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34화
캡슐에서 나온 아돌, 아니, 이승호 는 소리를 지르며 주변에 있는 물건 들을 사방으로 던졌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린 것인지 벽 에다 대고 주먹을 휘두른다.
그야말로 분노조절 장애가 따로 없 는 모습.
남이 본다면 추하다 할법했으나 그 러고도 씨익씨익 거리며 소리를 질 렀다.
“아 씨X! 개 같은 새끼!”
함정?
그것까진 잘 모르겠다.
그 가면을 쓴 놈의 눈도 놀랐으니 까.
하지만 그놈이 관련되어 있다고는 생각했다.
‘유인당한 거였어.’ 이제 와서 생각하면 척 봐도 유인 당한 거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거였 는데 면접 볼 때 레벨이 53이라는 걸 기억해서 얕잡아 본 게 컸다.
방심한 것.
그러나 그걸 자신의 탓을 하지 않 고 남 탓을 하는 인성! 수준이 보이 는 행실이었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 다.
‘형에게 알려야 한다.’ 가면을 쓴 그놈 뭔가 꿍꿍이가 있 는 게 틀림없다.
바로 스마트폰을 쥐고 라이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강제로그아웃 때문에 나와 있었던 것인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어, 승호야.
“형, 나 죽었어요.”
-뭐? 뭔 개소리야?
“말하면 복잡한데 그 조사단에 있 는 놈 중에 검은 가면 쓴 놈 하나 있는데 그놈 좀 족치려고 숲에 들어 가는 걸 따라갔는데 유인이었고, 다 른 동료가 있는지 제가 바로 당했습 니다. 그 새끼. 뭔가 꿍꿍이가 있는 새끼인 게 틀림없습니다.”
굳이 두 방에 죽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쪽팔렸으니까.
게다가 원래라면 PK할 때 상대가 먼저 공격했을 때 뜨던 메시지가 뜨 지 않았다는 걸 인지하지도 못했다.
워낙 빠르기도 했지만 지금 그런 머리가 돌아갈 만한 이성은 남아 있 지 않았다.
-……진짜냐?
“희준 형, 제가 언제 형한테 거짓 말하는 거 본 적 있습니까? 진짜 죽었어요.”
분노가 목소리에 담겨 있는 게 느 껴졌다.
어릴 때부터 화나면 감추지 못했으 니 진짜 화난 것이리라.
라이너, 아니, 김희준은 이승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갈았다.
-일단 알았다.
“예.”
이승호도 별 말하지 않고 끊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김희준이 화가 났 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가면 너 이 새끼. 넌 뒈졌다.’
분명 김희준이 자신의 복수를 해주 리라.
그렇게 믿었다. 평소 같았으면 조금이라도 더 생각 을 했겠지만, 화난 지금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이승호였다.
김희준은 이승호의 생각대로 화가 났다.
다만 그 화나게 한 대상이 가면을 쓴 유저, 현성이 아닌 이승호라는 점이었다.
“이 머저리 같은 새X.”
조심하라고 말도 해놨는데 이성을 잃고 생각도 못 하는 것을 봐라.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동생이라 오냐오냐해 줬건만.
천지 분간 못 하고 설치는 것은 여전했다.
화나면 머리가 안 돌아가는 것 역 시 그랬다.
‘지금 우리 길드를 건드렸다는 게 뭔 의민지도 모르는 새끼.’
조사단을 꾸리는 것은 초인 길드 다.
그런데 조사단 중에 누가 초인 길 드를 건드렸다?
뭔가 꿍꿍이가 온 건 알면서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이승호에게 화가 났으나 당장 이승호가 중요한 게 아니다.
김희준이 보기에 머저리 같은 놈이 긴 해도 초인 길드에서 제일 강한 게 이승호다.
그런 이승호가 당했다면 다른 길드 원들은 속수무책이란 말.
‘최대한 거르자.’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지만 놈을 떨 어뜨려야 한다.
어차피 이승호는 죽어서 퀘스트에 실패했다.
기다릴 이유도 없었고, 그럴 의리 도 없었다.
‘당장 출발한다.’
적당히 강제로그아웃만 당하지 않 게 쉬려고 했는데 그럴 때가 아니었 다.
놈이 지금 로그아웃 중이라면 차라 리 지금 출발하면서 떨어뜨려 놓는 것이 좋다.
‘그리고 놈의 동료도 알아내야 해.’
혹시 모를 동료도 찾아야 한다.
이승호가 자신이 두 방 만에 죽었 다고 말만 했다면 김희준은 깔끔하 게 포기했을 거다.
그런 괴물을 어떻게 이기겠는가.
그러나 그걸 알려주지 않았기에 길 드원들을 모은다면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이승호는 기습에 수가 부족했 다 생각해서.
처음에 길드원들을 빼놓고 자신과 이승호 둘이서 고성을 먹을 생각이 었는데 그건 이제 힘들게 됐다.
‘길드원들을 풀어야겠어.’
그 생각을 하며 길드 단체 톡방에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당장 접속하라는 메시지.
이유는 게임 안에서 알려줄 테니 접속하라는 말.
다른 길드의 길드장이면 이렇게 왕 처럼 굴지 않았을 테지만 초인 길드 는 달랐다.
모두 김희준에 의해 돌아가는 곳이 었으니 그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 됐다.’
길드원들이 대부분 메시지를 확인 한 걸 보곤 김희준도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홍채를 인식합니다.]
[플레이어 라이너, 플레이어 라이 널 어느 캐릭터로 이데아에 접속하 시겠습니까?]
“라이너로 접속한다.”
김희원이 그렇게 말하자 그는 라이 너의 캐릭터가 되어 이데아에 그대 로 접속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말했다.
“휴식은 끝이다! 출발한다!” 그 말에 대부분 유저들이 얼빠져 있을 때 라이너는 그대로 길드 채팅 으로 길드원들에게 알렸다.
[라이너(길드마스터): 누가 우리 길드를 지금 노리고 있습니다. 일단 파악되는 건 하나지만 동료가 있는 걸로 추정, 이미 아돌이 당했습니 다.]
[필루: 헐? 아돌 님이 당했다고요? 다굴 당하셨다 해도 의외네. 조심해 야겠다.]
[구댕: 우리도 뭉쳐 다녀야겠네. 혹시 모르니까.]
[데슈: 진짜 조심해야겠다. 하긴 돈 될 거 같은 건 기가 막히게 달 려든다니까.]
[파랑트: 기본 4인 1조로 움직입시 다.]
다들 멍청한 건 아니라 뭉쳐 다니 자는 말을 했으나 라이너는 아니라 는 듯 말했다.
[라이너(길드마스터): 뭉치지만 티 내지 맙시다. 혹여나 녀석들에게 들 키면 큰일 납니다. 최대한 티 내지 말고 다들 죽지만 마십시오.] 눈치가 없는 이들이 있기에 상대 중 하나가 가면을 썼다는 사실은 말 하지 않았다.
그저 라이너만 주변을 슬며시 홅으 며 티 나지 않게 놈을 찾았다.
빛을 반사시키지 않는 무광 검정 가면을 쓴 한 유저.
저놈이 틀림없다.
저놈 말고 가면을 쓴 유저는 아무 도 없었으니까.
‘오히려 다행인가?’
처음에는 그저 떼놓으려고만 생각 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놈이 있 는 게 다행이었다.
놈은 아직 자신이 알아차린 걸 모 르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놈과 접촉하는 유저 가 동료일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최대한 티 나지 않게 감시한다. 감히 나를 건드리다니.’ 화를 억누르며 라이너는 고성으로 향하는 지도를 펼쳤다.
이번 퀘스트에 가장 중요한 아이템 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도다. 그랬기에 방향을 확인 후 다시 인벤 토리에 집어넣었다.
라이너 외에도 몇몇 길드원들이 지 도를 가지고 있었으나 오래 꺼내두 고 있어서 좋을 것은 없었다.
노리고 있는 자들이 있는 와중에 지도를 대놓고 꺼내두고 있으면 강 탈당하기 쉽지 않은가.
‘대체 어디서 온 놈들인지.’ 워낙 적이 많았기에 짐작되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놈들이 원하는 것은 추측하 기 쉬웠다.
‘나와 비슷한 목적이다.’
자신과 같이 이번 조사단에서 큰 공을 세워 공적치도 얻고 귀족의 신 임을 얻을 생각.
게다가 베네아의 시장 도르놈이라 면 라이너보다 큰 공을 세운 이가 있다면 바로 라이너를 버리고 그놈 에게 갈아탈 성격인지라 더욱 조심 해야 한다.
‘그렇게 두진 않겠다.’
이쯤 왔다면 전면전을 해볼 만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는 건 초인 길드 보다는 규모가 작은 길드라는 뜻.
그 이점을 절대 잃어선 안 된다.
‘방향도 가끔 틀어서 가야겠군.’ 최대한 혼선을 주기 위해 생각도 하며 현성을 감시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 라이너.
그런 라이너는 누군가 자신을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 했다.
라이너를 감시하는 사람은 다름 아 닌 서아였다.
퀘스트 때문에 라이너를 노려야 한 다. 그 퀘스트 덕에 조사단원들을 몰살해도 PK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저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은가.
다만 아돌은 먼저 PK를 하려 했기 에 과감하게 죽인 것이었다.
‘왜 저 사람을 감시하지?’
아돌이 현성을 따라가는 걸 본 사 람이라곤 서아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현성과 연관되어 있 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아! 아까 로그아웃했을 때 연락을 받았나 보네. 하아, 길드가 없다 보 니 실수했네.’
현성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길드가 없었기에 그 부분을 간과하고 말았 다.
죽으면 연락이 없으니 이상하다 생 각하긴 해도 바로 누가 죽였는지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죽은 유저가 다시 접속하기 전까지는.
일단 그 아돌이라는 놈■이 본 것이 라곤 현성밖에 없었으니 저들의 입 장에선 현성을 감시하는 게 당연했
다.
‘어쩌지?’
알려 줘야 하나 싶었으나 그랬다가 는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 하다.
아돌이 현성에게 동료가 있다는 듯 말했을 테니.
친구 추가를 하지 않았기에 귓속말 도 보낼 수 없었다.
‘다 쓸어버려?’ 그럴 만한 능력도 힘도 있는 서아 다.
그러나 고개를 저었다.
괜히 공적치를 얻으려고 조사단에 낀 저 유저들을 봐라.
다소 지친 표정들이 역력했으나 얼 마나 기대를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면 퀘스트를 주도 하는 초인 길드를 몰살하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다. 또 저들을 몰살하라 는 퀘스트도 아니지 않은가.
‘뭐 이런 퀘스트가 있어서 애매하 게 진짜.’
차라리 몰살 퀘스트였다면 눈 딱 감고 저질렀을 테지만 그런 것도 아 니었다.
[사룡 아퀼레오르의 부활을 막아 라.]
-등급: 직업 전용 퀘스트(전설)
-설명: 먼 옛날 아직 인간들이 중 앙 대륙을 점령하기 전. 악룡이라 불리는 드래곤이 존재했다. 그 드래 곤의 이름은 사룡 아퀼레오르.
죽음의 기운을 뿌리며 대륙에 죽음 으로 몰아가던 사룡 아퀼레오르는 죽음의 신이자 잠의 신인 타나노스 의 사도에 의해 봉인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봉인이 약해지고 말았다.
사룡 아퀼레오르가 봉인된 고성으 로 향해 부활을 저지하라!
(전설 등급 직업 전용 퀘스트는 대 륙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사룡 아퀼레오르의 부활을 막아 라.
-제한 시간 없음. 사룡 아퀼레오르 가 부활 시 퀘스트 실패.
-보상: 직업 전용 스킬.
-실패 시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간 능력치 50% 하락, 사룡 아퀼레오르 의 부활.
그저 부활을 막으라고만 되어 있고 뭐를 해야 할지 알려주지도 않았다.
이렇게 불친절한 퀘스트가 어디 있 냐는 말인가.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사람들을 고성에 들어가게 하면 안 되는 거 같지?’
시기도 적절했다.
조사단을 꾸리는 이벤트가 나타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서아도 퀘스트 를 받았으니까.
‘하아, 어쩌지?’
일단 현성이 노출된 것은 다 서아 의 책임이긴 하다.
그렇다고 현성에게 말해주자니 자
신도 노출될까 봐 걱정이다.
그러나 그때.
‘아니지? 내가 왜 신경 써야 해?’
구해줬는데도 그저 고맙다고만 하 고 간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왜 도와줘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자신의 탓이 기 때문에 양심이 찔리긴 했다.
자존심을 부리려고 한 번 생각은 해봤으나 역시 그건 좀 아닌 거 같 았다.
‘하아, 어쩔 수 없네. 지켜줘야겠 어.’
어차피 알려줘야 저 유저가 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면을 제외하고 다른 무기들을 보 더라도 보통 100 때 착용하는 일반 등급 아이템들이다. 검의 경우 특이 하고 꽤 멋있어 보이긴 했으나 그래 봐야 운 좋게 얻은 희귀 아이템이리 라.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역시 도와줘 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현성이 노출된 것이 자신의 탓이기 도 했고, 이왕 도와줄 거 끝까지 도 와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에도 그냥 고맙다고만 하면 가만 안 둔다.’
보상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녀의 레벨에 맞는 몬스터 한 마 리만 잡아도 저 유저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다 살 수 있을 테니 보상 은 필요 없다.
그냥 이번에는 정말 눈에 띄게 고 마워하는 것을 원했다.
‘하긴 두 번이나 구해주면 고마워 서 어쩔 줄 모르겠지.’
그런 불가능한 기대를 하며 콧노래 를 불렀다.
“흥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