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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73화 (73/472)

잠만 자도 랭커 073화

장애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극명 하다.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맞다. 하나 동정 어린 시 선, 혹은 짜증난다는 시선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시선들로 인해 현아는 밖을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영화관은 고사하고 산책조차 잘 나가지 않았 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이데아를 하면서 종종 산책도 나가더니 이제 영화관에 먼저 가자고 한다.

“보고 싶은 영화는 있어?”

현성은 괜찮겠느냐고, 진짜 갈 수 있겠느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보고 싶은 영화가 있냐고 물었다. 도전을 하려는 아이에게 응원은 못해 줄망 정 염려하는 기색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휠체어를 타야 하는 사람은 영화관 에 가기 선뜻 꺼려지는 게 사실이 다. 아무래도 좌석을 고를 수 없고, 맨 앞좌석에서만 봐야 하니까. 돈이 많으면 한쪽 앞좌석 전체를 예매하 면 되니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그 렇다고 뒤에 앉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액션영화가 좋을 거 같아. 요즘 아수라 님 영상을 봐서 그런지 액션이 당기더라!”

“액션?”

“응, 액션.”

동생이랑 편안하게 영화를 본 게 얼마만이던가. 아니, 영화를 영화관 에 가는 것도 거의 5년 만인 거 같 았다.

워낙 영화나 드라마, 예능 같은 영 상물들을 잘 안보는 현성인지라 체 감하진 못했는데, 생각해 보니 너무 오랜만인 것 같았다.

‘부모님 계실 땐 휴일에 다 같이 갈 때도, 난 한 번도 안 가봤지.’

이제는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기 억을 떠올리며 현성은 희미하게 웃 었다.

그보다 액션 영화라니.

‘다른 장르보단 괜찮긴 하겠지만, 현아가 원래 액션을 좋아했나?’

영화관에 간 것도 기억이 안 날 정도인데 여자랑 영화를 본 적이 있 겠는가. 게다가 여자들은 로맨스를 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 소 의외이긴 했으나, 현성도 마음에 들었다. 다른 영화에 비해 액션 장 면에만 몰입해도 문제가 없을 테니 까.

“오케이. 액션영화 보자. 나는 옷만 갈아입으면 되는데? 너는?”

“나도! 일단 옷 갈아입고 부를게.”

“응응.”

현아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듯 말하는데 도울 거 없냐고 묻는 것은 실례다.

아주머니가 없어서 옷 갈아입는 게 힘들 수도 있겠지만 현아도 여자이 지 않은가. 오빠인 현성이 갈아입혀 줄 순 없는 노릇이다.

‘이제 보면 다 컸다니까.’

이제 20살인 현아.

이데아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어 린아이 같았는데, 이젠 또래 아이들 처럼 다 큰 것 같았다.

현성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방 으로 가 먼저 옷을 갈아입었다. 아 무래도 현아가 혼자 옷을 갈아입으 려면 좀 오래 걸릴 테니 그동안 인 터넷을 할 생각이었다.

그 전에 마치 중독이라도 된 듯 경매장에 들어간 현성.

아직 유일 등급은 팔리지 않았고, 희귀 등급만 한두 개 더 팔린 상태 였다.

“오, 좋은데?”

아직 유일 등급들이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기세라면 빠르 면 오늘, 늦어도 내일 안엔 다 팔릴 것 같았다.

‘긴급 퀘스트도 보니까 얼마 안 걸 릴 거 같고.’

경매장에 들린 김에 이데아 홈페이 지에 들어가 보았다. 게시된 글을 검색해 보니 몬스터 군단이 아직 베 네아에 도착하진 못했으나 그리 오 래 걸리진 않을 거 같았다. 몬스터 군단의 속도와 거리를 생각한다면 아마 내일쯤 공성전이 시작되리라.

내일이건 모레건 현성하고 큰 상관 은 없었지만.

‘마침 내일이면 영상을 올릴 수 있 다고 했지?’

타이밍이 정말 절묘했다.

다른 유저들이 몬스터 군단과 싸우 고 있을 때쯤 몬스터 군단을 홀로 상대한 아수라의 영상이 올라가면 과연 어떤 반응이 나올까?

‘영상은 꾸준히 올라가는 게 중요 하니 일단 매일 재환이에게 보내야 겠네.’ 처음 현성은 웹툰처럼 일주일에 한 두 개 올리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다른 유튜버들을 보니 그러 지 않았다. 게임 스트리머는 적어도 하루에 1개, 인기가 많은 이들은 하 루에 영상 2개까지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퀄리티가 좋다 해도 일주일에 1개는 좀 너무하지 않은 가.

‘영상 편집에 시간이 많이 걸리겠 지만, 그래도 가급적 영상을 많이 보내서 2일에 1개는 올릴 수 있게 하자.’

관리는 재환이 해준다지만 현성이 이런 것은 그래도 신경 써야 하는 부분 아니겠는가. 인터넷으로 유튜 브 관련 책들을 꾸준히 사 보면서 나름 공부를 하는 현성이었다.

‘그래도 레벨 업은 하면 안 되니 까, 대충 100레벨 대의 보스 레이드 를 하면 되겠지? 기사 아수라 영상 도 찍어야 하니까.’

당장 필요한 영상은 기사 아수라 다.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하는 컨셉 을 유지하기로 했으니 이제는 기사 아수라의 영상도 많이 찍어야 한다. 때마침 달콤한 꿈이 나와서 다행이 었다.

‘당분간은 심한 사냥은 하지 말고 보스 레이스! 기사 아수라의 보스 레이스, 좋다!’

그렇게 현성이 다음 영상에 대한 구도를 대강 짜고 있을 때 현아가 옷을 다 갈아입었는지 현성을 불렀 다.

“오빠?! 나 준비 다 됐어!”

“응! 잠깐만.”

준비가 다 된 현성은 바로 컴퓨터 를 끄곤 그대로 현아의 방으로 갔 다. 그리고 나름 잘 차려 입은 현아 를 보곤 피식 웃으며 휠체어 뒤로 갔다.

그런데 문득 이상하다는 듯 현아의 뒤통수를 봤다.

‘응? 뭔가 이상한데?’

치명적인 실수.

오랜만에 현성과 외출한다는 생각 에 신이 난 나머지 그런 부분에서 실수한 현아!

그러나 아쉽게도 들뜬 기분인 것은 현성도 마찬가지였다. 현아와 정말 오랜만에 외출을 하는 것도 그렇고, 기사 아수라에 대한 구상이 떠올라 서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멋있긴 하겠어.’

보스를 차례대로 잡는 영상을 보여 주는 것도 좋겠다. 그것도 베네아 인근에 있는 보스들을 쓰러트리는 레이스!

현성은 흔히 매드무비라고 불리는 영상을 찍어볼 생각이었다.

이제는 그런 것까지 구상할 정도이 니 나름 공부를 한 티가 제법 났다.

‘재환 녀석을 놀라게 해줘야지.’

흐흐 웃으며 휠체어를 미는 현성을 보며 현아도 기분 좋은지 히히 웃으 면서 발을 동동거렸다.

명색이 다리를 못 쓰는 환자가 발 을 동동거리다니!

하지만 현성도 그것을 전혀 눈치채 지 못했다.

간병인 아주머니나 이미나 선생이 봤다면 조마조마했을 상황이었지만, 남매에겐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그들이 남매인 게 틀림없었다.

“오빠, 오빠! 내가 보니까 지금 상 영하고 있는 액션이 2개 있는데 봐 봐.”

≪ O ” ■?

“이 둘 중 뭐로 볼래? 이거는 제 일 빠른 게 1시간 뒤고, 이거는 1시 간 반.”

현아가 태블릿으로 보여주는 포스 터를 보며 현성은 난감해했다. 사실 포스터만 봐서는 뭐가 재미있 을지 도통 모르겠다. 영화를 스스로 골라본 적이 있어야 이런 것도 고르 지 않겠는가.

“네가 골라. 나는 그런 거 잘 모르 겠다.”

“에이! 그러지 말고! 하나는 판타 지 세계관인데 이데아에서 촬영을 한 거고, 다른 하나는 전통 방식으 로 현실에서 CG를 이용해서 찍은 거.”

요즘은 영화를 이데아 안에서도 찍 나?

솔직히 좀 놀랐다.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고 현실에 서 찍은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전 통이 괜히 전통이겠는가? 게다가 몇 십 년이 넘게 이어져온 촬영방식이 니 아무래도 고작 1년 된 이데아보 다는 더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현성은 이내 고개를 저었 다.

‘이데아에서 찍은 액션신이면 전투 할 때 도움 될 만한 걸 찾을 수 있 을지도 모르겠네.’

게다가 이데아의 가상현실은 실제 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 이번엔 정통 보다는 기술력이 더 나을 것 같았 다.

오로지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을 고르는 현성이었기에 그는 웃 으며 말했다.

“이데아를 하다 보니 이데아 기반 으로 촬영한 게 어떤지 궁금하네. 그걸로 봐보자.”

“헤헤, 나도 그 생각이었는데. 좋 아!”

집을 나와서 영화관 쪽으로 향하던 현성이 문득 현아를 봤다.

그러고 보니 현성은 아직 점심도 먹지 못했다.

자신은 배가 고파도 참을 수 있었 지만 현아는 괜찮을까?

“밥 먹고 볼까? 아니면 영화 보고 먹을까?”

“으음.”

현성의 물음에 현아는 잠시 고민하 다 이내 헤헤거리며 대답했다.

“배고프긴 한데 밥 먹고 보면 좀 더부룩할 것 같아. 그냥 보고 먹 자!”

“좋지. 그럼 영화관 먼저 가자.”

혹시라도 맨 앞좌석이 없으면 난감 해진다.

제일 인기 없는 좌석이기는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

대박 영화라면 좌석이 없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1시간이 남아 있다고 해도 방심해선 안 됐다.

“그러면 기다리는 동안 뭐하지?”

“영화관 근처에 시간 때울 수 있게 게임센터 같은 곳 많아.”

“오 그래? 세상 좋아졌네.”

“……10년 전에도 있었거든?”

“크홈.”

문화생활에 문외인인 현성은 헛기 침을 했고, 그걸 보며 현아가 꺄르 르 웃음을 터뜨린다.

여느 또래와 다를 바 없는 모습.

이제 다 나은 것이나 다름없어 보 인다.

‘다시 걸을 수 있겠지?’

이렇게까지 좋아졌는데 다리도 금 방 나을 수 있으리라.

현성은 그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거의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 지 못했으나 지금의 성격만 보더라 도 많이 나아지지 않았는가. 게다가 예전 같았으면 이런 외출은 상상도 못했다.

지금도 사람들의 은근한 시선이 몰 리고 있지 않는가.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느껴보지 못했을 시선.

‘이제는 아무렇지 않아 하네.’

어떨 땐 동정의 눈길. 또 어떨 때 는 불쾌한 눈길. 그런 여러 시선을 확인할 때마다 현성은 짜증이 나는 데, 당사자인 현아는 어떻겠는가.

물론 이제는 심리적인 요인이 사라 져 다리도 조금씩 쓸 수 있는 현아 이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이 저렇게 보든 말든 자신은 이제 다리를 쓸 수 있으니까. 근력 만 더 늘어나면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으니 이제는 저런 시선에 연연해 할 이유도 없었다.

그걸 모르는 현성의 눈에는 현아가 아픔을 잘 이겨낸 사람처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현성은 애틋한 눈으 로 현아를 봤다.

‘현아도 대학교에 가면 좋을 텐데.’

자신도 대학을 못 갔지만 현아는 갔으면 싶었다. 고등학교도 다니지 못한 현아 아니던가.

그래서 그런지 친구 하나 없는 현 아가 안쓰럽기만 했다. 대학에 다닌 다면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않 을까?

자신은 가지 못했으나 현아라면 조 금만 공부해도 충분히 갈 수 있으리 라.

‘올해 안에 다리가 다 나으면 내년 에 입학할 수도 있을 텐데.’

아직 뜨거운 여름이다. 지금부터 공부하면 현아의 머리라면 충분히 대학에 갈 수 있으리라. 다리만 낫 는다면.

물론 거의 나아가고 있지만 현성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부담은 주지 말자.’

심리적인 요인 때문에 다리를 쓸 수 없는 현아였다. 거의 나았다는 걸 아직 모르는 현성이기에 최대한 부담은 주지 말자고 내심 다짐했다.

현아를 위해 대학을 보내려는 거지 다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마저 도 현아가 싫다고 하면 강요할 생각 도 없었다. 싫다는 걸 억지로 설득 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뜨거운 태양빛을 쬐며 걸어오니 영 화관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표 끊고 올게 여기서 기다려.”

“응.”

한편, 현아는 이곳까지 오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냥 말할까?’

아직은 휠체어로 거동을 해야 했 다.

그래도 2주 정도만 있으면 완벽히 걸을 수 있지 않은가.

차라리 말하고 오빠도 편하게 다니 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 들었다.

자신이야 이런 시선에 익숙하지만 현성까지 안쓰럽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대할 때면 불쾌하기 짝이 없 었다.

저들의 생각이 이해가 안 되는 것 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 동정을 바란 적이 있는가? 그런데 왜 현성 까지 안쓰러운 눈으로 보는지.

‘오빠는 괜찮다고 하겠지만, 그래 도 내가 속상하네.’

말만 하지 않을 뿐 그렇게 남매는 아주 쌍으로 서로를 걱정해 주고 있 었다. 겉으로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우애가 남다른 남매.

하기야 이젠 부모님도 없고, 친척 조차 없는 남매이기에 서로에게 의 지하는 건 당연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제 근력 만 붙으면 걸을 수 있다는 걸 숨기 는 게 현아는 문득 미안해졌다.

‘지금 오빠는 내가 아직도 못 움직 이는 줄 알고 걱정하고 있겠지?’

그걸 생각하니 많이 미안해졌다.

기쁘게 해주자는 생각에 여태 숨겨 왔으나 오히려 그걸로 인해 현성이 계속 걱정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오늘 이렇게 외출을 해보니 더욱 그게 느껴졌다. 자신은 몰라도 오빠 까지 안쓰럽게 보다니.

‘그래 이따 밥 먹으면서 말하자!’

여태 잘 숨겨 왔으나 이젠 말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너무 숨긴 감이 있었다.

‘너무 내 생각만 했어.’

또래 아이들보다 성숙한 현아였지 만 그녀는 이제 20살이다. 아직 어 리긴 어렸다.

말하기로 결정하자 현아는 빙그레 웃었다.

과연 오빠가 어떤 표정일지 기대하 면서 히히 웃는 얼굴이 꼭 현성이 장난을 치거나 전투하기 전 악동의 그 미소와 똑같았다.

‘엄청 놀라겠지?’

뛸 듯이 기뻐하는 현성의 모습을 상상하니 나름 긴장되었다.

오랫동안 숨겨온 비밀을 이제야 말 하는 것이니 얼마나 떨리겠는가.

‘이게 뭐라고 떨리냐. 영화는 못 보는 거 아니야? 아, 기대된다.’

아직 영화관에 들어가지도 않았는 데 어서 영화가 끝나길 바라는 현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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