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50화
위잉, 위잉, 위잉, 위잉.
러닝머신의 특유 소리가 나며 그 위를 달리는 남성.
땀을 흘리는 모습마저 멋있는 그 모습에 여성 회원들이 힐끔힐끔 쳐 다봤다.
여성 회원뿐만이 아니라 여성 트레 이너들까지 그 남성을 보며 꿀꺽 침 을 삼켰다. 벌써 러닝을 뛴 지도 30 분.
쉬지 않고 저리 오래 뛰었음에도 남성은 흐트러지지 않고 열심히 달 렸다.
여자뿐만이 아닌 남자들도 대단하 다 생각하며 남자를 봤다.
슬림하면서 어느 정도 탄탄해 보이 는 몸과 거기에 날카롭긴 해도 상당 히 잘생긴 얼굴. 웬만한 여자라면 돌아볼 법한 모습이었으나 남자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운동에 열중 했다.
‘몸도 적당히 풀렸으니 도장에 가
야겠다.’
그 남성은 다름 아닌 현성이었다.
재환과 설렁탕을 먹은 후 바로 헬 스장에 온 것이다.
보통은 밥을 먹고 소화를 시킨 후 운동하는 게 정상이나 현성은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소화 시 킬 거 운동하면서 소화 시키면 왜 안 되냐 생각하는 사람이 현성이다.
그런 그에게 누가 뭐라 하겠는가.
‘샤워하러 가자.’ 목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닦은 뒤 남자 샤워실로 향하던 중 한 여자가 그의 길을 가로막았다.
‘뭐지?’
대놓고 눈살을 찌푸리는 현성.
그 표정에 여자는 움찔거렸으나 용 기를 내 현성을 보며 물었다.
“호, 혹시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 을까요?”
여자가 번호를 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 그런 일은 사실 꽤 드물긴 하다.
남자가 잘생겼어도 성격이 소심하 면 먼저 번호를 묻기 어려운 게 현 실.
남자도 그렇지 않은가.
모난 게 없더라도 소심하면 마음에 드는 여성을 발견해도 번호를 못 묻 고 지나치는 게 대부분인데 이 여성 은 상당히 용기를 냈다고 할 수 있 었다.
그러나.
“싫습니다.”
“아…… 네. 실례했습니다!”
현성의 단호한 거절에 여자는 새빨 개진 얼굴로 자리를 벗어났다.
다른 여자들도 그걸 보며 슬며시 고개를 저었다.
아까 그 여자도 꽤 예쁜 편이었는 데 자신이 될 리가 없다 생각하는 것.
게다가 저 정도 생겼으면 눈도 높 겠거니. 그렇게 생각하며 저마다 생 각을 접었다.
하나 현성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종교 권유인가? 아니면 다단계?’
만일 호감이 있어서 번호를 묻는 것이라면 현성도 고민 좀 했을 거 다.
그러나 용기를 낸 건 좋았으나 용 건도 말하지 않은 채 번호를 달라 했으니 현성의 생각으론 종교나 다 단계겠거니 생각한 거다.
‘거절이 답이지.’
한 번 받아주면 끝도 없이 몰려드 는 연락을 경험한 바가 있었기에 현 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바로 샤워실로 향해 뜨거운 물로 몸을 풀어주었다.
그리 무리한 운동은 하지 않았으나 이렇게라도 몸을 풀어줘야 도장에 가서 움직였을 때 근육이 놀라지 않 는다.
샤워를 마친 현성이 머리를 말리곤
옷을 갈아입곤 바로 나왔다.
‘그보다 재환이가 언제 올린다고 했지?’
그러고 보니 헤어지기 전에 들은 것도 같은데 운동하다 보니 까먹었 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이라고는 해도 딱히 실감 나지 않았기에 크게 관심 을 두지 않아 까먹고 말았다.
‘뭐 물어봐야 잔소리만 들을 테고
그냥 나중에 확인하자.’
어차피 올리면 재환이 말해줄 텐데 뭐하러 신경 쓰는가.
게다가 그 일정을 알아봐야 현성이 하는 거라곤 영상을 찍어서 보내는 거밖에 없었으니 딱히 상관도 없었 다.
이미 현성의 유튜브 아이디도 알려 주었고 관리도 다 맡겼으니 크게 신 경 쓰지 않았다.
지금 현성이 신경 쓸 것이라고는 화인 관장과의 대련뿐.
‘오늘은 한 대 꼭 때린다.’
어제 푹 자서 그런지 컨디션도 좋 다.
게다가 아까 설렁탕을 먹어서 그런 지 힘도 나는 것 같다.
오늘이야 말로 화인 관장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줄 때!
현성은 그런 마음을 품고 도장에 들어갔다.
“저 왔습니다.”
“그래. 왔냐?”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장을 봤다.
평소와 같은 인사. 그러나 무언가 달랐다.
‘창이 아니라 검이네?’
궁금해서 물을 수도 있었으나 굳이 그러지 않았다.
실전무술은 다양한 상대와 전투를 할수록 실력이 늘 수밖에 없다. 그 런데 여태 창을 쓰던 관장이 검을 쓴다면 현성이야 좋았기에 별말을 하지 않았다.
현성은 바로 도복으로 갈아입은 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 다.
헬스장에서 몸을 풀고 왔다지만 만 전을 기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 아니 겠는가.
그렇게 몸을 푸는 현성을 보며 화 인 관장은 인상을 찌푸렸다.
‘괴물 같은 놈.’
젊은 놈이 방심이나 객기라도 있어 야 하는데 그런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늘 저렇게 철저한 스트레칭으로 몸 을 제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 판단 될 때만 대련을 하자 한다.
‘노인 공경도 할 줄 모르는 놈이 야! 아주! 공격이나 할 줄 알지.’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렸으나 어쩌 겠는가.
다 자신의 업보이거늘.
‘요즘 나이가 들어서 삐그덕 거리 는데 언제까지 저놈이랑 대련을 해 야 하는지.’
그래서 오랜 제자를 부르긴 했는데 녀석도 이데아를 한다고 요즘 바쁘 다고 한다.
도통 보이지 않았더니 그러고 있었 냐며 뭐라 하긴 했으나 요즘은 진짜 바쁘다고 적어도 보름 뒤부터는 꼬 박꼬박 나가겠다고 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보름이나 버틸 수 있으려 나?’
단검과 장검의 조합.
이건 화인 관장이 현성에게 알려준 게 계기였다고는 하나 이젠 그 두 조합으로 화인 관장이 더 이상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고작 3일 만에 그걸 다 습득해 버 린 것이다.
거기다 그걸 더 발전시키기까지 하 고 있으니 괴물이 아니라 무엇이겠
는가.
‘제자 놈아. 빨리 좀 와라. 이 스 승, 지게 생겼다.’
속으로 울상이었으나 최대한 근엄 한 척을 하며 몸을 다 푼 것 같은 현성을 보며 물었다.
“그럼 시작할까?”
“물론이죠.” 저 방긋 웃는 얼굴을 봐라.
전에는 훤칠하게 잘생겼네 하며 생 각했다면 지금은 그냥 악마 놈처럼 보인다.
“그러면 내가 먼저 가겠네.”
“예!”
“으아아아아아압!”
큰 기합을 지르며 달려드는 화인 관장.
오늘도 이기긴 했으나 그의 주무기 인 검을 쥐었는데도 그리 오래 버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워낙 변칙적으로 움직이는 놈인지 라 늘 힘들기 짝이 없었다.
‘제자 놈아. 빨리 좀 와라.’
그저 속으로 간곡히 빌 뿐이었다.
? ? ?
-얼마 전에 베네아에 나타난 고성 조사 퀘스트를 초인 길드가 맡은 사 실은 모두가 아실 겁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저녁 그 고성이 다시 자취 를 감췄다는 소식입니다. 많은 이들 이 궁금해하며 특히 조사단에 소속 되어있던 유저들이 만만치 않은 원 성을 퍼붓고 있었으나 인페르노사에 서는 특별한 반웅을 보이지 않았습 니다.
-예, 맞습니다. 조사단에 참여한 이들은 안됐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지요. 인페르노사에서 만든 이벤트 가 아닌 일단 베네아의 시장으로 인 해 생긴 이벤트이니 인페르노사에서 는 별 반응을 할 수 없는 게 사실 이죠.
-항간에는 초인 길드 수장인 라이 너가 수작을 부린 것이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한국 공식 랭킹 341위인 천오 씨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볼 때는 초인 길드가 퀘스 트를 클리어한 게 맞는 것 같습니 다. 현재 베르너의 시장 도르놈이 초인 길드, 아니, 이제는 해체가 된 초인 길드의 전 길드장인 라이너를 공개 수배했습니다. 상금도 엄청납 니다.
-공개 수배요?
-예, 공개 수배당한 유저가 사망하 면 그 도시에 부활하게 됩니다. 그 렇게 되면 경비병에게 잡혀가 감옥 에 썩는 수밖에 없습니다.
-엇? 그러면 현상금도 있는 건가 요?
-어떤 짓을 저질렀냐에 따라 다릅 니다만, 이번의 경우 도르놈?이 라이 너에게 건 현상금은 무려 10만 골 드입니다. 현실 돈으로 천만 원이 넘는 돈이죠. 그리고 소식에 의하면 라이너가 잡힐 경우 베르너 감옥이 아닌 황궁 뇌옥에 갇히게 된다고 합 니다. 황궁 뇌옥은 정말 흉악한 범 죄자들만 가게 되는 곳으로 최소 게 임 시간으로 5년……. 말이 더 이어지려는 때 TV가 꺼졌 다.
그리고 그걸 보고 있던 라이너, 아 니 김희준은 으드득 이를 갈았다.
‘제길.’
그간 쌓아온 것이 단 한 번으로 무너졌다.
단 한 번!
애정을 쏟은 것은 아니지만 큰돈을
쏟았던 초인 길드도 무너지고 길드 원들은 모두 연락이 되지 않는다.
단톡에서도 대부분 나간 상태.
어떻게든 책임을 피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거기다 그간 친하게 지내오던 이승 호까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앞으로 라이너로는 접속할 수 없 다.’
이미 라이너의 인벤토리에 있는 아 이템들을 모두 정리해 둔 상태다.
부캐로 옮길 수도 없었다.
부캐로 옮기려면 창고나 은행에 맡 겨야 하는데 그럴 수 있겠는가.
지명수배를 받은 상태에서 도시에 들어갈 수도 없었으니 어쩔 수 없 다.
그간 모아온 돈과 아이템들, 그리 고 캐릭터까지 잃었다.
부캐라고는 해도 레벨이 고작 30 도 안 되는 초보 중의 초보 캐릭터.
이걸 가지고 재기를 노리기에는 역 부족이다.
하나 김희준의 눈은 복수심으로 불 타올랐다. 다른 이는 몰라도 그 가 면을 쓴 녀석만큼은 반드시 복수하 겠다.
그리 다짐했다.
‘그놈만큼은 어떻게 해서든 내가 복수한다.’
당장 부캐를 키운다 해도 레벨을 그리 빨리 올릴 수단도 없다.
더군다나 부캐의 캐릭터 이름은 라 이널이다.
누가 봐도 연관성을 찾을 수밖에 없는 닉네임.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복수를 포기하고 그냥 이데아를 접 는 것과 다른 하나는.
‘라이너 캐릭터를 지우고 새로 만 든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 것.
부캐도 레벨 올리기 힘든데 새로 만든다니.
남들이 본다면 충격에 머리가 어떻 게 되었다고 할 법한 모습이나 그에 겐 꿍꿍이가 존재했다.
‘혹시 몰라서 나중에 돈이 급할 때 팔기 위한 정보였는데, 내가 사용하 는 수밖에.’
보통 레벨 10 이전에 전직을 한다.
물론 그 이후에 전직하는 이들도 있으나 대부분은 10 이전에 혹은 10때 한다.
김희준의 부캐도 레벨 20쯤 되었 기에 이미 전직한 상태.
그것 때문에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 는 것이다.
‘유일 등급 직업. 그걸로 네놈을 죽여주마.’
처음 이 직업에 대해 알았을 때는 라이너는 이미 늦었다.
부캐를 지우고 다시 만들까도 했으 나 부캐로도 하고 있는 사업이 좀 있어서 그것도 곤란했다.
그래서 정보만 가지고 있는 채 믿 을 만한 사람에게 팔려고 기다리고 있었건만. 이제 라이너가 망한 지금 은 그가 사용해야 한다.
유일 등급 직업. 1000위권 랭커 중에서도 유일 등 급 이하의 등급은 고작해야 100을 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면 유일 등급 직업을 얻는다면 그만한 힘을 얻을 수 있다.
‘기다려라! 내가 꼭 복수해 주마!’
뻔히 보이는 결말.
하나 김희준은 그것을 알지 못했 하기야 누가 생각이라도 할 수 있 겠는가. 자신을 죽인 그 유저가 무 려 신 등급 직업이라는 것을.
유일 등급만 되더라도 엄청나게 희 귀한 편인데 신 등급 직업을 생각할 리가 없다.
실제로 김희준도 현성이 컨트롤 좋 은 희귀 등급이라고만 생각하고 있 었다.
어리석게도 말이다.
‘크흐흐흐.’
하긴 이승호의 배신과 자신의 몰락 으로 인한 충격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 리가 있겠는가.
평소라면 자신과 다른 이들을 한 번에 죽인 걸 깨닫고 유일 등급 이 상의 직업일 수도 생각할 법도 했으 나 현실을 외면했다.
복수에 눈이 멀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