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화 〉117화. 히부린
"버러지 같은인간들... 끝까지 나를 방해하다니..."
기다렸던 당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나를 전부 잃어버린 놈은, 한 손에는 쇠뇌를 다른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었다.
"공격 준비!!"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빔의 한 마디로 표정을 다잡기 시작했다.
깡! 깡!
길드원들의 진형은 그대로다.
언덕 위, 던전의 입구에 나타난 히부린을 향해 기사들의 도발 스킬이 시전 됐다.
세영은 창으로 마나를 빨아들인 것 때문에, 놈이 혹시 자신에게 달려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드디어 히부린에 대한 본격적인 공략이 시작되었다.
"어그로 확보 완료!"
"부길마님. 2 파티의 기사가어그로를 확보 했습니다."
"좋다. 2 파티에 힐러 두 명 더 보태서 네 명 채워. 혹시 모르니 공격은 30초 지난 후부터 시작이다."
"예!"
세영은 차분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괜히 자신이먼저 나서 어그로를 먹을 필요는 없었다.
순간적인 데미지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강하니까.
지금부터 연발 사격을 퍼붓기라도 했다가는 다음 상황이 불 보듯 뻔했다.
괜히 먼저 나섰다가 놈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기라도 했다가는 죽기 십상이다.
그에겐 현재 파티원도, 하물며 힐러도 없는 상황.
중급 힐링 포션이 있지만, 그걸 마신다고 놈의 공격을 버텨낼 것 같지는 않았다.
"딜 시작!"
빔의 외침을시작으로 본격적인공략이 시작됐다.
폭풍 같은 공격이 히부린을 향했다.
수십 명의 인원이 동시에 공격하는 것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근접 딜러들은 뒤에서 활이나 쏘는 신세였지만, 안전을위해선 그게 최선이었다.
딜러는너무 많았고, 보스의 체구는 지나치게 작았으니까.
근접 딜러들이 앞에 나서면 원거리 딜러에게 방해만 될 뿐이다.
히부린 역시 잠자코 있지는 않았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늪 슬라임의 점액 항아리를 공중으로 던졌습니다.]
신비한 항아리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화염 탄을 항아리를 향해 발사합니다.]
콰작-!
항아리가 산산조각 나며, 이상한 액체가 사방으로 퍼졌다.
"으악-!! 이게 뭐야?"
"흐이익, 징그러워..."
"모, 몸이 점점 굳어간다!"
날아간 점액은 사람들에게 닿자마자 딱딱하게 굳었다.
공격을 당한 사람들은 한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누군가 옆에 가 굳어버린 점액을 직접 제거해 줄 필요가 있었다.
"기사들! 뭐하나! 딜러들 보호하지 않고!"
빔이 호통쳤다.
위기도 있었지만, 전투는 나름 순탄하게 흘러갔다.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히부린의 체력을 줄일 수 있었다.
탱킹이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마나 포션이 넉넉한 네 명의 힐러가 번갈아 힐을 해 주는 상황.
탱커의 안전이 보장되고 어그로를 확실하게 유지할 수 있다면, 보스 공략은 보통 이런 식의 공방이 이어지는 법이다.
히부린이 날개를 사용해 이리저리 날아다니지 않는 것도 공략이 수월하게 진행되는데 한 몫 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놈이 연금술사라는 사실이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포션을 마셨습니다. 체력이 일부 회복되었습니다.]
"회복까지 한다고?"
"무슨 포션? 치료약보다 많이 회복되나?"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당연하지! 보스니까 한 10% 회복했을지도 모릅니다. 저희랑 같을 리가 없잖아요?"
세영은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한 점을 느꼈다.
'처음부터 페어리트리를 건들지 말고, 마나 포션을 마시면 되는 거아니야? 놈의 목적은 마나였을 테고, 직접 만들면 됐을 텐 데.'
그러나 히부린에게는 마나 포션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포션도 거의 없었다.
현재 소유한 포션은 모두 수백 년 전 만들어 두었던 것들 뿐이었다.
제작을 시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포션의 주 재료인 마나 허브티. 그것이 가득 담긴 항아리들.
비밀 창고에 잘 숨겨둔 수십 개의 그 항아리가, 모조리... 감쪽같이사라져버린 탓이다.
아마, 그 항아리를 전부 세영이 가져간 걸 알았다면, 히부린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려 들었을 것이다.
지금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세영은 공격 중인 마법사들의 옆에 서서, 화염 탄을 사용한 평범한 공격만 반복했다.
아직은 스킬 사용을 자제하고 있던 것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어그로 때문이다.
'슬슬 사용해도 될까? 우리 파티에 힐러라도 있었으면 생각도 안하고 공격했을 텐 데...'
이전까지는 개조한 힐링 탄환을 사용하면 됐으니, 파티에 따로 힐러가 필요하진 않았다.
세영이 그 역할을 차고도 넘칠 정도로 충분하게 대체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네임드 몬스터의 공격을 혼자서 받아내야 하는 경우다.
그 능력이 정작 자기 자신의 회복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포션을 동시에 여러 병 꺼내 한 번에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그는 쌍 쇠뇌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자신의 체력을 회복하는것에 있어서는 무척 번거로웠다.
체력을 관리해 줄 힐러의 필요성을 이제야 절실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뭐, 당장은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이 정도 시간이면 어그로는 충분하겠지?'
벌써전투는 십 분 가량 지속됐다.
그 동안 히부린이 기사 이외의 인물에게 시선을 돌린 적은 없었다.
한 마디로 탱커가 안정적으로 어그로를 유지 중인 상황.
드디어 세영은 본 실력을 발휘하기로 마음 먹었다.
"연발 사격!"
쇠뇌가 본격적으로 불을 뿜기 시작했다.
심지어 양 손에 꺼내 들었다.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남들과는 다른 강력한 화염 탄을, 무려 두 개의 쇠뇌로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콰광-! 콰콰콰콰-
"뭐... 뭐야?"
"미친... 쇠뇌가 무슨 로켓 런처도 아니고!"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입니까? BI 길드에 저런 사람도 있었습니까?"
세영의 진짜 실력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공격을 멈추고 돌아보기 일수였다.
그걸 보던 BI 길드의 부길마.
빔이 참다 못해 호통쳤다.
"뭣들하는가! 공격하지 않고! 놈은 체력을 회복한다. 그 틈을 주지 않고, 강력한 데미지를 몰아쳐서 잡아야 해!"
그는 실은 세영의 화력을 보고 마음이 다급해 졌다.
이대로 전투가 이어진다면, 플레이어들의 승리는 당연 시 되는 상황.
히부린이 드롭 할 아이템에 대한 욕심에 그의 안광이 번뜩였다.
BIM : 마나 포션은 충분하다! 절대로 우리 길드에서 보스 공략 공헌도 1위 파티가 나와야 한다! 3번 마법사 파티! 죽을 힘을 다해 공격해!놈은 최강의 월드 이벤트 보스다! 놈이 줄 고가의 아이템과 그걸로부터 너희들에게 떨어질 인센티브를 생각하라!
그는 길드 대화를 통해, 직원들을 격려(?)했다.
그리고직원들은 그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시스템을 통해 자신들의 귓가에 직접 울리는 통에 한 동안 정신이 없었다.
*
지루한 공방이 지속되고 있을 때, 세영이 그토록 기다리던 파티원들이 도착했다.
연발 사격을 사용하기 시작한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노랑나비가 가장 앞장서 달려왔던 모양인지,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벌써 히부린을 잡고 있는 거예요?"
"왔구나? 어서 와. 히부린을 공격한지 벌써 10분도 더 지났어. 서둘러 놈을 쓰러뜨리는 것이 급선무니까.퀘스트 최종 목표이기도 하고."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옆에서 같이..."
"어떻게 하긴. 다들 죽어라 공격해! 아이템은 우리 파티에서 먹어야 하니까!"
뒤늦게 도착한 김만우가 세영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건 뭔 표정이야? 자,서둘러! 바로 공격 시작!"
"저만 믿으세요! 딜하면바로 저니까! 아이스 스틱의 힘을 보여 드리죠."
"제가 탱킹하고 싶었는데, 그건 무리일 것 같네요..."
햄스터는 실망스러운 목소리를 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난 기사더라도, 지금 들어가서 히부린의 어그로를 빼앗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근데, 저희가 템 먹을 수 있을까요? 저 쪽은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흠... 분명 전설 급 아이템 하나는 나올 텐 데... 거의 월드 이벤트 급 보스니까."
"젠장! 고생은 누가 다했는데!"
김만우가 괜히 짜증을 부렸다.
사실, 여기서 히부린 공략에 참여한 사람들 중, 아이템을 자신이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판게아 행성이 열리고 처음 있는 대형 이벤트였으니까.
그 기대가 큰 것은 매우당연했다.
어디 그뿐이랴.
모두는 머리 속으로 한 가지 아이템을 떠올렸다.
어제 진행된 BJ군만두의 방송.
김갑부라는 사람이 불과 하루 전 공개한 전설 급 지팡이를.
약 한 시간 전, 무려 33억이라는 고가에 낙찰된 그 지팡이말이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놈에게서 전설 아이템이 최소 하나는 나올 거라고.
그리고 그게 자신의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아저씨. 그렇게 화만 내지말고, 버프라도 주세요. 그래야 저희가 조금이라도 더 데미지를넣죠."
"그래. 버프 줄 테니까,죽어라 딜이나 해라!"
아이들의 공격도 그렇지만, 지금껏 본 적 없는 화려한 스킬들이 눈에 띤다.
다들 클래스 마스터를 찾아가 배운 새로운 스킬들을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경매장에서 구입한 신규 스킬들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리고 김만우가 시작한 연주곡 역시, 새로 구매한 악보를 통한 것이었다.
['서릿발의 외침'이 연주되고 있습니다. 주변의 공기가 서늘해 집니다. 해당 지역은 온대 기후로, 서리가 내리지 않는 지역입니다. 일부 효과가 감소합니다.]
- 빙결 속성 공격력이상승합니다. (마법 공격력 +30, 물리 공격력 +10)
- 스킬 '얼어붙은 대지'를 비롯한 빙결 속성 범위 마법의 효과가 대폭 상승합니다.
- 온대 기후 지역에서는 효과의 지속 시간이 단축됩니다. (10분 지속)
이걸로 얼음을 사용하는 마법사 레드문의 공격력이 대폭 상승하는 효과를 얻었다.
물론 파티원 이외의 연주를 감상한 마법사들 역시, 효과 일부를 얻는 것이 가능했다.
김만우의 연주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만큼 그가 구입한 악보는 많았고, 다양한연주를 계속했다.
그가 이렇게 열심히 인 건, 다른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로지 아이템!
어떻게 든 파티원의 공격을 상승 시켜 히부린의 드롭 아이템을 얻고자 함이었다.
그렇게 연주된 곡 중, 세영의 공격력을 엄청나게 상승 시키는 곡이 존재했다.
물론, 알고 연주한 것은 아니었다.
['월광곡'이 연주 중입니다. 아쉽게 달빛이 보이는 장소가 아닙니다. 효과가 대폭 감소합니다.]
- 모든 공격의 크리티컬 확률이 소폭 상승합니다. (크리티컬 확률 6% 상승)
- 달빛이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효과의 지속 시간이 대폭 단축됩니다. (5분 지속)
효과는 감소했어도, 세영에겐 충분했다.
높은 행운 스텟 덕분인지, 안 그래도 높은 크리티컬 확률을 가진 그였다.
같은 6%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훨씬 효과가 컸던 것이다.
키잉-
연발 사격의 마지막 공격이 크리티컬이 되면서 들려오는 시스템 메시지.
그 메시지가 끊임 없이 들려왔고, 세영이 쥔 쇠뇌는 쉼 없이 탄환을 토해냈다.
콰콰광- 콰콰콰-
엄청난 화염의 폭풍이 히부린에게 몰아쳤다.
"우와. 오빠 그건 또 뭐에요?"
"형. 언제 또 그렇게 강해지셨어요?"
"그런 건 나중이야! 집중해서 공격들이나 하라고!"
김만우는 잡담도 못 나누게 막고, 또 다시 다음 연주를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뒤에서 BJ군만두가 그 모든 모습을 생방송으로 중계 중이었다.
*
"대체... 체력이 얼마나 많길래..."
"체력이 줄고 있기는 한 겁니까?"
"줄었다가 포션으로 다시 회복되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20분 동안 공방이 지속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소모한 포션의 가치만 환산해도, 엄청난 금액이었으니.
그리고 이 자리에서 실패하면, 두 번째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절대로 놈을 끝장내야만 한다.
히부린의 공격이 잠시 멈췄다.
"뭐지? 아직 쓰러진 건 아닌데?"
"뭘 하려는 거지?"
"다들 주의해라. 뭔가변화가 있을 것이다! 대비하라!"
그들의 예측은 옳았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맹독 탄환'을 꺼내 개조 쇠뇌에 장착했습니다. 중독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던전 안에서 세영에게 공격했던 그 탄환을 사용하려는 모양이다.
'왜 이제서? 탄환이 부족했나?'
세영은 그것이 의아했지만, 자세한 걸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 메시지는 끝난 게 아니었다.
[고대 마족 히부린의 모든 공격이 강화되며, 일반 공격이 '다발 사격'으로 변경됩니다.]
놈의 탄환이 동시에 여러 발 발사된 건,지금까지는 수십 초에 한 번 정도였다.
사람들은 시스템 메시지를 통해, 그것이 다발 사격 스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나가 없는 녀석이 어떻게 스킬을 사용하지?"
당연히 그런 의문을 품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는 심지어 놈의 모든 공격이 '다발 사격'이 되었으니 더 황당할 것이다.
하지만 세영은 알고 있었다.
히부린이 마나를 잃고도 저런 공격이 가능한 이유를.
그것은 다름 아닌 놈이 소유한 아이템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아이템은 세영도 가지고 있다.
거울안의 세계에서 놈에게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설 등급의 쇠뇌.
히부린의 쇠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