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7화 〉97화. 사전 준비 (97/122)



〈 97화 〉97화. 사전 준비

세영이 방송에 출연해야 하는 건,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일단, 오늘 방송은 여기서 마무리하세요. 중요한 건 내일부터 이니까."

BJ군만두는 김만우가 시키는 대로, 퀘스트의 정보만 공개하고 적당히 방송을 마무리했다.
무언가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마무리였다.

"시킨 대로 하기는 했습니다만, 정말 괜찮나요? 이런 식으로 해도..."
"뭐, 어차피 파르도 섬에서 방송하는 사람이 군만두님 만은 아니잖아요? 궁금한 사람들은 다른 방송 찾아 갈 테고요. 더 보여줄 게 없는데 괜히 시간만 때워 봐야, 내일 방송에 아무런 도움도 안 돼요. 어차피 AI가 편집하면 다 잘려나갈 부분이고."

베테랑 같은 김만우의 말투에, 군만두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몇 가지 대화가 오가고, 일행은 일단해산하기로 했다.


"그럼, 다들 준비 단단히들 하고 모이자고요."
"그러지. 이대로 이 섬이 망하면, 우리 회사야말로 큰일이니까뭐든 협력하겠네.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말들하게."
"네. 그리고 이번 한 번 뿐이지만 포션을 싸게 판매할 테니, 돈이나 두둑하게 준비해주세요."
"그러지."


빔을 비롯한 BI 길드원들은, 기다리고 있던 동료들과 함께 도시를 향해 먼저 출발했다.

그들에게 히부린이 등장한 자초지종에 대해 설명한 건, 세영이 아닌 김만우였다.
적당히 꾸며낸 거짓말이었지만,사태를 파악하는 데 있어서는 문제될 것이 없는 내용이었다.

"근데 진짜에요? 오빠를 유인하려고 히부린이 메르바를 붙잡았다는 거?"
"으응..."


문제는 같이 듣던 아이들도 속아 넘어간 것이지만, 시간이 촉박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했다.

"군만두님은 도시에서 대기해 주세요. 저희가 포션 제작 완료하는대로, 연락 드릴 테니까."
"아... 네."

BJ군만두는 조금 전에야 알게 되었다.
여자를 등에 업고 있는 저 알파라는인물이, 김갑부의 뒤에 꽁꽁 숨어 있던 진정한 연금술사라는 사실을.
하지만 함부로 방송에 대고 떠들어 댈 수는 없게 되었다.
그 역시 BI 길드원들처럼 알파를 비롯한 일행들의 정보를 마음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계약을 했으니까.
그래도 그에게는 몹시 놀라울 따름이었다.


당연히 묻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중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가지였다.
세영의 등에 업혀있는 저 기절한 여인에 대한 것과 김만우가 말한 앞으로 레전드를 찍을 거라는 방송은 대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것이 몹시 궁금했다..

"그럼 있다가 봅시다. 군만두님."
"아... 네."

하지만 결국 묻지 못하고 헤어졌다.
분위기에 휩쓸려 버린 탓이다.

'흠... 대강 이야기를 듣고 유추해 보자면...  여자는내가 본 고대 마족과 관련 있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BJ군만두는, 자신의 애마 록사드를 타고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클래스 마스터를 찾아가 스킬이라도 배워 둘 계획이었다.

*

숲의 한쪽에 두었던 마차를 몰고, 세영을 비롯한 파티원은 도시 파르도를 향했다.
클래스 마스터를 찾아가려는 아이들을 그곳에 내려 줘야 했으니까.
풍차 마을에 가려면 도시를 경유해야 했으니, 어차피 들려야 했다.

덜컹-!


마차가 갑자기 크게 요동쳤다.
길가에 있던 큰 돌 부리를 미처 발견하지 못해, 하마터면 마차가 뒤집힐 뻔했다.

"야. 마차 모는 사람이 앞을 안 보면 어떻게 해! 사람이라도 튀어 나오면 어쩌려고!"
"아... 죄, 죄송해요."
"너 아까부터 왜 그래? 어디 아프냐? 내가 운전 대신할까?"
"네? 오빠 아파요? 어디가 아파요? 많이 아프세요?"
"아, 아니야... 그럼, 형이 운전 대신 좀 해 주세요."

세영이 운전을 하다 말고 멍을 때리는 통에, 김만우가 못 참고 호통을 쳤다.
세영도 자신의 잘못을 인지했는지, 결국 말의 고삐를 그에게 넘겼다.
마부석을 차지한 김만우가 마차를 몰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영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안 보이네...'


하늘을 올려다 봤다.
자꾸만 그곳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곳에 분명 존재하고 있을 나무. 페어리트리를 찾기 위해서.

혹시나  마차에 눕혀  메르바의 손목을 슬며시 잡았다.
그래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사라졌나? 그럴 리가 없는데... 아무리 내가  장면이 수백 년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니면, 메르바가 저런 상태이기 때문일까?'


메르바의 조각상 앞에서 본 과거의 장면에서는 분명 거대한 나무의 환영이 보였었다.
페어리트리의 가지가 섬 전체를 뒤덮을 만큼  사방으로 뻗어있는 모습을.

그런 생각 중인 세영을 보며 노랑나비가 날카로운 눈빛을 해왔다.


"오빠...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
"응?"
"왜, 잠든 숙녀의 몸에 손을 대시냐고요!"

나비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 그게 아니고, 실은..."

그때였다.

<알파...>

세영이 말하려 하는데, 그의 귓가에 갑자기 뱀의 목소리가 울렸다.

"뱀? 뱀 맞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섬으로 돌아온 덕분에, 신목의 힘을 빌려 조금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어. 아주 잠시 뿐이지만...>

"그렇구나... 그런데 왜 나에게는 그 신목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는 거야?"

<당신은 인간이니까. 신목은 아스트랄 계의 주민이 아니면, 볼 수 없어. 보기 위해선 페어리 퀸의 도움이 필요해. 하지만 지금 그녀는 힘을 잃었으니까...>


"방법이 없는 거야? 그럼, 페어리트리까지 어떻게 메르바를 데려가지? 볼 수도 없는데?"

<내가 방법을 알려 줄게. 오직 당신만 가능한 일이야.>


띠링.


[새로운 레시피가 연금술 레시피북에 등록되었습니다.]

[제작법 : 환몽(幻夢)의 포션]

- 과거, 정령이 되고자 했던 연금술사가 오랜 실험 끝에 우연히 만들어 낸 포션의 제작법입니다.
실제로 제작하기 전에는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없습니다.

"이건..."


<그 포션이 필요해. 그리고 페어리들을 불러 줘.>

"페어리들을? 어떻게?"


<걱정마. 당신이라면 분명 가능할 거야. 내가 방법을 알려줄... 이제... 시간...>


"뱀?"

뱀의 목소리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녀 역시 메르바의 영혼이 흩어진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때문에 간헐적으로 대화가 가능했을 뿐이다.
다음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게 언제가 될지는, 세영도 알 수 없었다.
잠시 후가 될지, 혹은 몇 시간 후가 될지, 아니면 영영 들려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일단, 포션을 만들고 다른 페어리들을 불러내 보자.'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세영이 지금   있는 일은 그것 뿐이었다.
마치 할머니가 쓰러지셨을 때처럼.

"오빠!"


그제야 나비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기 시작했다.


"응? 왜 그래?"
"몇 번이나 불렀는데... 아! 몰라요!!"

고개를 휙- 반대로 돌리며, 팔짱을 낀 노랑나비.

세영은 마차가 도시에 당도할 때까지, 모든 시간을 페어리 퀘스트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는데 써야 했다.
그런데도 나비는 결코 팔짱을 풀지 않았다.
아직 화가 덜 풀린 모양인데, 소녀의 캐릭터인 탓에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질투 한 대요~"


빡-!


"아악..."

괜히 옆에 있던 레드문의 체력만 줄어들었다.

*


새로운 퀘스트 때문에 한바탕 난리가 벌어져 시끌벅적하던 파르도를 지나, 마차는 어느새 풍차 마을에 도착했다.


도시에 들렀을 때, 레드문과 햄스터는 스킬을 배우러 간다며 사라졌는데, 노랑나비는 끝까지 따라왔다.
진심으로 화가 난 건 아니었던 모양이라 세영은 겨우 안심했다.


그녀가 따라 온 이유는 인벤토리 안에 들어있는 히부린의 항아리들 때문이다.
무게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그 부피 때문에 마차에 옮겨 실을 수가 없었다.

"오빠. 항아리 지하에 꺼내 놓을까요?"
"응? 아니야. 2층으로 부탁해. 바로 제작에 들어가야 하니까."
"2층에 전부 꺼내 두기에는 공간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하긴 그런가... 미안. 그럼, 지하실에 부탁해."

이제  순간도 여유 부릴 틈이 없다.
해야 할 일이 엄청 많았다.
당장 연금술로 만들어야 하는 포션만 해도, 힐링 포션과 마나 포션 만이 아니었다.
마음이 급했다.

"나는 밭에 가서 다 자란 허브라도 채집해 와야겠네. 이 형님이 힐링 포션에 들어갈 허브 티라도 끓여 줄게."

힐링 포션의 재료에는 마나 허브티 이외에도 다양한 허브티가 필요했다.
연금술사가 아닌 김만우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딱 그 정도였다.


"그 전에, 형 아는 약제사들 좀 모아주세요. 채집 잘하는 사람으로."
"그건 왜?"
"손이 모자라서요. 퀘스트 발주  하게요."


김만우는 지난번 하급 치료약 제작법을 공개할 당시, 제자들과 친구 관계를 맺어 두었다.
그러나 그 수는 고작 열 명.
그들  하급 치료약을 넘어서 치료약의 제작까지 깨우친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 사람들은 왜? 퀘스트를 통해 배운 게 아니라, 나한테 야매로 배운 거라서, 상위 치료약 제조법은 아직 모를 텐데?"
"상관없어요. 채집만 잘하는 사람이면."
"너 설마 그 사람들에게 치료약 제조법까지 공개하려고?"
"치료약 제조법이요? 아닌데요. 흠... 근데 뭐, 퀘스트 공헌도 1등에게 보상으로 알려 줘도 좋겠네요. 그럼 그 대신 골드 보상을 조금 줄여도 되겠죠?"


김만우는 대체 이 녀석이 무슨 꿍꿍이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몇 명이나 필요한데?"
"많을수록 좋아요. 흠... 그래도 너무 많으면 보상이 엄청날지도 모르니까, 한 50명?"

그런 수의 약제사 혹은 채집가가 어디 있다는 건지, 그리고 어디에 쓰려는 건지 너무 궁금했다.

"확실하게 말해. 어디다 쓰려고 그러는 건지."
"뱀 딸기 채집 좀 시키려고요."
"뱀 딸기?"
"네. 메르바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려면 페어리들의 힘이 필요하고, 페어리를 부르는 방법은 그것 이외에는 떠오르는 게 없어서요."

김만우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깊이 생각했다.
뱀 딸기는 채집이 쉽지 않다.
아니, 채집은 맨손으로 간단하게   있지만,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50명 가지고는 얼마 채집 못 할 걸?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  딸기가 어디 널려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죠..."
"흠... 사람 많이 불러 모으면, 퀘스트 보상금도 엄청 필요할 테고?"
"네..."

그럼 방법은  가지밖에 없었다.

'이걸, 내일 레전드 방송의 예고 편으로 써먹을까?'


아이디어가 번뜩였다.


"야. 형한테 맡겨!"


김만우는 BJ군만두를 떠올렸다.
그는 이미 이  뿐만 아니라, 떠오르는 웹튜브 스타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으니, 그를 이용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잘만 이용하면...'


파르도 섬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아주 싼값에 부려 먹을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야. 너 용병 모집인가, 그 퀘스트 발주한다는 거, 방송에 공개해도 되겠지?"
"네. 어차피 명성만 많이 쌓으면 누구라도 가능해질 텐데, 숨겨서  해요."


김만우는 갑자기 머리가 아파져 왔다.

"아오...  진짜... 내가 먼저물어봤지만, 그런 식으로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니까! 정보가 얼마나 큰 돈이 되는데!"
"그게 무슨 돈이 돼요? 돈을 쓰는 거지. 제가 디펜스 미션 퀘스트로 얼마 썼는지들으면 형도 깜짝 놀랄걸요?"
"그거 보상으로 받은 금액만 계산해 봐도 대충은 알 수 있거든?  그 덕분에 거울 안에서 전설 무기 얻었잖아! 그게 훨씬 이득이지."
"뭐... 그렇긴 하지만."

세영은 아직도 디펜스 미션을 발주하며 사용한 돈을 아까워 하고 있었다.
전설 쇠뇌와 크사발레의 창은, 당장 판매해 현금으로 만들수 있는 아이템이 아니었기에, 이득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이다.


그걸 지켜 본 김만우는

'하아... 하루 빨리 이놈 빚부터 청산해 줘야지. 안되겠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튼, 넌 일단 올라가서 포션 제작이나 시작해. 뱀 딸기는 형한테 맞기고. 아, 니 친구들 일단 전부 호출해. 지금 즈음이면 스킬은 전부 배웠을 테니까. 그 요리사 꼬맹이도 부르고. BI 길드도 불러."
"네? 왜요?"
"흥. 형만 믿어 보라니까? 아 참! 너, 별명 하나 만들자. 방송 용으로."


뜬금없는 소리에 세영은 갸우뚱했다.

"무슨 별명요?"
"흠... 미스터 쇠뇌? 이런 거로."
"켁... 뭐예요. 너무 촌스러운... 그 김갑부라는 걸 봤을 때부터 생각했지만, 형은 정말 센스가..."
"시끄러워 인마! 싫으면 제작하면서  좋은 거 생각해 오던지."
"알았어요."

세영은 2층을 향하는 계단을 오르다 다시 김만우를 향해 외쳤다.


"아, 그리고 형 밭에 갔을 때, 촌장님 보이면 여기로 오시라고 좀 전해주세요. 개간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도 확인해야 하니까"
"그래."

김만우는 밭을 향하며 BJ군만두를 호출했고, 세영은 그런 그를 뒤로 하며서둘러 제작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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