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89화
대회에서 원래 가지고 있는 스킬을 사용할 확률이 높기에 사용 가능한 스킬을 늘릴수록 현성에겐 좋았다.
게다가 여러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는 게 전투할 때 더 재미있는 법.
그렇기에 DP상점은 현성에겐 가뭄 에 내리는 단비와도 같았다.
‘대회 전에 돌릴 수 있으니까 대박 이겠네.’
대회에 관한 공지는 아직 이데아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지 않았다.
하나 잘은 몰라도 현성이 생각하는 것처럼 알고 있는 이들이 상당히 많 을 것이다. 아무리 앙마라는 스트리 머가 유명하고 뛰어나다고 해도, 그 런 정보를 가진 이가 그 사람뿐이라 는 건 말이 안 된다.
‘베네아 긴급 퀘스트보다 규모가 큰 대회인데, 아무래도 인페르노 측 에서 다른 회사에 알렸을 확률이 높 지.’
아마 공공연히 알고 있을 확률이 높다.
특히 프로게이머들이 출전할 확률 이 높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대회 같은 경우에는 프로들이 출전하기 딱 좋으니 그쪽 회사들과 이미 얘기가 끝났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는 건 알고 있는 이들이 적 지는 않다는 뜻.
‘미리 가야겠네.’
현성은 사람들이 더 몰리기 전에 제국의 수도로 먼저 가기로 했다. 그래야 신청을 받을 때쯤 접속하는 게 더 편할 듯싶었다. 그때 가봐야 그리 좋을 것도 없을 테니까.
‘사람 몰리는 건 질색이니까.’
현성은 문득 앞에서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리베우스를 봤다.
수도에 다녀온다고 하면 리베우스 가 무슨 말을 할지 보지 않아도 뻔 하다. 분명 자기도 데려가 달라고 할 게 틀림없다.
하지만 녀석을 데리고 가면 골치 아픈 일이 분명히 생긴다. 이건 전 재산을 걸라고 해도 걸 수 있다.
“리 베우스.”
“예! 주인님!”
일단 저 호칭부터가 거슬린다.
여자한테 주인님이라고 들어도 싫 을 거 같은 마당에 남자가 주인님이 라며 강아지처럼 쫓아다닌다. 이건 골치 아픈 일을 떠나서 징그럽다.
“수도에 다녀오마.”
“예! 금방 준비하겠나이다!”
현성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 리고 최대한 연기를 하며 말했다.
“내가 누구냐?”
“저의 전능하신 주인님이자 만물을 창조하신 신이옵니다!”
“그, 그래.”
너무 과한 평가에 순간 당황하긴 했지만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최 대한 근엄한 척을 했다.
“리베우스, 네가 내 말을 잘 들은 덕에 몬스터 군단의 침공을 막을 수 있었지?”
“물론이옵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내 말을 들어 라.”
“......nr
설득이고 뭐고 그냥 떼에 불과한 말이다.
논리도 없고, 이성적인 생각도 들 어간 게 아닌 그저 통보.
그러나 리베우스는 그 말을 듣곤 눈물을 흘리며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마구 절을 해대며 외쳤다.
“아아! 주인님의 말씀이 옳사옵니 다!”
역시 미친놈에겐 논리적일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냥 그러라고 하니 저리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하지 않는가.
이게 먹혀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현성은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걸로 제일 골칫덩이는 떨어트릴 수 있었다.
“그럼 다녀오마. 그동안 여기 잘 지키고.”
“오우! 물론입니다!”
“그, 그래. 너만 믿는다.”
그 과잉 충성심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는 듯 현성은 고개를 저으 며 신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잡 화점으로 가서 수도에 가장 가까운 도시의 이동스크롤을 샀다.
‘이게 좀 불편하네.’
혹시 모를 침공 때문에 외부에서 수도로 이동할 수 있는 모든 이동마 법은 금지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도시인 아르민 이동스 크롤을 샀다.
이곳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터라 무려 5000골드를 지불해야 했다. 현 금으로 환산하면 무려 50만 원이었 다.
그 돈이면 일본으로 가는 왕복 비 행기 표도 살 수 있는 가격.
하지만 비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 다.
비싸도 마음만은 편했다.
‘뭐 리베우스도 없으니까 너무 편 하네. 하하하.’
리베우스가 없으니 이 얼마나 편한 가.
능력이 있음 뭐하는가. 같이 있으 면 답답해 미칠 거 같은데. 사냥할 때도 쉴 틈 없이 떠드는 리 베우스다.
그러다 보니 요즘 게임에 접속하면 리베우스의 수다스러운 소리를 계속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이젠 당분간 듣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하 기만 했다.
‘그럼 가볼까?’
개운한 심정으로 50만 원짜리 이 동스크롤을 과감하게 찢었다.
꽤 먼 거리인지라 평소보다 오래 걸리긴 했으나 그럼에도 순식간에 이동되었다.
시야가 순식간에 변하며 다소 어지 럼증을 느꼈으나 그것도 얼마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제법 있어서 번잡하긴 했 으나, 현성은 개의치 않고 서쪽 문 으로 빠져나와 큰 대로를 바라보았 다.
‘으음, 이쪽으로 쭉 가면 되겠지?’
미리 알아봤으니 틀림없었다.
게다가 지금 지도로 확인까지 하지 않았는가.
이 방향이 틀림없었다.
‘급할 거 없으니 천천히 가자. 천 천히.’ 이 근방에 나오는 몬스터는 레벨 170에서 180대로, 거대오크보다 레 벨이 20?30정도 더 높다. 다르게 말하면 얻을 수 있는 경험치도 더 높다는 뜻.
아무리 일반 몬스터라고 해도 레벨 차이가 거의 팔구십이나 나는데 쉽 게 잡을 순 없으리라.
그래도 현성이라면 힘들긴 해도 잡 을 순 있을 것이다.
문제는 경험치다.
여기서 레벨 업을 하게 되면 다시 리베우스가 있는 베네아로 돌아가야 하리라.
그래서 혹여나 몬스터를 만나면 튀 자고 다짐한 순간.
“어라?”
≪......
그때 현성의 눈앞에 리베우스가 나 타났다.
그리고 나타난 메시지.
[타나노스의 사도가 건 마법에 의 해 리베우스가 자동으로 이동됩니 다.]
“아하하하, 주인님! 사도님께서 저 를 보내신 모양입니다! 이렇게 기쁠 수가!”
리베우스의 말을 듣자 현성은 무념 무상의 표정으로 잔잔히 미소를 지 었다.
편안해 질 거 같았던 여행이 순식 간에 수다스럽게 변하는 순간이었 다.
마침 처음 리베우스가 한 말이 떠 올랐다.
쫓아다녀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사도가 저주를 건다고.
그러나 그건 처음에 데려가지 않았 을 때 그렇다는 얘기를 들었을 뿐, 그냥 엿 먹이려고 리베우스를 붙인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주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 거 같다.
첫 번째 흔적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리베우스가 온 것은 그럴 수 있다.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사도의 마법 때문에 이동된 건 알겠는데…… 왜 다 벗고 있는 거냐?”
“예? 아아, 목욕하려고 다 벗은 참 이었는데. 이것 참 부끄럽네요, 핫핫 핫!”
부끄러운 것 치고 태도가 상당히 당당해 보였으나 현성은 고개를 저 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리베우스는 이런 놈이었다.
“……옷이나 입어. 수도로 가게.”
“오우!”
저 빌어먹을 오우 소리 좀 듣고 싶지 않았는데.
언젠가 그 사도라는 녀석을 죽도록 패자는 결심을 다시금 마음에 되새 겼다.
‘사도, 넌 진짜 내 손으로 죽일 거
다.’
카린 제국의 동쪽에 위치한 벨도른 왕국.
그곳에 위치한 거대한 저택에 다섯 명의 유저가 모여 있었다. 둘은 여 자였고, 셋은 남자였다. 공통적인 것 은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무기 하나 하나가 범상치 않아 보인다는 것.
최소 영웅 등급으로 보이는 아이템 들로 치장한 유저들. 이들이 바로 한국 2위의 길드, 블 랙 연합이었다.
“6일 남은 건가?”
마치 산적처럼 생긴 풀플레이트를 착용하고 있는 남자.
그는 블랙 나이트의 길드장이자 블 랙연합에서 전투를 맡고 있는 자였 다.
이름은 중구.
여기 모인 다섯 중 가장 강한 자 였다.
그의 물음에 노출이 상당히 심한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여자가 대답 했다.
“아니, 6일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아마 7일 정도 걸릴 거야. 일단 제 작진들이 아직까지 분주하게 일하고 있기도 하고. 오늘 중으로 이데아 홈페이지에 대회에 관련된 글이 올 라갈 거야.”
그녀는 바로 블랙 스파이 길드의 길드장이자, 블랙연합에서 정보를 맡고 있는 화린이었다.
그녀의 말에 중구가 고개를 끄덕였 다.
그때 화린의 옆에 있던 다른 여자 가 화린을 보며 물었다.
“그러면 아수라가 출전한다는 정보 는 어떻게 된 겁니까?”
“어머, 펠리아가 나를 믿어주는 건 고맙지만 아무리 나라도 베일에 싸 인 사람의 정보는 알아올 수가 없다 고?”
펠리아라 불린 여자가 그 말에 인 상을 찌푸렸다.
그녀가 바로 블랙 위저드의 길드장 이었다.
한국서버 마법사 길드 중에서는 최 강이라 알려져 있는 블랙 위저드. 그곳의 길드장이 여자라는 사실은 블랙 위저드 내부에서도 간부들만 알고 있는 극비 사항이었다.
그때 그녀들의 말을 듣고 있던 비 쩍 마른 남자가 교태를 부리는 웃음 을 터뜨리며 말했다.
“홍홍홍, 나는 그 아수라라는 아이 보다는 우리 연합에 들어올 아이들 이 더 궁금한데?”
“헨리, 당신 또 도박하는 겁니까?”
“어머나? 내가 도박을 하든 말든 펠리아가 신경 쓸 바는 아닌 거 같 은데에?”
말투부터가 거슬리는 남자다.
일부러 더 저러는 것 같았으나 저 게 평상시의 말투임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국서버 최대의 상인 길드인 블랙 딜러의 길드장 헨리.
그는 현실에서도 여장을 하고 다니 는 괴짜 중에 괴짜였다.
여기 모인 블랙연합 길드 길드장들 중 괴짜가 아닌 이들은 없었지만 헨 리는 유독 심했다. 물론 능력이 없 었다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테지만.
“도박을 하는 건 좋지만, 길드 자 금까지 손을 대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홍홍홍, 괜한 걱정을 한다. 나를 뭘로 보고.”
그는 우스꽝스러운 여장을 하고 있 긴 했으나 수완이 좋은 자라는 걸 이곳에서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러기에 펠리아도 그냥 넘어갔다.
그때 중구가 나서며 물었다.
“그럼 그 아수라라는 녀석은 내가 가져도 되나?”
마치 이미 아수라가 블랙연합 길드 에 들어온 것처럼 말하는 말투.
그러나 그걸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대기업의 재벌 2세 혹은 재벌 3세들이었으니까.
이들의 돈으로 안 되는 것은 없었 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믿고 있었 다.
그때 여태까지 조용히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각자가 데려온 프로게이머들 중 우승한 사람이 아수라를 가지도록 하지.”
“홍홍홍! 그거 좋은데요?”
“나도 좋다.”
“내가 제일 불리하지만 뭐 전투요 원은 필요 없어서~ 나도 찬성.”
“……저도 찬성입니다.”
마지막으로 펠리아까지 찬성하자 그 의견을 제시한 남자, 한국 최대 의 용병 길드 블랙 헌터의 길드장 제라블이 말했다.
“이번에 참석하는 우리 길드원들은 어떻게 되지?”
그의 물음에 화린이 대답했다.
“일단 인페르노 측에서 자체적으로 대회를 주최하는 거 같고, 각 게이 머들에게 통보는 해놓은 상태지. 그 걸 노리고 우리들이 게이머들을 더 쉽게 영입할 수 있었고. 사실 그동 안 게이머들을 고용하고 싶어도 마 땅한 기회가 없었잖아? 이번 기회에 이름도 알리게 하면서 우리 길드로 들어오게 하는 거지.”
좋은 계획이다.
모두가 동의한 계획. 돈은 상당히 많이 들어가긴 했으나 유능한 인재 들을 얻을 수 있다면 돈이 문제겠는 가.
게다가 이들 중 그런 돈을 아까워 하는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들이 성장만 하면 신화 길드는 무참하게 없앨 수 있겠군.” 늘 눈에 가시처럼 밟히던 신화 길 드다.
그렇다고 함부로 할 수도 없는 것 이, 신화 길드 역시 자금력이 그들 만큼 뛰어났기에 어찌할 방도도 없 었다.
다섯 길드가 뭉쳐서 싸운다면 승리 는 할 수 있다. 하나 그만큼 피해도 만만치 않을 터.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 이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 덕에 이번에 그들이 고용한 프 로게이머는 화린을 제외하곤 각각 3 명씩이었다. 그렇게 총 13명이 고용 된 상태다.
고작 13명으로 뭘 할 수 있겠냐 고?
하지만 그들의 실력은 게임 강국인 한국에서도 알아줄 정도로 컨트롤이 출중하니, 대회의 판도를 주도할 게 분명했다.
“신화 길드 측에서 프로게이머들에 게 손을 뻗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 어.”
“그거 좋은 일이군.”
중구가 마음에 든다는 듯 미소 짓 자, 제라블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끄 덕였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아수라는 우승하는 사람을 데리고 있는 자가 갖는 걸로 하고.”
이미 자신의 수중에 들어온 것처럼 말하는 이들.
게다가 그들은 아수라의 실력이 프 로보다 못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카이저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들은 동태 눈깔들이 리 라.
오만함 때문에 안목이 어두워져 버 린 자들.
한국 2위 길드이자 연합길드인 블 랙연합 길드의 회의는 그렇게 마무 리 되었다.
그간 조용했던 그들의 행보가 본격 적으로 드러나는 시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