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107화. 페어리 가든
파르도 궁전 앞에서 방송을 하던 일행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페어리트리라면, 알파 형이 오른다 던 그 나무 아니에요?"
"맞아. 그 나무를 지금 히부린이 공격한다는 걸까?"
"다들, 저기... 저기 좀 봐. 하늘이..."
노랑나비가 가리키는 하늘을 향해, 모두의 시선이 옮겨갔다.
진행 도중이던 생방송 화면에서도 파르도 섬의 상공을 비추기 시작했다.
- 응? 뭐죠? 갑자기?
- 뭐야. 내 모니터에 금 간 줄 알았잖아!
- ㅋㅋㅋ. 저도 스마트폰 화면이 이상해서, 괜히 닦았네요.
- 하늘이... 하늘이 쪼개지는 거야?
- 그게 아니라, 뭔가 떠있는 것 같은데.
- 군만두님. 저게 뭔가요? 화면 확대 좀 부탁 드려요.
- 조금 전 시스템 메시지 보면, 고대 마족이 드디어 행동을 개시 한 모양인데?
.
.
.
파르도 섬의 상공에, 갑자기 알 수 없는 검고 긴 선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들 뿐만 아니라 파르도 섬의 대부분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그 장면을 눈에 담았다.
"군만두님. 클로즈 업 가능 합니까?"
"아, 네. 해 보겠습니다."
BJ군만두는 콕핏의 기능을 사용했다.
마치 최첨단 망원경이라도 사용한 것처럼 확대되는 화면은, 직접 다가가 바라보는 것 만큼 선명했다.
"저건..."
본 적이 있는 날개였다.
익히 보았던 페어리의 날개와 흡사했다.
그러나 날개만 닮았을 뿐, 몸통은 흉측한 몬스터와 다름 없었다.
다른 일행들은, 각자 사용 중인 기기를 이용해 군만두의 방송을 시청 중이었다.
그래야 확대된 하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노랑나비가 말했다.
"저거, 아무래도 히부린 같은데요?"
김만우는 무언가를 생각 중이었고, 다른 아이들이 대답했다.
"저게? 전혀 다르게 생겼는데."
"맞아. 히부린은 완전 미인이었잖아. 알파 형이 데리고 있던 그 미녀와 완전 닮았었다고. 너 설마 또 질투 하냐?"
"아니거든! 내 말이 맞아! 저건 분명 히부린이 틀림없어. 또 다른 몬스터랑 합체해서, 외형이 달라지기라도 한 거겠지. 너희들도 오빠가 해준 이야기 옆에서 같이 들었잖아? 히부린하고 페어리 퀸이 닮았던 이유 말이야. 저 날개를 보라고!"
잠잠하던김만우가 거들었다.
"이번 만은 쟤 말이 맞는 거 같다. 시스템 메시지도 그렇게 떴으니까. 저 새까맣게 번져 가는 게 페어리트리의 나뭇가지 일부인 것 같고."
그렇게 말하는 중에도 김만우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돈 벌 생각에 싱글벙글 웃어 댔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이랬다.
김만우는 세영이 퀘스트를 완수하고 돌아오면, 24시간이 지나 행동을 시작할 히부린을 본격적으로 상대하려 했다.
그리고 그 장면을 고스란히 방송으로 내보낼 작정이었다.
'왜 벌써 움직인 거야? 성가시게.'
계획이 죄다 차질을 빚게 생겼으니, 짜증이 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였다.
실시간 댓글 창을 확인하며방송을 진행 중이던 BJ군만두의 목소리가 커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방송을 향해서.
"아무래도 녀석은 고대 마족인 모양입니다. 어떤 이유로 놈의 외형이 어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 모양인데요. 아쉬워 할 틈도주지 않고, 놈이 또 다시 수상한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마치 스포츠 중계라도 하는 것 마냥 억지로 텐션을 끌어 올렸다.
덕분에 모두의 시선이 화면 속의 고대 마족에게 집중됐다.
히부린은 하늘에 떠있는 채,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다.
고대 마족의 주머니였다.
"무언가 수상해 보이는 주머니입니다. 안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주머니에서 히부린이 꺼낸 건, 화면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크기가 작았기 때문이다.
"아, 이거 아쉽네요. 대체 뭘 꺼낸 것일까요?"
그러나 잠시 후,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게 되었다.
또 다시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고대 마족의 씨앗'을 강제로 발아 시키고 있습니다.]
고대 마족의 씨앗.
히부린이 자신의 부하를 늘릴 목적으로 개조한 마족의 씨앗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놈에 의해 마나를 가득 머금어 스스로 발아 한 상태이니, 몬스터가 먹는다면 곧바로 마족의 종자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고대 마족의 종자 '쿠아만테'가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히부린의 종자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 지도 모르겠다.
페어리트리에서 강탈한 마나였지만, 이미 히부린 자신의 마나가 된 상태였다.
그 마나를 가득 머금은 씨앗이니, 그걸 먹고 탄생할 마족의 종자들은 오로지 히부린의 명령 만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놈이... 놈이 손에 쥔 씨앗들을 던졌습니다. 아니, 가볍게 흔들어 털어냈습니다.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네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갑자기 김만우가 방송에 끼어들었다.
"아마, 저걸 먹은 몬스터들이 마족으로 다시 태어날 겁니다. 지난 방송에 출연했던 시꺼먼 어린 마족 있었죠? 아마 그 비슷할 겁니다. 위치를 봐서는 고블린 숲 쪽이니까, 아마도 거기 있던 고블린들이 죄다 마족으로 다시 태어나겠죠."
BJ군만두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더니 말을 이어갔다.
"예? 김갑부님은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야, 사냥해 봤으니까요. 그러지 않았다면 아이스 스틱을 무슨 수로 얻었겠습니까?"
"그럼, 정말 큰일 아닙니까? 몇개인지 셀 수는 없었지만, 대충 보기에도 씨앗이 수십 개는 되는 거 같던데..."
김만우는 한 숨을 푹 내쉬며 이야기 했다.
"그렇습니다. 큰일입니다. 저희가 상대했던 녀석도 어지간한 고블린 보스보다 훨씬 강했으니까요."
"예? 그럼..."
"네. 한 마디로 X된 거죠."
다행히 욕설은 무음 처리 됐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고블린의 숲.
눈앞 언덕 위에는 징그러운 혈관 같은 것이 온통 뒤덮은 거대한 히부린의 던전이 자리 잡고 있다.
일대는 어느새 벌목이 끝나 거대한 야영지가 형성 되어 있었다.
BI 길드부터 시작해 스콜피온 길드를 포함한 파르도 섬에서 내로라하는 네 개의 길드가 모여 있었다.
이들 역시 시스템 메시지와 BJ군만두의 생방송을 통해, 고블린 숲에 마족이 태어날 거라는 사실을 들었다.
BI 길드의 BIM이 외쳤다.
"시간이 몇십 분 앞당겨졌지만 당황하지 마라! 우리 BI 길드는 목숨을 걸고 마족을 막아야 한다."
예!!
가장 큰 세력의 우렁 찬 함성에, 다른 길드의 사람들 까지 고양감이 차올랐다.
스콜피온 길드의 마스터.
스콧은 길드원 중 가장 마지막으로 타투를 받고 있었다.
"효과는 어떤 걸로 하시겠어요~?"
"체력. 저는 탱커니까, 최대한 체력이나 방어가오르는 걸로 부탁 드리죠."
"예이~"
스콧은 얼굴 전체를 뒤덮는 일회용 문신을 받고 있었다.
문신가(타투이스트, tattooist)라는 히든 클래스를 가진 사람이 있었던 덕분이다.
이미 다른 길드를 포함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이자에게 거금을 내고 문신을 받아갔다.
"문양은 시간이 없으시니 제 마음대로 할게요~"
남자면서 말 꼬리를 이상하게 올리는 수상한 자였다.
그러나 문신의 효과는 발군.
최근 소문이 자자한 도시의 셰프가 만든다는 요리와도 맞먹는다고 한다.
[얼굴에 전갈 모양의 문신이 새겨졌습니다.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신의 피부가 전갈처럼 단단해집니다.]
- 물리 방어력 +10
- 체력 + 7
- 지속 시간 2시간 (지속 시간이 종료됨과 동시에 문신 역시 사라집니다.)
"자, 여기 거울입니다~ 마음에 드시나요?"
"흠... 전갈이라... 좋군요. 영구 문신은 없습니까?"
"있지만, 지금은 불가능 해요. 특수한 문신 액이 필요한데, 지금은 구할 수 없으니까요~ 아! 물론 방송에 나온 그 유~명한 연금술사라면 만들 수 있을지 또 모르겠네요. 목소리가 참 귀엽던데~ 여자라서 아쉽네요. 호~호~"
스콧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신가의 말투가 들을수록 거슬렸기 때문이다.
"고맙소."
금화 10개를 남기고 서둘러 천막 밖으로 떠났다.
"후훗. 부끄러워 하시기는~"
뒤늦게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살짝 닭살이 돋았다.
천막에서 나온 스콧은, 서둘러 길드원들을 소집했다.
"BI 길드는?"
"북쪽입니다."
"뭐, 좋습니다. 그럼 우리는 서쪽을 맡도록 하겠습니다. 힐러를 제외한 44레벨 이하는 이 장소에서 대기. 힐러는 레벨에 상관없이 전부 출발합니다."
예!!
스콧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녀석들이 강했던 건, 남아도는 마나 포션 덕분이었을 테지.'
마나 포션을 구매하러 풍차 마을에 갔을 때 눈치챘다.
김갑부라는 작자와, 주변의 꼬맹이들.
그들은 분명 자신이 지하 동굴에서 만난 기억이 있는 자들이었다.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굴욕의 날을.
"이번 전투에서 공헌도 1위를 차지하는 건 우리 길드여야 합니다. 포션 아끼지 마세요. 마족이 드롭하는 아이템. 특히 영웅 등급은 전부 우리 차지 여야 합니다!"
"예! 길마님!"
"스콧님! 저희만 믿으세요. 번 돈 전부 장비 사는데 몰빵했으니까."
"저도 다른 행성에서 번 돈 전부 끌어다가 판게아에 올인 중입니다."
스콧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마나 회복 옵션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금 사들인 어떤 아이템도, 그것에 비하면 쓰레기나 다름 없어요. 진정한 행성 최강자가 되려면, 오늘 기필코 손에 넣어야 합니다."
그의 의지는 확고했다.
자신의 길드가 고작 5인 파티에 밀린 이유는 그게 전부 일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절대로 마나 회복 옵션이 붙은 무기를 확보해야만 한다.
으악-!!
비명이 들렸다.
"슬슬, 오는 모양입니다."
"자. 대형 맞추시고, 포션 많다고 오바하지 말고, 안전하게 한 마리 씩 갑니다."
예! 스콧님!
고대 마족의 종자들이 천막과 히부린의 던전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덤벼라!!"
총 네 개의 대형 길드가 히부린의 던전을 중심으로 전투를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히부린의 던전을 수호하기라도 하는 듯 했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고대 마족의 씨앗'을 강제로 발아 시키고 있습니다.]
그때 또 다시 들려온 메시지.
히부린에겐 아직도 많은 씨앗이 있었던 모양이다.
놈이 사용한 것은 고대 마족의 주머니였으니,그 안에 얼마나 많은 양의 씨앗이 존재할지 알 수 없었다.
"스콧님. 괘... 괜찮을까요?"
"이놈들 생각보다 약합니다. 걱정 마세요. 놈들을 전부 보물 상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다행인 점은 다가오는 새까만 마족의 종자들이, 지하 동굴에 있던 쿠아만테에 비해 한참이나 약했던 것이다.
당연했다.
쿠아만테는 고블린 돌격 대장이라는 40레벨이 넘는 네임드 몬스터가 숙주였으나, 이놈들은 기껏해야 숲에 돌아다니는 낮은 레벨의 고블린이 모체였다.
콰앙-!!
까앙! 스르릉- 휘익-!
여기 저기서 폭발음을 시작해 쇠가 부딪치는 소음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으윽... 이 놈은 조금 강력합니다."
"탱커 체력 관리 좀 잘 부탁해요. 놈들 중에 정예 고블린들이었던 놈들은 제법 강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언제 네임드가 나타날지 모르니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지난 번 실패를 잊지 마세요."
모든 길드원들이 표정을 다잡았다.
그 날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몇 번이나 회의를 하고, 장비를 업그레이드 하는데 또 얼마나 많은 돈을 썼던 가.
두 번의 실패는 절대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
김갑부 : 야, 인마! 너도 봤지? 씨앗을 뿌린 게 벌써 네 번째야. 이러다 진짜 섬이 초토화 될 지도 모른다고. BI 길드에서 연락 왔는데 던전 앞에서는 벌써 전투를 시작했어. 고대 마족의 종자가 수십 마리나 나타난 상황이라고! 넌 언제까지 거기 있을 거야?
알파 :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 퀘스트 못 깨면, 페어리트리의 마나를 히부린이 전부 흡수할지도 몰라요. 그럼 정말 끝장이에요.
김갑부 : 안다고! 알았으니까, 최대한 빨리 깨고 오라는 소리잖아! 지금!
노랑나비 : 알파 오빠 힘내세요!
세영은 파티원들이 재촉하기 전부터 충분히 다급한 마음이었다.
[4 : 14 ]
히부린이 이 나무에게서 마나를 빨아들일 때마다, 퀘스트의 제한 시간이 본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대체 저 위까지 무슨 수로, 언제 올라가지?'
메르바를 데리고 나무를 오르는 건 무척 더뎠다.
시스템 메시지로 히부린의 행동을 알게 된 뒤로 2분 동안을 쉬지 않고 올라왔는데, 꼭대기는 아직도 까마득했다.
이제 겨우 빛나는 열매가 손에 닿는 장소까지 왔을 뿐이다.
'이건 일반 페어리들이라 했으니, 페어리 퀸은 적어도 열매가 보이지 않는 위까지는 올라가야 할 텐 데...'
마음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런 선택을 한 건 나였어. 내가 책임져야 해.'
세영은 인벤토리에서 각성의 포션을 꺼내 마시기로 했다.
무려 중급 마나 포션과 중급 힐링 포션이 재료인 각성의 포션.
한 병을 만들기 위한 재료비만 해도, 마나 포션의 10 배가 훨씬 넘는다.
당연했다.
현재 중급 포션의 성공 비율은 10% 정도였고, 거기다 힐링 포션도 재료로 들어 가니까.
그러나 히부린의 항아리들 덕분에, 포션을 충분히 제작할수 있었다.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효과도 궁금했고.
[각성의 포션: 1단계 농축]
- <희귀 등급>
- 마시면 강제적으로 잠재력을 끌어 내주는 특수한 포션입니다. 과다 복용할 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모든 효과는 30분 간 유지됩니다.
- 힘, 민첩, 지능 스텟이 20 증가합니다.
- 이동 속도 + 2, 공격 속도 +2
- 농축되지 않은 원액입니다. (최대 10단계까지 가능)
- 거래소 및 경매장에 등록 가능한 아이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