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96화. 보험
세영 일행은 잊혀진 세계에서 탈출하는데 겨우 성공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전환된 시야는 모두를 안심 시키는데 충분하지 못했다.
핏빛으로 빛나고 있는 바닥의 마법진 때문이다.
"김갑부님? 그리고 다른 분들은..."
생방송 도중이던 BJ군만두는 갑자기 나타난 김만우를 비롯한 17명의 대 인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죠?"
"갑부님! 그건 제가 묻고 싶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신 겁니까?"
"그 이야기는 됐고, 빨리 여기 상황이나 설명해 주세요. 왜 바닥이 이런 상황이냐고요!"
[위험합니다. 서둘러 해당 지역을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들려온 시스템 메시지는 모두의 시선이 BJ군만두에게 쏠리게 했다.
빨리 말하지 않았다가는, 이 따가운 시선에 몸에 구멍이라도 뚫릴 기세다.
"별거 없었습니다. 웬 마족이라는 여자가 나타나 탑 안으로 들어가더니, 갑자기 바닥에서 마법진이 솟아 오른 거에요. 자세한 건 저도 잘 몰라요."
"탑 안으로요?"
"네. 마족이라 던 데 무슨 요정 같은 투명한 날개를 해서는... 어라?"
그는 깜짝 놀랐다.
세영이 등에 업은 메르바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날개는 보이지 않았지만 거의 비슷한 외형처럼 보였다.
"그... 여성 분은..."
군만두의 이야기는 신경 쓰지 않은 채, BI기츠가 말했다.
"이 마법진. 좀 전까지 봤던 그 건물의 크기와 비슷해 보이지 않으십니다."
히부린의 던전 만큼이나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있었다.
세영이 말했다.
"저 탑의 힘을 빌려, 히부린이 무언가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요. 아마 그 건물... 히부린의 던전을 다시 소환하려는 게 아닐까요?"
그 이야기에 김만우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물었다.
"넌, 대체 뭘 알고 있는 거야?"
"그건 안전한 장소로 이동한 다음에 설명 드릴게요. 일단, 다들 서둘러 피하죠! 여기 있다가는 그 건물에 납작하게 깔릴지도 모르니까."
그 이야기를 듣던 모두의 표정이, 매우 극적으로 변했다.
대체 어떤 장면을 상상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 그럼 저도."
망설이던 군만두 역시 일행의 꽁무니를 쫓아 장소를 벗어났다.
"오빠. 저길 보세요."
마법진은 솟아 오른 민둥산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언덕 아래의 고블린 숲까지 내려와야 했다.
겨우 내려왔을 때, 마법진의 붉은 빛이 하늘을 향해 솟아 올랐다.
"와... "
"색이 저래서 그렇지, 엄청 화려하네."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대체 어떻게 되는 상황이이이인... ?"
군만두가 말하는데,
드드드드드.
갑자기 대지가 떨려오기 시작했다.
쩌정-!!
마치 코앞에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굉음 역시 들려왔다.
흙 먼지가 날리고, 숲 안에서 놀라 날아오르는 새들의 지저귐이 시끄럽다.
"뭐... 뭡니까? 저건 대체..."
처음 보는 군만두는 또 한 번 매우 놀랐고, 다른 모두는 조금 전까지 보던 건물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파르도 섬 내의 모두에게, 다시 한번 시스템 메시지가 보내졌다.
[고대 마족, 히부린의 던전이 고블린 숲의 중앙에 등장하였습니다.]
고대 마족의 탑이 나타난 지 채 이틀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추가적인 메시가 도착했는데, 시의회가 어쩌고 저쩌고, 레벨이 부족하니 마니 하는 내용 없이, 다짜고짜 퀘스트가 주워졌다.
[!!긴급 퀘스트!!]
[파르도 섬의 위기 : 대체적으로 평화롭던파르도 섬에 갑자기 고대 마족과 던전이 등장하였습니다. 서둘러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파르도 섬은 죽음의 땅으로 변모하거나 마족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섬 내의 모든 주민과 플레이어들은 운명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어떻게든 이 고대 마족의 위협으로부터생존하시기 바랍니다.]
- 잠정적으로 파르도 섬에서는 새로운 모험가가 등장할 수 없게 됩니다. 신규 플레이어는 더는 파르도 섬을 시작 지점으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이 섬은 고대 마족과 던전, 그리고 마족의 탑을 파괴하기 이전에는, 판게아 행성의 다른 섬, 대륙들로부터 완전 고립됩니다.
- 해당 퀘스트는 수집한 공헌도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퀘스트입니다. 플레이어는 각자의 위치에서 NPC를 돕거나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으로도 공헌도를 습득할 수 있습니다. 다만, 던전에 진입해 마족의 음모를 타파하고, 고대 마족을 쓰러뜨리는 것이 가장 빠르게 공헌도를 쌓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 만약 당신이 파르도 섬 내의 NPC들과 관계가 깊거나, 혹은 높은 명성을 쌓았다면, 그들로부터 숨겨진 새로운 퀘스트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강력한 아이템이나 장비를 얻거나, 혹은 대여할 수 있게 됩니다.
전직하셨다면 클래스 마스터를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평소보다 매우 쉽게 새로운 스킬을 배울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 모든 것은 다가올 고대 마족으로 인한 위기에서 섬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분류 : 복합적
-난이도 : ??? (레벨과 위치에 따라 상이함)
-제한 시간 : 23시간 46분
-보상 : 퀘스트 공헌도 (역할에 따라 차등 지급)
- 목표 1단계 : 고대마족의 침공에 대비하라.
- 어째선지 고대 마족 히부린은 당장 행동을 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남은 시간은 약 하루 정도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전에 충분한 사전 준비를 마쳐두시기 바랍니다.
[해당 퀘스트는 거부할 수 없는 퀘스트 입니다. 퀘스트가 자동 수락되었습니다.]
섬 내에 존재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은 동시에 퀘스트를 받았다.
게임에 접속하지 않은 플레이어들 역시, 접속과 동시에 퀘스트가 자동 수락 될 것이다.
김만우는 곧장 세영의 귀에 대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결국~ 일이 이렇게 되나~ 근데, 참 이상하지? 갑자기 거울 안에서 마족이 나타나더니, 이런 귀찮은 상황까지 만들어지고... 안 그렇냐 알파야? 응?"
무엇을 눈치 챘는지, 김만우는 마치 레슬링 선수처럼 세영의 목을 감아 조여 왔다.
힘 스텟의 수치가 거의 제로에 가까운 김갑부 캐릭터로는 그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못했지만, 온몸에서 식은땀이 흐를 것 같았다.
이 모든원흉이 자신과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그... 그게 실은...'
"잠깐. 기다려봐."
눈치가 빠른 김만우는 세영의 목을 조이는 자세 그대로, 그를 조금 떨어진 누라라의 거목 뒤로 끌고 갔다.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들을 심산이었다.
프라이버시 모드를 사용하면 되는 걸 잠시 잊은 모양이다.
세영은 등에 메르바를 업은 채로, 중요한 부분만 간추려 거울 속의 세계에서 지켜 본 일들을 털어놨다.
물론, 자신이 어떤 선택을 내렸는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흠... 뭐, 잘했네. 안 그랬으면 그 시꺼무틱틱한 창도 그렇고, 전설 쇠뇌? 도 못 얻었겠네. 나라도 너랑 같은 선택을 했을걸?"
김만우는 세영과는 전혀 다른 이유로 납득했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세영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이 아닌 김만우였다면 그런 이유로 선택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다만 불만 섞인 표정이 조금 드러나 버렸다.
"그건무슨 눈빛이야? 그럼 넌, 등 뒤에 업은 그 여자에게 반해서 선택하기라도 한 거냐?"
"무슨 소리에요. 당연히 페어리들을 구하려고 그런 거죠."
"흥."
쿠구구궁-.
그때 또 다시 굉음과 함께 땅이 울렸다.
"뭐, 뭐가 시작되려는 거지?"
"아직 23시간 이상 시간이 있는 거 아니었어?"
"흠..."
BI 길드원들은 호들갑이었지만, 빔은 부길마답게 조용히 상황을 살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선 BJ군만두 역시 그랬다.
그가 향하는 시선이 고스란히 생방송으로 중계 중이었으니 당연했다.
허락 받지 않은 다른 캐릭터들의 음성이야 자동 차단되었고, 자신의 목소리도 음소거 했지만, 주변 환경 음이나 효과음은 그대로 방송되고 있는 도중이다.
이는 웹튜버들이 하나같이 콕핏을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뭐야. 완전 블록버스터급 아니냐? 소리 좀 줄여야지 개깜놀.
- 아까마법진에서 붉은 빛이뿜어져 나오는 거 다들 보심? 소름 돋았음.
- 군만두님 저희랑 같은 게임 하는 거 맞아요? 제가 있는 곳이랑 완전 다른 세상이네.
- 왜 파르도 섬만 저런 거임? 특혜 아닌가? 밸런스 보소. 망겜.
- 화면 너무 흔들려요. 멀미 남.
- 설마 그게 만두님이 일부러 흔드시는 거겠어요? 땅이 흔들려서 그런 거지.
- 헉? 근데, 저건 뭐야?
군만두의 진행이 없음에도, 이들은 서로 신나서 채팅을 치고 놀았다.
그런데 갑자기 놀라운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도넛 모양을 한 히부린의 던전.
그 중앙의 빈 공간에 정확히 자리잡은 고대 마족의 탑.
마치 나무의 뿌리가 자라나는 모습을 빠르게 재생한 것처럼, 고대 마족의 탑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촉수들이 히부린의 던전을 하나둘 감싸기 시작했다.
건물의 벽면과 하나라도 되려는 듯, 촉수들은 문어처럼 달라붙었다.
그리고 자리를 잡은 뒤 혈관처럼 꿈틀거렸다.
그 장면은 마치, 우주에서 온 거대 외계 생명체인 고대 마족의 탑이 히부린의 던전을 통째로 삼키려는 듯이 보였다.
"으아... 저게, 뭡니까? 우웩-"
"징그럽던탑이 던전이랑 하나로 합체라도 하려는 걸까요?"
"탑과 완전히 동화 되려는 건가? 옛날 유행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저 비슷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저렇게 하면 건물의 소유주가 바뀌고 자폭맨이 나왔던 가?"
"저렇게 변화 하면 대체 뭐가 달라지는 걸까요?안에 있던 모든 키메라가 깨어난 다거나?"
"불길한 소리 하지 마!"
댓글 창이나 BI 길드원이나 반응은 비슷비슷했다.
충격, 공포, 경악. 그런 단어들이 적절한 순간이었다.
세영과 대화를 마친 김만우는 급히 BJ군만두를 찾았다.
"군만두님! 지금 장면 생방송 중이시죠?"
"네? 네...왜 그러시는데요?"
김만우는 씨익- 하고 상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군만두는 그 미소를 지켜보며 조금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지난번과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이미 그와는 함께 가는 동료라는 의식이 강하게 생성된 탓이다.
일종의 동업자나 다름없었다.
김만우가 말을 꺼냈다.
"별거 아닙니다. 자. 계약부터하시죠."
"네? 아, 네... 이번에는 어떤 조건을..."
"귀찮으니까 딱 절반으로 하시죠."
"절반이라면..."
"지금부터 진행되는 방송으로 벌어 들이는 모든 수익의 절반. 예를 들자면, 후원금, 광고든 TV 중계 계약 수익, 차후 편집 영상의 게시로 벌어 들이는 수익 등을 포함해 딱 절반 어떠십니까. 편집 영상 수익은 최초게시 이후 딱 1 개월 치 만 받기로 하고."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김갑부가 출연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영상의 조회 수 차이가 무려 100배 이상 벌어질정도였으니….
게다가 수익이 절반이라지만, 구독 자의 증가나 채널의 홍보 효과는 수익 분배에서 완전히 제외 된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얻는 이득이 훨씬 큰 셈이었다.
채널의 성장. 거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할 실질적인 수익까지 더해 생각해 보면, 김만우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좋습니다. 계약 하겠습니다."
"하하. 잘 생각 하셨습니다. 파트너!"
오글거리는 악수와 함께 가장 먼저 한 것은 다름 아닌퀘스트의 공개였다.
"어차피 파르도 섬 사람들 죄다 알아 버렸으니, 지금 생방 중인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야 합니다. 한시가 급해요. 지금이 아니면 이 정보는 죽은 정보가 되니까. 그다음에는 방송국에 연락해 보세요."
"방송국은 왜요?"
"왜긴 왜겠어요. 그쪽으로 벌어 들이는 수익도 짭짤하니까지."
"네... 뭐... 그런데쉽게 응할까요?"
"제 이름 파세요. 그쪽은 저 출연 시키고 싶어서 안달이더라고요."
자신만만한 김만우가 조금 듬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와 함께라면 BJ포르말린을 제치고 실시간 시청률 1위를 찍는 것도 꿈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퀘스트 공개로 그만한 이슈가 될까? 마족 한 마리라도 쓰러뜨리는 모습이 화면에 비쳐야 할 텐데...'
마음속으론 의구심도 품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못했다.
김만우의 재촉으로, 서둘러 퀘스트 정보를 공개해야 했으니까.
공개된 후의 실시간 댓글 반응은, 처음 김갑부의 클래스를 공개했을 때만큼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 헐... 이제 그럼 군만두님 못 보는 거임?
- ㅋㅋㅋㅋㅋ 꼬시다.
- 섬이 불타고 멸망하는 장면 중계해 주시나요?
- 파르도 섬시작한 사람 망했네. ㅋㅋ
- ㅅㅂ. 나어제 퇴직금 받아서 파르도 섬에서 시작했는데...
- 아재 힘내세요. ㅠ.ㅠ
- 오우~ 아리따운 마족 누님. 파르도 섬을 완전히 접수해 버리시고~
폭발적이긴 했으나 대부분 부정적인 의견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방송에서 공개 된 새까만 어린애 형태의 마족을 본 뒤이기 때문일 것이다.
압도적인 강함과 공포.
이런 저런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그런 마족들의 강력함을 두고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스급의 네임드 마족이 등장 한다면, 아직 플레이어 그 누구도 상대하지 못할 거라는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세영이 김만우에게 다가와 물었다.
"형. 또 방송 하게요?"
"당연하지. 너도 어제 들었잖아. 겨우 두 시간동안 벌어 들인 액수. 빨리 벌어서 콕핏 인가 뭔 가를 사야지 않겠냐? 우리 정도면 순식간에 유명 인사 될걸?"
"그렇지만,지금 그럴 때가 아니잖아요. 이번 전투로 만들어 둔 포션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고, 제대로 준비 못 했다가 퀘스트에 쓰여 있는 것처럼 섬 자체가 망해버리면 어떻게 해요."
"뭘 모르네. 그러니까 방송을 해야지. 망하면 망하는 대로, 방송을통한 수입이라도 챙겨야 하지 않겠냐? 그래야 다른 섬이나 대륙에서 새로 시작하기라도 하지. 다 보험이야 보험. 망하면 망하는 데로 조회 수도 폭발할 테고. 으흐흐"
발언과는 다르게 김만우의 표정은 탐욕으로 가득 차 보였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라. 이번 수익은 너에게 대부분 줄 생각이니까."
"네?"
"너희 할머니 치료비부터 채워 넣자고. 언제나 빚쟁이 기분으로 살면, 굴러오던 돈도 요리조리 피해 가는 법이야. 내가 작업장 다니면서 느낀 건 돈이 돈을 불러온다는 진리 뿐이니까. 그렇다고 공짜로 주는 건 아니야. 이번 방송은 나보다 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니까."
"제가요? 저도 방송에 나가라고요?"
김만우는 사악하게 미소 지었다.
"그래. 넌 앞으로 진행될 방송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