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74화
게임센터.
흔히 대형마트 혹은 영화관 인근에 있기 마련이다. 백화점에도 간혹 있 다.
요즘에는 인형 뽑기가 제일 인기가 많았다. 다른 오락실용 게임기들도 인기는 많았으나, 역시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것은 인형 뽑기였다.
‘으음, 도박장 같은데?’
뽑기 집게로 인형을 잡아 올리다 떨어지면 사람들은 세상 안타까운 표정을 하고서 다시 돈을 집어넣는 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흡사 도박 장 같았다.
‘다행히 저런 거엔 관심 없나 보 네.’
현아도 혹시 인형 뽑기에 관심을 두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염려와 달리 현아의 시선은 격투 게임에 꽂 혀 있었다.
해보고 싶다는 열망 어린 눈빛.
영화 상영 시간도 넉넉히 30분 이 상은 남아 있으니 멍 때리는 것보단 게임 몇 판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 았다.
‘제일 인기 있는 건 저건가 보네.’
가상현실게임이 있는 시대다.
오락실에 있는 게임들도 대부분 가 상현실게임 게임기들로 가득했다. 그중에는 게임에서 일정 이상 점수 를 따면 인형을 얻는 게임들도 있었 다.
‘그나마 저게 낫네. 실력이 있으면 얻는 거니까. 도박성도 없고.’
마침 현아도 그 기계를 보고 있었 다.
“저거 할까?” “아니, 나 인형은 별로. 난 저게 더 좋아. 저거 하자!”
아무래도 대가로 인형을 얻을 수 있는 게임이라든가, 스티커 사진을 찍는 기계 앞에 사람이 많았고, 격 투 게임기계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마도 영화를 보러 오는 사람들 중 연인들이 많아서 그런 모 양이다.
현아에겐 그게 오히려 기회가 되었 다.
“알았어, 알았어.”
“히흐], 뭐 내가 이길 게 뻔하지 만!”
으스대는 현아를 보며 현성은 피식 웃었다.
아수라를 그렇게 동경하면서 오빠 가 아수라인지도 모르고 저리 으스 대는 꼴이라니.
뭐 그런 것도 나름 귀여워 보였으 나 현성도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현 아를 보며 비웃어 주었다. 마치 넌 나에게 안 된다는 식으로.
“후후, 그 여유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 보자고!”
설마 동생과 격투게임을 하게 될 줄이야.
보스를 같이 사냥하는 슈팅게임도 있는데 서로 싸우는 격투게임이라 니.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 다.
현성은 현아에게 먼저 고글을 씌워 주곤 동전을 넣고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반투명한 아크릴 덮 개가 나와 주변을 감싸주었다.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고글을 쓰고 현성도 마찬가지로 동전을 넣고 시 작 버튼을 눌렀다. 곧 아크릴 덮개 가 내려오자 의식이 흐려지며 게임 에 접속되었다.
‘오! 꽤 그럴싸하네.’ 이데아에 접속했을 때처럼 가상현 실에 접속되는 느낌을 받으며 현성 은 자신 앞에 펼쳐진 광경을 봤다.
캐릭터 선택 창인지 여러 캐릭터들 이 나열되어있는 방. 그리고 그 위 에 문구가 떠 있었다.
[캐릭터를 선택하십시오.]
[1 이
[9]
카운트가 사라지기 전까지 골라야 하나 보다.
현성은 큰 고민 없이 사무라이처럼 생긴 캐릭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군지를 선택하시겠습니까?]
[YES / NO]
다른 캐릭터들보다 몸이 가늘다. 게다가 검을 쓰는 캐릭터. 즉 스피 드 위주의 검사라는 뜻.
그렇게 고르고 나니 풍경이 변해가 면서 현아가 고른 캐릭터와 마주할 수 있었다.
‘마법사를 고를 줄 알았는데 의외 네.’
현아가 고른 캐릭터는 다름 아닌 방패와 검을 쥐고 있는 전형적인 방 패전사.
그에 비해 현성은 방패는 없지만 스피드로 승부를 하는 사무라이.
‘대회 전에 격투 연습을 한다 생각 하고 해볼까?’
마침 이 격투 게임도 능력치의 합 이 같지 않은가. 제국격투대회 전에 훌륭한 연습이 될 수 있으리라.
현아가 그만한 실력을 가졌을 진 다소 의문이었으나, 그래도 랭킹 500위 안에 드는 실력자이니 어느 정도 실력은 있지 않겠는가.
‘스타일을 좀 바꾸자.’
평소 현성의 스타일은 내보일 수 없다. 그래도 여동생인데 사냥꾼 같 고 독기 가득한 스타일로 이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숨기는 걸 떠나 서 여동생에게 그런 몹쓸 짓을 할 순 없다.
원래 스타일이 남들에게 몹쓸 짓이 라는 건 인지하긴 하나 보다.
잠시 고민을 하던 현성의 머릿속에 다른 스타일이라곤 떠오르는 게 하 나밖에 없었다.
‘기사 아수라처럼 해보자.’
마땅히 자신 수준의 컨트롤을 가진 이를 본 적도 없거니와 다른 스타일 을 하자니 영 불편할 뿐이다. 그럴 바에야 그나마 영상으로 봐서 익숙 한 몽유병, 기사 아수라의 스타일을 따라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5]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격 투가 곧 시작되는 건지 카운트다운 표시가 떴다.
현성은 그걸 보며 씨익 웃으며 현 아를 봤다.
마치 자신이 있다는 듯 웃고 있는 현아의 캐릭터.
‘오빠가 레벨 업이 빠르긴 해도 하 늘 위에 하늘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지.’
분명 현성을 만만히 보는 게 틀림 없다.
이미 현아는 오빠를 이긴다는 전재 를 깔아두고 있었다.
애당초 이데아에서는 힐러를 담당 하고 있었으나 그녀의 전투 센스는 다른 길드원들도 인정하는 수준.
원래 힐러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 다. 현아는 서포터보다는 딜러나 탱 커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웅 등 급 힐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었는데 그걸 저버릴 순 없지 않은 가.
물론 힐러도 충분히 재미있었으나 그래도 이렇게 격투 게임을 할 때는 늘 탱커형 전사를 선택하곤 했다.
‘히히, 가끔 아주머니랑 여기 와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주 지!’
그런 생각을 하며 현아는 눈앞에 보이는 카운트다운을 봤다.
[5]
[4]
[3]
[2]
[1]
삐익!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달려드 는 현성을 보고 현아는 피식 웃었 다.
초보자들이 제일 많이 실수를 하는 것.
그건 바로 캐릭터의 특성을 겉만 보고 판단한다는 거다.
물론 겉으로만 봐도 충분히 특성을 알 수 있는 게임이다. 이데아와 같 이 그렇게까지 정교하지 못하니 겉 과 다른 특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나 상대의 움직임을 보지도 않 고, 더구나 자신의 움직임도 보지 않고 덤벼드는 건 무모하다.
‘히힛, 초보자답네!’
빠르게 달려드는 현성. 그가 바로 코앞에 도달했을 때 현아는 굳건히 버틴 채 거대한 타워 실드를 내밀며 몸을 방어했다.
카앙!
힘에선 현아의 캐릭터가 현성의 캐 릭터보다 우월하다.
그러나 속도에선 현성의 캐릭터가 우월하다.
캉! 캉! 캉! 캉!
그 덕에 현아의 캐릭터는 방패로 계속해서 현성의 검격을 방어해 냈 다.
완벽한 방패술.
현아는 손목을 조금씩 틀어 현성의 검을 흘리며 기회를 엿봤다.
캉! 카앙!
그런데… ?
‘빈틈이 안 보인다고?’
저리도 빠른 공격을 하는 와중에도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일부 보이긴 하나 너무 빠르게 사라 지는 탓에 도무지 찌를 틈이 보이지 않았다.
‘저럴 수가 있나?’
게다가 왠지 점점 빨라지는 듯한 착각이 들기 시작했다.
카카카카카카카카캉 ! 이 격투 게임의 총합 능력치는 정 해져 있다. 그러니 더 빨라진다든가 그럴 수는 절대 없는데, 지금 현성 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 다.
카카카카카카카카카카캉 !
더, 더 빨라지고 있다.
착각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뭐지?’
그 비밀을 알아차리기 전에 당할 것만 같은 빠른 검격.
게다가 하나하나 정교하기 짝이 없 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검을 휘두르며 서서히 앞으로 다가온다.
거리가 짧아질수록 유리한 건 현아 다. 하나 현아는 그걸 생각할 수 없 었다. 빈틈은 보이지 않고 조금이라 도 방패를 내리면 저 태풍과도 같은 검격이 자신을 휩쓸 것만 같아서.
기술이 없는 순수 능력치로만 상대 하는 게임이다 보니 뾰족한 술수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현아는 자신이 뒤로 물러나 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툭.
“어라?”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자 현아의 캐릭터는 스테이지 끝에 있는 벽과 부딪혔다.
정말이지 아주 조그만 틈.
그 틈을 노리고 현성이 눈을 빛냈 다.
.......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아주 빠른 찌르기.
그 찌르기에 현아는 갑옷 사이에 있는 어깨를 내어주고 말았다.
“이런.” 검을 회수한 현성은 그대로 현아의 왼손에 쥔 타워실드 안으로 달라붙 었다.
초근접전.
거기서 현성은 검을 쥔 오른손을 뒤로 빼더니 다시 빠르게 찔렀다.
“헉!”
순식간에 찌르고 들어오는 현성의 검에 현아는 놀라서 뒤로 물러난다.
그 순간을 노렸는지 현성은 검을 찌르는 것과 동시에 현아와 가까운 왼발을 뒤로 빼며 찌르기를 물렀다.
순간적으로 멈춘 검. 그걸 본 현아는 빠르게 검으로 현 성을 공격하려 했으나 그때 현아는 뒤로 엉거주춤 물러나는 자세였고, 현성은 그대로 벨 수 있는 자세였 다.
자세만 봤을 때 빠른 건 현성이었 다.
서걱!
“으악!”
완벽한 승리.
현아의 캐릭터는 그대로 게임오버 가 되어 사라졌고, 현성은 더 하겠 냐는 메시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당당하게 나온 것치고는 너무 싱겁 게 끝난 감이 있었으나 현성이 생각 할 때 현아도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 했다.
‘보통 거기서 반격을 할 생각은 못 하지.’
현성이 마지막 공격을 하려 할 때 보통은 방패로 막으려하지 반격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아는 반격하기 위해 검을 쥐고 공격하려 했다. 방패로 막으려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는 것 이다.
현성이 떡하니 앞에서 타워실드를 막고 있는 상황이다. 그대로 방패를 회수하려 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죽었으리라.
결과적으로 본다면 지금도 반격도 못하고 죽은 건 맞지만, 판단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현성이 보기엔 현아는 충분히 센스 가 있는 편이었다.
‘그러면 그만하고 나가자.’
현성은 눈앞에 보이는 메시지에 게 임 종료를 선택하곤 접속을 해제했 다.
그렇게 고글을 벗었을 때였다.
“와! 방금 저 사람 플레이 봤어?
대박이다.”
“진짜 깔끔하다. 검도 배웠나?”
“칫, 유단잔가?”
그들 주변에서 꽤 여러 사람이 구 경하고 있었다. 현성의 실력을 생각 한다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주목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 현성으로선 충분히 껄끄러운 상황. 혼자 있다면 또 모 르겠지만 지금은 현아도 있지 않은 가.
그래서 게임오버가 된 현아를 데리 고 게임 센터를 떠났다.
현아는 그러거나 말거나 상당히 홍 분한 상태로 현성을 보며 물었다.
“와! 오빠 저 게임 처음 아니지? 어떻게 그렇게 잘해?”
그녀는 게임 센터를 나가거나 말거 나 현성의 실력이 뛰어난 게 더 중 요했는지 현성을 보며 집요하게 물 었다.
“그치? 저거 많이 해본 거지?”
“아니, 처음이야.”
“아니, 그런데 그렇게 잘한다고?”
“내가 워낙 타고 났잖냐.”
저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하기야 현아도 상당히 잘하는 편이 었으니 딱히 할 말도 없었다.
아직 영화 사영 시간이 좀 남긴 했지만 방금 그 전투로 흥분한 현아 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근데 그 공격 빠르게 보이게 한 건 어떻게 한 거야? 착시효과?”
“으음, 그런 거지.”
“어떻게 한 건데?”
진짜 빨라졌을 리는 없다. 전투 도 중에는 너무 당황해서 생각할 겨를 이 없었으나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알 수가 없어 현성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현성은 슬며시 웃으며 대답해줬다.
“간단해. 검을 빠르게 휘두르려면 힘을 빼고 부드럽게 휘두르면 되거 든. 뭐 그러면 위력은 형편없어지지. 게다가 처음에 빠른 듯 느린 듯 연 속공격을 하면 상대는 얘가 지금 빠 르게 공격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 렇게 착각하게 되지.”
“아! 그걸 노리고 뒤로 갈수록 유 효타가 아닌데 빠르게만 보이게 해 서 상대를 위협한 거구나!” “그렇지!”
“대박!”
“후훗, 오빠가 이 정도라고. 어때, 아수라 급은 되지?”
장난스럽게 한 말.
현아는 진짜 대단하다는 듯 쳐다보 다가 현성의 말에 정색을 하더니 어 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오빠 되게 웃긴다. 하늘 위에 하 늘이 있다는 건 알아야지. 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