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40화
재환의 그 말에 현성은 상관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진심으로 걱정되었 기에 물었다.
“괜찮냐?”
-뭐가? 아. 일이 늘어나서? 근데 네 영상은 언제든 환영이다.
그 말에 조금 오글거려도 기분은 좋았다.
친구 좋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현성은 걱정되었는지 진심 으로 재환에게 말했다.
“너 그러다 쓰러진다. 좀 쉬엄쉬엄 해.”
-그래야지. 안 그래도 오늘 쉬려고 했다. 직원들도 다들 힘들어하고 말 이야.
“그래, 잘 생각했다. 일단 영상 보 내놔?” - 뭐? 현성의 말에 재환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 반응에 현성은 아차 싶었다.
하기야 쉬라고 했으면서 영상을 보 낸다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그런 반 응일 거다.
마치 회사에서 ‘이 대리님, 퇴근 안 하시나 봐요? 피곤하시겠다’ 그 렇게 걱정하며 말하다 결국 ‘야근하 실 거면 이것도 부탁해용?’ 하며 일거리를 더 주고 가는 상사와 같은 것 아닌가.
회사를 다니며 그 기분을 매우 많 이 느껴봤기에 현성도 알 수 있었 다.
“아 미안하다. 다음에 보낼 게. 좀 쉬어라.”
-뭔 개소리야? 왜 아직 안 보냈 냐? 빨리 보내라.
“……정상은 아니다.”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재환과 현성은 서로에게 그렇게 말 하고 피식 웃었다.
“일단 보내 놓을게. 그리고 그 유 튜브 닉네임은 천천히 생각할게. 급 한 건 아니지?”
-웅, 영상 아직 다 만들지 않았으 니까 천천히 해도 돼. 그런 건 좀 신중하게 하긴 해야 하니까.
하기야 컨셉도 맞추면서 어감도 좋 은 이름이 인기가 많은데 그런 닉네 임을 만들기가 쉬운 일이던가. 그랬 다면 작명가라는 직업은 절대 세상 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알았다. 그럼 쉬어라.”
?오야.
그렇게 통화를 마친 현성은 피식 웃으며 캡슐에서 5인조와 싸웠던 영 상을 USB 에 담았다.
가면은 이미 쓰고 있었기에 처리하 진 않았다.
물론 상대인 5인조들은 가면이나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있겠지만 .
그렇게 컴퓨터로 영상을 옮기자 시 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고작해야 10분. 앞뒤를 자르면 대 략 5분밖에 나오지 않을 거다.
‘10분짜리 영상이면 금방 끝내겠 네.’
전에는 19시간짜리 영상이지 않았 는가.
그걸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졌다.
‘앞으로는 영상 길이도 생각해야겠 네.’
어느덧 게이머 다 되었다 생각하며 현성은 짐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응, 다녀와!”
“총각 올 때 먹고 싶은 고기 사 오 면 그걸로 요리해 줄게요.”
“넵.”
현성은 그렇게 대답하곤 밖으로 나 갔다.
하기야 지금이 1시였으니 현성이 운동을 하고 오면 대략 5시 정도 되었으리라. 보통 그때부터 저녁을 준비했으니 집에 가는 길에 고기 몇
근 사가면 괜찮으리라.
‘삼겹살이나 먹을까?’
그러고 보니 삼겹살을 안 먹은 지 얼마나 됐던가.
회사를 다닐 때 회식도 부장의 입 맛대로 가다 보니 감자탕집 아니면 추어탕집이었다. 고기를 먹고 싶던 직원들은 불만이었으나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부장이 가자면 가야지.
그 덕에 삼겹살을 못 먹은 지 엄 청 오래되었다.
전에 재환이랑 만났을 때도 곱창을 먹었고.
‘삼겹살 좋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삼겹살에 쌈을 싸서 먹는 상상을 하자 벌써부터 군 침이 돌았다.
‘운동 빡세게 하고 들어가면 더 맛 있겠지. 흐흐.’
먼저 헬스장에 간 현성은 스트레칭 으로 몸을 풀며 먼저 러닝머신에 올 랐다.
오자마자 스트레칭을 끝낸 후 가볍 게 달리는 것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위잉, 위잉, 위잉, 위잉.
러닝머신의 기계음이 들리며 작동 하자 현성은 이어폰을 TV에 꽂고 이데아 정보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하는 채널로 돌렸다.
그리고 뛰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숨을 내뱉으며 뉴스 같은 이데아 소식통을 보고 있던 그때.
현성에게도 익숙한 소식이 들려왔 다.
[……얼마 전에 카린 제국 도시 중 하나인 베네아에 나타난 고성 때문 에 조사단을 꾸렸다는 소식 기억하 시나요?]
예쁘장한 MC의 말에 옆에 있던 패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100레벨대의 유저들이 많이 몰리는 베네아라서 생겨난 이벤트여 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이 몰렸었습 니다. 그런데 조사단을 주도하던 초 인 길드가 만행을 저질렀다고 하네 요. 어떻게 된 건가요?]
[네, 원래부터 악명이 자자하던 초 인 길드였습니다만, 이번에는 많은 유저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무슨 일이 있던 건가요?]
[유저들을 이끌어야 할 안내자의 역할을 맡은 초인 길드에서 사람들 을 고의적으로 떨어뜨리려는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 소식에 현성은 솔직히 놀랐 다.
자신이 한 행동이 저런 방송에 나 가게 될 줄이야.
게다가 사태도 꽤 심각했는지 소식 을 전하는 패널의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퀘스트로부터 안내를 지시받은 관 계자가 이걸 악용하여 사람들을 떨 어뜨렸습니다. 애당초 많이 받은 것 은 초인 길드였는데도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사기 아 닌가요?]
[예, 지수 씨의 말이 맞습니다. 게 다가 지금 고성으로 향하고 있는 조 사단 중 초인 길드의 주요 간부들과 길드장인 라이너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설마?]
[아직은 확실하진 않으나 조사단에 참여한 유저들 사이에서는 따로 인 원을 꾸려 고성으로 향했다는 의견 이 강합니다. 정말 파렴치한 짓이
죠.]
사냥를 통제하는 것도 욕을 먹을 만한 짓이다.
그런데 공적치를 주는 제국 이벤트 퀘스트를 독점하려 하다니.
확실히 유저들이 분노할 만한 일이 었다.
현성은 그걸 보면서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부터 열 가지 모두 현성이 한 일이었으니.
‘와. 이게 이렇게 되네.’
현성이 라이너라면 억울해서 눈물 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진짜 독점이라도 했으면 덜 억울하 리라. 그러나 지금 라이너는 게임에 접속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현성에게 죽어버렸으니.
그러나 그걸 말해야 믿을 이가 과 연 있겠는가.
그간 행실이 좋지 못한 초인 길드 의 수장 라이너. 그런 그의 말을 믿 을 리가 없다.
‘좀 미안해지는데.’
물론 진심은 아니었다.
그간 나쁜 짓을 해오던 놈이니 벌 을 받아도 마땅했다.
[이번 일로 인해서 초인 길드원들 도 조사단에서 대거 이탈하는 현상 이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유저 들이 초인 길드의 마크를 본다면 가 만히 있진 않을 테니까요.]
[당연하죠! 이런 일은 다신 일어나 선 안 됩니다! 다 같이 즐기는 게임 에 통제니, 독점이니 너무합니다!]
귀엽게 두 주먹을 쥐며 말하는 MC 지수를 보며 현성은 피식 웃었 다.
저 말이 맞았다.
게임은 즐기려고 하는 거다.
그런데 그걸 가끔 잊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선 안 되는 일 아닌가. 남들에 게 피해를 주지 않고, 자기가 재미 있게 게임을 하면 되는데 왜 그걸 까먹는 것인지.
현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보다 큰일이네.’
조사단이 난리가 났다.
그리고 조사단에는 그 여자가 있 다.
현성보다 압도적인 능력치를 지닌 여자가.
지도를 얻는다면 여자가 현성보다 빨리 고성에 도착할 수도 있는 노 룻.
아직 적인지 아군인지는 알지 못했 지만 어떤 경우에도 현성이 먼저 도 착해야 한다.
‘그래도 아직 지도는 얻지 못했을 거야.’
소식통에도 지도라는 얘기는 일절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아직 여자는 조사단에 있을 확률이 높다.
지도를 가지고 있을 인물이라 생각 되는 라이너가 사라졌으니까. 그리 고 라이너도 생각이 있다면 길드원 들에게 뿌렸던 지도를 회수하지 않
았겠는가.
‘조사단에 하나는 있겠지만, 그래 도 누군지 모르는 이상 여자도 함부 로 나서진 못할 거야.’
지도라는 존재를 모를 텐데 섣불리 길을 안내하는 초인 길드원을 죽일 리도 없었고.
아직 여유는 있다는 생각을 하자 조급한 마음이 풀렸다.
그리고.
‘다행이네. 삼겹살 먹어도 되겠어.’
역시 평범하진 않았다.
한편 현성이 영상으로 재환에게 메 일을 보냈을 때.
재환은 피식 웃으며 메일을 클릭했 다.
“짜식, 빠르긴 해.” 얼굴 상태가 말은 아니었으나 눈만 큼은 살아 있는 재환.
하기야 4일째 밤을 새우고 있는데 멀쩡할 리가 없다. 게다가 재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재환의 앞자리에서 일하는 민재와 연아도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할 만했는지 눈에 불 을 켜며 일하는 중이었다.
제일 냉철했던 민희조차 눈 밑에 기다란 다크서클이 내려앉았다.
“다들 3시까지만 하고, 쉽시다.”
사장인 재환이 말했는데도 다들 대 답이 없었다.
그만큼 집중하는 것이다.
일도 일이지만 현성의 영상에 진정 으로 매료된 이들.
그런 직원들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 다.
‘이 녀석 영상을 보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지.’
여러 영상을 만들며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재환이었음에도 한 번 에 매료된 영상이다. 저들이 별수 있겠는가.
‘일단 나 먼저 봐야겠다, 흐흐.’
여기 새로운 영상이 있다고 하면 다른 이들은 일을 제치더라도 몰렸 을 테지만 재환은 자신이 먼저 보기 위해 굳이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사장인 자신이 먼저 볼 권 한이 있지 않은가.
물론 핑계였고 현성의 팬이 되어버 려 그 영상을 제일 먼저 보고 싶을 뿐이었다.
메일에서 컴퓨터로 옮긴 영상은 저 번과 달리 긴 영상은 아니었다.
‘10분‘?’
재환은 제일 먼저 잡다한 영상을 쳐내는 프로그램을 돌렸다.
현성이라면 알짜배기로 사냥하긴 하나 그래도 이동하는 시간이나 아 이템을 수거하는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렇게 프로그램을 돌린 영상은 고 작 4분밖에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었 다.
오래 사냥을 하는 편인 현성이 이 런 짧은 영상이라니.
어떤 영상인지 기대도 되는 반면 걱정도 들었다.
‘괜히 나 신경 쓴다고 짧은 영상
거리 보냈네.’
게이머가 너무 영상을 신경 쓰면서 플레이하게 되면 자연스러움이 사라 진다.
특히 연기가 어색한 이들의 경우에 는 동작이 커지면서 반격을 당하게 되고 영상은 지루해지기 마련.
현성이 그러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 으나 그도 인간 아닌가.
혹시 모른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 다.
‘일단 보자.’
걱정도 영상을 확인 후 하는 게 맞다.
그렇게 재생된 영상.
1 대 5라는 불리해 보이는 대치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런 불리함 속에서 현성은 장검과 단검을 쥐고 빠르게 달려든 다.
‘단검도 쥐네?’
보통 장검을 두 개 드는 쌍검들은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검을 쥐고 왼손엔 단검을 쥐는 스타일은 처음 보는 거 같았 다.
관련 직업도 없었고.
선두에 선 전사에게 현성이 목에 단검을 박자 시작되었다.
현성의 사냥이.
재환은 이어진 영상을 보며 좀처럼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전에도 플레이 스타일이 화려하다 고 생각했었다.
다만 기사 스타일처럼 보이던 현성 보다는 뭔가 조금 부족하단 느낌을 받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반대였다.
정직해 보이지만 강력한 기사 스타 일과는 정반대.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효율적 이다.
게다가 압도적인 폭력!
거기에 수에 앞선 저 다섯이 겁을 먹지 않았는가.
그렇게 치열하게 싸우던 현성은 도 적 유저가 죽인 후 완전히 달라졌 다.
‘미친. 그새 적응한 건가?’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했다.
그러나 이내 적응한 것인지 미친 듯이 움직이는 현성.
그리고 마지막엔.
채앵!
날아오는 화살을 그대로 두 동강을 낸다.
재환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컨트롤.
마지막에 궁사와 마법사를 죽이곤 영상은 끝났다.
영상이 끝났음에도 재환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영상은 혼자 보기에 너무 아 까뭤다.
“여러분? 새 영상 왔……
말이 끝나기도 전 금방이라도 쓰러 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던 직원들 이 일제히 일어나 재환의 책상으로 왔다.
재환은 그 모습을 보며 그저 조용 히 영상을 틀어주었다.
매우 짧은 영상.
고작 4분도 안 되는 영상을 본 직 원들은 아무도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채앵!
마지막 화살의 모습을 본 직원들은 멍하니 그걸 봤다.
영화에서도 쉽게 넣지 못하는 장 면
그걸 게임에서 실제로 하다니.
영상이 끝나고 여운에 다들 말없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이지 최고의 영상.
이대로 올린다 해도 유튜브 실시간 영상 1위에 무조건 들 수 있을 거 라 장담했다.
그때 민재가 말했다.
“형, 에너지 드링크 몇 박스 사 올 까?” “인당 한 박스씩 사와.” 연아와 민희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갔다.
오늘도 역시 퇴근은 그른 거 같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