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01화
프롤로그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가상현실게임 중 1위를 달리고 있 는 이데아.
그런 이데아의 한국 공식 랭킹 31 위, 화룡의 기사 아그니는 주변을 살폈다.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딘다면 저 뜨 거운 용암에 녹아내리리라.
하멜피스 산맥의 중심지.
화산 내부에 숨겨진 길을 통해 들 어올 수 있는 곳이다. 지도가 없다 면 결코 들어올 수 없는 구역.
화룡의 기사, 아그니가 이곳에 온 이유는 간단했다.
‘화룡의 심장만 먹으면 20위권 랭 커가 될 수 있다!’
화룡의 심장.
그 어떤 아이템보다도 뛰어나다는 용의 심장 중 화염 속성 스킬의 위 력을 2배 이상 증가시켜주는 아이 템! 모든 스킬이 화염 속성인 화룡 의 기사에겐 이보다 더 뛰어난 아이 템은 없으리라.
그것만 얻는다면 아그니는 한국 공 식 랭킹 20위권으로 들 수 있다고 확신했다.
세계에서 게임 최강국으로 알려진 한국에서 랭킹 20위권이라는 것은 달리 말해 세계 30위권 안에 든다 는 것과 다름없다.
아직 서버들이 통합되기 이전이기 에 세계 랭킹이라는 것이 없긴 했지 만.
‘이게 내 시작점이다.’ 고작 20위에 머물 생각이 추호도 없는 아그니다.
이걸 발판으로 시작해 더욱 강해질 것이라 다짐하며 화룡이 있는 던전 에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드르렁, 쿠울? 드르러어엉!”
요란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남 자.
저 남자가 화룡이라면 아그니도 당 황하진 않았으리라.
이곳은 화룡의 구역이었으니. 제집 에서 잠을 자는 게 이상하진 않지 않은가. 그런데 저 남자는 몬스터도, NPC도 아니다. 유저다.
일단 이곳에 NPC가 있을 리가 없 다.
화룡의 기사의 전용 퀘스트로 간신 히 얻어낸 지도를 통해 어렵게 온 장소다. 그런 장소에 NPC가 있었다 면 퀘스트를 클리어하던 도중 누군 가 말해줬으리라.
그런데 그런 말이 없었다.
몬스터일 확률은 더더군다나 없었 다.
‘몬스터가 전설 등급 무기를 저렇 게 도배를 하고 다닐 리가 없지.’
이불을 덮고 본격적으로 자고 있는 남자였으나 드문드문 보이는 액세서 리들을 보니 모두 전설 등급이다.
그런 존재가 몬스터일 리가.
더군다나 아직 던전에 들어가기도 전이다. 그런데 입구 바로 앞에서 쳐 자고 있을 몬스터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스르릉.
저 남자가 유저라면 결코 그냥 둘 수 없었다.
‘뺏길 수 없다.’ 화룡의 심장은 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아이템이다.
그러다 보니 결코 빼앗겨선 안 된 다.
게다가.
‘저 전설 아이템 중 아무거나 나왔 으면 좋겠군.’
탐욕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화룡의 기사 아그니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던전에 들어가기도 전에 득템을 할 수도 있게 생겼는데 어찌 웃음이 나 오지 않으리라. 하나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선공을 취하면 그 뒤 잠에서 깨어 나겠지. 그 후엔 침착하게 싸워야 한다.’
이곳은 다름 아닌 용암지대다.
아까도 확인했듯 발을 조금만 헛디 디면 용암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기 에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
‘이곳에서 태평하게 자고 있는 유 저가 약할 리가 없지. 게다가 화염 내성도 상당하니 아무런 피해 없이 잠을 자고 있는 거겠지.’
화염 내성이 높다는 것은 아그니, 그에게 불리한 적이라는 뜻이다. 모든 공격 스킬이 화염 속성이었으 니.
하나 상대는 아직 잠들어 있다. 선 공을 취한다면 그 정도 불리함은 감 수할 수 있으리라.
‘그보다 누구지? 아는 얼굴은 아닌 데 이곳에 올 정도라면 이름이 알려 졌어야 하는데.’
100위권 안에 있는 대부분의 랭커 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아그니다.
자신의 위로는 경쟁 상대이기에 얼 굴을 익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아래라 해서 뛰어난 자가 올라오지 는 않은가 경계도 늦출 수 없었기에 100위권 랭커들의 얼굴은 모두 기 억해 두는 편이다.
그런데 지금 던전 입구에서 자고 있는 저 남자의 얼굴은 본 기억이 없었다.
랭커가 아니라는 얘기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아그니는 결 코 방심하지 않았다.
이곳까지 왔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강하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기에.
‘비공식 랭커라는 거군. 방심하진 말자.’
그렇게 생각하며 아그니가 검에 화 염을 입힌 채 그대로 쏘아낸다. 화룡의 기사 비기 중 하나인 화룡 출두!
검기가 쏘아지며 붉은 화염이 용의 형상이 되어 상대를 집어삼키는 엄 청난 공격. 이번에도 화염의 용이 저 남자를 집어삼킬 것을 믿어 의심 치 않았다. 그리고 그의 눈을 어지 럽히는 메시지.
[유저를 상대로 선제공격을 했습니 다.]
[사망 시 아이템을 떨어뜨릴 확률 이 높아집니다.] [카르마 치수가 증가합니다.] 메시지를 무시하고 화염의 용이 남 자를 집어삼키는 것을 보려는 순간.
팟!
남자가 순식간에 일어나며 이불과 베개를 인벤토리에 넣곤 화염의 용 을 피했다.
콰가가가가강!
화염의 용은 그대로 바닥을 휩쓸었 고, 그 충격에 동굴 전체가 울렸다.
천장에선 돌들이 떨어졌고, 조금이 지만 용암들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나 그걸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었 다.
‘그걸 피했다고? 자고 있는 상태에 서?’
아그니가 놀란 것은 단순히 그가 피해서가 아니다.
자고 있는 상태에서 피했다.
그리고.
“드르렁, 쿠울?”
지금도 역시 남자는 자고 있는 상 태였다. 그런데 저것을 봐라. 멀쩡하 게 서 있으면서 검을 뽑지 않는가.
무슨 저런 경우가 있단 말인가.
아그니도 그가 자고 있는 것을 보 지 않았다면 그냥 눈을 감고 있는 유저라고 생각할 법한 모습이었다.
‘미친. 진짜 자는 거 맞아?’
그런 생각을 했으나 그리 길게 할 순 없었다.
챙!
빠르게 달려오는 남자의 검을 아그 니는 그대로 검을 들어 막은 뒤 다 시 스킬을 사용하려 했으나 남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블링크다!’
보통 블링크로 이동하는 장소는 상 대의 등 뒤나 머리 위.
아그니는 남자도 그렇게 움직였으 리라 확신한 채 검을 쥐고 빠르게 뒤를 돌아 공격했다. 그러나
휘익.
검은 허공을 갈랐다.
그렇다면 위인가?
빠르게 고개를 들어 확인했으나 위 에도 없다.
그리고 그때.
촤르르르륵!
섬뜩한 사슬 소리가 울렸고, 아그 니는 재빠르게 반응해 자신의 방어 스킬 중 가장 단단한 스킬을 발동했 다.
“화룡의 비늘방패!” 붉은 비늘이 가득한 방패가 허공에 나타나자마자 아그니는 사슬 소리가 들린 곳으로 방패를 들어 막으려 했 다.
하지만.
“커억!”
사슬은 아그니의 방패를 유령처럼 관통한 뒤 그대로 아그니의 심장에 꽂혔다.
그리고 들어오는 데미지.
‘무, 무슨 3분의 1이 까여.’ 고작 한 방에 한국 공식 랭킹 31 위인 그의 생명력이 3분의 1이나 깎였다.
저자는 도대체 누구기에.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상 황이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생명력을 회복하며 공격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그때 나타나는 메시지.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1초간 기절 상태에 들어갑니다.]
‘제길.’
기절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고작 1초라고 할 수도 있으나 랭 커들의 싸움에선 1초는 1분과도 같 다.
그렇게 분해 있는 사이 남자는 빠 르게 거리를 좁히고 그의 목에 검을 찔렀다. 그리고 나타나는 메시지.
[치명타를 허용하셨습니다.]
[상태이상 악몽에 걸립니다. 5초간 환각과 고통을 느낍니다.]
“이, 이게 뭐야? 으아아아악!”
꿈에서라도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광경.
아그니, 그가 제일 무서워하는 바 퀴벌레들이 그의 온몸을 뒤덮는 모 습이 보인다. 감각마저 실제와 같았 기에 더욱 끔찍했다.
그러던 그 순간 아그니의 눈에 또 다른 메시지가 보였다.
[사망하셨습니다. 강제로그아웃 됩 니다.]
[페널티로 현실 시간으로 24시간 접속하실 수 없습니다.]
그 메시지를 끝으로 아그니는 잿빛 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아그니가 아끼 던 영웅 등급 검과 많은 양의 골드 가 떨어져 있었다.
남자는 그것을 본 체도 하지 않곤 다시 던전 입구로 돌아가 이불을 깔 고 잠을 청했다. 아니, 애당초 자고 있는 상태였지만.
그렇게 몇 시간 후. “이 빌어먹을 스킬. 그나마 시간을 지정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긴 한데 랜덤이라면서 매번 던전 들어가기 전에 발동된다니까.”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
진짜로 잠을 잔 것이었는지 뻐근한 듯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응?”
저쪽 바닥에 떨어진 아이템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자기 전에는 분명 없던 아이 템이다.
거기다 저 보라색으로 빛나는 빛은 분명 영웅 등급 아이템.
그런 아이템이 바닥에 굴러다닐 리 가 있겠는가. 이상하다 생각하며 남 자가 아이템에 다가가자 인상을 찌 푸리며 중얼거렸다.
“몽유병 스킬이 발동 됐나 보네.”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하다는 듯 말 하는 남자.
그러나 이내 행복한 미소를 가득 지은 채 영웅 등급 검과 골드들을 쓸어 담았다.
흐흐거리며 웃는 모습이 정상은 아 닌 것처럼 보였다.
“뭐, 미안하긴 하지만 선공했으니 발동된 걸 테니까. 미안하다고 아이 템을 버릴 순 없잖아?”
합리화도 이런 합리화가 없다.
물론 틀린 말은 없었다.
미안하다고 기껏 나온 템을 버릴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것도 영웅 등급 검을 말이다.
이럴 땐 그냥 감사히 받는 게 나 았다.
“이걸로 살림살이 나아졌네. 진짜 개꿀 직업이라니까? 꿀잠 자고 일어 나면 꿀템을 얻네. 흐흐흐.” 남자는 기분 좋다는 듯 중얼거리며 망설임 없이 던전으로 향했다.
아그니조차 긴장을 하던 던전을 아 무렇지도 않게 가다니.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였다. 이런 강자를 아그니가 알지 못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데아가 출시된 지 어언 1년 4개 월.
그러나 남자가 이데아를 시작한 것 은 고작 4개월 전이다. 당연히 지금 레벨은 아직 100위권 랭커의 축에 도 속하지 않았기에 아그니가 알 리 가 없었다.
아니,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을 것 이다.
자신이 레벨도 낮은 이에게 당했다 는 것을 알면 충격일 테니.
“화룡 잡으면 업 좀 하겠지? 하아, 이래서 언제 랭커 되냐.”
푸념을 늘어놓으며 한숨을 쉬는 남 자, 현성은 고개를 저었다.
자면서 랭커를 잡은 주제에 말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