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116화. 히부린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마나 코어가 줄어갈 때마다 놈은 더 크게 몸부림쳤다.
여성스럽던 목소리도 기이하게 변했다.
뿐만 아니었다.
몸의 통제를 잃기라도 했는지, 별다른 움직임을 취하지 못했다.
다리, 팔, 머리... 전신은 계속해서이상하게 변형 중이었다.
푸욱-!
세영은 그 모습을 보며 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다시 창을 찔렀다.
크사발레 창의 내구도는 계속 줄어 들었다.
'대체 , 키메라를 몇 마리나 흡수한 거야?'
벌써 다섯 개의 마나 코어를 파괴 했건 만, 아직도 놈의 몸에는 마나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세영은 아무 곳이나 공격했다.
어디를 찔러도 창의 능력이 발동한 것이다.
꼭 마나 코어의 위치를 공격해야 하는 건 아닌모양이었다.
'뭐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사실 히부린은 현재, 융합 스킬을 통해 육체와 마나 코어가 완벽하게 결합된 상태였다.
놈의 몸 그 자체가 마나 코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때문에심장이 아닌 어디를 찔러도 세영의 공격은 유효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흡수한 키메라의 수 만큼 공격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그랬다.
하나의 마나 코어가 창에 마나를 흡수 당해 기능이 정지될 때 마다, 해당 마나 코어를 보유했던 키메라와의 융합이 강제로 해제됐다.
모든 마나 코어가 파괴되기 전까지, 놈은 마나를 전부잃을 리가 없었고 마법 역시 사용 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별 문제될 건 없다.
놈은 융합이 강제 해제 될 때마다, 엄청난 고통에 몸부림 쳐야 했으니까.
세영이 해오는 뻔히 보이는 창 공격을, 반격은 커녕 회피나 방어조차 할 수 없었다.
아니, 몸을 조금 움직이는 것도 불가 했다.
그야말로 서 있는 샌드백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창으로 공격을 반복 중일 때, 갑자기 등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던전의 입구를 통해 누군가 들어왔다.
BI 길드의 사람들이었다.
세영은 그들을 곁눈질로 확인하고, 하던 일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알파님?"
목소리를 낸 건 기츠였다.
빔은 미간을 좁히고 서서히 다가왔고, 트래퍼도 그 뒤를 따랐다.
"히부린은... ?"
히부린의 흉측한 모습을 본 그들 역시 얼굴을 찡그렸다.
"뭐지? 왜 이런 상태지?"
"놈의 체내에 있는 키메라의 마나 코어를 파괴했더니 이런 상태가 됐어요."
"설마, 혼자서 히부린을 상대로 승리하신 겁니까?"
세영은 기츠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푸욱-!
창을 다시 찔러 넣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이 공격은 데미지를 거의 못 줘요. 마나만 없앨 뿐이에요. 다시 움직이기 전에 놈의 마나를 모두 뽑아내야 하거든요. 그럼 마법을 사용하지는 못 할 겁니다."
시선을 오로지 히부린에 고정한 세영.
반복해서 크사발레의 창으로 놈을 꿰뚫었다.
그 반복 작업을, BI 길드의 3인은 멍 하니 바라보았다.
"우, 우리도 공격할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놈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할 때..."
그러나 그들의 기대는 안타깝게도 충족되지 못했다.
"크아아아악-!!"
세영의 공격이 몇 번이나 반복됐을까.
기어코 마지막 마나 코어가 기능을 정지했다.
[고대 마족 히부린의 모든 마나 코어가 파괴되었습니다.]
"이노옴-!! 인가아아안!!"
하지만 아직 히부린의 모든 마나를 전부 빨아들인 건 아니었다.
마나 코어가 없어도, 놈은 마나를 소유할 수 있는 몸이니까.
호문클루스 히부린이라는 슬라임의 능력이 아직 남았으니 말이다.
'이제 마나 코어가 아닌, 진짜 놈의 심장에 창을 찔러 넣어야 해!'
그러나 육체의 강제적인 변형이 멈춘 히부린은,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게다가 몹시 분노한 상태다.
쉴 틈도 주지 않고 공격을 개시했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스킬 "화염구 Lv. 6'를 사용합니다.]
"모두 피하세요!"
"내 뒤로 숨어라!"
세영은 모퉁이 뒤로 순간 이동했고, BI 길드원들은 빔의 방패 뒤에 몸을 숨겼다.
화르르르...
콰앙-!!
화염구가 빔의 방패에 닿으며 폭발했다.
"크윽..."
역시 보스 몬스터.
화염은 던전 입구로 난 일직선의 통로를 순식간에 가득 메웠다.
빔의 방패를 뚫고 엄청난 화염 데미지가 그들을 관통했다.
모퉁이 뒤로 숨었던 세영만 피해를 입지 않았다.
"힐!!"
다행히누구도 사망에 이를 정도의 데미지를 입진 않았다.
방패로인해 직격은 피했기 때문이리라.
"힐!"
기츠가 사용한 회복 스킬로, 그들은 순식간에 모든 체력을 회복하는데 성공했다.
세영은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제 한 번만... 한 번만 더 찌르면 끝나는데...'
물론, 지금까지 반복된 창 공격 역시 분명한 효과를 보였다.
놈의 마법이 확연하게 약해진 것이다.
눈으로 보기에도 그랬지만, 시스템 메시지로 들려온 내용은 더 큰 확신을 주었다.
아직도 놈은 괴물같이 강력하지만, 방금 사용 한 화염구의 스킬 레벨은 마스터에서 6으로 낮아져 있었다.
하지만 놈의 마법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도, 마지막 한 번의 공격이 더 필요했다.
"빌어먹을 인간 놈드을... 용서치 않겠다!"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대는 히부린.
세영은 공간의 틈 스킬을 사용, 순식간에 이동해 놈에게 창을 꽂았다.
심장을 찌르려 했으나 놈이 눈치챈 바람에 여의치 않았다.
창은, 몸을 비트는 놈의 왼쪽 어깨에 빗겨 들어갔다.
그래도 마나를 빨아들이는 효과는 유효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어?'
그러나 기대는 어긋났다.
창은 마나를 흡수하지 않았다.
모든 마나 코어가 사라졌으니까.
이제 놈의 마나를 흡수하려면, 심장을 정확히 공격해야 만 한다.
보스 답게 간단히 당해주진 않을 모양이다.
"또 당할 줄 아느냐!"
히부린은 세영의 공격 패턴을 외우기라도 했는지, 이번 공격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공간의 틈을 사용한 갑작스러운 공격이었던 만큼 완벽하게 회피하진 못한 모양이지만, 반격은 착실히 준비하고 있었다.
"이노옴!"
[고대 마족 히부린이 스킬 '돌풍 Lv. 3'을 사용합니다]
콰앙-!
엄청난 돌풍이 불었다.
눈을 뜨고 있기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이 세영의 몸을 뒤로 날려 보냈다.
바람이 아닌 강력한 폭발에 휩쓸린 듯 했다.
콰당-!
"으윽..."
직접적인 데미지는 미미했지만, 날아가 던전의 벽에 부딪치며 강력한 충격을 입었다.
곧바로 일어나기 힘들 정도였다.
심지어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놈은 오직 세영만을 노려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터억.
자신보다 머리 하나 더 있는 거구의 기사.
빔의 목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
빔의 몸이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랐다.
"으윽..."
"부, 부길마님! 힐!"
그는 자신의 목을 조이는 히부린의 손을 붙잡고 허공에서 발버둥 칠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괴력.
기사인 그가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면, 가히 놀라운 힘이 아닐 수 없다.
BI기츠가 힐을 사용해 빔의 체력은 회복 시켰지만, 놈의 손아귀에서 그를 되찾아올 수단 같은 건 없었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스킬 '마나 흡수'를 발동합니다.]
놈은 빔의 마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 이럴 목적이었나!"
"기, 기츠님.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트래퍼와 기츠의 표정이 매우 심각한 상황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 명 예외가있었다.
오직세영만이 그 상황에도 표정을 다잡았다.
'역시... 저곳이 틀림없어.'
좀 전,징그럽게 변형되던 히부린의 육체는,지금은 완벽하게제자리를 찾아간 상태다.
찢긴 로브 사이로 드러난 짙은녹색 빛을 띤 몸둥이와 괴상한 얼굴.
놈은 최종적으로 요정의 날개를 단 고블린과 흡사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막사용한 스킬을 통해, 흡수된 빔의 마나가 놈의 어디로 향하는지 알수있었다.
왼쪽 가슴 주변을 시작해 핏줄이 격렬하게 불뚝이고 있다.
'심장이 원래 있던 위치로 되돌아온 거겠지?'
목표에 대한 확신이 섰다.
분명 심장은 저곳에 있다.
세영은 포션으로 마나를 가득 채우고, 스킬 '공간의 틈'을재차 발동했다.
이번 만큼은 실패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마지막이야 히부린!"
세영은 등 뒤에서 히부린의 왼쪽 가슴을 향해 칠흑의 창을 찔러 넣으려 했다.
"끄히히히. 그럴 줄 알았다. 인간."
철컥.
쇠뇌에 탄환이 장전 되는 소리.
아뿔싸.
어느새 히부린의 오른손에 쇠뇌가 쥐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히부린은 가볍게 몸을 비틀어 창을 피했고, 손에 쥔 쇠뇌의 방아쇠를 당겼다.
모든 것은 놈의 계획대로.
세영은 히부린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것이었나?
"죽어라! 인간!"
푹- 푹-
놈의 쇠뇌에서, 알 수 없는 개조 탄환이 연속해서 발사되었다.
창을 쥐고 있을 세영을 노려서 날아갔다.
퉁, 퉁.
그러나 그 장소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목표를 잃은 탄환은 던전의 바닥에 박혔다.
치이이익-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맹독이라도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푸욱-!!
칠흑의 창이 히부린의 왼쪽 가슴을 관통했다.
***
스콧은 사람들을 움직였다.
최종 전투를 앞두고 진형을 완성하는중이었다.
크기가 작고 하늘을 날 수 있는 몬스터는, 여타 게임에서도 상대한 경험이 있었다.
'역시...'
보면 볼 수록 마음에 든다.
BI 길드원들은 스콧의 마음에 쏙 들었다.
자신의 명령에 군말 없이 곧바로 따라주다니.
그는 점점 새로운길드에 대한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스콧님! 누가 나옵니다!"
급히 고개를 돌려 던전 입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온 건 들어갔던 3인과 새로운 한 명의 인물.
바로 알파였다.
"저 자는?"
"제로님입니다. 스콧님. 저분 엄청 강하세요. 하늘도 나시고, 등에 빛나는 날개 보이시죠?"
하늘 상어가 구구절절 설명해 주지 않아도 스콧은 이미 그를 알고 있다.
고블린의 지하 동굴에서 자신에게 굴욕을 주었던 '그 파티'의 일원 이었으니.
"사람들이 말하던 게 저자였습니까?"
"네. 저분이 모두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불리한 던전 안으로 들어가신 제로님 이십니다."
스콧은 하늘 상어가 엄청 귀찮은 타입의 남자라 생각했다.
'이런 놈은 새로 만들 길드에는 절대 들이지 말아야지...'
그런 생각 중일 때, 던전에서 나온 그들이 다가왔다.
빔의 안색이 무척 나빠 보였다.
"안녕하세요. 어? 저희 본 적 있지 않나요?"
세영의 인사에 스콧은 고개를 까딱 할뿐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 스콧을 보며 세영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이상할 틈은 없었다.
하늘 상어가 다가와, 던전 안에서의 활약에 대해 묻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옆에서 그러는 동안, 빔은 바닥난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급히 마나 포션을 꺼내 마셨다.
히부린을 두고 급하게 도망치느라 포션 마실 겨를도 없었다.
마나가 회복돼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사나 대화는 나중이다. 놈은 곧 있으면 나올 테니, 모두 전투 준비다!!"
빔의 외침과 함께,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의 긴장감이 급격히 상승했다.
아주 조금의 시간이 지났다.
던전입구를 향한 모두의 시선.
그러나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왜 안 나오는 거지?"
"저도 잘... 알파님은 혹시 아십니까?"
"글쎄요. 분명 열 받아서 뛰쳐나올 줄 알았는데..."
이상했다.
히부린은 크사발레 창에게 모든 마나를 빼앗겼다.
엄청난 분노로 난동을 피울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던전 밖으로 나오기 전 까지 놈은 난동을 피웠다.
그래도 이제 놈의 마법은 봉쇄했으니,편안하게놈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급히 밖으로 나온 이유도 그것이었다.
'내가 탱킹을 할 수도 없으니까.'
파티원들이 도착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남았고, 누군가 탱킹을 대신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주변에는 대형 길드의 수많은 상위 랭커들이 모여있었다.
'다같이 잡는 게 안전하고 빠르겠지. 아이템은... 만우형이 또 뭐라고 그러려나? 하지만 혼자서 덤비다가 죽을지도 모르고...'
구구구궁-!
갑자기 대지가 흔들렸다.
그리고 하늘을 뒤덮던 시꺼먼 구름이 이상하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콰르릉-!
천둥이 울렸다.
"뭐, 뭡니까?"
"뭐가, 시작하는 거야 또?"
"어, 어떻게 할까요?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부길마님!"
모두가 우왕좌왕하며 빔을 찾았다.
그러나 빔은 말없이 한 곳을 응시했다.
응시한 곳은 다름 아닌 던전의 입구다.
히부린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