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119화. 히부린
페어리들의 공격이 히부린에게 빗발치고 있었다.
세영도함께 히부린을 공격했다.
"이런 버러지들이~~!!"
사방은 물론 위 아래까지.
온통 페어리가 가로막은 상태였기 때문에, 히부린은 멀리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이에 분노한 히부린.
아직 어그로 수치는 세영이 제일 높았지만, 놈은 발광하며 쇠뇌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놈은 점점 이성을 잃고 있었다.
'날개만 없었다면 정말 좋았으련만...'
놈은 이리저리 비행하며, 페어리들의 공격과 세영의 화염 탄을 회피했다.
물론 모든 공격을 피하진 못했지만, 제법 버티는 중이었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폭독 탄환을 쇠뇌에 장전하였습니다.]
'언제 사용하나 했지.'
히부린에게 전설 쇠뇌를 얻을 당시, 놈이 함께 제시했던 아이템 목록에는 다양한 레시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아무리 봐도 공격용으로 밖에 생각들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무슨 무슨 독이라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레시피가 있다는 건, 당연히 완성품도 있을 거란 소리고, 히부린이 그걸 탄환으로 개조해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가진 모든 수단을 강구하기 시작한 걸 보면, 놈은 진정 궁지에 몰린 모양이다.
"모두 조심해! 특수한 효과가 있는 공격을 해 올 거야!"
세영이 외쳤다.
메르바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걱정마. 알파. 과거와는 다를 거야. 나 혼자 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많은 동료들이 있어. 그리고 당신도... 아니,파르도 섬의 모두가 함께 싸워주고 있으니까. 그리고 페어리의 신목이 힘을 빌려 줄 거야."
히부린의 새로운 탄환은 다수의 페어리를 향해 발사 됐다.
탄환의 이름으로 유추하건 데, 닿으면 안에 담긴 독이 폭발하는 형태가 아닐까 한다.
[페어리 퀸이 스킬 '수호의 축복'을 사용합니다. 페어리트리가 페어리 퀸의 부름에 응답합니다.]
쏴아아아아아-.
거대한 페어리트리의 가지가 흔들렸다.
그리고 선선한바람이 불어왔다.
히부린의 쇠뇌를 떠난 탄환은 페어리들의 눈앞에서 멈춰 섰다.
갑자기 나타난 투명한 막이 페어리의 육체를 감싸며 탄환을 막아낸 것이다.
폭독 탄환은 메르바의 축복에 힘으로 생성 된 보호막에 부딪치며 허공에서 폭발했다.
검보라색의 독 안개가 피어 올랐다.
치이이이-
[페어리트리의 축복으로 독 안개에 저항합니다.]
공격당한 페어리들의 전신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와! 메르바, 너 정말 굉장하구나?"
메르바는 그런 세영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조심 해야 해. 이걸 몇 번이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더 서둘러 놈을 처치해야 해."
히부린은반복해서 다른 탄환으로 교체해 공격을 시도했다.
하나같이 보호막 없이 받아냈다 간, 목숨이 위태로울 만한 위험한 것이었다.
하지만 번번이 공격을 막아준 메르바 덕분에 아직 피해는 없었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녀의 혈색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작은 소녀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모양새가, 세영의 눈에는 몹시 안쓰러워 보였다.
"메르바 괜찮아?"
"응... 아직은... 다시 눈을 뜬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거니까 걱정마. 하지만 축복은 앞으로 세 번 정도가 한계일 거야."
놈을, 히부린을 빨리 처치해야만 한다.
그러나 세영의 탄환은 좀처럼 놈에게 적중하지 못하고 있다.
놈은 이 와중에도, 세영의 공격 만은 어떻게 든 회피하려는 것 같았다.
가끔 피하지 못한 공격조차 방패로 철저하게막아내기 일수였다.
'역시 더 가까이 가서 공격해야겠어.'
날개를 사용해 다가가기는 쉽지 않다.
놈은 분명 세영보다 더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그걸 사용해 보자.'
세영은 급히 마나 포션을 꺼내 손에 들고 스킬을 발동했다.
마나 탐식.
지금껏 단 한번도 사용한 적 없던 스킬을 사용했다.
마나의 저주에 빠진 지금, 공중에서 순간 이동을 반복해 사용하기 위해서 였다.
[마나 탐식을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분 간 흡수하는 모든 마나의 양 만큼 당신의 최대 마나량이 증가합니다. 부작용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마나의 저주가 1분 간 유예 됩니다.]
갑자기 쿵쿵거리며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까지 들려오기 시작했다.
포션을 마시기도 전부터 이럴 줄이야.
하지만 뜻밖의 운도 따라주었다.
저주가 1분 간 정지된것이다.
세영은 급하게 마나 포션을 마시기 시작했다.
중급 마나 포션.
왼손으로 쉴 새 없이 반복해서 마셨다.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히부린을 향해 화염 탄을 날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서둘러야 해.'
그 짧은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
메르바에게 한계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보호 받지 못한 페어리가 놈의 탄환에 당하고 말았다.
세영은 포션을 마시며 그 장면을 지켜보고 급히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다시 멈춰 섰다.
페어리가 무사했기 때문이다.
'다행이야'
페어리는 거대해진 육체만 원래의 크기로 되돌아갔을 뿐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물론 또 다시 공격 당한다면 결코 무사하지 못하겠지만.
변화는 히부린에게도 있었다.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최후의 발악인지 모를 일이다.
"모조리... 모조리 흡수해 주마!!"
찢어질 듯한 놈의 목소리가 불타버린 고블린 숲 전체에 울려퍼졌다.
[고대 마족 히부린이 광기에 휩싸였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놈은 한계가 온 것이 분명했다.
최후의 최후에, 또 다시 흡수를 사용하려는 모양이다.
놈을 막아 서야 한다.
[마나 탐식을 끝마쳤습니다. 당신의 최대 마나량이 5900만큼 증가하였습니다. 마나가 바닥날 때까지, 더는 마나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유예 되었던 마나의 저주가 다시 발동합니다. 매 초 10의 마나가 소멸합니다.]
다행히 늦지 않았다.
온 몸에 충만하게 차오른 마나는, 하늘을 나는 것만 같은 황홀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
실제로 하늘을 날고 있었지만, 조금은 다른 감각이었다.
세영은 쇠뇌를 꺼내 손에 쥐었다.
한 손에는 전설 쇠뇌를, 다른 한 손에는 영웅 등급의 쇠뇌를 쥐었다.
탄환은 모두 화염 탄.
쇠뇌는 각각 노랗고, 붉은 빛을 뿜어 내기 시작했다.
쇠뇌와 방패를 집어 넣고 메르바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히부린.
놈의 목표는 페어리 퀸이 분명했다.
이제와서 다시 그녀를 흡수하려는 것일까?
아니, 마나만 흡수하려 생각한 것 일수도 있겠다.
"공간의 틈."
세영은 스킬을 사용해 놈의 바로 앞으로 날아갔다.
"비켜라! 나를 방해하지 마라 인가안!"
히부린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세영을 확인하고, 급히 선회해 재차 메르바를 노려 날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그보다 빠르게 세영이 움직였다.
손에 쥔 두 개의 쇠뇌가 불을 뿜었다.
키잉.
크리티컬이 터지며 연달아 발동한 연발 사격.
스무 개의 화염 탄이 하나도 빠짐없이 히부린에게 적중했다.
"크아악! 이, 이노오오오옴!"
"아직 끝이 아니야!"
빠른 속도로 회피하려는 히부린을, 세영은 뒤쫓아갔다.
당연히 순간 이동을 사용해서다.
넘치는 마나량 덕분이다.
한번 공격하고 다시 도망쳐서 포션을 마시길 반복할 때와 비교하면, 같은 시간 동안 무려 다섯 배는 많은 딜을 폭발 시킬 수 있었다.
콰과과과과광-
공중에서 무방비하게 노출된 히부린은, 끊임없이 날아오는 화염 탄의 폭발에 제대로 된 반격 한번 못하고 너덜너덜해 졌다.
동시에 페어리들의 공격도 계속이어졌다.
놈은 점점 더 느려졌고, 공격을 당하는 빈도 역시 점점 늘어갔다.
그리고 결국 멈춰 섰다.
"크아아악- 이대로... 이대로 끝낼 수는..."
콰앙-!!
울분에 찬 목소리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세영이 쏜 화염 탄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그것이 마지막 이었다.
히부린은 결국 불타버린 고블린 숲의 대지 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세영은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뛰는 것 같은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멀어지는 히부린을 내려다 봤다.
'허억, 헉... 드디어...'
드디어 전투가 끝났다.
그토록 강력한 히부린을, 이제 쓰러뜨리는데 성공한 것이다.
정말 오랫동안 반복된 전투였다.
띠링.
[고대 마족 히부린을 처치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
.
.
[퀘스트 '파르도 섬의 위기'의 최종 보스가 쓰러졌습니다.]
[지금부터 관련 영상이 재생됩니다.]
갑자기 주변의 시야가 변했다.
세영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파르도 섬에 존재하는 모든 플레이어에게 강제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영상이었다.
보이는 것은 파르도의 궁전.
행동하지 않아도 주변 환경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궁전 안의 건물.
천장에 음각된 문양들, 조각과 그림이 보인다.
전투를 벌이고 있는 페어리와 알 수 없는 존재.
아니,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페어리가 싸우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마족이었다.
그림과 조각들은 점점 생기를 찾아가더니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보이기 시작했다.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현실이 되었다.
주변은 어느새 궁전 내부가 아니었다.
페어리들이 마족과 한창 전투 중인 장소로변해있었다.
치열한 전투 속에 많은 페어리들이 마족들에게 희생 당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처참한 광경이다.
그때 나타난 여인.
날개를 보니, 페어리가 분명하다.
메르바와 닮았지만,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을 한 그녀는, 메르바 이전의 페어리 퀸이 틀림없어 보였다.
지금 보이는 광경은 수백 수천 년 전의 파르도 섬이었다.
그녀는 축복을 사용해 모든 마족을 몰아내고, 고대 마족의 탑을 봉인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여파로, 수많은 페어리들과 페어리 퀸인 그녀 자신도목숨을 잃었다.
페어리에게 있어서는 정말 가슴 아픈 과거 이리라.
화면은 전환되었고, 다음 보인 것은 페어리 가든 이었다.
이미 눈에 담은 세영과다르게, 모든 플레이어는 그 환상적인광경에 넋이 나갔다.
그리고 거대한 페어리트리의 꼭대기 근처.
영롱한 빛을 띤 열매에서 새로운 페어리 퀸이 탄생했다.
바로 메르바였다.
이 뒤로 보인 것은, 히부린이 섬에 도착해 꾸민 음모에 관한 것이었다.
"끄흐흐흐. 여기야. 바로 여기가 틀림 없어. 난쟁이 요정의 땅. 여기라면 아무에게도 들기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야! 끄이히히히. 밉다. 밉고 밉고 저주스러운 마왕 프라우스. 내 기필코 너를 잡아 먹을 것이야... 키히히히."
히부린의 광기에 찬 목소리와 함께 화면은 전환되었다.
이어진 것은 세영이 이미 거울 뒷면의 심연에서 지켜보았던 바로 그 장면이었다.
메르바가 히부린과 함께 페어리의 차원 거울에 봉인된 그 장면이었다.
메르바는 영혼에 각인된 기억을 통해, 선대의 페어리 퀸과 페어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마족 때문에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히부린에게서 동료들을 지키고자 혼자서 모든 것을 감수하려 했다.
궁전에 있던 그림처럼, 전쟁으로 페어리들을희생 시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 결과가 자신과 함께 히부린을 거울 속에 봉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제 화면은 잊혀진 세계.
그리고 거울속의 세계를 비췄다.
불과 약 25~ 26 시간 전 있었던 일이다.
세영의 파티와, BI 길드의 모두가화면에 등장했다.
물론 당사자들을 제외하고는, 화면에 나타난 인물들이 누군지 알아볼 수 없었다.
교묘하게 달라져 있었으니까.
'와... 디펜스 미션 때 다들 엄청 고생 했구나. 다시 한번 감사하지 않으면...'
영상은 그렇게 계속됐고, 시간대는 불과 한 시간 전으로 변했다.
파르도 섬의 플레이어들이 도시와 헌터 마을에서 고대 마족의 종자를 상대로 전투를 시작했다.
'헌터 마을은 어떻게 된 거지?'
수비에는 성공했지만 헌터 마을은 다수의 네임드 마족을 상대하느라 매우 위태위태 해 보였다.
그때 등장한 것이 페어리들이었다.
'아,헌터 마을에 먼저 갔었구나.'
그리고 영상에 이제 막 쓰러진 히부린과 여러 길드원들이 등장했다.
치열하게 반복된 전투.
공중으로 날아올라 싸운 세영과 페어리들을 비췄다.
파르도 섬의 북쪽 숲.
새까맣게 타버린 고블린 숲의 가운데, 패배하고 쓰러져 버린 히부린의 잔재가 보인다.
그렇게 영상은 마무리 되었다.
띠링.
곧바로 시스템 알람과 메시지가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퀘스트 '파르도 섬의 위기'가 최종 클리어 되었습니다. 공헌도 계산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