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105화. 페어리 가든
세영은 완성한 환몽의 포션을 페어리 퀸에게 마시게 끔 하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녀의투명해진 신체를 더는 손으로 만질 수 없게 된 탓이다.
그녀는 마치 유령이라도 된 것 같았다.
"뭐지? 그럼 대체 어쩌라는 소리지?"
그런 세영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파티원들이 말했다.
"직접 마셔야 하는 거 아닐까요?"
"너는! 오빠 위험하면 어쩌려고!"
"아니, 햄스터 말이 옳아. 내 생각에도 이건 마셔야 할 것 같은데?"
세영도 자신이 마셔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고민이 들었다.
완성된 포션이 단한 병 뿐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마셨는데, 퀘스트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면 어쩌죠? 한 병 뿐인데."
"더 만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지?"
"네."
사실, 이렇게 고민할 시간조차 촉박했다.
"그냥 마셔. 이게 내 퀘스트였으면 난 생각도 안하고 마셨다."
김만우는 언제나 별 생각 없이 말한다.
그러나 듣는 사람에겐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세영에겐 큰 도움이 되었으니 말이다.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하는 말은, 세영의 망설임을 크게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
"마셔 볼게요. 혹시 모르니까, 제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나가면 잘 부탁 드려요."
"오빠! 저희만 믿으세요."
세영은 환몽의 포션을 마셨다.
탁한 흰색의 액체가 목을 타고 몸속으로 들어갔다.
"윽... 으으..."
마신 순간부터 몸에 불이 붙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으악-!!"
너무 뜨거웠다.
이런 뜨거운 육체 따위는 버리고, 자유롭게 해방 되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오...오빠?"
"형. 괜찮아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바로 앞에 있는데, 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마치 자신만 물 속에 잠겨있는 듯한 감각.
무의식적으로귓구멍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지만, 물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너희들 어딜 보고 이야기 하는 거야?'
자신을 부르고 있음에도, 아이들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급히 아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그리고 그곳에는 자신이 있었다.
아니, 자신의 껍데기가 있었다.
기절한 사람처럼 쓰러져 김만우에게 부축을 받는 자신의 육체가 거기 있었다.
"얘들아? 내가 안보이니?"
대답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파티 메시지를 보냈다.
알파 : 저기, 나 안 보여?
김갑부: 뭐야? 파티 메시지?
노랑나비 : 오빠? 몸에서 영혼이 빠져 나간 거 맞아요?
알파 : 응. 나는 지금 네 뒤에 서있는데?
그말에 나비는 급히 뒤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노랑나비 : 지... 진짜요? 저기... 제 뒤에 있지 마세요. 왠지 무서우니까.
알파 : 으응... 미안. 아무튼 이제 시간이 없으니까 서둘러 퀘스트를 진행해 볼게. 무슨일 있으면 파티 대화로 해줘. 내 육체?도 잘 부탁해.
핑쿠햄스터 : 네. 안심하고 다녀 오세요.
노랑나비 : 빨리 다녀 오세요. 이건 시체 같아서 무서우니까.
알파 : 그... 그래.
세영은 서둘러 메르바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댔다.
좀 전까지만 해도 닿을 수 없던 그녀를 이제는 만질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육체가 소멸하며, 영혼만 남은 상태였던 모양이다.
'손하고... 발이...'
메르바는 영혼조차 소멸하고 있었다.
세영 자신과는 다르게, 발끝이나 손 끝은 보이지도않았다.
다른 부분도점점 희미해져 가기 시작했다.
세영은 급히 그녀를 안았다.
업지 않고 앞으로 안은 이유는, 그녀를 계속 시선에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등에 업었다가는 자신이 모르는새,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영혼 뿐이어서 그런지 안아 든 메르바에게서는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세영의 마음을 더욱 다급하게 만들었다.
'메르바 조금만 견뎌줘.'
세영은 힘차게 걸었다.
조금 전 버섯과 페어리들이 보이던 장소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지금껏 볼 수 없었던 거대한 무언가가 보였다.
'설마... 이게?'
[차원의 틈에 가까워졌습니다.]
이전에 들렸던 메시지가 들려왔다.
이번엔 경고 메시지는 없었다.
정신 탈취 같은 상태 이상 역시 걸리지 않았다.
"안녕? 넌 인간이지? 죽었니?"
"아까 우릴 놀렸던 인간이잖아!"
"맞아. 너무해. 뱀 딸기 냄새만 풍기다니."
페어리가 보였다.
한 두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의 페어리들이 두꺼운 나무 뿌리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몇 몇 보이지 않았다가 다시 보였다가 하기도 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때였다.
마중이라도 나온 것처럼, 세영을 알고 있는 페어리가 보였다.
"알파. 당신이 왜 여기에?"
"페어리의 은인. 당신을 또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그것도 신목의 뿌리에서?"
세영이 동굴 속 숨겨져 있던 히부린의 연구실 에서 구해낸 페어리들.
히부린의 실험용 새 장에 갖혀 있던 그 페어리들이었다.
"미안. 설명할 시간이 없어. 너희도 보이지? 페어리 퀸 메르바야. 그녀를 구해야만 해."
하지만 의외의 대답이 들려왔다.
"무슨 소리야? 페어리 퀸이 어디 있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뭔가 알파 당신에게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무언가 아련한 듯한..."
"그러고 보니 당신! 몸은 어쩌고 영혼만 존재하고 있어? 설마 죽었나?"
세영의 생각과 달리 이들은 메르바를 보지 못했다.
퀘스트 2단계 목표의 제한 시간은 이제 1분 남짓.
"그래? 그럼 아스트랄 계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해? 나를 좀 그 곳으로 데려가 줄 수는 없겠니?"
"인간인 당신이? 이곳에?"
"당신이 우리들의 은인이라는 건 잘 알고, 또 너무 고마워. 하지만 인간이 우리의 고향으로 올 수는 없어. 애초에 우리가 허락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야."
"그래. 인간이 여기에 온다는 건, 죽겠다는 소리와 같아. 우리 은인을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어."
세영은 다시 한 번 애원했다.
가지 못 할 리가 없었다.
김만우의 말을 빌리자면 시도조차 불가능 한 퀘스트를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인공지능이 만들어 냈을리 없으니까 말이다.
"난 환몽의 포션을 마셨어. 그래도 갈 수 없니? 이겄봐. 난지금 영혼 뿐이야"
"뭐? 그게 뭐야?"
"그러고 보니, 인간이 이 장소에 멀쩡하게 살아 있네? 보통은 겁을 먹고 도망치거나, 그 자리에서 죽거나 할 텐데."
"나! 나 알아. 그거... 누구지? 파루보에게 들었던 것 같아."
"아! 파루보. 자신은 원래 인간이었다던 그 허풍쟁이 파루보?"
"응. 파루보는 원래 인간 중에서도 제일 똑똑한 사람이었데. 알파가 말한 그 비슷한 포션을 만들어 먹고, 결국 페어리가 되었다고 들었어."
"에이. 페어리 제일의 허풍쟁이 파루보의 말을 누가 믿어?"
세영은 시간이 없었다.
"믿어. 내가 믿어. 난 그 포션을 마셨거든. 난 지금 인간이아니라 영혼 뿐인 상태라고! 그래도 갈 수 없니?"
페어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가 세영을 바라보길 반복했다.
"그래? 우리 은인을 죽게 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우린 친구니까. 믿어 볼게. 그리고 당신이 파르보처럼 페어리가 된다면 근사할 것 같으니까. 킥. 킥."
"바보야. 그 녀석은 허풍이래두?"
"에헴! 페어리는 은혜를 갚는 존재야! 당신도 잘 기억해 두라고."
페어리들은 세영에게 가까이 날아왔다.
"자, 우리 손을 잡아."
세영은 한 손으로 메르바를 안고, 가까스로 다른 손을 뻗었다.
뻗은 그의 손에, 페어리들이 손 끝을 가져다 댔다.
슈우우우-
닿는 순간이었다.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왔다.
너무나 상쾌해 지긋이 눈을 감았다가 살며시 떴다.
'와아...'
눈을 깜박이는 찰나.
순식간에 세영의 눈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이 곳이야 말로 페어리들의 고향.
아스트랄 계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외딴 섬.
인간 세계의 파르도 섬과 겹쳐있는 페어리들 만의 터전.
"어서와. 우리들의 고향. 페어리 가든에."
[아스트랄 계에 진입하셨습니다.]
- 이곳에서 당신은 실체(實體)화 할 수도, 실체를 가진 무언가를 소유할 수도 없습니다.
[전설 속의 섬. '페어리 가든'을 발견하셨습니다.]
[당신은 페어리가든의 최초 발견자 입니다. 위대한 업적을 달성해 칭호가 주어집니다.]
[ 칭호 : 꿈꾸는 여행자]
- <전설 등급>
- 당신은 누구도 방문한 적 없는 페어리들의 터전, 페어리 가든의 최초 발견자입니다.
- 페어리에게 전수 받은 모든 스킬의 레벨이 1만큼 상승합니다.
- 모든 스텟 +5
- 모든 페어리들과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친밀도를일정 수준 이상 달성 할 경우, 추가 보상이 있습니다.
세영은 벌어졌던 입을 겨우 닫았다.
"고마워. 얘들아."
그의 눈앞에는 환상의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마치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 동화 속 세계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도적인 크기의 거대한 나무.
'페어리트리...'
그것이 꽃잎인지,혹은 열매인지 세영은 알 수 없었다.
나무를 둘러 싼 수없이 많은 은은한 빛이 페어리트리의 가지 전체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퀘스트 정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갱신 된 정보가 있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관광을 온 것이 아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
세영은 서둘러 퀘스트 창을 열었다.
[*위기에 빠진 페어리 : 페어리 뱀은 당신에게 페어리 동료들과 페어리트리를 지켜줄 것을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 당신은 페어리 가든에 당도하였습니다. 서둘러 페어리 퀸의 영혼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합니다.
페어리트리로 향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당신이 찾는 해답이 있을 것입니다.
- **페어리 뱀의 영혼은 페어리트리의 어딘가로 되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퀘스트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위치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분류 : 수호
-난이도 : E (단계 별로 난이도가 변경됨)
-제한 시간 : 45분
-보상 : 페어리트리의 축복
-목표 3 단계 : 서둘러 페어리 퀸 메르바의 영혼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합니다.
제한 시간 45분.
마족인 히부린과의 계약이 끝나는 시점과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야. 시간을 벌었어.'
메르바는 더는 희미해 지지 않았다.
자신이 태어난 장소로 돌아온 덕분인지, 페어리트리와 가까워졌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세영은 급히, 자신을 이 세계로 데려와 준 페어리들에게 물었다.
"너희들혹시 뱀이 어디 있는지 알아? 페어리 트리의 어딘가에 있을 거라 던데."
"그게 누군데?"
"처음 듣는 이름이야."
예상 외의 대답이었다.
뱀 딸기를 좋아하는 페어리들이 뱀을 모른다구?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영은 인벤토리에서 뱀 딸기의 주스를 꺼내며, 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다행히 영혼 상태로도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꺼내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꺼낸 아이템이 실체화 한 것은 아니다.
영혼이 된 세영과 마찬가지로, 마치 홀로그램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도, 이곳의 주민인 페어리들은 먹고 맛을 느낄 수 있는 모양이다.
"달아~ 너무 달아~ 까르르."
"맛있썽~"
"뱀 딸기 주스라니. 어떻게 이런 걸 만들어 낸 거야? 인간은 대단해. 페어리가 더 대단하지만."
그러나 녀석들은 맛을 보는데 온 정신이 팔려있었다.
"저기, 얘들아!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어. 이대로는 고대 마족 때문에 너희들까지 위험해 질지 몰라."
마족에 사로잡혀 있던 페어리들인 만큼, 세영의 말에 급격히 표정을 달리했다.
"마족... 설마..."
"응. 히부린이야. 놈이 얼마안 있어 페어리트리를 공격할 거야."
놀라고 당황했는지, 페어리들은 이리저리 날개짓을 하며 우왕좌왕 댔다.
"그치만 우리는 모르는 걸. 뱀이 누군지."
"그래. 뱀 딸기는 알지만 뱀은 모른단 말이야."
이대론 끝이 없을 것 같아, 질문을 바꿔 보기로 했다.
"그럼 페어리가 육신을 잃고, 영혼으로 돌아갔을 때, 혹시 저 페어리트리의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을까?"
그제야 페어리들의 표정이 조금은 긍정적으로 달라졌다.
"그거라면 페어리트리야. 우리도 히부린에게 오랫동안 붙잡혀 있었기 때문에, 신목의 뿌리 주변에서 놀고 있었어. 페어리는 그곳에 있으면 스스로 회복되거든."
"맞아. 나도 그랬어."
"페어리는 신목의 열매에서 태어나거든. 우리의 엄마이자 아빠야."
페어리들은 죽지 않는다.
육체가 손실 되면 그 정신만이 되돌아온다.
애초에 페어리들은 정신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정령이기 때문이다.
육신을 잃고 신목으로 되돌아온 페어리의 정신은 나무의 거대한 줄기를 타고 하나가 된다.
그리고 뻗은 가지로 나뉘어져 열매로 다시 태어난다.
그 때문에 페어리들은 본래 하나의 정신으로 묶여진 존재와 같다.
그리고 그 중심에 페어리 퀸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뱀은 새로운 열매에서 다시 태어나는 걸까?'
세영은 거대한 페어리트리를 올려다봤다.
수많은작은 빛들이 은은하게 자신을 비추고 있다.
저것이 전부 새로운 열매이자 페어리들인 거라면, 저 중에서 뱀을 찾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물며 시간까지 촉박한 상황.
'그리고, 뱀이 새롭게 태어나는 거라면...나를 기억해 줄까?'
세영은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그래도, 살아 있어 준다면...'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새로운 생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사는 거라면 그나마 조금은 안심이었다.
"그럼, 페어리 퀸은 어디서 태어나는데?"
"페어리 퀸도 나무에서 열매로 태어나. 하지만 조금 특별해.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서 수백, 수천 년에 한 번 태어나."
세영은 그 이야길 듣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페어리 트리를 향해 무작정 달려나갔다.
이제 시간도, 별다른 방법도 없으니까.
무작정 나무를 오를 생각이었다.
'꼭대기까지 가면 된다는 거지?'
크긴 엄청 크지만, 못 오를 나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제 세영은 지금껏 획득한 많은 칭호 덕분에, 힘도, 민첩도 매우 높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