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57화
“으캬가갸자아!”
현성 특유의 괴상한 소리.
기지개를 켜는 소리였다. 오랫동안 캡슐에 누워 있던 몸을 풀어주며 다 소 아쉽다는 표정으로 캡슐에서 나 왔다.
‘기면증만 아니었으면 그대로 잤을 텐데.’
벌써 늦은 밤이다.
11시가 다 되어 가는 밤. 요즘 다시 게임 속에서 자기 시작 한 현성이었으나 오늘은 기면증 때 문에 영락없이 밖에 나와서 자야 할 판이다.
기면증이라 접속을 해봐야 진짜 접 속된 것이 아니다.
캐릭터 자체는 자고 있고, 움직일 수 없으니 접속을 해도 현실 시간과 똑같이 흐르게 된다. 사실상 접속할 수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렇게 캡슐에서 자는 것보단 침대 에서 자는 게 더 나았기에 나온 것 이다.
그때였다. 현아의 비명 소리가 들 린 것은.
“오, 오빠! 오빠 나왔어!?”
상당히 흥분한 목소리.
현아가 저렇게 소리를 지른 적이 언제 였던가.
현성은 현아의 소리를 듣자마자 다 급하게 현아의 방으로 뛰어 들어갔 다.
간병인 아주머니도 퇴근하고 없었 기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땐 현성이 나서야 한다.
그렇게 다급하게 들어갔을 때 현아 는 다소 붉어진 얼굴로 아이패드를 보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야!”
“이것 좀 봐!”
“뭐‘?”
“이 영상 좀 봐봐!”
비명을 질러서 무슨 일이라도 생겨 서 난 줄 알았더니 고작해야 영상을 보란 말이라니.
현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현아를 노려봤다.
그리고.
콩.
“아코.” “오빠 놀라게 하면 안 되지.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아파라, 근데 이거 진짜 무슨 일 생긴 수준이야! 봐!”
이쯤 되니 궁금하기는 했다.
도대체 뭐기에 현아가 저렇게 흥분 한 것일까.
웬만하면 얌전한 현아였기에 더 궁 금했다.
현성이 그렇게 아이패드를 보자 현 아가 보던 영상을 초반 부분으로 돌 렸다.
“어?”
시작되는 영상을 보니 어디서 많이 본 장소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영상.
가면을 쓴 자신이 나와 초인길드 5명을 학살하는 영상이었다.
물론 초인길드 유저들의 얼굴은 철 저히 보호되고 있었다. 그걸 보며 현성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영상을 봤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아까도 본 것 같았으나 현아도 다시 보고 있었다.
마지막에 화살을 두 동강 내는 장 면에 현아가 환호를 했다.
“나! 여기 부분이 제일 멋있는 거 같아.”
“응? 그래, 고맙다.”
현아의 말에 현성이 얼떨결에 그리 대답하자 현아가 이상하다는 듯이 현성을 봤다.
“어라? 오빠가 왜 고마워해?”
절체절명의 위기!
그러나 현성은 임기응변의 달인이 지 않은가!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 았다.
“어? 당연히 내 친구 영상을 보면 서 멋있다는데 친구 대신 고맙다고 하는 거지.”
“그치? 그치? 이거 오빠 친구 영 상 맞지?”
“응, 재환이가 제작하는 영상 있다 했잖아. 이게 그거야. 나도 영상 올 리기 전에 나한테 보내줘서 본 적 있어.”
“우와아!”
현성의 말에 현아는 진심으로 감탄 하며 눈을 빛냈다.
그걸 본 현성은 다소 부담스럽다는 듯 살짝 뒤로 물러났다.
현아는 현성을 보며 물었다.
“오빠! 그럼 오빠도 이 영상의 주 인공 알아? 아수라 님 말이야!”
“ 응?”
그녀의 말에 현성은 다소 당황했 다.
현성이 그 아수라였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본다면 자기 자신이 니까 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모른 다고 해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응? 알아 몰라?”
“아, 알지. 재환이 친군데 나도 알 지.”
“아! 그렇겠네! 그럼 오빠도 아수 라 님 연락처 알아?”
‘……아수라 님이라니.’
현아의 반응에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현성.
게다가 자신의 여동생이 누군가를 저리 좋아한 적이 있었던가?
중학교 시절에도 연예인을 보며 콧 방귀나 뀌던 아이였는데 저리 눈을 빛내며 누군가를 님이라고 부르다 니.
뭔가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응응? 알아?”
“일단 알긴 하지.”
당연하지만 현아도 알고 있다.
아수라의 연락처가 현성의 연락처 니까.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수라가 현성인지 모르는 현아에겐 그저 꿈만 같은 일.
“우와아아! 진짜? 대박이다.”
그저 저렇게 감탄만 하는 현아를 보니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현아의 말론 1000위 안에 드는 랭 커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그래도 실력이 상당히 출중하다는 것인데 저런 현아가 저 런 반응을 보일 정도의 영상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게임 잘하는 거구나.’
재환이 들었다면 어이없어하며 그 걸 이제 알았냐고 타박했겠지만, 그 걸 들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현아의 그런 반응을 보자 현성은 처음과 달리 내심 뿌듯해졌는지 우 쭐거리는 미소를 띠었다. 하기야 여 동생에게 저리 존경받는다면 어느 오빠가 싫어하겠는가.
특히 우애가 깊은 현성에겐 더 의 미가 있었다.
그때 현아가 우물쭈물거리며 현성 을 보며 물었다.
“오빠, 있지. 부탁이 있는데……
“응? 뭔데?”
뭐기에 저리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 로 몸을 배배 꼬며 말을 하는 것일 까.
“아수라 님한테 우리 길드에 들어 올 생각 없냐고 물을 수 있어?”
“너희 길드?”
“응, 우리 길드가 소수정예이기는 한데 진짜 엄청 대단한 길드거든. 일단 전부 유일 등급 이상 직업만 모여 있고, 전설 등급도 두 명이나 있어! 그리고 전 서버 최초로 영지 를 얻은 길드기도 하고.”
현아의 말을 들어보니 대단하긴 했 다.
전 서버 최초로 영지를 얻은 길드 라니. 이건 대단하지 않은가.
전에 들었을 때 수가 그리 많지도 않았는데 최초로 영지를 받았단다.
거기다 전설 등급 직업도 둘이나 있다니.
‘ 대단한데?’
어떤 대형 길드도 갖추지 못한 전 력이라 봐도 무방했다.
전원이 유일 등급 이상인 데다 전 설 등급만 둘이라니.
그 말을 듣자 현성도 솔직히 호기 심이 동했다.
‘게다가 소수정예니까 각자 행동을 해도 되고. 또 나는 아직 레벨이 안 되니 단체 레이드에서 빠질 테니까 그냥 가입만 하고 레벨 될 때 행동 해도 되겠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솔직히 마음에 들었다.
아무리 현아가 있는 길드라고 한들 자신이 싫으면 갈 생각이 없었다.
길드원들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꼭 들어가자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었다.
전에 들었던 길드 내의 분위기와 지금 들은 정보를 같이 떠올리니 확 실히 괜찮았다.
‘일단 가입하는 쪽으로 생각을 해 도 좋겠다.’
이왕 가입하는 거 강한 길드면 좋 지 않은가.
그렇다고 대형 길드는 너무 사람이 많아서 별로였고. 소수정예이면서 강한 길드는 사실 이상적인 것 아닌 가.
그런데 현아의 길드가 딱 그랬다.
“응? 물어봐 줄 수 있어?” 애교를 부리며 떼를 쓰는 현아.
얼마 만에 보는 모습인지.
현성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 다.
“일단 물어는 볼게. 그래도 장담은 못 한다.”
“헉! 물어봐 주는 것만으로 고맙 지! 오빠 진짜 고마워! 나 이거 길 드장 언니한테 말해야겠다. 아, 참. 오빠 근데 아수라 님 유일 등급 이 상이지? 영상에는 스킬이 하나밖에 안 나와서……
현성은 그 말에 빨리도 물어본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기로 전설 등급이다.”
“헐, 그런 컨트롤에 전설 등급? 대 박.”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되는 거 알 지‘?”
“다, 당연하지!”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말투.
현성은 현아를 노려보자 졌다는 듯 이 현성을 보며 말했다.
“우, 우리 길드장 언니한테만 말할 게.” “그냥 유일 등급 이상이라고만 말 해.”
“치이. 알겠어.” 이건 남의 정보이기도 하니 현아도 더 이상 떼를 쓰지 않았다.
그리고 당장에라도 접속해 이 사실 을 알려야겠다며 현아가 일어나려는 걸 보고 현성이 현아를 공주님 안기 로 들어주며 물었다.
“캡슐에 눕혀주면 되지?”
“응!”
그런데 그때.
현성은 이상하다는 듯 현아를 안아 들곤 현아의 다리를 봤다.
‘다리 쪽이 전보다 훨씬 무거워졌 는데?’
예전이었으면 상체 쪽이랑 다리 쪽 의 균형이 완전히 달랐는데 지금은 다리가 다소 무거워진 느낌을 받았 다.
다리를 쓰지 못하는 줄 아는 현성 의 입장에선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 이다.
쓰지도 않는 다리에 근육이 발달할 리도 없고 살이 다리에만 찔 리가 없지 않은가.
전체적인 무게는 비슷한데 다리의 무게만 늘 리가 없다.
“다리가 좀 무거워졌네?”
“어, 어?”
이번엔 현성의 말에 현아가 당황했 다.
안 그래도 요즘 재활치료에 진전이 있었다. 그것도 꽤 크게.
이미나의 말에 따르면 2주만 더 열심히 하면 곧 걸을 날도 머지않았 다고 한다. 사실 지금도 혼자 서서 열 걸음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젠 진짜 근육만 좀 늘면 당장에 라도 뛸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그래서 다리 쪽이 무거워진 것.
그러다 보니 나쁜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당황한 것이다.
“아! 빨리 내려줘!”
“ 응?”
“살찐 건데 민망하게 그런 말 하기 냐!”
마치 진짜 삐진 듯 말하는 현아의 모습에 현성은 당황하며 현아를 캡 슐에 눕혀주었다.
“아, 미안. 난 요즘 다리가 좀 안 좋아졌나 했지.”
그 말에 현아는 양심에 상당히 찔 렸지만 괜찮다는 듯 현성을 달랬다.
“그냥 살찐 거야. 걱정하지 마.”
“알겠어. 알겠어.”
“하유. 나는 괜찮은데 다른 여자한 테는 몸무게 얘기 절대 꺼내지 마! 알겠지?”
“날 뭐로 보고.”
“ 모솔?”
“꺄하하하.”
그 말에 현성은 한 방 먹었다는 듯 현아를 노려보자 도망치듯 캡슐 뚜껑을 닫는 버튼을 눌렀다.
“나 길드장 언니한테도 말해 놓을 테니까 오빠도 아수라 님한테 연락 해둬!”
“오야.”
“진짜 고마워!”
현아는 그렇게 말하고 게임에 접속 했고, 현성은 그걸 보곤 웃으며 현 아의 방을 나왔다.
많이 밝아져서 다행이다.
‘그보다 서프라이즈로 알려줄 생각 이었는데 좀 나중에 알려줘야겠네.’
그냥 말할까 고민하다 현아의 질문 에 얼떨결에 속이게 되었다.
뭐 그래도 이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 현성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정말 오늘 타이밍 한 번 기가 막 혔다.
보니 재환이었다.
“어, 재환아. 영상 올렸다고 전화 한 거냐?”
-어, 근데 너 벌써 봤어? 생각보다 빨리 봤네. 나는 일주일 있다가 볼 줄 알았는데.
“어, 현아 없었거나 네가 말 안 했 으면 아마 그러지 않았을까?”
-참나. 너 지금 네이바 실시간 검 색 1위인 건 알고 있냐?
“뭐? 그게 뭔?”
-보고 말해라.
현성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컴퓨터 를 켜고 인터넷을 열어보자 진짜로 검색어 1위인 걸 보고 얼떨떨한 얼 굴로 그걸 봤다.
1위. 아수라
2위. 아수라 영상
3위. 아수라 직업
그렇게 1, 2, 3위가 나란히 자신과 관련된 거였다.
실환가? 싶어서 다시 눈을 비비고 봤지만 여전히 똑같았다.
현성이 아무런 말이 없자 재환이 낄낄거리며 물었다.
- 봤냐?
“……어.”
-너 지금 하루 종일 유튜브 실시 간 영상 1위 먹고 있고 지금 딱 25 시간쯤 지났는데 너 구독자가 무려 250만 찍었다. 영상 조회수는 7천만 을 향하고 있고.
뭔 소린가 싶어서 봤는데 재환의 말대로다.
이게 가능한가 싶어서 확인해 봐도 진짜였다.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얼떨떨한 친구의 반응에 재환은 즐 겁다는 듯 소리쳤다.
-네가 최고라는 증거다.
-네가 최고다.
그 말에 현성은 가슴속에 무언가 울컥했다.
그간 받아온 설움.
가방끈 짧다며 수없이 모욕 받으면 서 일하던 나날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며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뿌듯하다?
그런 표현으로 말할 수 없었다.
부모님을 잃고 이른 나이에 가장이 되어 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그다.
그리고 이제야 작은 꿈을 품고 시 작한 게임에 이런 관심과 찬사를 받 고 있다.
-소감이 어떠냐?
재환의 말에 현성은 시큰거리는 코 를 쓸곤 말했다.
“운동 갈 거다.”
-새X, 다녀와라.
그 말에 현성은 전화를 끊었으나 재환은 그런 현성을 이해했다.
지금은 혼자 있고 싶을 거다.
현성은 그대로 짐을 챙겨 밖으로 나섰다.
진짜 운동을 가기 위해.
지금은 좀 뛰지 않으면 진정되지 않을 거 같았다.
밖으로 나오자 선선한 바람이 현성 을 감쌌고, 그걸 느끼며 현성은 희 미하게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며 중 얼거렸다.
“기분은 좋네.”
현성은 이제야 마음속의 짐을 완전 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