세요. 저희에게 맡겨요."
"맞아요, 오빠. 믿어보세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마법진과 거울을 지켜낼 테니까!"
정말 그래도 되는 걸까?
아이들은 분명 그렇게 해 줄 것이다.
그럼 BI 길드원들은?
'아니겠지...'
부길마라는 빔이 말한 것처럼, 더 위험해 지면 그들은 발을 뺄 것이다.
그들에게 최우선은 자신들이 살아남는 것일 테니까.
게다가 그들은 현재 소지한 마나 포션이 하나도 없었다.
만약 그들이 입구에 있는 키메라를 밀어내고 이 장소에서 떠난다면?
수십 마리의 키메라를 김만우와 아이들에게만 상대 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방법은 있었다.
'설마, 여기서 사용할 줄은...'
문제는 보상의 설정이었다.
얼마 만큼의 보상이면 BI 길드원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 줄까.
'그래. 많이 벌었잖아!'
세영은 결국 그걸 사용하기로 했다.
히부린의 비밀 창고에서 마나 허브 티를 많이 얻었으니,살아서 풍차 마을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으리라.
'죽게 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자신을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지켜주겠다는 아이들이 있다.
자신만 몸을 사릴 수는 없다.
세영은 마음을 정하고 시스템 화면을 불러냈다.
[신규 퀘스트를 만드시겠습니까?]
"예!"
[퀘스트의 분류를 선택해 주세요.]
"디펜스 미션"
[디펜스 미션 퀘스트를 발주합니다. 설정 창을 불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