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76화
현아를 때리려던 놈의 팔을 잡은 현성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뿌드득.
“으아아아아악!”
놈은 고통스러운지 팔을 빼려 했으 나 힘 차이가 엄청나서 그저 팔을 잡힌 채 발버둥 치기만 하고 있었 다.
감히 동생일 치려던 놈이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같잖은 놈들이.”
머리끝까지 화가 났는지 현성이 팔 을 잡고 있는 놈을 놈들이 있는 방 향으로 가볍게 밀었다.
와당탕!
그대로 넘어지는 놈을 보며 현성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아주 지들이 뭐가 된 것처럼 떠들 고 있어서 인생 불쌍해서 가만히 있 었는데, 이게 아주 막나가네?”
현성을 말리려던 현아는 이내 생각 을 바꾸었다. 자신이 맞을 뻔하지 않았는가.
현성이 저리 화난 것도 이해했기에 굳이 말리지 않았다.
‘저렇게 화난 오빠는 처음 봐……
게다가 늘 자신 앞에서 웃어주던 현성이 저렇게 화를 내다니.
가끔 회사 상사에 대한 욕을 하긴 했었지만 그건 가볍게 투정부리듯 말하는 수준이었다. 그 외에는 한 번도 현아 앞에서 저런 표정을 지은 적 없었다.
화난 표정으로 놈들을 노려보는 현 성.
양아치들도 큰소리를 내지르며 현 성을 노려보았다.
“이 새X가!”
“씨 x!”
“뒤지고 싶냐?! 어!”
하나 현성의 눈은 싸늘하기만 했 다.
놈들은 저리 소리를 지르고는 있지 만 겁을 먹은 게 분명하다. 떨리는 목소리하며, 선뜻 움직이지 않는 모 습, 그리고 다리를 떨고 있는 걸 보 니 분명하다.
화가 났음에도 냉철하게 상황을 분 석하는 현성.
저들의 수가 다섯이긴 했으나 모두 덤벼든다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주변에 있던 관객들이 하나 둘 몰려들고 있었다.
“저거 뭐야.”
“몸이 불편한 사람한테 싸움을 거 는 거야? 미쳤네.”
“여기에요!”
누군가 직원을 불러왔는지, 그때 유니폼을 입은 영화관 직원들이 달 려왔다.
그걸 본 양아치들도 일이 잘못되었 음을 알고 표정이 구겨졌다.
“이, 이 새X가 먼저…… 불리해지니 억지를 부리는 녀석.
하나 녀석들이 생각한 것만큼 현성 과 현아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현아는 자신이 들고 있던 태블릿을 꺼내 지금까지 찍은 영상을 틀었다.
-야, 그냥 두자, 존나 인생 불쌍하 지도 않냐? 저러고 평생 살아야 하 자너? 나 같았으면 자살했겠지만, 뭐 살겠다는데 그냥 둬.
-야, 야. 그만하고 가자.
구도도 완벽했다. 놈들의 얼굴은 자세히 찍히지 않았으나 먼저 시비 를 건 장면은 모두 촬영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씨XX이!
턱.
-지금 뭐하냐?
놈들이 먼저 덤빈 영상까지.
그걸 보자 놈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제가 중인 서드릴게요.”
“저도요!”
영상을 틀자 근처에 있던 관객들까 지 옹호해줬다.
용기가 없어 나서진 못했으나 약자 인 현아를 괴롭히는 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게다가 몇몇 이들은 자신들도 영상 을 찍었으니 보내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씨, 씨x! 튀어!”
“제, 젠장.”
“하, 내가 그러니까 진작 가자고 했잖아!”
그렇게 저희들끼리 떠들며 도망치 는 놈들을 굳이 잡지 않았다. 경찰 서까지 가봐야 좋게 끝내라고 말할 게 뻔하기도 했고, 이런 영상으로 고소를 하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 었다.
그래서 그냥 두었다.
단지.
“그 영상들 저한테 보내주실 수 있 나요?”
현성이 촬영을 했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번호를 나눠주며 영상들을 받았다.
‘재환이한테 얼굴은 편집해달라고 해야겠네.’
이대로 편집해서 인터넷에 올린다 면 아주 화제가 될 것이다. 물론 얼 굴을 가리기만 하면 법적인 문제도 없을 테고.
고소보단 이게 더 효과적이다. 이 제 녀석들은 고개도 들고 다니지 못 할 게 뻔했다.
촬영을 한 사람들이 꼭 그러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둘은 영화관을 나왔 다. 그 과정에서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해선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 다. 암묵적으로 그 얘기는 하지 말 자고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렇게 나오는데 현아가 현성을 보 더니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오빠 나 배고파. 헤헤.” 아까와 같은 일이 있었는데도 저리 활짝 웃다니.
다행이었다.
또 마음에 상처를 입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저 웃음을 보니 진짜 그냥 날려버린 모양이다.
“그럼 밥 먹으러 갈까? 뭐 먹고 싶은 건 있어?”
“으음, 딱히? 근데 휠체어 끌고 갈 수 있는 식당이 어디 있더라?”
현아가 말하면서 태블릿을 꺼내자 현성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레스토랑 가자.”
“뭐? 레스토랑?” “웅, 이 근처에 고급 레스토랑 있 어. 무슨 분자요리라고 했나? 암튼 되게 유명한 곳이니까 거기로 가 자.”
전에 회사 거래처 때문에 이 동네 에 왔을 때 선배에게 들은 적이 있 었다. 물론 그때 그 가게를 가진 못 했지만 위치나 이름 정도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현성의 말에 현아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이내 활짝 웃 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왕 먹으러 가는 거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좋 지 않은가.
게다가 그런 레스토랑일수록 서비 스가 뛰어나니 휠체어는 별 문제도 되지 않을 터다. 복장도 트레이닝 복이나 그런 것도 아니고, 나름 격 식 있게 차려 입었으니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었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땐 부담되어 서 가지 못했고, 그 이후에는 휠체 어나 현아의 상태 때문에 외출을 자 제하다 보니 같이 레스토랑에 간 적 이 없었다. 그것도 고급 레스토랑은.
‘돈도 많이 버는데 그거 다 어디다 쓰냐.’
이번에는 아이템도 빵빵하게 팔리 지 않았는가.
스킬 따위보다 여동생이 더 소중한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하다. 게다가 방금 전처럼 불쾌한 일도 있 었으니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좀 풀리진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현아도 좋아하니 바로 레스토랑으 로 향했다.
현성의 기억대로 가다 보니 다소 꼬이긴 했으나 정확히 도착할 수 있 었다.
“오오, 분위기 좋다. 근데 이런 곳 은 예약하지 않으면 못 오지 않아?”
현아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물었으 나 현성은 괜찮다는 듯 미소 지었 다.
그러나 속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 망했다.’
어디 현성도 이런 레스토랑에 와봤 어야 알지, 평생 와본 적도 없었으 니 알 리가 있겠는가.
현성은 다소 긴장한 채로 현아를 데리고 입구로 들어갔다.
웨이터로 보이는 사람이 현아를 보 곤 현성에게 물었다.
“혹시 예약하셨습니까?”
“아니오.” “아, 그럼 이쪽으로 안내해드리겠 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올 뻔했으나 간신히 참으며 웨이터를 따라갔다.
곧 한적한 룸으로 안내받자 현성은 마음에 든다는 듯 방안을 살폈다.
보통 예약했을 때 안내하는 룸인 거 같았는데 오늘은 예약이 없는 것 인지 이쪽으로 안내한 거 같았다.
“이곳이 비었는데 괜찮으십니까?”
“예, 이쪽으로 하겠습니다.”
“오오.”
현성이 그렇게 대답하자 웨이터가 현아를 편하게 앉게 해주기 위해 의 자를 빼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그럼 메뉴 결정되면 벨을 눌러 주 십시오.”
마지막까지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나가는 웨이터를 보며 현아가 호들 갑을 떨었다.
“우와아, 서비스 대박이다. 그치?”
“그, 그러니까.”
평소 같았으면 뭔 호들갑이냐며 핀 잔을 줬을 테지만 지금은 현성도 마 찬가지로 다소 놀란 상황이다.
이런 곳을 와봤어야 말이지.
하나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진 않았 다. 사회생활을 해본 경험이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일단 메뉴 고를까?”
“코스! 코스 먹자!”
“ 코스?”
“원래 이런 곳에 오면 코스를 먹는 거지! 안 그래?”
그 말에 현성은 피식 웃으며 고개 를 끄덕였다.
하기야, 이런 곳에 오면 대부분 코 스를 시키지 않던가. 일반적인 이미 지가 그랬으니 현성도 나쁘지 않다 고 생각했다. 게다가 현아가 저렇게 원하고 있었으니.
현성은 그렇게 메뉴판을 보며 코스 요리를 확인했다.
입이 쩍 벌어질 만큼 비싼 금액.
하나 당황하지 않았다.
‘뭔 코스 요리가 1인분에 50만 원 이 넘냐?’
그나마도 제일 싼 게 30만 원이 넘었다.
상상도 못할 가격이었으나 현성은 절대 티내지 않고 침착하게 메뉴를 읽었다.
‘그래도 이왕 온 거 제일 비싼 걸 먹어야지. 그리고 와인도 보통 시키 던데.’
술이라고는 소주나 맥주, 그도 아 니면 막걸리나 마시던 현성이었지만 이런 곳에 와서는 와인을 먹어 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메뉴를 봐도 어떤 와인이 좋은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모두 외국어로 적혀 있었기 에 대부분 읽지도 못했다.
‘미치겠네.’
그렇다고 와인까지 제일 비싼 걸 시킨다면 졸부나 촌놈처럼 생각할 수도 있었다.
방금 웨이터의 서비스를 떠올리면 그럴 확률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좀 그렇지 않은가.
‘추천 와인으로 해달라고 해야겠 어.’
그나마 있어 보이는 추천 와인.
그래, 그게 제일 무난해 보였다.
메뉴를 고른 현성은 벨을 눌렀고, 얼마 있지 않아 웨이터가 노크를 하 고 들어와 말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코스 D로 주시고, 와인은 이 코 스 요리에 어울리는 것으로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코스에 맞는 와인으 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신분증 확인 좀 하겠습니다.”
이런 레스토랑에 와서도 신분증을 확인할 줄이야.
좀 의외이긴 했으나 술을 마시는 건데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 보였 다.
“헉! 오빠, 나 신분중……
“혹시 몰라서 내가 미리 챙겼지. 여기 있습니다.”
역시 준비성 철저한 현성이다.
현아도 감탄하며 엄지를 치켜세웠 다.
신분증을 확인한 웨이터는 고개를 끄덕이곤 메뉴판을 수거하더니 인사 를 하고 나갔다.
다른 가게와 별다를 것도 없는 서 비스였으나 왠지 달라 보이는 느낌 적인 느낌.
분위기가 천지차이라서 그런 것일 까.
‘괜찮네.’
가끔 이렇게 현아와 나들이를 한 날 들리면 좋을 거 같았다.
현아도 상당히 신나하는 눈치였다.
하나 실상은 조금 달랐다.
‘으, 좋긴 한데…… 언제 말하지? 밥 먹을 때 해야 하나?’
언제쯤 말을 할지 각을 재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신난 것도 맞긴 하나 언제 말해야 할지 갈등도 되었기에 심적 으로는 상당히 갈팡질팡한 상태였 다.
‘그래! 지금 말하자!’ 현아는 그렇게 결심하고 현성을 불 렀다.
“오빠……
똑똑똑.
“실례하겠습니다.”
“크흡.”
현아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웨이터 가 노크를 했고, 현성은 의아하다는 듯 현아를 봤다.
왜 불렀냐는 듯.
현아는 웃으며 아니라는 듯 살짝 고개를 저었고 웨이터가 가져온 전 채요리를 봤다.
“우와.”
“오호.”
현아와 현성이 동시에 감탄을 하며 본 전채요리는 예술 작품이라고 할 법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치 튤립과도 같은 모양을 한 꽃 과 그 밑에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빵이 있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요리.
게다가 냄새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단점이 하나 있었다.
“되게 작다. 그치?”
“좀 조용히 해.”
현아가 눈치도 없이 웨이터가 있는 데도 그렇게 말하자, 현성은 민망하 다는 듯 작게 말했다.
웨이터는 그런 둘을 보며 아무렇지 도 않다는 듯이 가져온 와인을 잔에 따라주며 말했다.
“식욕을 돋울 수 있게 해주는 화이 트 와인입니다.”
쪼르르르륵.
그렇게 현성의 잔과 현아의 잔에 와인을 따라준 웨이터는 다시 인사 하고는 나갔다.
“즐거운 시간되시길.”
웨이터가 나가를 것을 보던 현아는 그 먹음직스러운 요리는 보지도 않 은 채 현성을 봤다.
현아와 달리 현성은 요리에 눈길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는 곧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빵을 조금 잘라 입 에 가져갔다. 그리고 점점 커지는 두 눈.
상당히 맛있는 모양이다. 물론 양 이 적어서 포크질 두 번 만에 사라 졌지만.
“오오, 진짜 맛있는데? 현아 너도 먹어봐.”
“오, 진짜?”
“웅, 대박인데?”
현성은 그렇게 말하며 와인도 한 모금 마셨다.
향이 좋기는 했으나 맛은 생각보단 별로였다. 그래도 요리와 궁합이 맞 는 것인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 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와인을 한 모 금 머금고 있을 때 예전 직장선배가 말해준 게 떠올랐다.
-와인은 말이야, 입안에서 한 번 굴리며 향을 음미하고 마시는 게 와 인이라는 거야. 이 와알못아! 그 말을 떠올리곤 현성은 입에 머 금은 와인을 입안에서 한 번 굴렸 다.
확실히 향이 좀 전과 다른 거 같 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현아가 뭔가 다짐한 듯 다시 현성 을 불렀다.
“오빠. 나 좀 봐봐.”
“......2”
와인을 마시고 있던 터라 현성은 그저 눈만 돌려 현아를 바라보았다.
“짜잔.”
쪼르르르륵. 입안에 머금고 있던 와인이 입에서 흘러나와 다시 잔으로 떨어졌다.
아침 드라마에서나 봤을 법한 그 장면이 지금 여기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현성은 처 음 요리를 먹었을 때보다 더 큰 눈 으로 현아를 보기만 할 뿐이었다.
“너, 너어!”
“헤헤헤. 나 다 나았어. 이제 근력 만 회복되면 걸을 수 있대.”
서 있었다.
현아가 두 다리로 서 있었다.
약간 몸을 떨고 있긴 했으나 확실 히 아무것도 짚지 않고 홀로 서 있 었다.
그걸 본 현성의 표정은 경악으로 가득 차있었다. 평소 표정 변화가 크지 않은 현성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헤헤.”
현아는 이제 감격할 현성을 기대하 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현성은 무서운 표정으로 현 아를 보며 물었다.
“너! 언제부터 나은 거야!”
“에엥?”
“너! 이 정도로 서 있을 수 있으면 그동안 재활치료 받았다는 건데! 왜 아무 말도 안했어!”
“이, 이게 아닌데?”
“어?! 똑바로 말 안 해?”
역시 이상과 현실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