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85화
기면중으로 로그아웃을 한 현성은 밖으로 나왔다.
몸은 분명 찌뿌둥하지 않았는데 왠 지 기분이 상당히 찝찝했다. 중요한 타이밍에 기면중으로 쓰러진 것도 아닌데 왜 그럴까?
하지만 현성은 크게 신경 쓰지 않 았다.
‘별일 아니겠지.’
캡슐 밖으로 나온 현성은 제일 먼 저 기사 아수라의 데뷔 영상을 재환 에게 보낸 뒤 문자를 보냈다. 대충 좋은 영상이니 보고 연락 달라는 내 용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영상을 올린 사람에게 또 영상을 주는 건 좀 그 렇다고 생각했지만, 재환이 달라 했 으니 어쩌겠는가.
‘난 몰라. 걔가 달라고 했어.’
분명 들어가기 전에 확인한 문자에 는 영상을 찍으라고만 했지 달라고 는 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재환도 만족할 만한 영상임은 틀림없었다.
영상을 보낸 뒤 물을 마시려고 나 와 보니 현아가 TV를 뚫어져라 보 고 있었다.
현성이 나온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모양.
‘병원 가자고 날 깨운 거 같은데 저렇게 TV를 보고 있네.’
뭐 현아도 다 씻고 준비를 끝낸 것 같으니 일단 TV를 보게 하고 현 성은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 갔다.
여자가 남자보다 샤워를 오래한다 지만 현성도 만만치 않게 샤워를 오 래하는 편이었다.
빨리 해도 20분. 여유를 가지고 하 면 적어도 30분에서 40분 정도 걸 린다. 꼼꼼하게 씻다 보니 그리 오 래 걸리는 것이다.
샤워를 끝내고 나온 현성은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헐.”
현아는 아직도 TV를 보고 있었다.
보통이라면 현성이 준비하는 소리 를 듣고 현아도 바로 출발할 수 있 게 준비했을 텐데, 너무 집중해서 보는 중이다.
‘대체 뭘 보는 거지?’
이젠 궁금할 지경인지라 현아가 보 고 있는 TV를 현성도 봤다. 채널은 현성이 캡슐에 들어가기 전 이랑 같았다. 다만 화면에 나오는 영상은 다름 아닌 현성이 공성전에 참여한 모습.
그건 이미 현성이 재환에게 보낸 영상이었다.
다만 좀 다른 게 있다면 화면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과 대부분의 모 습이 모자이크 처리가 되었다는 점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도중에 영상촬영 허가요청 엄청 떴었지. 뭐 다 거절 해서 저 모양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강의 실루엣이 나오니까.’ 현성에겐 딱히 중요하지 않았으나 TV를 보는 현아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흐엥, 왜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을까? 야동도 아닌데.”
아수라의 얼굴이 상당히 보고 싶었 는지 시무룩한 현아.
현성은 그것이 귀여워 보이기도 했 지만 한편으론 좀 미안하기도 했다.
‘허락해줄 걸 그랬나?’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촬영하는 영상이라면 몰라 도 남이 촬영하는 영상에 찍히고 싶 은 마음은 없었다. 재환이 찍어준다 면 또 모를까.
“뭐 그리 실망하고 있어. 어차피 아수라도 촬영해서 올렸겠지.”
“그렇겠지? 그보다 스타일이 완전 히 다른 거 같더라고. 괜히 애태우 게, 그냥 보여주지. 히잉.”
“참나, 뭐 자기 유튜브에 올리는 게 좋아서 촬영 거부를 한 거겠지. 아수라도 아수라만의 사정이 있겠 지.”
“아, 그렇겠지? 하긴 영상도 저작 권이 있는데, 내가 생각이 좀 짧았 다.”
현아는 금세 헤헤거리더니 웃으면 서 일어났다.
다소 부들거리긴 해도 스스로의 힘 으로 일어나는 걸 보니 또 감회가 새로웠다.
진짜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아침에는 비몽사몽으로 느낌이 덜 했으나 샤워까지 하고 난 뒤 보니 진짜로 마음이 찡했다.
“그럼 병원 가자!”
“나도 옷 갈아입고 나올게.”
현성은 운동할 때 필요한 짐들을 가져갈 참이었다.
병원에 대려다 주고 운동을 가야 했으니까.
‘현아를 데리고 오려면 조금 일찍 끝내야겠네.’
조금 아쉽긴 했지만 실전무술학원 은 당분간 쉬어야겠다.
마침 요즘 운동도 대련보다는 체력 을 키우느라 동작연습 위주로 하고 있었기에 그건 이데아에서도 딱히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외에는 헬 스장에서 대충 운동하면 충분했고.
그래도 빠지는 건 알려야 할 것 같아 현성은 관장에게 전화를 걸었 다.
무슨 일이냐.
“아, 실은 동생 때문에 며칠 도장 에 못 갈 거 같습니다.”
-뭣! 그게 진짜냐?!
마치 호통을 치듯 말하는 화인 관 장.
그 말을 듣자 현성은 죄송하다는 듯이 말했다.
“예, 시간이 나지 않을 거 같아서 요. 뭣하면 저녁에라도 가서……
-아니아니아니! 가족이 아픈데 무 술이 대수겠느냐? 무엇보다 무술이 라는 게 왜 있는 것이냐?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자기 자신을 단련하 기 위해 연마하는 것이! 무! 술! 염 려 말고 동생 간호에 전념하게!
왠지 기합이 잔뜩 들어간 말.
그 말에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긴 했으나 왠지 전에 들었던 거랑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전에는 분명 효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 무술이라고 하셨는 데, 뭐 저 말도 틀린 건 아니니까.’
필사적으로 화인 관장이 막는다는 걸 모른 채 현성은 감사를 표했다.
“예, 감사합니다.”
-아니, 내가 더 고맙지. 안 그래도 요즘 좀 빡, 아니 크흠흠. 암튼 이 현성이 너도 몸조리 잘하고. 동생 간호 잘해라.
“예, 관장님. 그럼 다음 주에 뵙겠 습니다.”
- 오냐.
마지막에 끊으면서 더 쉬어도 되는 데 라는 말을 들은 거 같았으나 현 성은 깔끔히 무시했다.
옷을 대충 갈아입은 후 밖으로 나 오자 현아도 준비를 다했는지 휠체 어를 타고 나왔다.
“그럼 가자!”
“그래.” 현성은 현아의 뒤에서 휠체어를 밀 며 밖으로 나섰다.
그리 먼 거리에 있는 병원이 아니 었기에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던 중 현아가 깜빡했다는 듯 현성을 보며 물었다.
“참! 오빠 아수라 님한테 물어보기 는 했어?”
“응? 뭘?”
기억에 없다는 듯 말하자 현아가 쌍심지를 켜며 현성을 노려봤다.
뭘 물어보라고 했더라?
한참 생각하던 현성은 마침 기억이 났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때 그거? 당연히 물어봤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으나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지 않았는가. 더군다나 현성 본인이 아수라니 질문을 할 리 가 없었기에 그동안 까먹고 있었다.
현성이 물어봤다고 하니 눈빛부터 달라지는 현아.
그걸 보니 현성은 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컨트롤이 좋긴 하지만 저 정도로 좋아할 수준인가?’
이거 더 좋아하기 전에 말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 으나, 어제 일을 생각하면 괘씸했기 에 현성은 더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래서? 뭐라셔?”
“그거, 아이템은 이미 예은이라는 사람한테 받았다는데? 그 사람 리나 라는 너희 길드장님 친동생이라는 데, 너는 못 들었어?”
“뭐어!? 진짜야?”
처음 듣는 말이라는 듯 되묻는 현 아를 보며 현성은 어색하게 웃었다.
‘처음 들었나 보네.’
당연히 길드장이라는 사람에게 들 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묻는 거부 터 이상하다 싶더니 역시 못 들은 모양이다.
그 얘기를 듣자 어깨가 축 처진 현아.
그걸 보니 좀 마음이 쓰였다. 저러 다 재활치료도 집중 못하는 것 아닌 가 하고.
“그리고 아직 길드에 들어갈 생각 은 없지만, 들어가게 되면 너희 길 드를 먼저 생각해 보겠다고 하더 라.”
“헐. 진짜?”
아까까지만 해도 병든 병아리처럼 축 처져 있더니 이젠 휠체어를 끄는 현성을 향해 고개를 들고 빤히 바라 보며 묻는다.
현성이 진짜라며 고개를 끄덕이자 무척 신나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발 장구까지 친다.
그게 그렇게 좋은 건가?
‘이거 너무 극과 극 아닌가?’
좀 문제 있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원래 저 나이 또래에 무언가를 덕질 하는 건 당연하다고 들은 것도 같았 기에 현성은 크게 걱정하진 않았다.
여기서 더 과해지면 뭐라 할 생각 이긴 했지만.
‘그땐 진짜 아수라가 나라는 걸 밝
혀야지.’
아수라가 친오빠라는 사실을 알면 신비감과 팬심이 뚝 떨어질 게 분명 하다.
이건 그때를 위한 비밀로 남겨두자 며 다짐하는 현성이었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하자 현아는 여 전히 가지 않는 현성을 의아스럽게 봤다. 어제도 로비에만 데려다 주면 그 이후로는 알아서 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왜 아직도 있냐는 눈빛이 다.
그걸 본 현성이 피식 웃으며 말했 다.
“오랜만에 선생님 좀 뵙고 가려고. 그간 앙큼한 너 때문에 거짓말하느 라 고생하셨으니 인사도 드릴겸.”
“그, 그걸 아직도 그렇게 담아두고 있냐.”
불과 하루된 것이었으나 두고두고 놀려줄 참이다.
현성은 후후 웃으며 현아와 함께 승강기를 타고 이미나 담당의사가 있는 진료실까지 갔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문 너머로 들리는 소리를 듣고 현 아와 현성이 들어가자 이미나는 놀 랐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은근한 눈길로 현아를 바 라봤다. 마치 드디어 말했냐는 눈빛 이다.
그걸 보며 현성은 피식 웃더니 말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 일단 앉으시죠. 하고 싶은 말 도 있으신 거 같으시고.”
“역시 심리학 박사시네요.”
“호호, 심리학 박사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는 거지요.” 현성이 들어오자 이미나는 현아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럼 현아 양 먼저 재활치료 하고 있으세요. 저는 오빠분이랑 얘기하 다 갈게요.”
“네엥!”
현아는 가볍게 대답했고 뒤이어 들 어온 재활치료 담당의사와 함께 진 료실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나가자 이미나가 미안하다 는 듯 현성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 동안 속인 것에 대한 사과였다.
“아무리 현아 양의 말이 있긴 했어 도 그간 속여서 죄송합니다. 원칙상 보호자에게도 차도를 말하는 게 맞 지만, 현아 양이 간곡히 얘기를 하 다보니……
“아휴, 괜찮습니다. 저야말로 못난 동생의 떼를 받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려고 온 겁니다.”
“아니에요, 의사로서 당연한 걸요.”
방긋 웃는 이미나를 보며 현성도 웃었다.
좋은 사람이다.
정신과 의사인 것을 떠나서 사람 자체가 좋은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 고서야 현아와 친자매처럼 저리 지 낼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 못지않게 사람 보는 눈이 있 는 현아가 친하게 지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것보다는 지금 현아의 상태가 궁 금했다.
“그보다 언제부터 차도를 보인 건 가요? 제가 듣기로는 3개월 전부터 라고 들었는데.”
“우선 현아 양이 느끼기 시작한 건 3개월 전부터가 맞긴 합니다만 훨씬 전부터 차도가 있긴 했습니다.”
“그랬군요.”
“원래 심리적인 요인으로 장애가 오신 분들은 가족에게 느끼는 부담 때문에 더 심해지는 경우가 많습니 다. 이를테면 이렇게 돼서 부모님에 게 미안하다든가, 오빠에게 미안한 다든가 그런 심정이지요.”
“네.”
“그러다 보면 가족들도 지치게 되 어버리죠. 처음에는 잘 대해 주다가 피해망상까지 오는 환자들을 보면 손을 놓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아니 면 고작 그런 것도 이겨내지 못하냐 며 오히려 윽박지르는 분들도 계시 죠.” 현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옛날 분들이겠네요.”
“거의 그렇죠.” 심적으로 병이 생긴 가족에게 심리 적으로 더 압박하다니.
현성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에 반면 현아 양은 그런 것을 느끼기보다 자신이 빨리 나아서 오 빠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을 가 지고 있었죠. 그걸 보면 오빠분께서 얼마나 잘 대해주셨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답니다.”
“……그저 회사만 다니다 보니 같 이 시간도 많이 못 보냈는걸요.”
“처음 몇 년은 현아 양도 다른 사 람들처럼 피해망상과 더불어 부담을 느끼긴 했습니다만, 이데아를 통해 서 점점 밝아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오빠분이 자신에게 얼마나 정성을 쏟는지 알게 되어 잘된 케이스입니 다.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물론 현아 양도 대단하지만요.”
“하하, 과분한 말이네요. 말씀만이 라도 감사합니다.”
방긋 웃어주는 이미나에게 그저 고 마울 뿐이었다.
슬슬 시간이 되어 현성이 일어나려 하자 이미나도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럼, 제가 운동을 가야 해서요. 남은 얘기는 내일 하시죠.” “호호,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가 세요.” 이미나는 나가는 현성을 복도까지 배웅해준 뒤 재활치료를 하는 현아 에게 가려 했다.
그때 가운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 이 울렸다.
“여보세요?”
-응, 난데 누나 캡슐 왔는데 어디 다 설치해 달라고 할까? 누나 방?
“아니 서재.”
-알겠어. 그보다 웬일이야? 전에 그렇게 권유해도 이데아 안 한다면 서 별로 관심도 안 간다고 하지 않 았어?
“응, 그랬지.”
이미나는 그렇게 말하며 이미 현성 이 가버리고 없는 복도를 바라보며 말했다.
“최근에 관심이 가기 시작해서. 한 번 해보려고.”
-오케이. 내가 누나 도와줄 테니까 이따 집에서 봐.
“응.”
동생의 전화를 끊고 이미나는 실실 웃으며 중얼거렸다.
“환자들 대부분이 이데아를 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게 신기 해.”
원래는 별 관심이 없었으나 최근에 오는 환자들이 대부분 이데아를 통 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 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플레이 해보려고 그녀는 캡슐을 하나 구매 한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이데아에 관심을 갖 는 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마나 재밌으면 그럴까?’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기에 이데아 를 하는 환자들이 이데아 얘기만 하
는지 그 이유가 알고 싶었던 것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