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84화
모두가 승리에 취해 있었을 때 예 은만 그런 고민에 빠진 것은 아니었 다.
베네아로 이동하자마자 골목으로 들어가 가면을 벗은 현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큰일이네.’
레벨 99.
업만 더 하면 100을 찍을 수 있 다.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공성전에 참 여할 수 없다는 것.
가면을 벗은 현성은 자신을 알아볼 수 있을 법한 장비아이템들을 모두 교체한 후 그곳에서 은밀하게 빠져 나왔다.
‘아직 퀘스트가 깨지지 않았다는 건 잔당 녀석들이 다시 온다는 얘기 인데.’
예은이 걱정한 바와 같았다.
게다가 이번 전투로 상당수의 몬스 터를 처치했지만 도망친 몬스터가 전부라곤 할 수 없다.
아직 숨어 있는 잔당들도 있다는 가정 하에 다음 전투 혹은 그 다음 전투가 마지막 전투라 볼 수 있었는 데, 더 이상 현성은 참전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참전한다면 대회를 포기해야 하는데, 그게 대회를 포기할 만큼의 메리트가 있는가? 아니, 전혀 없었 다.
그러나 문제는 현성이 없으면 질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에 대한 마땅한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
‘대회를 포기할 만한 메리트가 전 혀 없는데 내가 없으면 진다니 달빛늑대와 혹사들만 있었을 때도 밀렸는데, 이제 남은 몬스터들은 대 부분이 오우거와 거대오크들이다. 물론 달빛늑대들과 혹사보다는 그 수가 현저히 적었으나 놈들은 또 그 만큼 강력했다.
‘무슨 좋은 수가 없나? 슬슬 로그 아웃해야 하는데.’
지금 현성은 현아에게 좀 더 자겠 다고 하고 잠시 접속한 상태다. 그 리고 어제 듣기론 매일 병원에 가서 재활치료를 받는다고 했다.
이제 좀 걸을 수 있다고 하지만 병원까지 혼자 어떻게 보내겠는가. 아직 다 낫지도 않은 아이를. 그래 서 어제 현아를 병원까지 데려다주 기로 약속하지 않았던가.
어차피 운동도 가야 했기에 데려다 주고 운동 끝나면 데려가기로 했다. 간병인 아주머니도 휴가 보낸 지금 은 다른 방법도 없었다.
게다가 시어머니가 간병이 필요할 거 같다는 문자를 어제 받고는 충분 히 쉬시다 오라고 당부까지 하지 않 았던가. 그러니 아주머니가 다시 나 오기 전까지는 현성이 데려다 주는 게 맞았다.
‘지금 상황을 보니 함부로 나가는 것도 좀 그렇고.’
지금 나간다면 게임 시간으로 저녁 이 되었을 때 몬스터들이 또 공격해 오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도 떠오르지 않 아 한참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의 곁에 갑자기 리베우스가 방긋 웃으 며 나타났다.
“저 왔습니다! 주인님!”
“어, 그래.”
불쑥 나타났음에도 현성은 그리 놀 라지 않았다.
아까 막 접속했을 때도 이렇게 불 쑥 나타나기도 했으니 이제는 적응 한 것이다. 게다가 리베우스의 레벨 은 560이지 않은가.
이젠 뭘 해도 그다지 놀랍지도 않 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어라?”
현성이 이상하다는 듯이 리베우스 를 봤다.
리베우스는 자신을 보는 현성을 향 해 싱긋 웃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 다.
그 얼빵한 모습에 현성은 왠지 모 르게 주먹으로 한 대 때리고 싶었으 나,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 다.
레벨 560의 리베우스.
그는 레벨이 높았음에도 동쪽 성문 에 같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뿐 만이 아니라 몬스터의 코앞까지 같 이 이동할 수도 있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너 어떻게 나랑 같이 갈 수 있었 던 거야?”
“예‘?”
“아까 동쪽 성문 쪽으로 갈 때 나 랑 같이 들어갈 수 있었잖아. 그거 어떻게 한 거야?”
“주인이 가시는 곳에 이 미천한 종 이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 다!”
그 말에 현성은 뭔가 깨달았다는 듯 눈을 번쩍 떴다.
이거다.
이게 해결책이다.
‘NPC는 레벨 제한을 안 받는 것 일 수도 있겠어.’
단지 리베우스가 현성을 쫓아다니 기 때문에 올 수 있는 것이라고 생 각할 순 없다. 얼핏 봤던 경비대장 이나 경비대들도 150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레벨들이었다. 그걸 생각한다면 NPC는 결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리라. 아니, 받는다 해도 상관없었다.
현성이 떠올린 방법이라면 굳이 자 신이 없더라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그런 방법이 있었어.’
현성은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지 금 자리를 비워도 딱히 상관없는 방 법이.
물론 이 방법을 쓰려면 필수적으로 두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다.
‘일단 예은 님한테 연락을 해야겠 다.’
현성은 즉시 예은에게 귓속말을 걸 었다.
[현성: 예은 님?]
[예은: 네!
[현성: 아, 혹시 로그아웃하셨으면 어쩌나 했습니다.]
그 말에 예은은 매우 기뻐했지만, 그건 현성이 알 리가 없었다. 최대 한 티내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가다 듬고 예은이 물었다.
[예은: 네, 무슨 일이신가요?]
[현성: 다름이 아니라 제가 다음 공성전 때는 참가하지 못할 거 같습 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힘들 거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만한 말이다. 그러나 현성이 그렇게 말한다면 조 금 달랐다.
현성이 직접 말하진 않았으나 예은 도 알고 있다. 그가 참가하지 않으 면 공성전은 무조건 질 거라는 것 을. 게다가 지금처럼 승리에 취해있 을 때라면 이기기가 더 힘들다.
[현성: 지금같이 다들 좋아하고 있 다 보면 긴장이 풀어질 테고, 아무 래도 힘들어질 거 같습니다.] [예은: 아, 역시 현성 님, 아니 아 수라 님도 그 점을 생각하고 계셨군 요. 저도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고 민이었는데……, 거기다 아수라 님 까지 빠지면 다음엔 큰일이 날지도 모르겠네요. 남은 몬스터들은 오우 거와 거대오크들이 대부분일 텐데.]
[현성: 맞습니다.]
거대오크와 오우거.
이 둘이 몰려온다면 아무리 예은이 라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가 더 낮아졌 다. 아무래도 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때 현성이 말했다.
[현성: 예 그거 때문에 연락을 드 렸습니다. 제가 생각을 해봤는 데…….]
현성의 말이 이어질수록 예은은 왜 진작 이런 방법을 생각하지 못했는 지 안타까워했다. 여러 상황이 겹쳐 지다 보니 대책을 마련할 시간도 없 었던 것이다.
처음 공습은 새벽에 일어나 누구도 대책을 마련한 시간이 없었고, 두 번째 공격 또한 게임상으로 바로 다 음 날 일어나다 보니 어쩔 수 없었 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같은 날 일 어났고, 마지막 다섯 번째는 새벽이 아닌 낮 시간에 바로 일어났기에 대 책을 마련할 시간이 촉박했다.
이제 일어나기 시작한 유저들이 많 을 텐데, 현성이 말해준 방법이라면 그 유저들과 함께 베네아를 충분히 지키고도 남으리라.
[예은: 그러면 제가 고레벨 유저들 을 모아보겠습니다. 저희 언니 인맥 을 활용하면 어렵진 않을 거예요.]
[현성: 소수 정예라고 들었는 데…….] [예은: 그 길드의 산하 길드가 좀 큰 길드거든요. 그러니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산하 길드라니.
들은 적은 없었으나 상대는 길드장 의 친동생이다. 그러니 틀림없을 터.
[현성: 그렇다면 믿고 있겠습니다.]
예은은 그 말에 꿀꺽 침을 삼켰다.
동경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믿겠다 고 말을 했다.
이 얼마나 기쁜 날인가.
[예은: 예! 맡겨만 주세요!]
언니 린에게 아수라가 부탁한 일이 라고만 말해도 산하 길드뿐만이 아
니라 본인이 직접 와서 도울 확률도 있었다.
[현성: 그럼 다른 쪽은 제가 맡겠 습니다.]
원래부터 예은에게 고레벨 유저들 을 부탁하려 했는데 마침 잘되었다.
[예은: 네! 걱정 마십시오. 이 작전 이라면 무조건 이길 것 같습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현성: 아닙니다, 별거 아닌걸요. 그럼 부탁하겠습니다.]
[예은: 네!]
귓속말을 끊자 예은은 매우 기뻐했 다.
현성과 친구가 된 지 현실 시간으 로 불과 하루밖에 안 되었는데, 이 렇게 자신을 믿어주다니!
이번 전투로 인해 단단히 점수를 딴 모양이다.
‘역시 아수라 님 말대로야.’
예은은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아이템들을 수거하면서 여전히 승 리에 도취되어 있는 유저들. 저런 유저들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현성이 오지 않는 이상 그가 말한 방법이 아니고서는 승리는 희박하 다.
그걸 바로 깨닫자 예린은 바로 린 에게 귓속말을 걸었다.
[예은: 언니.]
[예은: 언니?]
[예은: 언니!]
세 번째 불렀을 때 드디어 린이 응답했다.
[린: 웅? 무슨 일이니?]
평상시의 예은이라면 이렇게 급하 게 부르는 일이 없기에, 린은 다소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하기야 늘 도도하고 까칠한 예은이 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격이 급하 거나 욱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급하 게 부르는 걸까?
[예은: 아수라 님에게 부탁받은 게 있어.]
[린: 뭐, 뭐? 현성, 아니 아수라 님?]
[예은: 아, 그러고 보니 말 안했네. 베네아에서 아수라 님을 만나 아이 템도 건네주고 친구 등록도 했는 데……. 지금 공성전 하고 있는 건 알지?]
예은의 말에 뭐부터 물어야 할지 혼란스러운 린이었다.
아수라, 그러니까 현성을 만나서 아이템도 건네주고 친구로 등록까 지?
[린: 그, 그걸 이제 말하는 거야? 어제 같이 밥도 먹었잖아!]
[예은: 크흠, 미안.]
린답지 않게 목소리를 다소 높였으 나 예은은 기침을 하며 사과했다.
현성은 닉네임만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예은은 만남 자체를 통째로 비밀로 해버린 거였으니 사과하는 것이다.
[예은: 아무튼 아수라 님이 부탁하 신 게 있는데 언니 도움이 필요해.] 그 말에 린이 두 눈을 반짝이며 사냥하는 것을 멈추곤 예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예은에게서 한참 동안 상황 설명이 이어졌다. 베네아가 심각하다는 말 은 들었으나 설마 그 정도로 심각할 줄이야.
그리고 듣다 보니 확실히 좋은 전 략이 었다.
꼭 현성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 방법을 떠올렸겠지만, 정신이 없는 통에 누구도 그것을 떠올리지 못한 듯싶었다.
[예은: 그래서 산하 길드에 말해서 베네아로 오게 할 수 있었으면 해 서.]
[린: 다들 바쁘긴 하지만 문제없을 거 같아. 이런 일이라면 너도나도 도우려고 할걸? 그럼 우리 길드원들 도 다들 데리고 가야겠다.]
[예은: 어? 그래도 돼?]
[린: 마침 다들 할 일이 없어서 다 같이 사냥 중이거든. 아, 현아는 병 원 가야 해서 없다.]
[예은: 현아?]
[린: 아, 전에 말한 영웅 등급 힐 러. 너랑 나이도 같아서 금방 친해 질걸?]
[예은: 아, 응.]
예은은 그렇게 대답했으나 뭔가 묘 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설마 아수라 님이 말한 지인 이…… 그 사람인가?’
전에 들은 현성의 말이 문득 떠올 랐다.
그때 길드에 지인이 있다고 했었 다.
그런데 떡하니 닉네임이 비슷한 현 아라는 사람이 있다니.
게다가 둘 다 본명인 듯싶었다.
‘설마 가족인가?’ 역시 눈치가 빠른 예은답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언니인 린도 현성의 닉네임 을 알고 있지 않는가.
‘언니는 아직 눈치 못 챈 거 같네.’
[린: 그러면 베네아로 가서 연락할 게.]
[예은: 웅, 언니.]
저 말을 듣고는 예은은 순간 확신 했다.
아직 린은 모르고 있다고.
‘괜히 먼저 말하지는 말자. 언니는 거짓말 못하니 얼굴에 드러날 거 야.’
혹시라도 린이 말하면 자신이 말한 게 될 수도 있었기에 아예 눈치 못 챘을 때 그냥 두는 게 제일 나았다.
그렇게 귓속말을 끊었다.
한편, 현아와 자신과의 관계를 들 켰으리라곤 생각도 못한 현성은 예 은과 귓속말을 끊곤 리베우스를 보 며 작전에 대해 말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라면 무조건 가 능하리라.
“……잘 알아들었지?”
“아아, 이 리베우스! 주인님의 식 견에 그저 감탄할 따름이옵니다!”
“아무튼 알아들었지?”
“예! 미천한 종이오나 주인님의 분 부를 완벽히 이행할 수 있도록 하겠 나이다!”
저렇게까지 말하니 믿어볼 수밖에.
이제 로그아웃을 해야 할 때다.
리베우스를 보내고 현성은 여관으 로 가서 로그아웃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타나노스의 기면증 스킬이 발동됩 니다.] [강제로 수면상태에 빠지게 됩니 다.] [강제 로그아웃 때까지 캡슐이 망 가져도 캐릭터는 게임에 남아 있으 니 접속을 해제해도 됩니다.] ‘참나, 하필 이럴 때……. 아니, 좋 은 건가? 접속도 오래 안했으니 오 랜만에 능력치 많이 받겠네.’
그저 그렇게 생각하며 현성은 캐릭 터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암전이 되자 캡슐에서 나가 버렸다.
한편, 그렇게 남은 리베우스는 현 성이 쓰러지는 것을 보자마자 전율 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 위대하신 모습을 이 미천 한 종이 직접 뵈옵게 하다니! 감격! 또 감격했나이다! 이것이 진정한 신 의 모습!”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기면증으로 길 한복판에서 잠을 자고 있는 현성 의 캐릭터를 보며 리베우스는 바닥 에 머리를 찍으며 절을 하기 시작했 다.
“아아! 위대하신 신의 모습을 뵙습 니다!!!”
그 똘아이 같은 모습에 유저건 NPC건 할 것 없이 몸을 벌벌 떨면 서 수군거렸다.
“엄마 무서워……, 빨리 가자. 눈 마주치지 마.” “별 미친 NPC가 다 있네. 몬스터 들 공습 때문에 그런가?”
“그보다 우리도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경비병! 경비병! 여기 미친놈이 있소!”
그렇게 소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리 베우스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절 을 했다고 한다.
물론 후에 그나마 정신을 차리더니 현성의 옥체를 그냥 둘 순 없다며, 제단에 모셔야 한다며 순간이동으로 사라지긴 했다. 하지만 그 장면은 이데아 홈페이지에 베네아 미친 사 제라는 이름으로 사진과 함께 고스 란히 올라갔다고 한다.
물론 현성의 얼굴은 동의를 하지 않아 모자이크 처리되었으나, 현성 이 그걸 안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