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102화. 사전 준비
좌중은 생방송이 다시 시작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TS 미디어의 TV 채널에서 광고가 이제 막 끝났다는 이야기가 댓글로 올라왔다.
TS 미디어라면, 지금 BJ군만두의 생방송을 TV로 동시 중계하는 채널이었다.
김만우가 1분간 기다리라 했던 이유가 모두에게 알려진 것이다.
- 워~ 강심장이네. 이 와중에 TV광고 각 잡고.
- 졸라 뻔뻔한 거 아닙니까? 생방송에 대놓고 거짓말하는 인간들 답네요. 꺼져라~
- 사죄하라! 사죄하라! 해명하라! 해명하라!
- 저희 군만두님은 피해자입니다. 여러분들. 워낙 순진한 사람이란 거 아시잖아요. 김갑부님이 자객이라고요.
-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군만두 떡상한 게 누구 덕분인데.
- 이제 방송 다시 시작하려나 본 데요? 어디 들어 봅시다.
- 아, 좀 보자고. 제발 닥치고! 욕은 나중에 다시 하던가 하고. 물타기 심하네! 거참.
실시간 댓글 창에는 세 가지로 갈린 의견들이 팽배했다.
그 첫 번째는, 오늘 거짓 방송에 대한 모든 책임은 김갑부에게 있고, BJ군만두는 피해자라는 내용이었다.
그의 방송을 처음부터 함께해 온 진성 팬들이, 열정적으로 군만두를 쉴드 치고 있었다.
두 번째는, 비난과 비방을 목적으로 채널을 찾은 사람들의 의견이다.
이들은 방송이나 다른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비난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적나라한 욕설들은 자동 차단되기 때문에, 교묘히 비꼬거나, 없던 이야기를 꾸며내기까지 할 정도였다.
마지막은 거짓말을 했건 뭐건간에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
이들은 의외로 김갑부의 편을 드는 것 같은 채팅을 쳤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랬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꽁꽁 숨겨두는 귀중한 정보들을 시원시원하게 공개해 주는 사람은 다름아닌 김갑부였다.
거기에 지금 이런상황이 벌어진 원흉이야 말로 그였다.
상황 자체가 매우 흥미진진했고, 심지어 김갑부가 욕을 먹고 있는 것도 꿀잼이었다.
그런 와중에 무언가를 떠들어 대기 시작한 김갑부.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도, 태연히 TV 광고 시간까지 생각하는 여유로움을 보인다.
대체 그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몹시 다음이 궁금한 마당에, 맹목적인 비난만 일삼는 채팅들이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 방송 ㄱㄱㄱ. 김갑부님 해명 계속하시죠.
- 말도 안 되는 비방 하는 애들 쳐내!
- 방송은 방송으로 좀 보자. 얘들아.
- 자기들은 평생 거짓말 안 하고 사나 보지?
- 까는 건 다 듣고 난 뒤에 해도 충분함. ㄱㄱㄱ
다음엔 또 어떤 재미난 상황이 벌어질까?
드디어 해명을 시작한 김갑부가, 대체 무슨 말을 할는지 서둘러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들이 바라는 대로, 김갑부가 화면에 재 등장했다.
*
김만우는 올라가는 실시간 댓글들을 보면서, 자신의 계획이 먹혀들고 있음에 매우 만족했다.
겨우 여기까지 왔다.
자신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200만이라는 시청자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클라이맥스지.'
모두의 시선이 그의 얼굴로 집중됐다.
"자. 어디까지 말했죠?"
BJ군만두가 서둘러 방송 화면에 합류했다.
"퀘스트에 힌트가 있다고 하셨죠."
"맞습니다. 퀘스트! 공헌도를 쌓아야 보상을 받는 퀘스트죠."
"네. 그것에 어떤 힌트가?"
김만우는 군만두를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좌중에게 돌리며,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했다.
"여러분. 우리 생각해 봅시다. 파르도 섬의 위기라는 이름의 퀘스트에서, 공헌이라 함은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위기를 막아내는 데 무언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겠지요?"
"김갑부님. 그래서 저희가 말씀 드린 거잖아요. 고블린도 못 잡는 사람들이, 무슨 수로 마족을 막아낸다는 겁니까?"
김만우는 이번엔 방송 화면을 향해 말했다.
"그럼 왜 막지도 못하는 약한 사람들에게 퀘스트가 주어진 것일까요? 재미로? 폼으로? 절대, 그럴 리가 없죠! 이것이야말로, 마족을 상대하는 것 이외의 방법으로 공헌을 하면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풍차 마을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게 대체 뭡니까?"
"저도 궁금합니다. 방법을 알려 주세요."
"그런 게 어딨어."
"응원이라도 열심히 하면 상이라도 준다 거나? 흥. 그럴 리가 없지."
김만우는 한 손을 펼쳐, 번쩍 들었다.
풍차 마을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 정적을 깨며, 군만두의 얼굴을 바라본 채 말을 이어갔다.
"군만두님. 군만두님의 클래스는 무엇이지요?"
"예? 갑자기요?일단, 방송에서도 공개했지만 격투가입니다. 너클을 착용하고 근접 공격을 위주로..."
군만두는 그의 말을 가로막으며 재차 질문했다.
"가장 강력한 스킬이 무엇입니까?"
"그야, 발경(發勁)입니다. 마나를 100이나 처먹는 데다, 몬스터가 움직이면 명중 시키기 매우 어려운 스킬이죠."
"마나요? 마나 포션이 없으십니까?"
"그걸 질문이라고 하십니까? 요즘 마나 포션의 가격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게다가 거래소에서도 구경조차 하기 쉽지 않아요. 지금 또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당신은연금술사 지인이 있다고..."
김만우는 미소지었다.
군만두는 그게자신을 놀린 거라 생각했는지, 더욱 열이 받은 표정이었다.
"만약, 마나 포션에 여유가 있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그럼 지금보다 두 배. 아니, 휴식하며 마나를회복할 필요가 없어지면, 열 배나 스무 배라도 전투 속도가 향상 되겠죠."
"그렇겠네요. 그럼 체력은 어떻습니까? 치료약이 충분하다면 전투에 도움이 될까요?"
"당연하죠. 힐러 클래스가 흔한 것도 아니고, 힐러도 마나 포션이 없으면 힐 스킬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 한계가 분명하니까요. 치료약 없이 사냥을 나가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 없다고요. 그런 당연한 걸 왜 물으시는 겁니까?"
김만우는 다시 좌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마족을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치료약이나 마나 포션이 충분할까요? 마나 포션 같은 경우에는 거래소에서 충분하게 팔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등 뒤에서 군만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설마... 저희더러 그 사람들에게 공짜로 포션을 주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아까우신가요? 그 사람들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마족과 목숨 걸고 싸우는데도?"
"그건..."
사람들이 변명거리를 찾으려 할 때, 김만우가 소리쳤다.
"아깝죠! 당연히! 저라면 죽어도 공짜로 안 줍니다!"
"예에?"
군만두는 너무 놀라 뒤집어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말입니다. 여러분! 섬이 망하면, 아껴둔 포션이고 뭐고 다 똥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소모품 납품 퀘스트!!"
대기 중이던 레드문과 이세영을 비롯한 수상한 마스크를 착용한 몇 명이, 손에 든 종이를 좌중들에게 나눠줬다.
"퀘스트 수락한 다음에,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건네주세요."
"찢어지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종이를 건네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매우 놀랐다.
그리고 김만우가 쥐고 있던 종이는 BJ군만두에게 건네졌다.
자동으로 등장하는 신규 퀘스트 알람.
생방송 화면에도 시스템 메시지가 고스란히 보였다.
[!!신규 퀘스트!!]
[ 소모품 납품 퀘스트 : 익명의 플레이어는 파르도 섬의 위기를 막기 위해 특별한 퀘스트를 만들어 냈습니다. 현재 시의회에서는 갑자기 발생한 섬의 위기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정말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치료약을 비롯한 각 종 소모품들의 부족 문제입니다. 당신에게 여유가 있다면 소모품들을 가져다 납품하시기 바랍니다.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고대 마족을 막아내기 위해, 섬 내의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시의회에 각 종 소모품을 제공한다면, 당신은 섬을 지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을 것입니다.
납품 된 소모품은 파르도 기사단을 비롯한 고대 마족을 상대하는 사람들에게 지급 될것입니다.
- 기부 혹은 납품량에 따라 '파르도 섬의 위기' 퀘스트의 공헌도를 추가로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해당 퀘스트가 파르도 시장의 허가를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1. 기부.
-분류 : 무상 제공.
-난이도 : F
-제한 시간 : 약 9시간
-보상 : 기부한 양에 따라 공헌도 획득.
(하급 치료약 개 당 공헌도 1, 치료약 개 당 공헌도 5, 최하급 마나 포션 개 당 공헌도 20...)
2. 납품.
-분류 : 납품 (최근 1일 간의 시장 최저가로 납품)
-난이도 : F
-제한 시간 : 약 9시간
-보상 : 납품한 양에 따라 공헌도 획득.
(하급 치료약 10개 당 공헌도 1, 치료약 개당 공헌도 1, 최하급 마나 포션 개 당 공헌도 4...)
- 소모품 구매 용으로 시의회에서 마련한 금액이 모두 소진될 시에는, 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남아있더라도 납품이 조기 종료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등장한 퀘스트에 매우 놀랐다.
"뭐야? 이건... 납품 퀘스트?"
"공헌도를 주는 모양인데..."
"익명의 플레이어는 또 뭔데?"
"와... 이런 퀘스트도 있구나."
댓글 창의 반응도 이와 별반 다를 거 없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김만우는 말을 이어갔다.
"무상으로 기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최저가로 납품하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섬을 지키기 위해서 그 정도는 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네? 뭐요? 최저가 납품이라 손해보는 기분이라고요? 하하...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김만우가 과장된 연기를하는 동안, BI 길드원들은 사전에 준비한 대로 이벤트 용 접수대의 간판을 뒤집었다.
이제 이 접수대의 용도가 확 달라졌다.
치료약 판매를 위한 노점상으로 말이다.
"오늘 여러분이 이벤트로 납품하신 허브를, 곧바로 치료약으로 만들었습니다. 정말 많은 약제사님들이 고생해 주셨습니다. 이를 시의회 납품 퀘스트의 최저가와 동일한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저희의 이득은 단 1도 없음을 밝힙니다! 사다가 납품하세요. 손해 볼 거 없이, 퀘스트 공헌도를 쌓으세요. 이번 이벤트를 준비한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으니까!"
와아-!!!
풍차 마을에 모인 수만 명의 인파가 동시에 지르는 함성은, 몇 번을 들어도 깜짝 놀라게 된다.
특히 이번은 더 그랬다.
그만큼 환호성이 컸으니까.
"김... 갑부님... 설마 여기까지 전부 계획하시고..."
김만우는 군만두를 향해 윙크를 보냈다.
"아! 한 가지 더! 구매에는 1인 당 100병으로 제한을 두겠습니다. 그리고 구매한 치료약은 거래소에 등록하지 않겠다는 계약에 사인하셔야 합니다. 되팔려는 사재기꾼들을 방지하기 위함이니 이해 부탁 드립니다. 물론, 공헌도를 독차지하려 하시는 분들도 그러지 마세요. 그럴 거면 그냥 기부하시기 바랍니다."
여론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파르도 섬의 모두는, 이 모든 것을 기획한 김만우를 향해 찬사를 보냈다.
"와아. 김갑부 김갑부 하는 이유가 있었네."
"그래. 덕분에 공헌도 쌓을 수 있겠어. 근데 파르도 섬의 위기라는 퀘스트의 보상은 뭘까?"
"글쎄? 섬의 모두가받은 퀘스트니, 그다지 특별할 거 같진 않지만."
"그래도, 이득 보는 것도 없이 이런 큰 이벤트를 열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에요. 저 같으면 귀찮아서 절대로..."
그러나 실시간 댓글 창의 놀랍다는 반응은 시간이 흐르자 금세 식어 버렸다.
시청자들의 마음이 아직 완벽히 돌아선 것은 아니다.
방송을 보는 그들이 공헌도를 받는 것은 아니었으니, 파르도 섬 플레이어들과는 조금 온도차가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야? 연금술사 거짓말 친 거랑 이거랑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 그러니까요. 저런다고 고렙들이 갑자기 강해져서, 불가능하던 마족을 뚝딱 사냥하게 되는 것도 아닐 텐데.
- 왜 마법사를 연금술사라고 했는지 해명하라!~
- 연금술사 내놔!
.
.
.
'하여간 까다롭기는. 어차피 공개할 생각이었지만 저러니까 괜히 하기 싫어지네. 어휴.'
김만우는 해명을 다시 이어갔다.
"자. 그럼 왜 제가 마법사님을 섭외했는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설명을 위해 도와주실 아까 그 마법사님과 오늘 이벤트를 위해 힘써주신 BI 길드의 길드원 한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이어갈까 합니다."
BI기츠와 레드문. 그리고 로브를 뒤집어써, 알아볼 수 없는 인물.
총 세 명의 사람이 방송 화면에 등장했다.
댓글 창에선 레드문을 향해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만우는 그걸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곧 그 반응은 180도 뒤바뀔 테니까.
로브를 뒤집어 쓴 진짜 연금술사가 나타났으니 말이다.
*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시던 진짜 연금술사님 이십니다."
이 사람이야 말로 진짜 연금술사라며, 방송에 대고 세영을 소개했다.
물론 모든 것은 베일에 쌓여 있는 상태.
그 때문이었는지 실시간 댓글 창의 반응은 매우 사나웠다.
거짓말은 한 번으로 족하다는 반응.
그가 연금술사라는 걸 증명해 보라는 거였다.
김만우의 신호와 함께 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상품 용 마나 포션이 놓여있던 테이블에 다가갔다.
인벤토리에서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고대 마족의 주머니였다.
세영은 조심스레 테이블 위에, 최하급 마나 포션을 꺼내기 시작했다.
한 병은 열 병이 되고, 열 병은 백 병. 이어 천 병이 넘어갔다.
"여기에 올려 둘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한계네요."
아리따운 여성의 목소리.
BJ군만두가 콕핏을 사용해 변조한 세영의 목소리가 방송에 흘러 나갔다.
"바닥에라도 꺼내 둘까요?"
답변도 기다리지 않고, 세영은 더 많은 양의 마나 포션을 꺼내두기 시작했다.
총, 6000 병.
거래소 최저가로 계산해도 최소 6억 원 이상.
경매를 한다면 10억 원은 가뿐히 넘게 받을 만큼의 엄청난 양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