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113화. 축복
마나 포션을 세영처럼 물 쓰듯 하는 플레이어는 아마 없지 않을까?
그러니 당연스레, 특정 공격 스킬을 마스터의 경지까지 성장 시킨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반복 사용만이 스킬의 레벨을 올릴 수있는 비결이었기 때문이다.
뭐, 요정의 날개 가루 버섯 같은 특수한 아이템 사용을 제외한다면.
연발 사격.
원래부터 마법 등급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매우 좋은 스킬이었다.
화염 탄이라는 강력한 무기의 효과를 극대화시켜주는 스킬이기도 했다.
뭐, 매 공격마다 드는 비용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되어야 수지 타산이 맞지만.
이제는 더 강력하게 변했으니 돈 값을 톡톡히 해줄 것이다.
'10 연발 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크리가 터지기만 하면... 무려, 20 연발... ?'
대체 어느 정도의 데미지를 순간적으로 퍼부을 수 있을지, 벌써 기대 되기 시작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업그레이드 된 스킬로 인해 사냥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크리티컬이 반복해서 터지면서, 순식간에 20 연발 화염 탄이 폭발했다.
세영의 행운 스텟이 지나치게 높아서 그랬는지, 크리티컬 확률도 매우 높은 편이었다.
콰앙-!
BI 길드에서 수십 명이 참여해 7 마리를 사냥하는 동안, 세영은 혼자서 무려 세 마리의 키메라를 처치했다.
레벨 역시 순식간에 69까지 올랐다.
BI 길드원들은 전투를 하면서도 힐끔힐끔 세영의 전투 장면을 훔쳐보기 일수였다.
그리곤 하나같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며 넋이 나갔다.
부길마 빔의 호통이 아니었다면, 전투 도중에 멍을 탄 사람도 있을지 모를 정도였다.
퍼퍼퍼펑-
키잉-!
[크리티컬이 발동했습니다. 연발 사격의 쿨 타임이 초기화됩니다.]
퍼퍼퍼펑!!
시스템 메시지를 끝까지 듣기도 전에, 두 번째 연발 사격 스킬이 불을 뿜었다.
키잉- 하는 시스템 음에 맞춰사용하면 됐으니 메시지를 확인 할 필요조차 없었다.
세영이 단독으로 네 마리 째 키메라를 처치하는데 성공했다.
[합성종 no. e-309 '호르고'를 쓰러뜨리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퀘스트 공헌도를 획득하였습니다.]
[새로운 칭호를 얻었습니다.]
'이제 한 마리에 하나 밖에 안 오르네.'
세영의 레벨이 키메라들 보다 높아지자, 혼자 한 마리를 잡아도 레벨은 단 하나 밖에 상승하지 않게 되었다.
'여긴 이제 끝났나?'
근처는 매우 조용했다.
눈으로 확인 되는 키메라가 전부 쓰러졌기 때문이다.
"휴... 겨우 끝났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부길마님."
"흠... 고생들 했다."
"아이템 회수하겠습니다!"
BI기츠와 BI보급이 나서 키메라로 부터 얻은 전리품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말고, 세영도 땅 위로 사뿐히 내려왔다.
그리고 서둘러 전리품을 주워 담았다.
이는, 김만우가 그에게 당부하고 또당부한 일이었다.
'그렇게 당부 안 해도, 내가 알아서 줍는데...'
자신이 쓰러뜨린 몬스터의 전리품을, 세영이 아무리 욕심이 없는 성격이라도, 남에게 건넬 리가 없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말이다.
'영웅 무기면 10억 원이 넘는데, 이걸 왜 안 줍겠어.'
사람이 사는데 돈이 얼마나 중요한 지, 고향 섬을 떠난 뒤부터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세영은 자신이 쓰러뜨린 키메라에게서 떨어진 번쩍거리는 전리품들을, 서둘러 인벤토리에 주워 담았다.
그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
세영은 가난하고 조금 불편하긴 했지만, 할머니와 섬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매우 행복했다.
그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지난 몇달 간 겪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그는 정말 많은 걸 깨닫게 되었다.
'만약을 대비해야 해...'
세영은 할머니의 수술비를 모두 마련했지만, 수술 뒤의 일도 생각해야만 했다.
수술 후 퇴원하신 뒤에도 병원과 가까운 곳에 모셔야 할 것 같았다.
완쾌하시기 전 까지는 수시로 검사도 받아야 할 테고, 재활 역시 해야 한다고 들었다.
'섬이나 시골이라고 해서 공기가 좋은 것도 아니라고 하니까...'
그래서 할머니의 수술이 끝나더라도, 한 동안은 서울에서 지낼작정이었다.
단순히 서울에 산다는 것이 아니다.
어디보다 편리하고, 더 깨끗하고,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곳에 모시고 싶었다.
좋은 집을 원했고, 좋은 음식을 드셨으면했다.
좋은 옷을 입혀드리고 싶었고, 다시는 아프지 않으셨으면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 돈이 필요해!'
그간, 할머니 수술비를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마음이 급했던 세영.
지금은 그런 압박에서는 벗어났지만, 더 큰 목표가 생겼다.
갑작스러운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것이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라면, 두 번 다시는 돈 때문에 걱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모아 둘 필요가 있었다.
'이제 건강해 지시고 나면, 항상 웃게 해 드려야지.'
원래 불효라는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던 세영이지만, 착하고 말을 잘 듣는것이 효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조금씩 철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는 없지만, 돈이 없으면 지키지 못하는 행복도 있다.'
이것이 세영이 얻은 작은 깨달음이었다.
*
'그나저나, 만우형 일행이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리지?'
아이템을 모두 회수한 세영은 서둘러 퀘스트 정보 창을 호출했다.
[남아있는 몬스터]
- 히부린 : 생존
- 고대 마족의 종자(일반) : 255 개체
- 고대 마족의 종자(정예) : 43 개체
- 고대 마족의 종자(네임드) : 14 개체
- 합성종 (네임드) : 9 개체
도시에선 이미 승기를 잡았고, 잔당을 처치 중이었다.
헌터 마을에는 고대 마족의 종자 네임드가 많이 생존해있었지만, NPC 헌터들과 플레이어가힘을 합쳐 잘 버텨주고 있었다.
모든 건 세영이 발주한 납품 퀘스트 덕이었다.
충분한 치료약의 공급으로,큰 피해를 보지 않고 공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세영이 그런 사실을 지금 알 수는 없었지만, 가장 상황이 곤란하던 것이 히부린의 던전 앞이라 했다.
그리고 보이는 키메라를 모두 처치했다.
이제 남은 것은 히부린을 쓰러뜨리는 일 뿐이라 생각했다.
'고대 마족의 종자도 거의 다 잡았네... 어?'
그런데키메라가 아직 몇 마리나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놈들은 분명 이 던전 주변에만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직 남아 있다고?
게다가 그 수도 제법 많았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후한 저음.
BI 길드 부길마 빔의 것이었다.
"알파님. 우린 가보겠소. 다른 길드가 상대 중인 키메라들이 그대로 살아있는 모양이야!"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
길드들과 연락을 주고 받던 건 김만우였기 때문에, 세영 자신은 정확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는 못했었다.
BI 길드 외에 어떤 길드들이 던전 근처에 모여있는 지도 몰랐다.
"저, 저도 도와드릴게요."
함께 하려 했다.
자신이 페어리의 날개를 사용해 조금 전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면, 매우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됐네. 우리로도 충분 하니까. 혼자서 너무 욕심 부리지 않는 것이 좋아. 자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쓸데없이 적을 늘리지 않도록 하게."
멀어지는 그들을 세영은 멍하니 바라봤다.
적을 만들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 인가 싶었다.
그런 세영을 뒤로 하고, BI 길드는 스콜피온 길드와 또다른 길드를 도와주러 인원을 둘로 나눠 흩어졌다.
정의감? 전우애? 그런 로맨틱한 이유가 아니었다.
"몇 개나 나왔지?"
부길마의 질문에 BI기츠가 대답했다.
"키메라는 물론 고대 마족의 종자를 처치하고얻은 영웅 등급의 무기는 총, 여섯 자루 입니다. 추가로 스킬북도 나왔습니다. 영웅 등급 이외에도희귀 등급의스킬북 역시..."
"스킬북 이야기는 됐다. 하나는단검이었고, 나머지는?"
"네. 활 두 자루, 창 한 자루. 그리고대검과 단검입니다."
전리품이 제법 짭짤했다.
세영에게 적을 늘리지 말라느니 이야기를 꺼낸 이유 역시 이 때문이었다.
아직 남아있는 키메라들을 몽땅자신들이 처치하고, 전리품을 독차지하기 위함이었다.
페어리트리의 축복이라는 말도 안되는 버프 효과와, 넉넉한 마나 포션.
지금만큼 마나 회복 옵션이 붙은 무기를 확보하기에 좋은 타이밍도 없었다.
"단검이또?... 쯧. 지팡이는 없었나?"
"네. 안타깝게도..."
빔은 생각했다.
'운이 없어도 너무 없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지팡이야말로 가장 비싸고, 회사에 가장 필요했건 만.
정말이지 운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장을 비롯한 회사 직원들에게, 길드의파르도 팀 대장이자, 부사장으로서의 체면은 충분히 서게 생겼다.
"자! BI 길드에서 지원 왔소. 한 마리만 빼고,나머지는우리에게 맡기시오!"
알파라는 인물에 대해 궁금함도 있었지만, 물어본다고 모든 걸 털어놓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과 회사에 가장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할 뿐이다.
"공격!!"
빔과 부하들은 사투를 벌이는 스콜피온 길드를 도와, 남은 키메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
세영은 결국 키메라들이 남아있는 장소에는 따라가지 않았다.
던전을 바라보며, 파티 대화를 통해 파티원들이 도착하는데 얼마나 걸리는 지 확인했다.
히부린을 상대하기 전에 그들이 와줬으면 했으니까.
남들은 그를 괴물같이 강하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껏 상대한 적 중에 가장 강할 텐 데, 나 혼자 상대하기에는 벅차겠지?'
공격력에는 물론 자신이 있었다.
방어가 문제였다.
방패도 없었고, 판금 갑옷을 착용한 것도 아니니까.
히부린은 자신과 같은 쇠뇌 사용자.
자칫 했다가는 놈이 사용하는 화염 탄에 거꾸로 당해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무언가 강력한 개조 탄환 역시 사용해 올지도 모르고.
반면, 자신이 소유한 탄환은 대부분 히부린의 레시피를 통해 배운 것이었다.
페어리의 화신이 되었지만, 히부린 역시 페어리의 능력과 날개를 보유하고 있다.
그야말로 세영의 상위 호환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히부린 이리라.
'하지만 나에게는 동료들이 있으니까... 놈이 햄스터가 오기 전까지라도 얌전하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근데, 놈이 던전 안에 있는 건 확실한 건가?'
세영이 히부린의 던전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등 뒤에 인기척이 들렸다.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돌렸다.
"바, 반갑습니다. 처음 뵙습니다. 저는 스카이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샤크라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하늘 상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하늘 상어라 자신을 소개한 사람과, 추가로 두 명의 사람이 다가왔다.
스카이 길드.
키메라를 상대하다가 길드원 대부분은 이미 사망해 하늘 상어를 포함해 단 세 명 만이 생존해 있었다.
"귀여운 이름이네요."
"네? 상어입니다. 샤크. 귀여울 리가 없는데..."
만화책의 주인공 같은 꽃 미남 캐릭터였다.
그러나 귀엽다는 이미지는 결코 아니었다.
세영은 자신이 인사를 하지 않은 걸 뒤늦게 눈치채고 자기 소개를 했다.
"네. 저는 알... 이 아니라 제로라고 합니다."
"네... 제로님. 그 날개는..."
"아, 이거요? 페어리의 날개에요. 저 나무 보이시죠? 페어리트리. 저 나무가 있을 때만 일시적으로 쓸 수 있는 거라서, 아마 이번 퀘스트 한정해서 사용 할 수 있을 거긴 한데... 그래도 엄청 편리해요. 하늘 나는 거 보셨죠?"
세영은 신나 떠들기 시작했다.
하늘을 나는 것은 너무 멋진 경험이었다.
옆에 김만우나 아이들이 있었다면, 한참 자랑 했을지도 모른다.
자랑하고 싶었는데 막상 자랑할 대상이 없었다.
그때 그가 나타난 것이다.
하늘 상어라니,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에 최고의 상대라 생각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떻게 획득 했는지 여쭙고 싶네요."
"음... 글쎄요. 퀘스트 보상이었으니까... 페어리를 만난다면 친구가 되어 보세요."
"네?"
"페어리와 친해지면 받을 수 있다고요."
"아...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이라도 친분을 쌓아 이것 저것 정보를 듣고 싶었던 하늘 상어는,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쳤다.
대화가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흠... 기분 안 상하게 끔, 뭔가 친해 질 방법이 없을까?'
그런 고민 중일 때, 이번엔 세영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저..."
"네! 뭐든 말씀하시죠."
"아니요. 히부린은 어디 있나 해서요. 저 던전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한가요?"
"그 고대 마족 말씀이십니까? 놈이라면 던전 안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직접 본 것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릅니다만 BI 길드에 듣기로는틀림없습니다."
뒤에 있던 사람들 역시 호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영은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다.
페어리트리를 향해 히부린이 마나 흡수 스킬을 사용했다는 것은, 메시지를 통해 들려왔었다.
놈이 무언가 행동을 개시했다면, 시스템을 통해 먼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안전하게 파티원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야겠지...'
세영은 마음을 다잡으며, 파티원이 도착한 후에 던전에돌입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깨 버리려는 듯, 때 맞춰 시스템 메시지가 들려왔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융합을 끝마쳤습니다.]
"뭐?"
너무황당했다.
이것은 또 무슨 날벼락 같은 메시지란 말인가.
세영은 융합 스킬이 뭔지 알고 있었다.
때문인지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갔다.
'스킬을 사용한다는 메시지도 없었는데, 갑자기 끝마쳤다고?'
시스템 메시지로 놈의 행동이 전부 다 들려오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아마, 페어리트리를 향한 공격만 섬 전체에 들려왔던 건 아닐까?
그런 그에게 하늘 상어가 물어왔다.
"제로님. 융합이라는 게 뭘까요?합체라도 하는 걸까요?"
"그게... 그 비슷하긴 한데...정확히는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거에요."
하늘 상어가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으려 던 때였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등장하였습니다.]
드디어 놈이 등장했다.
세영의 시선 끝. 던전의 입구에서 유유히 나타났다.
"저건... 누구야?"
이상했다.
놈의 외형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피부색도, 외형도, 키도, 무엇 하나 메르바를 떠올릴 수 없을 만큼 크게 변해 있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흔적은 페어리의 날개였다.
날개 달린 악마가 그곳에 서 있었다.
"키히히히히. 어떻게 찾으면 좋을까 생각 중이었는데... 바로 여기 있었네? 나의 계약자여. 크흐흐."
세영은 서둘러 쇠뇌를 겨누고 전투 태새를 취했다.
놀란 스카이 길드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심하세요. 놈은 쇠뇌를 써서 원거리 공격을 해 올 거예요."
세영의 충고.
그러나 히부린의 첫 공격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스킬 '화염구 Lv.max', '타오르는 대지 Lv. max', '화염의 비 Lv. max'를 사용합니다.]
마법이었다.
무려 세 가지의 마법을 동시에 시전 중이었다.
등장했던 키메라들 중 마법을 사용하는 놈들이 없었던 이유.
그건 마법을 사용 가능한 키메라를 전부,히부린이 자신과 하나로 융합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