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6화 〉106화. 페어리 가든 (106/122)



〈 106화 〉106화. 페어리 가든

세영은 뿌리를 밟고 올라섰다.
나무가 어찌나 큰지, 지면 위로 드러난 페어리트리의 뿌리 일부만 해도, 수십 미터의 높이에 두께도 거목의 수십, 수백 배는 돼 보였다.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한 손으로 메르바를 안고 있는 상태라서 그런지, 나무를 오르기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영혼인 상태라 몸이 가벼워져 간단할 줄 알았으나, 힘도 민첩성도 함께 약해진 모양이었다.

'어쩌지...'

앞이 막막했다.
남은 시간은 줄어 만 가고 나무는  없이 크기만 한 상황.

"인간. 뭐 하는 거야? 뱀 딸기 더 없어?"

어느새 뱀 딸기 주스를 마시던 페어리들이 뒤따라 왔다.
세영은 그들이 부러웠다.
하늘을 자유롭게  수 있는 저 날개가 부러웠다.


"나무를 오를 방법이 없을까?"
"글쎄. 하늘을 날면 되잖아?"
"나도 그러고 싶지만, 인간에겐 날개가 없잖아."
"하긴~ 인간은 날개가 없지. 당신이  딸기처럼 작았다면 내가 데려다 줬을 텐데."

세영은 문득 어린 시절 TV에서 봤던 어느 장면이 떠올랐다.

"혹시, 정말 그래 줄 수 없을까?"
"뭐?"
"나를 저 나무 꼭대기까지 데려다 줄  없냐는 말이야."

페어리들은 놀란 눈치였다.

"바보 인간! 당신 같이 커다란 인간을 내가 무슨 수로 데려가?"
"그래. 인간은 너무 무거운 걸."

세영은 고개를 저었다.

"너희 뿐만 아니라, 다른 페어리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하면 되지 않겠어? 정말 시간이 없어서 부탁하는 거야."
"흠? 글쎄~. 다른 친구들이 과연 인간의 말을 들어 줄까? 우리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지만, 여기 사는 페어리들은 대부분 인간 세상을 가본 적도 없고, 인간을 싫어해."
"맞아. 나도 싫어했어. 마족이 더 싫지만."


하지만 세영에게는 그들의 마음을 돌릴 아이템이 있었다.


"뱀딸기를 줘도 안될까?"
"뭐?"
"인간! 방금 뭐라고 했어? 뱀 딸기?"


금세 입가가 침으로 흥건해 졌다.
자신보다 훨씬 순진하고 더 단순한 녀석들이라 생각했다.


세영은 고대 마족의 주머니를 사용했다.
안에 든 수십 병의  딸기 주스를 꺼냈다.
서둘러뚜껑을 열어 페어리트리의 주변에 내려뒀다.
가까이 있던 페어리들은 더는 참기 힘들었는지, 벌써 마시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그리고  딸기 향기를 맡은 다른 페어리들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페어리트리의 바로 근처였기 때문인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였다.

"뱀 딸기!"
"나도 줘! 내가 먼저 왔다고!"
"아아~ 달콤해라. 딸기가 아니라 주스라니!"

세영은 꺼내  주스가 모두 소진되기만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싫어. 뱀 딸기는 고맙지만."
"맞아. 인간은 무거워."
"근데 왜 여기에 인간이 있는 거야?"

세영은 페어리들의 성격을 잘 알기에, 좌절하지 않고 차분하게 설득을 이어갔다.


"페어리는 은혜를 갚는 거 아니었어? 그리고 나에게는 아직도 수백 병의 뱀 딸기 주스가 더 있는데, 누굴 주면 좋을까?"

이 녀석들은 뱀 딸기를 정말 좋아한다.

날아든 수많은 페어리들은 세영에게 장난을 걸어왔다.
얼굴에 다가와 볼을 문지르기도 하고, 여기저길 차거나 찌르기도 했다.
옷깃이나 귀를 잡아당기는 녀석들도 있었다.
전혀 아프진 않았다.


조금 귀찮게 느껴졌지만, 이는 페어리들의 호감 표시와 다름 없으니, 기분 좋게 받아들이자.


"그, 그만해. 시간이 없다니까."

이들은 낯선 상대에게는 결코 다가가는 법이 없다.
물론, 지금처럼  딸기가 있는 경우는 예외다.

"얘들아. 그럼 부탁해도 되겠니?"
"좋아. 대신 뱀 딸기는 내 차지 야."
"아니야.내 꺼야!"
"흥. 내가 제일 힘이 강해!"


티격태격 하기도 잠시.
세영의 몸에 달라붙은 셀  없을 만큼 많은 페어리들이, 일제히 날개짓을 했다.

이윽고, 메르바를 안고 있는 세영의 전신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김만우를 비롯한 파티원 모두는 지상을 향해 서둘러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파티 대화로 들려온 세영의 말을 듣자니, 굳이 지하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세영의 영혼은 이미 지상으로, 아니 더 높은 나무의 꼭대기를 향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영혼과 가까운 지상에서 기다리는 편이, 시간을 단축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환몽의 포션을 마시고 두 시간 내에 본래의 몸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플레이어는 사망에 이른다고 했다.
지금은 다른 차원에 있다 고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는 편이 안심이 되는 것이다.

"BJ아저씨. 무겁진 않으세요?"
"당연하죠. 격투가도 일단은 힘에 포인트를 투자를 하니까요. 민첩도올렸지만."

세영의 캐릭터를 업은 건 BJ군만두였다.
레벨도 그렇고 힘이야 노랑나비나 햄스터가 더 높겠지만, 이들의 캐릭터는 체구가 작아 성인 크기의 세영을 업을 수가 없었다.


이런 사소한 대화를 나누며 계단을 오르는데, 갑자기 시스템 알람이 울렸다.

[경매장에 등록한 아이템의 경매가 종료되었습니다.]


고블린의 눈동자.
등록 당시 파티 등록을 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시스템 메시지는 군만두를 제외한 파티원 전원에게 들려왔다.

"와! 벌써 24시간이 지났나?"
"당연하지. 바보야. 아저씨. 어제  잊혀진 차원인가 하는데 갔을  등록하셨었죠?"
"맞아."


모두는 기대를 가득 머금고 경매장 시스템을 호출했다.
세영이 판매한 영웅 등급의 고블린 지팡이가, 무려 11억이라는 고액에 판매 됐었다.
그럼 전설 지팡이는?
이들의 기대감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하지   정도였다.

"헉..."
"말도 안... 돼..."
"시, 실화에요?"

[최종 낙찰가 : 3,342,000,000 CC]

무려 33억.
게임 아이템하나가 이런 황당한 가격에 낙찰 되다니.
다섯 이서 나눠도 한 사람 당 6억 원이 넘는 거금을  셈이었다.


[668,400,000CC를 획득하셨습니다.]

"꺅-! 지, 진짜로 들어왔어."
"미쳤다. 우리 엄마 아빠는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하실까? 이거 거의 로또 당첨  거랑 맞먹는 거 아냐?"
"오! 주여. 나무아무타불. 모든 신에게 감사드립니다."


호들갑 떠는 아이들을 보며, 김만우도 한껏미소 지었다.


앞장서 계단을 오르는 기사 NPC는,  소동에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서 등에 세영의 캐릭터를 업고 가던 군만두는 고개를 갸우뚱 했다.

김만우에게 궁금한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전설 템을 정말 팔아도 괜찮았나요? 구하기 무진장 힘드셨을 텐데... 괜히 생방송에서 약속하고 후회 하시는 거 아닙니까?"
"지금 제 얼굴이 후회하는 것처럼 보이세요? 으흐흐."


군만두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우리 파티에마법사는 저 꼬맹이 한  뿐이고, 이미 다른 무기 가진  보셨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앞으로도 꾸준하게 돈 벌기에는 가지고 있는 편이 더 수월하지 않겠습니까? 전설 무기라는 폼도 나고. 게다가 다른 파티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안달할  요?"
"그건 모르죠!보다 더 강력한 무기들이 우수수 떨어질지도."

김만우는 징그럽게 웃어 댔다.


그런 그를 보며, 군만두는 의아함을 느꼈다.

'저런 아이템이 우수수 떨어진다고?'

애초에 그랬다면 저렇게 비쌀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직 네임드 몬스터의 사냥은 커녕 제대로 구경한 적조차 없었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김만우는 세영과 함께 사냥을  오면서 하루에 몇 마리나 되는 네임드를 사냥한 경험이 있었다.
이미 60레벨에 도달한 파티원들에게 있어 고블린 시리즈는, 돈은 되지만 메리트가 낮은 장비다.
그러니 이제부터 마족을 사냥하고, 경매로 팔아버린 지팡이보다 좋은 아이템들을 얼마든지 잔뜩 얻을 작정이었다.

'고블린 시리즈 가격을 생각하면 마족이 주는 장비가 훨씬 비쌀 거야. 이대로 더 강해질 수록 훨씬 큰 돈을  수 있겠지? 으흐흐. 거기다 방송까지 시작 하면?'

생각하면 할 수록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이미 돈방석에 앉은 자신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영아, 형이랑 같이 부자 되는 거야!'


콕핏은 아직 못 샀지만, 20억 정도는 며칠 내로 전부 모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뒤에 웹튜브 방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수익을 눈앞의 군만두와 나눠 먹을 필요가 없으니 또 얼마나 큰 돈을 벌게 되겠는가.
심지어는 프클 만세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김만우는 자신을 뚱하니 바라보는 군만두를 향해서 말했다.

"슬슬, 생방송 시작 할까요?"
"네? 갑자기요?"
"뭘 놀라고 그러세요. 이미 생방 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가까울 텐데."

군만두는 당황스러웠다.
여긴 파르도의 궁전. 그 지하였다.
마족도, 이를 상대하는 플레이어도 없는데 무슨 방송을 시작한다는 것일까.


"여기서, 지금 당장요?"
"네! 흐흐. 그렇게걱정 마세요. 일단은 지팡이 경매에 대한 토크부터 시작하면 되니까. 하이라이트를 처음부터 다 보여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시작은 가볍게 가는 거지."

그때마침 빛이 보였다.
계단이 끝나가고, 지하 묘지의 입구가 보였다.
저길 나가면 파르도의 궁전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뭐, 묘지 밖으로 나가서 시작하죠."
"아... 네."


잠시 후 궁전을 배경으로 BJ군만두는 생방송을 시작했다.

BJ포르말린의 생방송에서 고블린의 눈동자 경매를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
이들은 군만두가 방송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군만두의 채널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듯, 엄청난 인원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생방송 시작과 동시에 화면에 등장한 김만우.
다짜고짜 아직 경매가 한 창 진행 중인 '피히히의 지팡이'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마족과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 미리 방송을 그의 목적.
그건, 앞으로 경매 종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영웅 지팡이를,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아먹는 것이었다.



**




세영은 페어리트리의 상층부,  바로 아래에 있는 두꺼운 가지에 내려앉았다.
페어리가 태어난다는 열매가 그의 머리 바로 위로 가득하다.


"미안. 우리는 이 위로는 갈  없어."
"그래. 우리 날개로는  가."
"오직 페어리 퀸만 가능해."

수많은 열매가 은은한 빛을 내며 자라고 있다.
마치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 때, 도심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조명들을 보는 것만 같다.


페어리들은 저 열매가 자라는 높이까지는 날아갈 수 없는 모양이다.
장난이 심한 페어리들에게서, 새로 태어날 페어리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것일까?
대체 얼마나 장난이 심하면 그런 제약을 둔 것일까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고마웠어. 여기부터는 나 혼자 어떻게  볼게."

세영은 페어리들에게 약속한 뱀 딸기의 주스가 담긴병을 건넸다.
자신의 신체 만큼이나 커다란 병을, 한 마리  하나 씩 받아  페어리들.
조금 참을 만도 한데, 한 마리 빠짐없이 뚜껑을 열고 마셔 대느라 여념이 없다.

세영은 그들을 뒤로 하고, 나무 중심의 두꺼운 줄기로 다가갔다.
나무의 꼭대기는 아직도 한참 더 올라야 한다.

'완전한 꼭대기는 아닐 테고, 대체 어디까지 올라야하지?'


세영이 고개를 들고 나무의 높은 곳을 바라볼 때였다.


쿠구구구구구구궁-!

갑자기 멀리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도 치는가 싶었다.

[퀘스트 진행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서둘러 정보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뭐지?"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뒤에서 주스를 마시던 페어리들도 깜짝 놀랐는지, 작은 비명과 함께 이리저리 방황하기 시작했다.

급히 퀘스트 창을 열어 확인했다.




[*위기에 빠진 페어리]

- 고대 마족 히부린이 페어리트리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분류 : 수호
-난이도 : D (단계 별로 난이도가변경됨)
-제한 시간 : 15분 12초
-보상 : 페어리트리의 축복
-목표 3 단계 : 서둘러 페어리  메르바의 영혼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합니다.

퀘스트의 설명을 읽던 세영은, 그 내용을 보고 너무 황당했다.
30분 이상 남아있던 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순식간에 절반으로 줄어있었고, 난이도가 E에서 D로  단계 상승해 있었다.
게다가...

'히부린이 공격을 시작했다고?'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봤지만, 놈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포션은 놈도 제작 가능할 거야...'


히부린 역시 아스트랄 계에 진입을 시도했다면, 본체 그대로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러나 놈 역시 레시피만 있다면, 환몽의 포션 제작이 불가능  리가 없었다.
놈도 연금술사나 다름없으니까.

다만, 재료에 들어가는 몇 가지 특이한 재료를 놈이 가지고 있을 리도 없었다.
요정의 날개 가루 버섯은 방금 채집한 신선한 것이어야만 했으니까.

"어? 저건 뭐지?"


히부린을 찾던 세영의 시선에, 갑자기 새까만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선은 다름 아닌 나뭇가지였다.
저 먼 곳에서 페어리트리의 나뭇가지 하나가 새까맣게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띠링.

뒤늦게 시스템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직 세영에게만  것은 아니었다.
파르도 섬 전역의 모든 플레이어에게 보내진 거였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페어리트리를 대상으로 스킬 '마나 흡수'를 발동했습니다.]



*


히부린의 외형은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아름답던 메르바와 똑 닮아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금 놈의 외형은 확연히 변해 있었다.


거친 초록의 피부며 깊게 들어간 안구... 요정?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제는 그야말로 몬스터와 다름 없는 모습이다.
날개가 달린 고블린이라면 이해하기 쉬울까?

아니, 오히려 어떤 부분은 고블린보다도 훨씬 더 흉측하게 변했다.


그런데도 놈은 여전히, 눈으로 페어리트리를 확인 가능했고, 날개를 사용해 하늘을   있었다..


히부린은 파르도 섬의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목적은 단 하나.


"끄히히히히"


페어리트리.
신목의 모든 마나를 흡수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오직 그것이, 지금 히부린이 원하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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