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97화
각오는 했으나 현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기왕 다짐한 거지만 레벨 업 하는 건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감고 있어도 늘 듣던 경쾌한 종소리 는 들리지 않았다.
“어라?”
이상함에 눈을 뜨자 레벨 업 했다 는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설마, 사람들이랑 경험치를 나눠 서 세이븐가?’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그거뿐이 다.
하기야 경험치와 아이템을 기여도 순으로 분배한다 했다.
그렇다는 건 현성이 1위라고 한들 총 경험치에서 깎일 수밖에 없다. 그 덕에 레벨 업을 하지 못했던 것.
현성의 입장에선 천만다행이었다.
“으아아아아! 잡았다.”
“오우! 미쳤다 미쳤어! 진짜 잡을 줄이야!” “우리가 해냈다!” “으하하하! 경험치 개꿀이잖아!”
“나도 3이나 올랐어!”
현성과는 달리 다들 레벨 업을 한 모양인지 신나서 환호하고 있었다.
아이템보다 경험치가 먼저 분배된 모양이다.
그리고 아이템이 분배가 되자 기여 도 1위를 차지한 현성에게 유일 등 급 아이템 1개와 희귀 등급 아이템 2개가 분배되었다.
그리고 10위권 안에 있던 파티원 전원이 희귀 등급 아이템 1개씩 획 득했고, 2등인 현아가 희귀 등급 아 이템 2개를 받았다.
‘유일 등급은 놈이 끼고 있던 검하 고 똑같이 생긴 대검이네. 희귀 등 급들도 신발이랑 방패고. 팔아야겠 다.’
아이템을 먼저 확인한 현성은 자신 의 파티원 전원이 10위 안에 든 걸 보며 의외라는 듯 그들을 봤다.
솔직히 말해 정민과 현아는 순위권 안에 들 줄 예상했다.
탱커 중에서 부각될 정도로 탱킹을 잘했으니 그럴 만도 했으나 나머지 는 좀 의외긴 했다.
‘컨트롤이 좋아서 곧잘 공격하긴 했어도 순위권 안에 든 건 좀 의외 긴 하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다들 희귀 등급 아이템을 얻은 것 에 좋아하는 걸 보곤 현성도 절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그때 다른 유저 두 명이 현성의 파티를 노려보며 중얼거렸 다.
“뭐 한 게 있다고 순위냐?”
“그러니까. 게다가 1위는 막타 친 거 빼곤 한 거 없지.”
저들끼리 얘기한다기에는 목소리가 꽤 컸다.
그 말에 다른 파티들도 하나둘씩 동조하기 시작했다.
하기야 유일 등급 아이템을 빼앗겼 으니 저럴 만도 하다. 하나 현성이 아이템을 뺏어간 것도 아닌 시스템 상으로 분배가 된 것인데 저러는 것 은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현성도 눈살을 찌푸리자, 현성의 앞에서 한껏 좋아하던 정민이 어이 가 없다는 듯 말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아니, 그렇지 않나? 마지막에 막 타 쳐서 얻은 아이템을 혼자 독식하 는 게 말이 되나?” “그니까. 게다가 저 파티원들은 다 10위권 안이네. 뭐 버그 쓴 거 아 냐?”
그 말에 정민은 할 말을 잃었다.
버그는커녕 해킹조차 할 수 없는 이데아에 버그라니.
상식이 있는 것들인가?
그저 우기는 놈들을 보며 하연이 말했다.
“어휴, 찌질이들.”
그 한마디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하나 파티의 리더인 정민도 하연을 말릴 생각은 추호도 없는지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하연이 말한 사람들 을 노려보고 있었다.
현성이 없었으면 잡을 수 없던 레 이드 보스다.
그런데 그걸 망각하고 아이템을 뺏 겼다는 이유로 열등감을 터뜨리는 저들이 고와 보일 리가 없지 않은 가.
마찬가지로 우림과 상문도 그들을 노려봤다.
“참나, 템은 자기들이 다 가져갔으 면서 개 당당한 거 보소? 존X 염치 없네.”
“뻔뻔한 건지, 염치가 없는 건지.”
“염치가 없다고? 이런 미……
“하연아, 그러지 마.”
노골적인 반응에 하연이 뭐라 하려 는 순간 현아가 하연을 말렸다.
“아니, 저놈들이……
“잠깐 있어 봐.”
하연도 더 뭐라 하려 했으나 현아 가 웃으면서 말하자 알겠다는 듯 고 개를 끄덕이며 저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현아는 싱긋 웃으며 말했 다.
“우리 오빠 아니었으면 잡지도 못 했을 아이템이 그렇게 탐나나 보 죠?”
“허 참, 너무 오만한 거 아닌가? 그 사람 없었어도 잡았을 수도 있잖 아?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지?”
“그러면 한판 떠보시던가요.”
“뭐, 뭐?”
“아니, 그렇잖아요. 솔직히 제가 보 기엔 오빠가 다했는데 여러분은 그 냥 욕심에 눈이 멀어서 태클 거는 거로밖에 안 보이는데, 게다가 시스 템상의 분배인데 님들이 뭔데 그걸 따지는지 이해도 안 되니까 정 그렇 게 자신 있으면 저랑 한판 떠요. 저 희 오빠가 저보다 세니까 저는 할 만하지 않겠어요? 이기면 제가 따로 유일 등급 템 드릴게요.” 현아의 당당한 말에 다들 주춤 물 러났다.
이길 자신은 없던 모양. 그런 모습 에 현성이 피식 웃으며 처음 선동한 둘을 보며 물었다.
“당신들 닉네임 뭡니까? 순위 좀 보죠? 그렇게 말하는데 시스템상으 로 순위가 몇인지 좀 알려주고 얘기 하시죠.”
아직까지 순위표가 떠 있었기에 확 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히 논리적으로 말한 현 아와 현성임에도 둘은 막무가내로 나섰다.
“아니! 여기 지금 남아 있는 사람 이 몇인데! 유일 등급을 혼자 꿀꺽 하냐는 거지! 우리 말은!”
“맞아! 그걸 독식하는 게 말이 돼?!”
그러나 이미 사람들도 그들을 떠났 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간다는 걸 인지한 모양.
그 둘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는지 발악했다.
“저 시스템이 뭔데 우리 아이템을 분배하냐고!”
이제는 그 누구도 그들을 고운 눈 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현성은 똑같이 대응했다.
“응, 순위권 안에 못 든 허접 말이 라 안 들리는데?”
“이, 이익!”
화가 났음에도 달려들지 못하는 걸 보니 힘의 차이는 느끼는 모양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모두가 비난하기 시작했다.
“어휴, 저 여자 말대로 찌질이들 맞네. 저런 말 듣고도 가만히 있냐.”
“아니. 그 전에 생떼 부리는 거 보 소. 10살 먹은 애새X인 줄 알았다.”
“크흐흐, 그니까. 아니. 시스템 분 배를 태클 거는 놈들은 처음 보네.”
“그니까 공정하기로 유명한 이데아 시스템을 까다니 아이템에 눈이 멀 헜구먼.”
“나는 저 사람한테 덤비는 게 더 정신 나간 거 같다.”
주변 반응조차 자신들에게 호의적 이지 않은 걸 확인한 그들은 얼굴을 푹 숙인 채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 다.
“와 진짜 나 무슨 사이다로 샤워하 는 줄. 속이 다 시원하네.”
“하하하하, 그니까 난 형님이 저렇 게 말발이 좋은 분인지 처음 알았 네.”
“조용하셔서 과묵한 줄 알았는데 말할 때는 하시는 스타일인가 보네 요.”
“그, 그니까. 멋있다.”
다들 그렇게 현성을 보며 한마디씩 하자 민망한 듯 헛기침을 했다.
“크홈홈.”
“헤헤, 오빠 부끄러워하는 거 봐
라?”
“시끄러.” 옆에서 현아까지 한소리 하자 흘낏 노려봤다.
현아도 계속 놀릴 생각은 없었는지 그저 웃었다.
“현아도 말 잘하더라.”
“그니까! 활발할 줄은 알았는데 나 랑 비슷하더라. 아하하하.”
“하연이 너는 그냥 욱하는 거고, 현아는 차분한 거지.”
“형 말이 맞지.”
“뭐? 이 남자들이!”
“헤헤, 다 오빠한테 배운 거지!” 모든 공을 현성에게 돌린 현아.
거기다.
“그보다 오빠 대단하지 않았어? 역 시 영웅 등급은 좀 다르다 싶더라!”
현아의 말에 까먹을 뻔한 이들이 박수를 치며 현성에게 몰려들었다.
“맞아 맞아! 오빠 장난 없던데 그 동안은 실력 숨긴 거예요?”
“영웅 등급은 어디서 얻으셨어요?”
“형님! 앞으로도 가끔 같이 사냥하 시죠!” “그, 그 마지막 그 스킬은 무슨 등 급이에요?”
저마다 시선이 몰리자 현성은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대답할 수 있는 질 문들을 대답해주었다.
그러면서 이런 사단을 만든 현아를 노려봤으나 현아는 히히 웃으며 뒤 로 물러났다.
그러던 중.
“근데 난 현아도 대단한 거 같던 데?” “으잉?”
갑자기 과녁이 현아로 몰리게 되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현성도 현성이나 사실 현아가 없었 다면 죽었을지도 모를 현성이다.
“그 전갈꼬리를 막아주지 않았더라 면 난 죽었을걸? 근데 현아가 딱 막아줘서 겨우 살아난 거지. 그때 스킬 발동 중이라 움직일 수 없었는 데. 역시 감각이 좋다니까?”
“오오! 진짜?”
하연이 현성의 말이 사실이냐는 듯 정민을 보자 정민도 격하게 수긍했 다.
“진짜 탱킹 실력이 대단하더라. 나 랑 달리 순수 탱커인 것도 있지만, 방패 각도를 틀면서 공격 홀리는 건 배워야겠더라고.”
“정민 오빠가 그렇게 말할 정도라 고? 대박.”
“그니까, 현아 대단하다.”
상문도 고개를 끄덕이자. 이젠 현 아도 다소 쑥스러운 것인지 헤헤, 웃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걸 보며 현성은 다소 살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그들을 봤다.
14시간을 사냥한 사이다.
현실 시간으론 3시간도 안 된 시 간이긴 하나 그사이에 저렇게 친해 질 수 있었다.
‘오길 잘했네.’ 처음에는 무슨 첫날부터 캡슐방이 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성이 아이템을 얻은 것도 순수하 게 기뻐해 주고 축하해 준 것도 모 자라 남이 비난하는 것도 직접 나서 서 따지기까지 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을 위해서 말이 다.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공부는 몰라도 좋은 애들이야.’
그 생각에 현성은 피식 웃었다.
그때.
[캡슐 이용시간이 5분 남았습니 다.]
다들 그 메시지를 본 것인지 움찔 거리다 정민이 말했다.
“슬슬 나가야겠다. 마을로 가서 종 료하자.”
5분이면 게임 시간으로 무려 25분 이나 남아 있는 거지만, 거리가 또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쯤 준비하지 않으면 안 전하지 못한 장소에서 로그아웃을 해야 한다.
현성은 기면증 때문에 그런 걸 크 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보통의 유저 들은 모두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다들 마을로 가서 접속을 종료했 고, 현성은 캡슐에서 나와 휠체어를 준비해 주었다.
“고마워, 오빠.”
“뭘, 이런 걸로.”
그렇게 둘이 나오자 다른 사람들도 캡슐에서 나오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으으윽! 재밌었다!”
하연이 나오며 그렇게 말하자 옆에 서 상문이 조용히 말했다.
“너는 여자애가 그렇게 배를 드러 내면 안 돼.”
“어머? 상문이 너 나를 여자로 봤 구나! 이거 고마운데?”
“그, 그럼 네가 여자지, 남자냐!”
빽 하고 소리를 지른 상문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웃는 하연의 뒤에서 정민이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아코.”
“상문이 너무 놀리지 마라.”
“오빠 말이 맞아.”
“아하하, 재밌는 걸 어떡해.”
그 옆에서 우림도 한소리 거들었으 나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정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먼 저 나온 현성과 현아를 보며 물었 다.
“그럼 현아랑 형님은 이제 가실 건 가요?”
현성은 시간을 보니 슬슬 밥을 먹 어야 했기에 고민하며 말했다.
“밥을 먹고 들어갈지 좀 고민이긴 한데.”
“오! 그럼 저희랑 식사하시죠. 마 침 이 근처에 맛집이 있거든요.”
그 말에 현성은 현아를 봤다.
당연하지만 현아는 꼭 가자는 듯 현성을 봤고, 현성은 어쩔 수 없다 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스터디 결성된 것도 있고, 회식 겸으로 가자.”
“흐흐, 그럼 스터디장인 제가 쏘겠 습니다!”
“오오! 오빠 최고!”
“호호, 오늘따라 많이 쏘네.”
현성은 활발해 보이는 그들을 보며
활짝 웃는 현아를 봤다.
역시 스터디를 하길 잘했다.
오늘 다소 시간을 빼앗기긴 했으나 시간 낭비라 생각하진 않았다.
‘레벨 때문에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대회 연습이라 생각하면 괜찮았어.’
아직도 강약조절에 관한 것은 더 연구해 볼 여지가 있다.
그 강약조절에 대해서 더 연구해 본다면 같은 능력치를 가졌다 한들 강약조절의 원리만 꿰차고 있다면 데미지는 확연히 달라질 터.
그걸 생각한다면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
‘좀 더 연구해 보자.’
“오빠! 빨리 가자.”
“응? 그래.”
현아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난 현성 이 스터디원들을 따라 휠체어를 끌 었다.
지금은 강약조절보단 스터디 회식 이 우선이었다.
‘현아가 좋은 친구들을 얻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