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15화
술을 몇 잔 마시진 않았지만 상당 히 몽롱한 기분이다.
영상으로 돈을 그렇게 잘 벌다니.
별 관심이 없었기에 잘 몰랐는데 그 정도일 줄이야.
재환은 그런 현성의 표정을 보며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돈 잘 버 는지 모르지. 아무리 옛날보다 인식 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영상으로 월 억을 번다는 이미지는 아니지.”
“나도 놀랐다.”
“그러니까 너도 유튜브 하는 거 어 때? 너 중고등학교 때 캡슐방 가면 날아다녔잖아.”
“지금도 날아다닌다. 그리고 안 한 다고 안 했잖아. 아까 말했지? 계약 서 어딨냐니까?”
“흐흐, 진짜 하는 거다? 술 먹고 헛소리했다 지랄하면 안 된다.” “내가 그런 거 본 적 있냐?” 그 말에 둘 다 피식 웃으며 고개 를 끄덕였다.
장난은 여기까지.
현성도 재환도 다소 진지해진 얼굴 로 곱창을 먹으며 말했다.
“일단 내가 준비해야 할 건 뭐냐?”
영상을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 니다.
그러니 현성은 자신도 뭔가를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넌 딱히 할 거 없어, 그냥 접속하 고 ‘영상 촬영’이라고만 말하면 알 아서 다 영상 잡아줘. 그리고 그 파 일을 나한테 보내주면 내가 편집하 면 된다.”
“근데 진짜 나로 되겠냐?”
괜히 걱정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자신의 컨트롤엔 자 신이 있다.
오래 쉬었는데도 녹슬지 않은 검마 냥 날이 잘 서 있었으니. 이데아라 는 가상현실게임이 뛰어난 덕에 컨 트롤이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더 적응되면 더 세밀한 컨트롤도 가능하긴 할 터.
하지만 현성의 머릿속엔 유튜버란 사람들을 즐겁게 해야 한다는 강박 이 있기 때문에 그런지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걱정 마. 요즘은 컨셉 잡고 하는 것도 뜨긴 하지만 요즘 뜨는 건 컨 트롤로 압살하는 게 더 인기가 많다 니까? 진짜 그게 트렌드야.”
“나보다는 네가 더 잘 알겠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잖아. 그럼 네
가 내 유튜브 관리해 줄래?”
“뭐?”
그 말에 재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이 현성을 봤다.
그리고 그 모습에 현성은 피식 웃 으며 말했다.
“인마, 그래도 친군데 그것도 못 해주냐?”
“아니, 그게 아니라 너 그거 다른 놈들한텐 그러지 마라. 내가 착하니 까 그냥 됐다고 넘어가는 거지 다른 놈들이었음 수익 떼먹는다.” “야, 나도 너니까 하는 말이다. 나 는 잘 모르고 네가 관리해 주는 게 좋을 거 같다. 거기서 수익도 딱 5 대5로 나누자.”
“야 씨! 뭔 놈의 5 대 5야! 네가 적어도 8은 먹어야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화내는 재환 을 보며 현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 다.
“야, 그냥 알겠다고 하면 뭐 대수 라고. 내가 힘들 때 네가 등록금으 로 모아둔 돈 나한테 빌려줘서 겨우 현아 병원 치료받게 됐는데. 그 은 혜도 잊으라고? 지랄 마라.”
“그거랑 이거랑……
“같아. 나한테는 그리고 이 정돈 해줄 수 있지 않냐? 친군데? 딱 5 대 5. 그거 아니면 나 영상이고 뭐 고 안 할 거다.”
“허 참.”
그 말에 재환은 피식 웃으며 현성 을 봤다.
씨익 웃는 저 재수 없는 얼굴.
남자다운 미남인 녀석이 행동까지 멋있다.
“내가 너 이래서 싫어. X꺄. 아니, 뭔 얼굴도 잘난 놈이 행동도 멋있 냐. 반칙 아니냐?”
“야, 권투에서 타이슨한테 반칙이 라고 하는 거 봤냐? 그냥 상대가 약했다고 생각하지.”
“그러니까 내가 못생겼다?”
“친구야. 이런 진실 된 말을 하는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너무 많아서 문제다, 씨X.” 그 말에 둘 다 크게 웃으며 건배 를 했다.
오늘따라 술이 참 달게만 느껴졌 다.
오랜 친구를 만났고, 서로 좋은 기 회까지 얻었으니.
재환은 현성을 보며 생각했다.
‘에라이, 내가 절대 5씩이나 먹나 봐라. 무조건 1, 아니, 다 입금시킬 거니까. 그런 줄 알아라.’ 중학생 때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당하던 재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준 친구가 바로 현성이다.
처음에는 열등감에 현성을 미워하 기도 했지만 이젠 전혀 그렇지 않았 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준 친 구.
그런 친구와 수익을 5 대 5로 나 누는 건 염치없다 생각한다.
현성의 영상으로 수입을 받지 않더 라도 그로 인해 유명해질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
‘늘 빛나는 녀석이었으니까.’
이번에도 반드시 그러리라.
컨트롤도 좋고, 외모까지 된다. 거 기다 신 등급 직업?
어디 하나 빠지는 게 없는데 어디 영상이 부족할 리가 있겠는가.
‘이거 공부 좀 더 해야겠다.’
부족한 게 있다면 재환의 실력이리 라.
물론 현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나 재환은 그랬다.
현성의 실력에 어울리는 실력을 맞 춰야 한다 생각하며 정신을 일깨웠 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는 날이자, 오 랜만에 반가운 친구와 술 한잔하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더 마시고 싶었으나 재환이 갑자기 일이 생겨 미안하다면서 짧게 점심 만 먹고 헤어졌다.
물론 영상 얘기라던가 이런저런 얘 기를 하다 보니 4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피식
게임도 오래 못했는데 어언 4시간 이나 친구랑 떠들고 오다니.
웃기지 않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기면증만 아니었다면 지 금 당장에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는 데. 그 점은 조금 아쉽긴 했다.
‘그러고 보니 재환이 녀석이 캡슐 에 저장된 플레이 영상 좀 보내 달 라 했지?’
접속해서 영상 촬영하는 것만 한 퀄리티는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어 느 정도 퀄리티가 보장되어 있기에 한 번 확인차로 보내달라 했었다.
영상을 만들 건 아니고 일단 플레 이 영상을 봐야 감이 잡히니.
그 말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짜식. 열정이 가득하네.’
어릴 적부터 게임하는 것보다 영상 보는 걸 더 좋아하던 재환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젠 영상을 만들게 될 줄이야.
‘꿈을 이룬다는 것은 참 멋있는 일 같네.’
부러웠다.
솔직히 재환이 부러웠다. 현성은 언제 저런 눈으로 생활했었 던가.
고등학교? 중학교?
이제 잊은 지 너무 오래되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저런 눈을 한 재 환이 부럽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멋있는 놈이라니까.’
열등감은 가지지 않았다.
그저 부러워할 뿐 질투하진 않았 다. 재환을 질투해 봐야 자신의 상 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러면 현아를 돌 본 것을 후회할 수도 있었기에.
그러고 싶진 않았다.
애당초 질투심이 들지도 않았지만.
‘나도 열심히 하자.’
친구 녀석이 저리도 열정이 가득한 데 좋은 영상을 줘야 하지 않겠는 가.
최대한 잘 싸우는 모습만으론 부족 하다.
조금 심력이 소모될 수는 있더라도 모든 전투에 전력을 다해야겠다 마 음먹었다.
‘아직 가상현실에서 몸이 안 풀린 것도 있지.’
지금도 뛰어난 컨트롤이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계 속 들었다.
일단 만족은 했지만 앞으로 영상을 만든다면 거기서 만족해선 안 된다. 그냥 강한 게 아닌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자.
그렇게 다짐했다.
‘그래야 그 녀석이 놀라 자빠지는 얼굴을 볼 수 있지 큭큭.’
지금 현성의 컨트롤도 중학교 시절 보다 나았다.
이데아가 그때 나왔단 가상현실보 다 뛰어난 것도 있었지만, 현성 자 체의 정신력이 강해졌기에 가능한 일.
물론 현성은 아직 그걸 느끼지 못 했다.
아주 미세한 차이기 때문에.
그저 돈을 벌기 위해 강해지자던 목표가 여동생을 위해, 친구를 위해 라는 수식어가 붙자 그 무게가 달라 졌다.
그러나 기분 나쁜 무게가 아니다.
현성의 눈 또한 재환이 영상 얘기 를 하던 때의 눈과 다를 바 없어졌 다.
열망과 열정이 가득한 눈.
예전 회사를 다니던 눈과 확연히 차이가 났다.
‘스읍, 한잔 더 하고 싶은데 현아 가 기다리니까 어쩔 수 없네.’
이 기분으로 혼자 어디 가서 한잔 더하고 싶었으나 집에 있는 현아가 떠올랐다.
마치 딸 가진 아버지처럼 실실거리 며 집으로 들어갔다.
“ 나왔다.”
“오빠 왔어? 아휴 술 냄새. 얼마나 마신 거야?”
“응? 얼마 안 마셨어. 각자 2병씩 밖에 안 마셨는데?”
“아휴! 그게 많이 마신 거지! 어서 들어가 쉬어!”
현아의 말에 현성은 웃음이 터졌 다.
말하는 투가 꼭 간병인 아주머니 같아서.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았어. 들어가서 쉴게.”
“총각, 꿀물이라도 타올까요?”
“아닙니다. 적당히 마셔서 딱 좋아 요. 아주머니도 쉬다 퇴근하세요.”
“아유, 알았어요. 그럼 들어가 쉬어 요.”
간병인 아주머니와 현아의 말에 고 개를 끄덕이곤 현성은 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옷도 원래 집에서 입는 것이라 그 냥 모자만 벗어 걸어두곤 캡슐 앞으 로 갔다.
그러곤 캡슐 겉면을 보며 USB를 꽂는 곳을 찾았다.
재환이 보내달라고 한 영상.
‘여기에 USB를 꽂으면 영상이 종 류별로 나온다고 했지?’
그 말에 현성은 책상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치우며 USB를 찾았 다.
마침 하나 발견하곤 캡슐에 꽂았 다.
우웅-가벼운 기계음을 내며 캡슐의 겉면 에 여러 글자들이 떠올랐다.
캡슐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호출 버튼은 없었으나 재환이 말한 영상 복사라는 글자는 있었다.
‘이걸 누르면 된다 했지?’
현성이 그걸 터치하자 여러 항목들 이 나왔다.
그리고 그중 히든 던전-오크의 무 덤이라는 항목이 나왔다.
‘이게 제일 최근이기도 하고, 그나 마 낫겠지?’
바로 전 접속해 플레이하던 영상.
붉은 오크를 잡는 것보다 훨씬 나 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히든 던전-오크 의 무덤항목을 누르자 새로운 옵션 들이 떠올랐다.
꽤 여러 가지였는데 현성은 재미있 는 걸 발견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가면이라.”
영상을 저장할 때 유저의 얼굴에 가면을 쓰게 한 영상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건 재환에게도 못들은 내용이었 다.
보통은 자신의 얼굴을 알리고 싶어 하기에 사용하지 않는 기능이었으나 현성은 오히려 이 기능을 반겼다. 얼굴이 알려져 봐야 좋을 게 없지 않은가.
다른 유저들이 알은 채 하는 것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인기 가 많아지면 먼저 덤벼오는 이들도 생겨날 거다.
그런 수고스러움보다 가면을 쓰는 게 좋다 생각했다.
‘게다가 컨셉도 되고 좋잖아?’
가면을 낀 유저.
은둔 고수와 같은 모습 아니던가. 나름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며 영상 을 USB에 저장을 한 뒤 컴퓨터를 켜고 재환의 메일로 보내 놨다.
‘오늘은 일찍 자자. 어차피 이데아 도 못하는데.’
술도 마셨겠다, 그간 피곤했던 육 체를 쉬어주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 라.
아직 4시였으나 마음만 먹는다면 24시간도 잘 수 있는 현성이다.
그에겐 아직 낮이라는 건 전혀 문 제가 되지 않았다.
현성이 잠든 지 4시간 후. 영상을 모두 확인한 재환에게서 미친 듯이 연락이 왔다.
현성이 전화를 받지 않자 문자를 넣었으나 현성은 이미 깊이 잠들고 난 상태였기에 일어나지 못했다.
[부재중 전화 13건.]
[카카오톡 메시지 35건.]
[재환: 야, 미친 이거 뭐야?]
[재환: 야 괴물 같은 놈아! 이거 뭐냐니까?]
[재환: 아니, 이게 사람이 가능한 플레이인가?]
[재환: 보스 잡을 때 쓴 스킬은 뭐 야? 뭔 바인드 같은 거!]
[재환: 야! 자냐!]
[재환: 야!]
[재환: 메시지 보면 연락 줘라.]
엄청난 영상을 주고 재환을 흥분하 게 만든 현성은 기분 좋은 꿈을 꾸 는지 웃으면서 잠꼬대만 했다.
“흠냐 흠냐. 한 잔 더해! 하하하!
쿠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