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86화. 거울 뒷면의 심연
띠링!
갑자기 시스템 알람이 울렸다.
신규 퀘스트의 등장을 알리는 알람이었다.
이곳에 있는 17명의 인원 중 단 한 사람. 이세영을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동시에 들려왔다.
[!!긴급 퀘스트!!]
[알파의 디펜스 미션 : 플레이어 알파는 근처에 있던 당신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긴급 퀘스트를 발주하였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일정 시간 동안 페어리의 차원 거울과 마법진을 지키는 것입니다.]
- 플레이어 알파가 페어리의 차원 거울에 진입한 후부터, 그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거울을 수호해야 합니다.
페어리의 차원 거울과 마법진 중 어느 하나만 파괴되어도, 퀘스트는 실패로 처리됩니다. 또, 키메라가 마법진에 접촉하는 경우에도 퀘스트는 실패합니다.
- 본퀘스트는 긴급 의뢰입니다. 수락 즉시 퀘스트가 시작되며, 조금이라도 참여를 지체할 시에는 최종 보상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공헌도에 따라상위 4인까지 추가 보상이 존재합니다.
수락과 동시에, 최하급 마나 포션 열 병과 최하급 회복 포션 열 병이 당신의 인벤토리에 자동 지급됩니다.
-분류 : 수비 임무
-난이도 : F (상황에 따라 난이도가 D까지 상승할 가능성이 있음)
-제한 시간 : 30분~ 무제한
-보상 : 10골드(기본 30분. 초과 시 1분마다 1골드 추가, 퀘스트 종료 후 공헌도 1~4위 추가 보상)
- 퀘스트 수락과 동시에 같은 퀘스트를 수행하는 수호대에 자동 참여하게됩니다.
"이게, 뭐야?"
"갑자기 무슨 퀘스트야?"
"알파? 설마 알파님이?"
여기저기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세영은 다급히 소리쳤다.
"공헌도 1등 보상은 100골드 입니다. 시간이 없어요."
세영은 김만우와 파티원들에게 퀘스트를 수락해 달라 부탁했다.
퀘스트 없이도 도와 준다 했을 정도이니, 누구하나 망설임 없이 세영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나 이제 시간이 없어.형! 형이 좀 어떻게 해줘요. 궁금한 거 있으면파티 대화로 설명해 드릴 테니까."
"그래. 얼른 가 봐. 여기서 실패하면 말짱 똥 되는 거야."
"그럼, 모두 잘 부탁해요."
세영은거울 앞에 섰다.
이제 20초도 남지 않았다.
서둘러 들어가지 않으면 퀘스트는 실패하고 만다.
꿀꺽 침을 삼키고 난 후,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에 손을 뻗었다.
세영의 손이 닿는 순간, 모든 빛을 반사하던 거울 면은 새까맣게 변하며 일렁였다.
그리고 세영의 손은 그 거울 면의 촉감을 느낄 수 없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손을 시작해서 그의 몸 전체가 일렁이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바닥의 마법진이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저게, 오빠가 말하던 거울인가 봐. 엄청나게 크네. 저렇게 큰데, 그동안 왜 안 보인 거지?"
"퀘스트가 없어서 그랬던 거 아니겠어? 형이 준 퀘스트 수락하자마자 바로 보이잖아. 그나저나 퀘스트를 플레이어가 만들어도 되는 거예요?"
그 질문은 김만우를 향한 거였다.
아이들은 모두 듣고 있었다.
세영이 모든 걸 김만우에게 맡기고 갔다는 걸.
"그런 건 파티 대화로 물어봐!"
"아, 그런가?"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세영과 파티 대화가 단절되어 있었다.
"뭐야. 왜 안되지?"
"오빠 무사한 걸까요?
"파티원이 사망한 메시지는 안 뜨는 걸 보면, 죽은 건 아니겠지. 귓말도 안되는 거 보니, 퀘스트상 제약 같은게 있나 본 데? 별 게다 있군."
그때 BI 길드의 빔이 찾아왔다.
"우리에게도 설명 좀 해 주시오. 보이지도 않는 거울을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들은아직 퀘스트 수락을 하지 않았다.
김만우는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퀘스트 수락하시면 아는 걸 다 알려드릴게요."
"흠..."
빔은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퀘스트의 보상이 탁월한 것은 아니었지만, 길드원들 각각의 보상을 전부 더 하면 제법 큰 금액이었다.
길드원들 모두 직원들이다.
그 수입은 고스란히 회사의 이득이 될 것이다.
"전원! 퀘스트를 수락한다!"
그의 명령과 함께, 빔을 포함한 12명의 길드원은 퀘스트를 수락했다.
그리고 16명이 참여한 소규모의 수호대가 완성되었다.
"대화는 수호대 채널의 메시지로 할게요. 모두 들을 수 있게. 지금 상황이 느긋하게 설명할 때도 아니니까 궁금한 부분만 물어봐 주세요."
가까이 다가왔던 빔은 결국 자신들의 부하 곁으로 돌아갔다.
지금이야말로 그의 지휘가 중요해졌으니까.
하지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대로 30분 정도 시간을 끄는 것이야, 얼마든지 가능해 보였다.
값비싼 포션도 여러 개 공짜로 받았고, 모든 키메라를 동시에 처치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다들 지금처럼 만 하면 된다! 기사들이 고생 좀 해줘! 힐러들은 새로 받은 마나 포션 다 쓰면 이야기하고!"
일단 키메라의 수를 줄이는 것보다 시간을 버는 쪽을 택했다.
다른 사람의 포션까지 힐러인 클래릭에게 모아줄 심산 이었다.
몇몇 길드원이 질문해왔다.
"그냥 이런 식으로 해도 됩니까?"
"당연하지. 퀘스트는 처치하는 게 아니라, 마법진에 접근 못 하게 하면 될 뿐이니까."
빔은 퀘스트를 수락하기 전과 별다르지 않은 상황에 만족하며, 궁금한 걸 김만우에게 물을 작정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끄는 건, 힐러들의 마나 포션만 부족하지 않게 신경 쓰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는 빛이 나는 장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세영이 사라진 뒤부터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던 강렬한 빛이, 서서히 잦아 들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일어났다.
기사들을 따라 주변을 빙글 빙글 달리던 키메라들의 발걸음이 일제히 멈췄다.
그리고 놈들의 시선이 마법진과 거울을 향했다.
"이런..."
그제서야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디펜스 미션의 카운트를 시작합니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 최소 30분을 버텨야 합니다.]
[ 00 : 01 ]
[ 00 : 02 ]
.
.
.
놈들이 본격적으로 마법진을 노리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 그 누구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
[잊혀진 세계의 근원. 거울 뒷면의 심연에 입장하셨습니다.]
- 매초 MP가 2 감소합니다.
- 모든 MP가 바닥날 경우 당신의 몸은 서서히 굳게 됩니다. (몸이 전부 굳게 되면 당신은 사망하게 됩니다.)
섬뜩한메시지와 함께 세영의 눈에는 매우 신비한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빛 한 줌 없는 어두운 세계였지만, 대폭 레벨이 상승한 카스나의 눈 스킬 덕분에 다행이었다.
'이 거대한 게 전부 버섯?'
온통 버섯이었다.
당신이 상상하는 버섯이 아니다.
거대한 버섯.
누라라의 거목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집채만 한 버섯들이 빽빽하게 시야를 가로막고 있었다.
두께만 놓고 보자면 이쪽이 훨씬 두터웠다.
거인의 세계에 온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거울 속이 온통 버섯 세상이라니.'
세영은 감상을 뒤로 하고, 퀘스트 창을 열었다.
퀘스트 갱신 알람이 울렸기 때문이다.
[***퀘스트 : 위대한 선구자 히부린]
- 이 공간 어딘가에 있을 히부린을 찾아야 합니다.
-분류 : 클래스 전용 퀘스트 (연금술 발사자 Lv. 50 이상)
-난이도 : ???
-제한 시간 : ???
-보상 : ???
- 목표 3단계 : 히부린을 찾아라!
이 퀘스트는 별 다를 게 없었다.
제한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마나와 마나 포션이 바닥나기 전 서둘러 찾지 않으면, 몸이 굳어 죽게 될 테니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밖에서 거울을 지키는 동료들이 얼마나 버텨줄지도 걱정이었다.
[*퀘스트 : 위기에 빠진 페어리]
- 이 공간 어딘가 있을 페어리 뱀을 서둘러 찾아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그녀의 생명은 조용히 사그라들 것입니다.
-분류 : 구출 (요정 관련 스킬 보유자 한정)
-난이도 : ???
-제한 시간 : 1시간
-보상 : ???
- 페어리 뱀을 찾기 위해서는 당신이 소유한 모든 페어리의 능력을 발휘해야 할것입니다.
이쪽 퀘스트는 시간 제한이 분명했다.
1시간. 그 시간이 지나면 뱀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이야기는 세영에게 다소 충격으로 다가왔다.
모든 환경이 다그쳐왔다.
얼른 움직이라고.
늦장 부리지 말라고.
생각하기 전에 행동하라고 말이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엄청난 후회가 밀려올 거라는 걸, 세영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거대한 버섯들로 시야가 온통 막혀있다.
힌트라고 주어진 건 페어리의 능력을 사용하라는 것.
카스나의 눈은 진즉 사용 중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한 치 앞도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타리뮤의 날개를 써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적도 없고 아무도 없는데 은신을 해 봐야 무슨 소용인가.
남은 건 뱀의 눈.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식물도 세영의 레이더에 표시되지 않았다.
'저 거대한 버섯을 채집해 볼까?'
세영은 거기에 무언가 힌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민할 틈은 없어.'
곧장 그 생각을 실행했다.
그리고 동시에 난관에 부딪쳤다.
버섯은 본래 맨손 채집을 한다.
채집 가위고, 호미고, 낫이고, 버섯을 채집하는 데는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이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거대한 버섯은, 도무지 맨손으로 채집할 만한 크기가 아니었다.
'어쩌지... 이건 완전 누라라의 거목을 맨손으로 꺽는거나 마찬가진데...'
그러다 번뜩였다.
'그래. 도끼가 있었지!'
채집할 수 없다면, 베어내는 건 어떨까?
세영은 트리얀에게 벌목에 대해 배운 기억이 있다.
인벤토리에 벌목용 도끼 역시 항상 소지하고 다녔다.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면 곧장 실행할 뿐이다.
지금 세영에게 망설임이란 단어는 사치에 불과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마 10분 정도는 흐른 것 같다.
모를 수가 있겠나.
죽지 않기 위해서는, 2분마다 한 번씩 마나 포션을 마셔야 했으니까.
물론 페어리 구출 퀘스트의 남은 시간을 확인하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 49 : 11 ]
11분 정도가 지났다.
밖에서 동료들이 어떻게든 힘을 내고 버텨주는 모양이다.
그들의 노력을 수포로 만들 수는 없다.
퀘스트에 실패하고, 이 장소에서 죽어 버리면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다.
이 잊혀진 세계에 들어와 획득한 경험치며 아이템이 전부 사라져 버린다고 했다.
그것은 정말 큰 문제였다.
세영은 이미 수백 골드 이상을 지출했기 때문이다.
퀘스트를 긴급으로 변경하기 위해 100골드. 16명의 기본 보상 160골드. 공헌도 보상용으로 200골드.
거기에 참가만 해도 받을 수 있던 많은 양의 포션을 더하면, 현금으로 환산 시 1억 이상을 지출한 셈이다.
모든 비용과 아이템은 퀘스트 모집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퀘스트를 실패해 보상을 지급하지 않게 되더라도, 이 소모된 비용은 다시 되돌아 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플레이어에 의한 퀘스트발주는 그야말로 양날의 검과 다름 없었다.
정말중요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빌어먹을..."
그 답지 않은 발언이 튀어나왔다.
10 분이다.
현실의 10분과는 차원이 다르다.
게임 내에서 10분 간이나 쉴새 없이 도끼질을 반복했다.
지금은 1분 1초가 중요한데, 무려 10분 동안 헛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벌목에 실패하셨습니다.]
"대체 어쩌라는 거야!"
세영은 그 답지 않게 몹시 짜증을 냈다.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 거대한버섯은, 세영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전부 버섯 볶음을 해, 먹어 버릴까 보다!"
애꿎은 벌목용 도끼를 집어 던지며, 세영은 뒤로 벌렁 누웠다.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온통 버섯의 갓으로 막혀서다.
세영은 그게 또 너무 짜증이 났다.
벌떡 일어나 다짜고짜 버섯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버섯의 줄기를 이로 악- 물어뜯었다.
진짜로 먹어버릴 심산이었다.
'응? 맛있네?'
놀라운 일이었다.
이 와중에 맛 평가가 나올 정도로, 맛이 좋은 버섯이었다.
감칠맛이 입안에서 확산했다.
트러플 오일을 먹어 본 적 없던 세영은 그게 이런 맛이라 비싼 거라면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초에 생으로 뜯어 먹어도 맛있는 버섯이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러나 더욱더 놀라운 일은 뒤에 벌어졌다.
'뭐지? 왜 갑자기 버섯들이 작아지는 거지?'
버섯이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세영의 육체가 점점 커지는 중이었다.
커지고, 커지고, 또 커졌다.
이윽고 버섯의 크기와 비슷해졌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커지고, 커지고 더 커지더니, 최종 적으로는 버섯이 발밑에 채일 정도로 거대해졌다.
'뭐, 뭐야?'
[????버섯을 먹었습니다. 신체가 1000 배 거대해 졌습니다. 매 초 감소하는 마나량이 5배 증가합니다.]
- 가지고 있는 모든 페어리의 스킬의 유효 범위가, 당신의 거대한 육체 크기에 맞춰 상승합니다.
세영은 이걸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몹시 의문이 들었다.
아니, 최악이었다.
이대로 지속되면, 최소 30초 마다 마나 포션을 몇 병이나 마셔야 했으니까.
'마나 포션 한 병이 얼마나 비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