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95화. 보험 (95/122)



〈 95화 〉95화. 보험


"먼저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네. 제가 방송에는 익숙지 않아서, 우리 시청자 여러분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도 너그러이 양해 부탁 드립니다. 저는 BI 길드의 길드원인 BI보급 이라고 합니다. 이름이 조금 특이하죠? 저희 BI 길드는 아이템 파밍 전문 기업인 블루 아이템 사의 사원들로 이루어진 길드이거든요. 저의 캐릭터 명은 그런 연유로 BI보급이 된 것이지요. 저는 보급 담당 이거든요."

BJ군만두는 놀랐다.
김갑부와는 조금 달랐지만, 이 사람 역시 말투나 행동에 처음 방송을 하는 것 같지 않은 여유가 묻어 났다.


"보급 담당이시면, 치료약이나 포션 같은 소모품을 공급하시는 걸까요?"
"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제 업무는 전반적으로 길드원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이에요. 물론, 거래소에서 구매한 포션을 길드원들에게 분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다른 다양한 일을 한답니다. 오늘처럼 대표로 방송에도 출연하기도 하고요."

군만두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슬쩍 실시간 댓글 창을 확인했다.


- 아... 오늘 숙제 방송임?
홍보 작작 좀...
- 저는 바빠서 내일 올게요~
- 이제  넘어갑시다.
- 수면 방송인가요. 그럴 거면 ASMR로 부탁해요. ZZZ

BJ군만두는 급히 화제를 전환해야 했다.
이러다가는 방송이 망할 판이었으니.


"자, 그럼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BI보급님! BI 길드에서는 벌써, 저 흉측한 고대 마족의 탑에 진입했다면서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 길드의  길드마스터 이시자, 부사장님을 포함한 최강의 길드원 열두 명이 현재 탑 안으로 진입한 상태입니다. 벌써 두 시간 이상이 흘렀네요. 주변에 간이 천막이 보이시죠? 이는 전부 저희 길드에서 설치한 것들인데요. 혹여나 탑의 공략이 장시간 동안 이루어질지 몰라,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습니다. 이 역시  BI보급의 역할입니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흘러가자, 겨우 댓글 창이 진정되었다.
마음 속으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재차 질문을 이어갔다.

"열두 명이요? 이 주변에만 열 분 넘는 인원들이 보이는데, 다들 같은 길드 분이신 거죠?"
"네. 그렇습니다."
"그럼,  열두 명만 진입한 거죠? 혹시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있을까요?"
"네. 사실은 여기 계신 BJ군만두님과, 우리 시청자 여러분께 최초로 공개하는 내용인데요. 고대 마족의 탑 진입을 위한 최저 레벨은 45레벨입니다. 파르도 섬에서 시작한 저희 길드원 중에서는, 이를 충족하는 인원이  열두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겨우 새로운 정보가 공개되었다.
그제야 댓글 창의 열기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돈이 되지 않는 이런 사소한 정보는 얼마든지 공개해도 된다는  블루 아이템사의 방침이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호기심을 자극하는 정보가 아닐 수 없었다.


- 헐~ 45레벨?
- 미친. 난 15레벨 인데, 45레벨... 미쳤 따리... 그것도 12명이나...
아, 나도 첫날부터 달렸으면 저랬을  데. 지금 저 정도면 돈도 엄청 버는 거 아님? 뭐, 파밍 기업이니 당연한가?
- 오우, 곧바로 새로운 정보 공개해 버리시고~ 이래서 군만두님 방송 보지. (5만 CC를 후원하셨습니다.)
- 지금 최고 렙 얼마에요? 50은 넘는다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아시는  없나요?


BJ군만두의 채널은, 하급 치료약 제조 법을 시작해 판게아 행성의 이런저런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입 소문이 자자했다.
고정 시청자를 제외한 오늘 새로 방문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보에 목 말라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런 정보는 탄산 음료나 다름 없었다.
물론, 아직은 조금 미지근 했지만.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여쭤보고 싶은데요. BI 길드원 중 가장 레벨이 높으신 분의 레벨은 어느 정도 입니까?"


이는 사전에 협의가 없었던 내용이라, BI보급은 공개에 망설였다.


사실, 직원들의 레벨 공개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레벨은 곧 실력.
높은 레벨의 길드원이 많다는 건, 그만큼 회사의 홍보에 도움이 된다.
그럼에도 함부로 공개할 수가 없었다.
당연하다.
자신이 아는 가장 레벨이 높은 사람은, 게임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블루 아이템사의 사장이었으니까.
사장의 레벨을 허락도 안 받고 공개할 수는 없었다.


"저... 그건 좀..."

하지만 댓글 창은이미 난리가 났다.
BJ군만두는 자신이 실수한 것 같아 난감해졌다.

급히 방송에 음성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차단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사전에 협의 되지 않은 걸 물어서..."
"아, 아닙니다. 일단, 제가 한번 물어는 보겠습니다. 공개해도 되는지."

그가 메시지를 보낸 건, 사장이 아닌 부사장이었다.
부사장과는 같은 팀이었고, 수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편이었다.
반면, 사장과는  자체가 달랐고, 너무 어려운 존재였다.

BIM : 흠... 공개하게.  레벨은 58이야.


BI보급: 네? 부사장님이요? 몇 시간 전만 해도 49... 이셨잖아요?

BIM : 그렇게 됐지. 그리고 몇 분 내로 철수할 거니 준비들 해 두게. 그 전에 인터뷰는 끝내두도록.


BI보급 : 설마, 벌써 탑 공략이 끝나셨습니까?

BIM : 아니야. 돌아가서 이야기  테니까, 괜히 거기 있다가 봉변 당하지 말게. 난 지금 급하니까 이만.

부사장과의 대화를 마친 BI보급은, 서둘러 인터뷰를 끝마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BJ군만두는 탑에 진입한 BI 길드의 랭커들이 돌아온다는 소리에, 혹시 방송에 출연해 주지는 않을까 싶어 반색 했다가, 뒤이어 들려온 이야기에 절망했다.

"예? 그건 너무... 지금 무려 백만  가까운 분들이 지켜보고 있다고요."
"하하... 죄송하게 됐습니다. 다만 레벨은 공개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군만두는 어깨를  떨궜다.

그 모습이 오히려, 소리 없이 화면만 지켜보던 시청자들을 자극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는 결국 한 가지로 귀결됐다.


뭐야? 왜 저래?
- 뭔가 협의하다  안됐나 본 데?
- 길드도 그렇고 기업들은 이래서 안돼. 뭐 저리 비밀이 많아?
- 깁갑부님 또 안 나오시나~
- 맞아. 김갑부님이 짱이지. 스킬도 공개하시고, 질문에 대답도 해주시고. 전설 아이템도 공개 하시고. 우리에겐 김갑부가 있다!
그러고 보니 지금 그거 경매 중 아니었어? 전설 지팡이.
맞아. 대박이더라. 지금 그 경매 참여한다는 큰 손들이 줄을 섰는지, 벌써 5억 넘었다  데. 내가 볼 때는 최종 15억은 넘지 싶다.
- 우리에게 김갑부를 내놔라!




BJ군만두의 생방송을 거쳐간 많은 출연자 중, 가장 인기 좋은 사람은 누가 뭐래도 역시 김갑부였다.
실시간 댓글 창에서는 너도, 나도 김갑부와 관련된 이야기만 하기 시작했다.


'후... 오늘 방송 어렵네.'

BJ군만두의 음성과 함께 겨우 방송이 재개됐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오늘 인터뷰는 이걸로 마쳐야 할  같아요."

시청자들의 아우성이 빗발쳤다.
하지만 이는 의도한 상황.


'아... 심장 쫄려. 그래도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야.중요한 건 이다음.'


떨리는 감정을 다잡고, 볼을 양손으로 몇 번 두드리며 정신을 차렸다.


BJ군만두는 김갑부와 계약 한대로 지난 방송에서 들어온 후원금의 절반을 전달했다.
그때 그에게  가지 조언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조언을 지금 실천하려 하고 있었다.


"여러분! 진정 해 주세요. 저도 무척 아쉬운데요. 그 대신 BI보급님께서 아까 여러분이 궁금해 하시던 BI 길드의 최상위 레벨이 어느 정도인지 공개하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방송은 이어지니까, 너무 노여워 말아주세요."


댓글 창의 반응은 여전히 거칠었다.
하지만 조금은 진정 된 듯 보였다.
이는 군만두가 기대하던 만큼 극적인 변화는 아니었지만, 달리 방법도 없었다.


"여러분. 저는 괜찮지만, 게스트로 와 주신 분에게는 너무 뭐라 하시면  됩니다. 소문나면 누가 제 방송에 출연하겠어요. 김갑부님도 다신 출연  하겠다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렇죠? 네. 네. 자, 그럼 BI보급님. 마무리 인사해 주시죠."

군만두는 그에게 턴을 넘기고 댓글 반응만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분.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불러 주세요. 마지막으로 공개할 저희 길드의 최고 레벨은 58입니다. 그럼, 다음을 기약하며 저는 조용히 물러가겠습니다~"


짧은 인사말과 함께, BI보급은 방송 화면에서 사라졌다.
BJ군만두는 댓글 창을 보며, 겨우 한시름 놀 수 있었다.

이제 그들의 주된 대화는, 판게아 행성 최고 레벨이 얼마이며, 그것이 대체 누구 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완전히 달라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든 건, 시청자들 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뭐? 58레벨? 미쳤네... 대체 뭔 짓을 하면 벌써 그런 레벨이 되는 거야?'

군만두도 58레벨 이라는 소리에 매우 놀랐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휴...'


이제 방송을 시작한 지 채 20분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
이대로 끝마치고 종료했다가는 어렵게 모은 구독자를 다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일단은, BI 길드원들 돌아오는 장면이라도 내보내자.'

그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다고 들었으니, 시간을 끌며 기다리면 고대 마족의 탑에서 BI 길드원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허락을 받지는 못해 방송 화면 상 그들의 얼굴은 가면을  것처럼 보이고, 신체 역시 자동으로 변경되어 나가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깜짝 놀랄 정보나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인터뷰를 통해 이야기를 들은 시청자 들이라면, 변경된 외형에도 그들이 BI 길드원 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테니까 문제없겠지.

실시간 시청자 수는 이제 90만 까지 내려갔지만, 그것도 어제 처음 방송을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과분한 정도.
그러나 군만두의 마음은 만족할 수 없었고, 스트레스로 두통이 도질 것  같았다.


'하아... 정말, 김갑부님 이라도 다시 섭외 해야 하나...'

그는 단 한 번 출연으로 엄청나게 많은 돈을 챙겨가지만, 군만두의 이득 역시 만만치 않다.
어제 했던 방송을 편집해서 올린 동영상의 조회수가, 벌써 3억을 돌파했을 정도다.
25분 짜리 영상에 광고가무려 5 개나 붙었으니, 최소 15억을 벌어 들인 셈이다.
군만두에게 건넨 5억은 푼 돈이나 다름없었다.

'이번에는 또 출연료를 얼마나 크게 요구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지...'


BJ군만두가 어쩔 수 없이 김갑부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는 때였다.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그에게 먼저 메시지가 도착했다.

[고대 마족의  주변에서 흉흉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당신은 레벨이 부족합니다. 접근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잠시 후, 고대의 마족 '히부린'이 등장합니다. 현재 위치를 벗어나시기를 추천합니다.]

'이... 이거다!'


네임드 몬스터의 등장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
이거야말로, 오늘 방송을 살려줄 절호의 아이템이 될 것이다.


'죽으면 죽는 데로 조회수 빨아 먹기 좋겠지?'


그는 당장 시스템 메시지의 보안을 해제하고 방송에 공개했다.

그리고 그가 원하던 반응이 댓글 창을 메우기 시작했다.


헉. 미쳤다. 마족 네임드?
-와~ 이런  숨겨두시다니. 군만두님 방송감 쩌시네.
- 설계 오지구요. 지리구요.
- 설마, 지금까지 전부 다  그림 그린 거임?
- 두근두근(10만 CC를 후원하셨습니다.)
- (25만 CC를 후원하셨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다.
수십 초는 지났을까?
고대 마족의  바로 앞에서 보이지 않던 여인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히부린이었다.

'헉... 뭐야.  미인은... 엘프?'


- ㅗㅜㅑ 미쳤 따리. 엘프임? 진짜?
- 엘프가 날개도 있나요?
요정족인 건 틀림없지 않나? 이 게임 오리지널 종족이거나?
- 다 틀렸음. 마족임. 시스템 메시지 나만 봄??
- 헉. 진짜? 뭔 마족이 저래?

그녀는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BJ군만두였으니 당연했다.
BI 길드원들은 어느새 천막을 정리하고 조금 떨어진 장소에 모여있었다.


그녀의 요정 같은 초록빛 눈망울이, 생방송 화면에 비쳤다.
어느덧 시점은 군만두의 1인칭 시점으로 변해있었고, 심지어 한껏 클로즈업 되어 있었으니 그녀의 얼굴은 아주 자세히 드러나 있었다.

- 하악... 심쿵사-
 스탈은 아님.
- (100만 CC를 후원하셨습니다.)
- 날 가져요.(20만 CC를 후원하셨습니다.)
- 언니 너무 예뻐요.(30만 CC를 후원하셨습니다.)


"흥. 버러지 같은 인간들. 키히히히히"

히부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이하게 웃을 뿐이었다.
세영과 나눈 계약 때문이었다.


- 아, 깬다. 말투 왜 저래?
- 저거 진짜 마족 맞음?
- 목소리로 갑분싸보소.
- 난 그래도 좋음. 여기 보고 욕해주세요. 누나~

하지만 이런 댓글 반응이 히부린에게 전달될 리가 없었다.
히부린은 그대로 뒤돌아 마족의 탑에 다가갔다.
탑을 뒤덮고 있던 살아있는 듯한 그것은,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반 타원형 모양의 통로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히부린은 그 안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대를 뒤덮은 거대한 핏빛 마법진이 들어 났다.

[서둘러 해당 지역을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사망의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군만두는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죽고 난 후 하루의 패널티 보다는, 오늘 방송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 그에겐 중요했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시청자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시청자 여러분 보이십니까? 이 거대한 마법진. 좀 전 탑으로 들어간 마족이 벌인 일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레벨이 부족해 탑으로 그녀를 뒤쫓아  수 없는 점은 양해 부탁 드립니다."

긴장된 그의 표정은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그건 생방송의 실시간 시청자 수가 다시 100 만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피하세요! 뭐해요? 죽는 다잖아요?
- 그래. 마족도 사라졌는데 개죽음 당하지 말고 도망쳐!
- ㅋㅋㅋ 거기 있어 봐요. 뭐 어떻게 되나 궁금한데.
- 나라면 도망 안 친다.
도. 망. 쳐. (10만 CC를 후원하셨습니다.)
- 워~ 무슨 군만두님이 자낳괴도 아니고 돈으로 움직이게 시키네.


댓글 창은 서둘러 도망치라는 의견과 이 자리에서 대기하라는 의견으로 갈려 댓글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건, 팽팽한데... 어쩌지?'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군만두님? 거기서 뭐 하십니까?"


김만우... 아니, 김갑부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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