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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16화 (16/472)

잠만 자도 랭커 016화

현성과 헤어진 재환은 집에 도착하 자마자 샤워를 한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사장이긴 하나 내일부터 출근인지 라 적당히 쉬려고 했던 그때.

띠링.

메일이 도착했다고 스마트폰이 울 렸다.

‘벌써 보냈나? 짜식. 성실한 건 알 아줘야 한다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술도 마셨겠다, 쉰 다음에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현성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보냈다.

하기야 예전부터 성실한 친구지 않 았는가.

‘메일 먼저 확인하자.’ 어떤 영상일까.

예전에도 컨트롤이 대단하던 현성 이다. 지금이야 좀 떨어졌겠지만, 그 때 반만 하더라도 다른 유튜버들은 충분히 잡을 수 있으리라.

과연 어느 정도일까 예상을 하며 메일을 열어보자 [히든 던전-오크의 무덤.]이라는 제목의 파일이 올라와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누가 초보자 아니랄까봐 19시간 짜리를 통으로 보냈네.” 예상은 했지만 이걸 다 확인할 시 간은 없기에 재환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을 돌려서 이동하는 부분이나 몬스터를 찾아다니는 부 분, 그리고 휴식하는 부분들을 전부 제거했다.

사실 19시간짜리를 언제 다 보고 있겠는가.

대부분의 영상 편집자들은 그 영상 을 다 보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런 무식한 방법을 사용했으나 요즘은 프로그램이 잘 만든 게 워낙 많다 보니 이동하는 부분을 모두 잘랐다. 그러자.

“뭐, 뭐야. 이게.”

19시간 중 고작 2시간 반쯤만 잘 려 16시간 30분짜리 영상이 되어버 렸다.

오류인가 싶어 다시 돌렸으나 역시 나 16시간 30분.

즉 사냥을 한 시간이 무려 16시간 30분이라는 거다.

현실 시간으로 계산한다면 3시간 이상을 계속해서 사냥을 했다는 것.

요즘 프로게이머라 불리는 이들도 이런 강행군은 하지 못한다.

이데아와 현실의 시간이 너무 차이 가 나기에 이데아 안에서 휴식시간 이 길다 보니 현실 시간 집중도는 길어야 1.5시간. 그런데 현성은 그 의 두 배가 넘는 시간을 사냥하는 것이다.

“일단 보자.”

도대체 어떻게 사냥하기에 휴식이 이렇게 짧을까.

친구를 떠나서 이건 영상 편집자로 서 호기심이 강렬해졌다.

그렇게 영상을 트는 순간.

재환은 피식 웃음이 터졌다.

가면을 쓴 현성의 모습.

얼굴은 가렸으나 몸은 확실히 현성 의 체형이었다. 오래 봐온 재환이었 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신비주의 컨셉으로 가는 건가? 나 쁘지 않네. 하긴 요즘 팬 중에 극성 인 애들도 많으니 이것도 나쁘지 않 겠어.’

얼굴을 가리고 사냥하는 유튜버도 꽤 있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잘생긴 얼굴이 다소 아쉽긴 했으나 현성이 원하지 않으니 가린 것이니 딱히 건들 부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오크전사의 원혼이 등장했 을 때 재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레벨이 62? 나랑 만나기 전 영상 이니까 아직 30도 안 됐을 텐데?’

이데아 안에서는 몬스터의 레벨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영상 정보를 확인해 보면 편집자는 알 수 있었다.

그걸 영상에 올리느냐 마느냐는 영 상의 주인에게 달린 것이지만, 현성 의 경우 재환에게 모두 맡겼기 때문 에 재환의 재량이었다.

그리고 현성이 몸을 움직였을 때 재환은 전율했다.

처음에는 견제용으로 마탄사격을 하는 것은 이렇다 할 게 없었다.

모든 유저가 하는 동작이니. 그러 나 그 뒤에 이어진 동작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감격에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군더더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깔끔 한 발도. 뒤이어 이어진 연속 베기.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상처들은 하나같이 급소들을 노리며 벤다.

‘저, 저게 가능한 건가?’

미쳤다고밖에 할 수 없는 동작이었 다.

유체화 스킬을 처음 보는 것인지 현성은 이리저리 확인하던 중 모두 파악했다 판단되었을 때 깔끔하게 죽였다.

그런 후 현성의 움직임은 종횡무진 이라 할 수 있을 법한 움직임으로 오크전사의 원혼들을 도살하고 다녔 다.

“대박…… 이건 영상 편집 할 게 없는데?”

다른 유튜버들의 영상의 경우 보스 를 사냥할 때나 중간 보스를 사냥할 때 영상을 편집해서 만든다. 일반 몬스터의 경우는 아무리 실력이 뛰 어나도 넣지 않는다. 반복되다 보니 질릴 수밖에 없었기에. 그런데 현성 을 봐라.

엘리트 몬스터를 일반 몬스터처럼 썰고 다니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 았다. 마치 한 편의 매드무비를 보 는 듯한 영상!

이 자체로도 엄청난 영상이었다.

‘이것들은 나중에 확인하고 보스랑 싸우는 걸 찾아보자.’

이미 앉은 자리에서 3시간이나 봤 으나 시간이 흐른 줄도 모르고 재환 은 영상을 넘기면서 중간 보스인 오 크주술사의 원념과 전투하는 부분을 봤다.

치고 빠지는 차륜전을 하며 이윽고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끊어졌을 때 재환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 뱉었다.

“와!”

감탄을 하며 절로 박수가 나오는 플레이.

힘의 균형이 무너지자마자 긴장감 이 해소되면서 시원한 사이다를 마 신 것 같은 플레이다!

게다가 별다른 스킬도 사용하지 않 고, 사용한 스킬이라곤 오직 마탄사 격뿐.

컨트롤이 미쳤다고 할 수 있는 광 경.

너무나도 대단했다.

그 뒤에 이어진 2층 영상은 아쉽 지만 일단 넘겼다.

중간 보스도 이럴진대 보스는 과연 어떻겠는가.

‘보스 보자! 보스!’ 영상 편집자라는 사실도 잊고 몰입 하게 되는 영상.

현성이 보스의 앞에 섰을 때 재환 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위기가 달라졌어.’

처음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가 다시 고개를 든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달 라졌다.

현성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

뒤이어 이어진 전투도 마찬가지였 다.

여태까지 보던 현성의 전투와는 완 전 딴판.

컨트롤 자체는 엇비슷하다 할 수 있었다. 반응속도나 움직임 하나하 나가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것은 같다.

그런데 공격하는 스타일이 매우 달 랐다.

‘정교해.’

중간 보스 때는 독하다는 느낌과

함께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더럽다고 할 법한 스타일.

거침없이 상대를 농락하면서 힘을 빠지게 하며 틈을 노리는 스타일이 었다면 보스를 상대하는 지금의 스 타일은 정교한 계산과 오차 없는 움 직임으로 상대를 요리한다.

그래 요리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아까는 사냥개 같다면 지금은 신 사, 혹은 요리사와 같은 깔끔함이 느껴져.’

어떻게 인간이 이럴 수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둘의 차이 는 엄청나게 컸다.

게다가 둘 다 엄청나게 강하다.

둘 중 어느 걸 상대할 거냐고 한 다면 재환 또한 고개를 저으리라. 그냥 죽는 게 낫다고 할 것 같았다.

‘이 새X 조현병있나?’

인격이 여러 개 있나 싶을 정도로 다른 스타일.

사냥개 같은 스타일인 현성도 멋있 었으나 지금 이 신사다운 스타일도 너무 멋있었다.

전자의 현성은 상대를 어지럽힌다 면 후자의 현성은 상대에게 틈을 주 지 않고, 압박해 나간다.

둘 다 숨을 쉬기 힘들 것은 마찬 가지.

이윽고 보스가 2페이즈로 돌입하자 재환은 긴장한 채로 봤다.

지금까지도 힘든 보스였는데 과연 2페이즈 때는 어떤 모습일지. 그런 데 마지막에 현성은 손을 뻗으며 여 태까지 사용하지 않은 스킬을 사용 했다.

‘어? 저건 뭐지?’

필살기라고 하기에는 이팩트가 부 실하다.

그런데 저 스킬의 섬뜩함만큼은 영 상 너머로도 전해졌다.

그리고 그것을 맞은 카락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축 늘어졌다. 그리고 상태이상에 걸렸다는 표시가 뜨자 현성이 다시 손을 뻗어 스킬을 사용 했다.

사신의 사슬!

촤르르르륵!

그 사슬을 보자 재환은 자신도 모 르게 침을 삼켰다.

자신조차 옭매는 듯한 사슬. 그리 고 그 사슬에 맞은 카락은 몸을 떨 며 고통스러워했다.

마지막으로 현성이 마무리하자 카 락은 육중한 몸을 떨며 행복한 미소 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잿빛 가루로 사라졌다.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와.”

영상 편집자들의 직업병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영상에 쉽게 집 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상 편집을 오래 하다 보니 이쯤 에서 어떤 효과를 준다, 혹은 여기 는 잘라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생기는 습관 같은 것.

그런데 현성의 영상은 그런 것을 잊게 해줄 정도로 몰입도가 뛰어났 다.

플레이도 뛰어난데 움직임 자체가 영화와 같아서 한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재미가 있었다.

‘이건 대박이 난다.’

이런 영상을 만드는 유저.

어떤 영상 편집자가 잡고 싶지 않 겠는가.

이 영상을 자신이 건들 수만 있다 면 회사는 천정부지로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다른 유튜버들도 자신의 회사에게 영상을 맡기려 들 것이다.

이런 영상을 만든 영상 편집 회사 인데 누가 맡기고 싶지 않겠는가. 유튜버들뿐만이 아닌 매니지먼트에 서도 연락이 빗발칠 게 분명하다.

‘미쳤다 이건.’

이럴 시간이 없다.

재환은 빠르게 메일을 작성해 자신 의 몇 안 되는 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어 민재야.” -어 형, 아니, 이제 사장님이라 불 러야 하나?

“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보낸 메일 확인해 봐.”

-응, 지금 확인하고 있는데 16시 간짜리네? 아직 프로그램 안 돌렸 어?

“아니, 돌린 거다. 너 지금 이런 말 할 시간에 그거 조금이라도 보면 통화 끊을 거다.”

그 말에 민재라 불린 직원은 어이 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허참, 형이 그렇게 말할 정도야? 가만있어봐.

민재라고 불린 직원은 영상을 틀었 고, 그 뒤로 말이 없었다.

가끔 가다 와! 우와! 하는 소리를 듣곤 재환이 전화를 끊었다.

이럴 시간에 다른 직원들에게 전화 를 돌리는 게 이롭다.

“어 연아. 내가 보낸 메일 확인해 볼래?”

-이것도 업무 외 수당 주시는 거 죠?

“영상 보면 제발 하게 해달라 할 거다.”

_예?

이번에도 민재와 비슷한 반응이었 다.

그리고 그녀 또한 영상을 보자 말 이 없어졌다.

그걸 확인한 재환은 다시 다른 곳 으로 연락을 돌렸다.

마지막 직원이자 자신보다 누나인 사람. 경력은 재환보다 짧았으나 실 력 자체는 재환과 비슷했다.

“예, 누나.”

-메일 온 건 봤는데 이건 뭐니?

“일단 봐주시고 다 보시면 연락 주 세요.”

-16시간짜리를? 보니까 프로그램 돌린 거 같은데 현실 타임으로 10 시간은 한 건가 보지?

“아뇨. 원래 풀 영상이 19시간짜리 였어요.”

-……확인하고 전화 줄게요, 사장 님.

그녀가 존칭을 쓰는 건 업무를 시 작하겠다는 의미와 같았으니 재환은 더 걱정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현성에게 전화를 걸었다.

계속 걸어도 받지 않는 전화.

무음으로 해둔 것일까?

계속 전화하다 참지 못했는지 카카 오톡으로 미친 듯이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여전히 답이 없었다.

보면 연락 달라는 말을 하고 영상 을 다시 틀었다.

자신이 보지 못한 부분을 보기 위 해.

‘12시간은 더 보겠네.’

지금이 이제 9시가 다 되어가니 다 봤을 땐 아침이 되어 있으리라.

하지만 그걸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영상이었다.

‘짜식, 최고의 영상으로 만들어주 마.’

지금도 완벽한 영상.

감히 어딜 손봐야 할지 감도 안 잡히는 영상이나 그래서 더 불타올 랐다.

친구 녀석이 이런 영상을 보내주는 데 더 좋게 바꾸지 못하고 그저 시 간만 편집해 준다면 얼마나 한심한 가.

‘더 열심히 공부한다.’ 현성과 마찬가지로 전력을 다해 공 부를 하겠다고 다짐하는 재환.

역시 친구는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 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다.

“ 하아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일어난 현성 은 시간을 확인하려 스마트폰을 찾 았다.

그리고 화면을 켜는 순간.

“미친.”

어제 재환이 보낸 메시지들을 발견 하곤 머리를 긁적였다.

부재중 전화도 13건이다.

이게 뭔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됐는 지 멍하니 카카오톡이 온 것을 확인 했다.

그리고 다 읽었을 때 영상 때문에 일어난 거라는 걸 깨닫고 잠이 덜 깬 상태로 그대로 재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자고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한 찰나.

-어, 이제 일어났냐?

“어? 너도 일어난 거냐?”

시간은 고작 새벽 6시였다.

보통은 일어났다고 생각하기 힘든 시각.

혹시나 해서 물었는데 아니나 다를 까.

-지금 일어났겠냐? 밤새고 있지, 네 덕분에.

“왜? 영상이 별로냐?”

-뭐? 별로?

그 말을 듣곤 현성은 피식 웃었다.

“별로일 수도 있지 새X야. 뭘 밤 까지 새고 그러냐.”

.......최고야.

“뭐?”

-최고라고. 편집된 영상들 포함 내 가 봐온 영상들 중에 최고였다. 공 식 랭킹 1위도 이런 영상 못 만든 다.

“민망하게 오버는 괜찮았나 보네 어때. 실력 아직 안 죽었지?”

-너 진짜…….

재환은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최고라고 해줘도 오버해서 칭찬한 거라 걸러 듣는 이 녀석을 봐라.

현대 최고의 영상이라 할법한 작품 을 보내 놓고서 하는 소리가 저따위 다.

“아무튼 영상 쓸 만하면 그거부터 올릴래?”

-안 그래도 그거 물어보려고 어제 미친 듯이 연락한 거다.

“나야 올릴 수 있는 퀄리티면 올리 는 게 좋지. 지금 올리면 당장 돈 벌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흐흐흐, 물론이지 내가 일주 일을 밤을 새워서라도 직원들이랑 만들어주마.

“참나, 쉬엄쉬엄해라. 발품도 팔아 야 한다면서.”

그 말에 재환은 웃을 수밖에 없었 다.

발품을 팔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 준 주제에 정작 본인은 알지도 못한 다.

-아무튼 영상은 걱정하지 마. 완성 되고 유튜브에 올리고 나면 알려줄 게.

“응, 수고해라.”

재환은 현성과 그렇게 통화를 끊고 나서 다른 직원들에게 문자를 보내 놨다.

[재환: 우리 첫 일입니다. 그리고 저 녀석 제 친구인데 우리가 앞으로 계속 맡기로 했습니다.]

[김민재: 충성충성충성! 킹갓친구 님 덕에 우리 대기업 될 수 있는 건가요?]

[이연아: 하아, 저 밤새워서 피부 나빠질 거 같으니까 피부화장품은 솔직히 회사에서 사줘야 하는 거 아 니에요? 아니더라도 일하긴 할 거지 만. 영상 진짜 대박. 제가 본 영상 들 중에 최고였어요.]

[유민희: 대기업이 아니라 이 영상 을 독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엄청 난 이득을 볼 거 같네요.]

칭찬에 인색한 민희조차 저런 반응 이다.

현성의 영상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대목.

재환은 그런 팀원들의 말을 보고 정말 어이없어했다.

아무리 자신의 실력을 자신은 잘 모른다고 해도 이건 조금 심한 감이 있었다.

‘자기 영상을 봐야 알겠지. 지금도 영상에 대한 생각을 잊고 다른 생각 하고 있겠지.’

역시 10년지기 친구여서인지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 시각 현성은 아침을 먹기 위해 나온 현아와 아침을 차려준 간병인 아주머니를 보며 웃으며 인사하고 있었다.

“하하, 좋은 아침입니다.” 곧 게임에 접속하면 몽유병 상태에 선 아이템을 수거하지 않는다는 사 실에 그 좋은 아침이 나쁜 아침에 될 현성이었지만, 아직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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