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94화. 보험
[크사발레의 창]
- 내구도 26/100 <전설 등급>
- 피의 마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인 왕 '크사발레'가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낸 전설의 창입니다. *레벨이 부족해 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 *대상의 특정 부위(심장 혹은 핵)에 이 창을 꽂아 넣으면, 대상의 모든 마나를 빨아들입니다. 빨아들인 마나는 창의 내부에 봉인됩니다. 1회 사용 시 내구도가 1 감소하며 0이 되면 더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수리가 불가능한 아이템입니다.
- 물리 공격력 +10
- 거래 및 양도가 불가능합니다.
- *** 내구도가 0이 된 순간봉인된 모든 마나를 소모하는 강력한 특수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 후 창은 즉시 소멸합니다.
- *레벨이 부족해 현재는 확인할 수 없는 정보가 존재합니다.
세영은 창을 손에 쥐었다.
공격력은 볼품없었지만, 가히 놀라운 옵션.
이 창만 있다면, 어떤 네임드가 나타나도 걱정 없어 보였다.
다만, 한 가지 문제는상대의 심장이든 핵이든 위치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키메라라면 마나 코어의 위치.
하지만 지금은 그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놈의 마나 코어의 위치가 뻔히 보였으니까.
'저기인가?'
히부린이 만든 모든 키메라는, 그 형태의 기본 베이스가 인간과 다름없었다.
특히나 넘버 300 이상의 키메라가 그랬다.
모두 자신과 페어리의 융합을 위한 실험용 키메라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눈앞에서 마법을 시전 중인 오르기스 역시 이와 같았고, 심지어 한 쪽 가슴에서만 푸른 마나의 빛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너무 뻔한데.'
거기다 한 술 더 떠, 놈은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타입의 키메라이다.
가까이 접근만 할 수만 있다면, 근접전에 자신 없는 연금술사인 그라도 간단하게 창을 찔러 넣을 수 있으리라.
어떻게 접근 하냐고?
지금 세영에게 그보다 쉬운 일도 없다.
"공간의 틈!"
새로 배운 스킬을 시전 했다.
바라만에게서 드롭된 스킬 북을 통해 배워둔, 영웅 등급의 스킬이다.
이 스킬은 현재, 마나 포션 없이는 단 세 번 밖에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마나를 요구하는 통에,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세영이 정신 수치가 높은 마법사 클래스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망설일 이유가 없다.
모두가 위험에 빠져 있으니까.
차원 거울앞에 있던 세영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져버렸다.
*
"모두 조심해. 마법이 온다!"
"부길마님. 저희는 그렇다 치고, 힐러랑 마법사들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든 우리가 최대한 막아 봐야지! 방법이 있겠나!"
모두는 디펜스 미션의 보상도 확인하지 못하고, 키메라가 준비 중인 마법만 지켜보고 있었다.
부디... 제발 버텨 낼 수 있기를 바랬다.
그런데 갑자기 마법을 시전 중이던 키메라의 등 뒤에서 알파의 모습이 나타났다.
"뭐, 뭐야? 어떻게 갑자기..."
"어? 저기서 뭘 하려는 거지?"
키메라 오르기스는 등 뒤에 나타난 세영의 낌새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시전 중인 마법에 집중한 탓이다.
'좀 비겁해 보이려나? 하지만 뭐, 게임이고...'
손에 든 칠흑의 창을 꽉 쥐었다.
아무리 세영이 검이나 창을 다룰 줄 모르고 근접전이 젬병이라도, 무방비한 상대에게 이런 근거리에서 명중시키지 못할 리는 없었다.
전신의 모든 힘을 쥐어 짜낸다는 심정으로 강하게 찔러 넣었다.
푸욱-!!
칠흑의 창이, 놈의 마나코어 중심부를정확히 관통했다.
키잉-!
순간이었다.
기이한 소리와 함께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오르기스의 몸 주변에 생성되었던 불과 얼음의 마법은, 그 크기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윽고 팟- 하며 소멸되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이 키메라들은 하나같이, 마나 코어에서 공급하는 에너지 없이는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다.
일반 몬스터였다면 마나가 바닥났어도 팔, 다리, 꼬리, 입 등등 이것저것 사용해 끝까지 발버둥 쳤을지 모르지만, 놈은 그러지 못했다.
[합성종 no. e-301 '오르기스'의 마나 코어가 기능을 완전히 정지했습니다.]
[합성종 no. e-301 오르기스를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
.
[당신은 위대한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칭호가 주어집니다.]
[ 칭호 : 마나 코어 파괴자 ]
- 당신은 강력한 키메라의 마나 코어를 단독으로 파괴하였습니다.
- 모든 스텟 +3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지켜본 자들이 있습니다. 명성이 추가됩니다.]
- 명성 +20
쉴 틈을 주지 않고 들려오는 시스템 알람.
이 모든 일이 그야말로순식간에 벌어졌다.
세영이 거울에서 나온 지 채 30초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단독 처치 보상으로 칭호와 명성은 물론 레벨이 5 개나 상승했다.
현재 레벨은 무려 60이나 되었다.
이는 디펜스 미션에 참여해 키메라 30 여 마리의 경험치를 얻은, 나비, 햄스터, 레드문의 레벨과 같은 것이었다.
"형... 지금... 뭘, 어떻게..."
항상 호들갑을 떨던 아이들조차, 코어 에너지 100%의 강력한 키메라를 순식간에 처치한 세영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압도적.
그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한 사람. 부러움보다 질투심이 강한 사람이 있었다.
"와, 이새끼. 사람들 한 시간 동안 개 고생 시켜 놓고, 자기가 좋은 부분은 혼자 독차지하네. 니가 무슨 영화 주인공이냐?"
김만우가 틱틱거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그래도 아무도 안 죽었네요."
세영은 그 사실에 안심하며, 핑쿠햄스터를 쫓아 공간을 달리는 네 마리의 키메라를추가로 사냥했다.
그가 일행의 마나를 회복 시켜 준 덕에, 매우 빠르게 처치할 수 있었다.
무려 16명이 한 마리를 향해 스킬을 퍼부어 대니, 오래 버틸 리가 없었다.
"휴, 겨우 끝났네."
"마나가 있고 없고에 따라 사냥 속도가 이렇게 차이가 나니까 마나 포션 가격이 미친 거지..."
"그거 마나 포션 차이 맞아? 저 알파라는 친구가 있고 없고 차이는 아니고?"
세영은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머쓱 해 하며, 시스템 창을 열어 자신이 발주한 퀘스트의 정보를 확인했다.
[공헌도 순위]
1. BI땅꾼- 6000
2. 레드문- 2300
3. BI기츠- 2200
4. BI사제- 2190
.
.
.
공헌도는 BI 길드의 트래퍼가 압도적인 1위였다.
디펜스 미션 답게, 그의 역할이 가장 중요했던 모양이다.
그 뒤로는 힐러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힐러도 그렇고 딜러들과 트래퍼와의 공헌도 격차는 매우 컸다.
이는 키메라 대부분을 처치한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히부린이었으니 어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마 히부린을 순위에 포함했다면, 가볍게 1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다만, 이상하게 레드문만 딜러 중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마 퀘스트 참가자 중 유일하게, 마나 회복 옵션이 붙은 영웅 지팡이를 사용 중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감사합니다. 보상은 제대로 받으셨나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도 사람들은 놀란 표정으로 세영을 멀뚱히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빔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보다, 방금은 대체 뭐였지? 왜 거울 안에서 마족이 나왔고, 마법진 위에 누워있는 저 여자는 또 뭐지? 히부린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말이야...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군."
세영은 무엇부터 먼저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그때 김만우가 말을 꺼냈다.
"야. 가서 오르기슨지 뭔지 하는 놈 꺼 아이템 빨리 회수해. 이제 여기 빠져나가야지. 너 우리랑 파티도 안하고 혼자 잡아서 템 독식하고 좋겠다? 아무튼 빨리 움직여!"
오르기스를 혼자 사냥한 걸 가지고 저렇게 말해오니 세영은 황당했다.
파티를 다시 맺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있던 게 아니었건 만.
그러나 느긋하게 변명 따위를 하고 있을 시간 역시 부족했다.
서둘러 잊혀진 세계에서 빠져나가라는 시스템 알람이 반복 적으로 울려 대는 까닭이다.
그야말로 세계가 붕괴 되고 있다.
"네. 서두르죠. 설명은 나가서 할게요."
세영은 키메라에게서 나온 아이템을 확인했다.
장비류는 없었고, 돈이 될 만 해 보이는 건 스킬북 정도였다.
키메라가 사용했던 그 스킬들.
세영은 다시 마법진 위로 되돌아가 페어리 퀸 메르바를 등에 업었다.
"그건 뭔데? 히부린 클론이냐? 아니면 거울 안에서 마누라라도 얻은 거야?"
"아니에요! 페어리 퀸 메르바에요.메르바를 데려가는 게, 제 다음 퀘스트라고요."
"얼씨구. 이 와중에 또 퀘스트까지 하시겠다?"
세영은 메르바를 등에 업고, 김만우를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괜히 저러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BI 길드의 빔은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가 보기에는 오히려 김만우가 세영을 신경 써 주는 것처럼 보였다.
과격한 말투로 세영을 공격하는 행동 덕분에, BI 길드에서 튀어나올 불만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었다.
게다가 모두를 위기에 빠뜨린 거로 인해, 과도한 부채 의식을 가질지 모르는 알파의 심적인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젊은 친구가 제법이군.'
그는 김만우를 높게 사고 있었다.
그러니 귀중한 연금술사 동료를 가까이 두고, 웹튜브를 통해 공개한 것처럼 히든 클래스 직업을 얻은 것 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그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김만우는 그냥 짜증이 난 걸, 가장 편한 이세영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을 뿐이었다.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BJ군만두 입니다. 지난 방송 이후 벌써 하루가 넘게 지났네요. 오늘 생방송 지금 시작합니다!"
BJ군만두는 생방송을 시작했다.
지난 김갑부와 진행했던 화제의 생방송 이후, 하루가 훌쩍 지날 동안 그는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았다.
김갑부의 조언도 있었고, 편집 후 웹튜브에 올라간 동영상의 댓글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을 지켜보자니 조용히 있어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가히 폭발적인 반응.
구독자는 하루 만에 두 배로 뛰어올라 400 만을 넘어섰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 만으로 이렇게 난리들이라니...'
아무런 설명 없이 화면이 온통 암흑인 상태에서 다짜고짜 생방송이 꺼졌는데, 시청자들의 반응은 오히려 여느 때 보다 최상. 칭찬 일색이었다.
갑자기 생방이 중단된 걸 사과하고 차근차근 설명하려 했었는데, 김갑부의 말을 들었더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다음 생방까지 조용히 잠수 타세요. 시청자들 안달 나서 다음 방송 켜자마자 물소 떼처럼 밀려올 테니까."
김갑부가 했던 말 한마디가, 온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꿀꺽.
오늘 생방송을 켠 지 3분이 지났다.
BJ군만두는 슬며시 동시 접속자 수를 확인했다.
[1,320,000명]
'배... 백 삼십 만.'
이것이 현실인가 싶었다.
세계적인 웹튜브스타인 BJ포르말린도 웬만한 어그로가 끌리지 않으면 방송 켜자마자 이런 숫자가 들어오진 않는다.
그 말은 즉 슨, 자신의 방송을 보려고 대기 중이던 인원이 백만 명이 넘는다는 소리였다.
- 군만두님 하위~
- 만두님 방송만 기다렸어요.
- 기다리다 지쳐서 쓰러질 뻔.
- 하이~
- 여기가 군만두 맛집인가요?
- 오늘도 좋은 방송 부탁해요. (100만 CC를 후원하셨습니다.)
- 김갑부님은 또 안 나오시나요?
.
.
.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갑자기 방송이 중단된 걸 지적하는사람이 없다.
오히려 오늘 방송을 기대하는 사람, 어제 방송에 대해 궁금해 질문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문제는 오늘 방송인데...'
당연히 부담이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어떤 방송을 해야, 이 시청자 수를 유지할 것인가.
그런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네. 우리 시청자 여러분. 오늘도 저는 고대 마족의 탑 앞에 나와 있는데요. 여러분도 마족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그 말도 안 되는 공포~ 으... 저는 아직도 두려움에 몸이 떨리는데요. 무려 이런 공포를 뚫고 탑에 진입을 시도하는 길드가 있어서 인터뷰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사전 협의를 통해 입을 맞춰뒀다.
BI 길드.
중요한 정보를 제외한 인터뷰라면 얼마든지 응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그토록 거절했는데,이도 어제 김갑부와의 방송 덕분이라 군만두는 생각했다.
조건도 간단했다.
영상에 블루 아이템사 홍보만 한 번 해주면 될 뿐이었다.
'역시, 구독자 수가 깡패네. 인기 많아지니까 거절을 하기는커녕...'
심지어 몇몇 길드에서는 자신들만 가진 정보를 공개할 테니, 방송에 출연 시켜 달라는 요구가 있을 정도였다.
- 오~ 쩐다.
- 길드명이 뭔가요? 유명한 길드에요?
- 우리 만두형 섭외력 보소.
- 캬~ 눈물 나네요. 시청자 100따리 때부터 봤는데. 이제 월클 다 되셨네.
- 김갑부님은 오늘 안 나오시나요? 군갑부존버~
- 어제가 레전드긴 했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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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제 예상대로 김갑부님을 찾으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조만간 재출연 요청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매일매일 출연 요청을 할 수는 없잖아요?"
- 인정. ㅇㅇ
- 캬~ 역쉬.
- ㅇㅋㅇㅋ
- 총알 장전해 놓겠습니다. 갑부님 다시 나오시는 날 후원 기대하세요.
- 저도 발 한짝 올려봅니다. 만두갑부뽀레버~
- 자, 자. 물타기들 적당히 하시고 오늘 방송 ㄱㄱㄱ
다행히 걱정하는 것 보다 스무스하게 실시간 댓글 창의 여론이 진정되었다.
이제 BI 길드와의 인터뷰만 잘 뽑아내면, 오늘 방송은 무난하게 넘길 수 있으리라.
고대 마족의 탑이 보이는 풍경.
많은 간이 천막들이 주위에 설치 되어 있다.
인터뷰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