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9화 〉109화. 페어리 가든 (109/122)



〈 109화 〉109화. 페어리 가든

페어리트리의 노래는 계속되고 있었지만, 더는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귀로 들리는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약간의 상쾌함을 느꼈으나 그런 건 처음 몇 초 뿐이었다.
정말 신경 쓰이는 건 히부린의 생사 여부였다.
그러나시스템 메시지가 없었던 걸 보면, 아마 살아 있겠지.


히부린의 던전 앞에서 전투 중이던 파르도 섬의 대형 길드들.
이들에게도 변화는 있었다.

"마나 숏 소드 입니다!"
"숏 소드라니. 단검인 건가? 젠장! 지팡이라면 더 좋았을 걸..."
"길드에 단검 사용자가 없지 않던 가요?"
"뭐, 보조무기로 쓸게 아니라면 팔아야겠지. 그래도 본전은 뽑겠어. 마나 포션 사는데 든 비용보다는 훨씬 비싸겠지."


BI 길드에서 첫 마족 네임드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했다.
영웅 등급의 무기도 얻을  있었다.


운 좋게  마리의 네임드 몬스터가 등장했고, 네 개의 길드에서 각자 한 마리를 맡아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대 마족의 종자 '쿠르투나'가 쓰러졌습니다.]


"저쪽 길드에서도 사냥에 성공한 모양입니다."
"그런가 보군. 제법이야."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2분은 빠르게 잡지 않았습니까?"

BI 길드보다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스콜피온 길드도 마족 사냥에 성공한 모양이다.

"그거야 당연한 소리! BI 길드의 자존심이 있지!"


자존심보다는 레벨의 차이였다.
세영과 잊혀진 세계에서 레벨을 50 후반까지 끌어올린 다수의 BI 길드원들.
반면, 다른 길드의 최고 레벨은 기껏해야 50 레벨이 될까 말까 했다.

와아-!!

갑자기 함성이 들려왔다.


"뭐야? 왜 저리 소란이야?"
"아마도 영웅 등급의 무기를 보고 저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군. 지팡이라도 나왔나? 칫."
"그건 모르겠습니다. 몰래 엿보는 건 비매너라..."

어떤 무기가 나왔는지 모르는 편이 나았다.
자신들이 먼저 사냥했는데, 뒤늦게 사냥한 다른 길드에서 더 좋은 아이템을 획득했다면 배가 아픈법이니까.

"네임드나 한 마리 더 나왔으면 좋겠군. 성에 안 차!"


부길마 빔.
그의 푸념을 듣기라도 했는지 하늘에서 무언가가 내려왔다.
그것은 새하얀 불꽃에 휩싸여있었다.


"크아악-!! 비켜라!"
"히, 히부린입니다. 부길마님!"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뒤에서 BJ군만두의 생방송을 확인하는 역할을 하던 BI 보급이 외쳤다.
그 목소리에 길드원들 전체가 순식간에 전투 태세를 갖췄다.
표정에서 지금까지 없던 긴장감이 묻어 나온다.


"그래! 어디 솜씨 좀 볼까? 이놈이 그렇게 강하다는 최종 보스인가?"

하지만 히부린은 자신의 던전으로 걸어 들어갈 뿐이었다.
아직 세영과 나눈 계약의 종료까지 2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부, 부길마님. 공격은..."
"먼저 달려드는  아니라면 놔둬라! 김갑부가 말하길 퀘스트 목표가 변경되기 전에 선제 공격은 안하는 게 좋다 더 군."
"그런 사람의 말을 믿어도 됩니까?"
"믿는  아니야. 납득을 한 거지. 생각해 보게. 놈은 우리를 왜 공격하지 않았겠어? 그 거울 앞에서도 그렇고. 계약이 어쩌고 하는 말은 진실일 거야."

이들은 자신들이 양보한 거라 착각을 하고 있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아무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자신들이 겨우 목숨을 부지한 거라는 사실을.


페어리트리에게 공격 당했지만,  거대한 가지 하나의 마나를 통째로 빨아들인 히부린이, 지금 얼마나 강력한 존재 인지를 말이다.




시간은 흘러, 히부린과 세영이 나눈 계약의 종료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퀘스트 '파르도섬의 위기' 1단계 목표의 제한 시간 역시 같았다.


다른 두 개의 길드는, BI 길드나 스콜피온 길드에 비하면 한참이나 늦게 고대 마족의 종자 네임드를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이마저도 세영이 판매한 마나 포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나 포션과 힐러의 존재.
그 덕분에 겨우 사냥에 성공했다.

히부린의 던전으로 몰려들던 고대 마족의 종자들.
 개의 길드는 단 명의 사망자 없이 놈들을 모두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 한 자리에 그 길드의 수장들이 모였다.

"이제, 남은 건 히부린 뿐인가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히부린이란 놈은 네 개의 길드가 힘을 모아야 할 겁니다. 방금 저희 길드에서 사냥하는데 성공한 히부린의 수하만 해도 엄청 강했습니다. 하나의 길드 단독으로 상대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 될 겁니다."
"하지만... 던전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시에 진형을 짜 공격할 만한 공간이 충분 할까요? 게다가 놈은 겨우 인간 정도의 크기이지 않습니까?"


조용히 지켜보던 스콧이 말했다.


"밖으로 유인하면 그만입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무슨 수로..."
"몇 명의 희생을 감수해야겠죠. 무사히 성공한다면 좋겠지만."
"예? 스콜피온 길드의 마스터께서는 설마, 길드원들을 미끼로 놈을 유인하자는 말이신가요?"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들은 길드 마스터, 혹은 부 길드 마스터였지만, 길드원에게 죽어라 마라 할 만큼의 영향력을 가진 이는 아직 없었다.
판게아 행성이 열린 지 약 한 달.
아직은 친목 도모를 포함한, 정보 공유나 단체 사냥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을 뿐이다.
서로의 이득을 위해서 모인 집단.
그것이 이들의 길드였다.


길드원들이 지금 당장 자신의 이득과 길드의 이득 중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전자를 선택하는 이가 대부분  것이다.
길드를 위해 희생하라는 명령이 가능한 건, 대륙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쟁탈을 시작한 이후는 돼야 하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자신이 죽더라도 길드가 승리하는 것으로 엄청난 보상이 길드에 주어지고, 그것이 곧 자신의 이득으로 이어 지리라.


하지만 지금은 아직 길드 내 확실한 규율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아직은 전쟁 길드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지금 당장은 누군가에게 희생하라 명령한다면, 그 이상의 충분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 서야, 누가먼저 자신이 죽겠다고 나서겠는가.


아니. 있었다.
명령을따라 줄 길드원들이.
또, 그런 명령을 내릴  있는 사람이   사람  자리에 존재했다.


그건 BI 길드의  이었다.

당연했다.
그는 파밍 기업의 부사장, 길드원들은 부하 직원이었으니까.
게임 안에서는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물고기 밥이라도 돼야 하는 게 직원들이었다.
죽으라 한다고 실제로 죽는 것도 아니고, 게임에 하루 접속하지 못할 뿐이다.
큰 페널티였지만, 회사의 직원인 그들에게 있어서는, 하루 일을 쉬어도 된다는 충분한 변명 거리가 되는 셈이니 오히려 이득일지도 모른다.


"흐음... ?"
"허..."


다른 길드의 수장들도 눈치챘는지, 스윽 빔에게 시선이 향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희생자에게 보상을 주기도 싫었고, 자기 길드원들이 하루 간 접속 못하게되는것도 싫었다.


"음?"

빔은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길드의 수장들이 가소롭게 느껴졌다.
직원들은 블루 아이템사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지, 네놈들을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차마 입에 담지는 못했다.
힘을 모아야 하는 지금 분위기를 깰 수는 없었으니까.
히부린을 쓰러뜨리지 못하면, 회사에 막대한 손실이 생기는  역시 불 보듯 뻔한 일이고 말이다.


'흥. 나를 쉽게 봤군.'

그러니 단지 새로운 제안을 추가 할 뿐이다.
회사의  큰 이익을 위해서.

"저희 길드에서 하죠. 대신 전리품은 저희 길드에서 절반 이상을 가져가겠습니다. 나머지를 세 길드에서 나누시죠."
"예?"
"그건 너무..."
"왜요? 저희 길드에 희생을 강요하셨으면 그 정도는 양보 하셔야죠. 뿐만 아니라 저희 길드가 인원도 제일 많고, 전투력도 높아요.  많은 걸 요구해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미끼 작전을 제시한 스콧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곤란하군요. 다른  몰라도, 마나 흡수 옵션이 붙은 무기는 절대 양보 못합니다."

그건 다른 길드도 마찬가지였다.
또 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마  장면을 김만우가 봤다면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히부린을 쓰러뜨리는 것도, 전리품을 가져가는 것도, 자기 파티원들이 독차지  생각이었으니 말이다.


때 마침 이들을 비웃듯이,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합성종 no. e-304 '오르피아테'가 등장합니다. 인조 마나 코어가 100% 활성화 되었습니다.]


[합성종 no. e-306 '아스탈로'가 등장합니다. 인조 마나 코어가 100% 활성화 되었습니다.]

[합성종 no. e-309 '호르고트'가 등장합니다. 인조 마나 코어가 100% 활성화 되었습니다.]
.
.
.


애초부터 히부린의 던전에 들어가네 마네, 유인을 하네 마네로 논쟁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적들이,  없이 이들을 향해 밖으로 나올 테니까.

*

헌터 마을에도 많은 상위 레벨의 플레이어들이 모여있었다.


"온다! 생방송에서 말한 대로야."
"역시, 여기서 기다리길 잘했네. 길드도 없는데 잘됐군. 여기서 NPC 헌터들 방패로 삼고,  뒤에서  질이나 하며  빨아야지. 크큭."
"와. 정말 새까만데? 저게 마족이라고?"

발아된 고대 마족의 씨앗을 흡수한 수많은 몬스터가, 헌터 마을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헌터 마을의 고블린 헌터들과, 수많은 플레이어들은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진형을 갖췄다.
과연 이들은 얼마나 버틸  있을 것인가.


히부린 던전 앞의 대형 길드들과 비교해, 이들의 수는 수천 명에 달하는 대 인원이었다.
모두가 자신들이 불리할 거라고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자신들은 고블린을 상대  만큼 레벨이 제법 높았고, 여차하면 레벨이 높은 헌터 NPC가 어떻게든 해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다가온 몬스터들 역시 만만치 않았다.

[고대 마족의 종자 '크락툴루토'가 등장하였습니다.]

[고대 마족의 종자 '파락테'가 등장하였습니다.]
.
.
.


다가온 몬스터 중에는 강력한 네임드 몬스터가 여러 마리 존재하고 있었다.
고블린 네임드에 비해 훨씬 강력한 놈들이었다.
무사히 헌터 마을을 지켜낼 수 있을 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

상황은 도시 파르도 역시 별반 다를 것 없었다.
단체 퀘스트를 무시하고 평소처럼 밖에 나가 레벨 업 하던 낮은 레벨의 플레이어들은 이미 사망한 지 오래다.

"성 문을 닫아라!"

NPC기사들은 멀리서 다가오는 몬스터 때를 보고 급히 성문을 걸어 잠궜다.

땡. 땡. 땡. 땡.


광장 중앙의 시계탑 꼭대기에서는 시끄럽게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김만우와 일행들은 생방송을 진행하며 성벽에 올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파가 성벽 위에 진을 치고 있었다.
도시 전체를 두른 거대한 성벽이었지만, 마족을 구경하려는 플레이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씨, 근딜들은 내려가라고. 여긴 원거리 딜러 전용이야."
"쌰발넘아! 전직 안 한 너나 내려가!"

그야말로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군만두는 마족이 다가오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내보내며 진행을 하는데 여념이 없었고, 아이들과 김만우는 파티 대화를 확인하고 있었다.
도무지 세영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갑부 : 야. 너 그러다 진짜 죽어. 이제 한 시간 남았다.


노랑나비 : 오빠. 지금 여기 난리에요. 새까만 마족의 종자들이 엄청 몰려오고 있어요.

김갑부 : 그래. 게다가 히부린 던전 앞에는 키메라도 엄청 많이 나왔데. 여기 정리하고, 곧바로 거기도 도와주러 가야한다고.

김만우는 자신이 획득해야 할 아이템들을 남들에게 뺐길 까봐 걱정이었다.
물론, 약간은 퀘스트의 실패로 섬이 망할 까봐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는 것도 자신에겐 매우 큰 손해 이니까.

김갑부 :야, 인마!  하는데 대답도 없어?

이상했다.
세영은 아까부터 전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영혼이 사라진 녀석의 신체를 등에 메고, 높은 도시의 성벽 위에 오르는 시간 내내 대답이 없었다.


"설마, 오빠 무슨 문제 생긴  아니겠죠? 아까 거대한 파이어볼에 같이 당했다거나..."
"말했잖아. 죽었으면 내가 바로 안 다니까? 난 그놈이랑 같이 산다고!"
"그치만..."

노랑나비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오, 옵니다!"
"덤벼라!!"


하지만 걱정할 틈 같은  없었다.
일단은 도시를 지키기 위해, 다가오는 적들을 상대해야 한다.

"공격! 레드문 꼬맹이 뭐하냐! 빨리 공격해!아이템 다 뺐기겠다!"
"아, 알았어요! 얼어붙은 대지!"

여기저기서 성벽 아래로 화살과 마법들이 쏘아져 내렸다.
김만우는 서둘러 버프용 피리 연주를 시작했다.


반면 근접 딜러나 탱커들은 뒤에서 구경만 하는 인원이 대부분 이었다.
물론 일부는 활이나 쇠뇌를 사용해공격을 시도했지만, 전문 클래스가 아닌 만큼 다소 역부족이었다.
이럴 때가이들에겐 가장 곤욕스러운 법이다.

"내가 상대해 주지!!"
"나도 간다!"

  사람은 성문 아래로 뛰어 내리기도 했다.
그들에게 무모하다 말하기에는 표정들이 밝았다.
 거대한 이벤트에 참여하고싶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관종이거나.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

띠링.


[ 긴급 퀘스트 : 파르도 섬의 위기 ]

- 퀘스트의 1단계 제한 시간이 종료 되었습니다. 퀘스트의 진행도가 자동으로 2단계로 변경됩니다. 1단계에 획득하신 공헌도에 2단계에서 획득하는 공헌도가 자동으로 누적됩니다.


- 고대 마족 히부린이 본격적인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히부린과 그 종자들을 막아내야 합니다.


 퀘스트는 시간 제한이 존재하지 않는 퀘스트입니다. 모든 마족들을 몰아낼 때까지 퀘스트는 종료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들은 퀘스트 진행 도중 사망할 경우,퀘스트의 완전한 실패 혹은 퀘스트의 클리어 시점까지 부활하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단, 시간을 지체할 수록 더 강력한 위험이 찾아올 확률이 점차 상승합니다.)

-분류 : 복합적
-난이도 : C (시간이 지날 수록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합니다. 상승 주기 : ????)
-제한 시간 : 무제한
-보상 : 퀘스트 공헌도 (NPC의 생존 여부와 도시의 파괴 여부에 따라 공헌도가 삭감 될 수 있습니다.)
- 목표 2단계 : 파르도 섬 내의 고대 마족을 모두 처치하라.

퀘스트가 갱신 됐다.
그리고 세영과 히부린이 나눴던 계약 역시 종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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