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099화
대회가 열리기 하루 전.
모든 준비는 이미 마쳤기에 인페르 노 본사에서도 대부분 대회 전 휴식 을 취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간 강행군으로 이어왔으니 대회 하루 전만큼은 쉬라는 거였다.
그러나 유저관리팀 팀장 조민우는 오늘도 본사의 유저관리팀 채널에 입장해서 평소와 같이 일을 하고 있 다.
다른 이들은 쉬더라도 특별관리 대 상인 유저들은 쉬지 않았으니.
조민우 팀장은 조용히 화면을 응시 하고 있었다.
표정만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안도를 하는 것도 같고, 골치 아픈 것도 같다.
그가 보고 있는 화면은 다름 아닌 인페르노 회장의 딸이 기어코 대회 에 신청하는 화면이었다.
당연하지만 신청할 때 필요한 시험 도 무난하게 통과했다.
“하아.”
아니, 왜 그동안 공식 랭커이니 뭐 니 관심도 없던 사람이 지금에서야 대회와 같은 공식 석상 앞에 서느냔 말이다.
인페르노 회장의 딸이 현실에서 모 습을 드러낸 적이 없기에 대부분의 유저는 그저 비공식 랭커구나 라고 생각할 거다.
그러나 혹시 모르는 것 아니겠는 가.
‘일이 잘못되면 나 잘리는 거 아니 야?’ 현 회장이 그런 성격이 아닌 온화 하고 인자한 사람이라는 건 잘 안 다.
그러나 가족의 일은 또 모르는 일 아닌가.
또 그녀가 회장의 딸이라는 게 드 러나면 특혜를 준 건 아니냐면서 악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러다 보니 조민우 팀장의 입장에 선 그야말로 시한폭탄과도 같은 존 재였다.
‘하아, 별일 없겠지? 아니, 없어야 해. 하긴 미치지 않고서야 저기서 내가 인페르노 회장의 딸이오! 할 리가 없잖아? 암! 그렇고말고!’ 게다가 회장은 가정교육에 철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회장의 딸이 그런 일을 벌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제야 좀 편해졌는지 다소 긴장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래 별일 없을 거야.”
그렇게 철석같이 믿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회장님의 따님은 더 이상 보지 않 아도 문제는 없으리라. 이제 대회에 참가하는 걸 알았으니 그때만 주의 해서 지켜보면 그만이다.
그리고 남은 요주의 인물.
“하아.”
화면을 보자마자 한숨이 절로 나왔 다.
요 며칠 접속을 띄엄띄엄하다 결국 레벨 99인 상태로 참가신청 하기 위해 줄을 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레벨 100 미만이라니.’
이번 대회는 공식적인 프로 대회가 아니었다.
다르게 말하면 앞으로는 공식 프로 대회를 열기 위한 전초전 같은 느낌 이었다. 마침 카린 제국의 카론 황 제가 그 기회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초석을 저 유저 하나 때문에 망칠 수도 있었다.
‘현성, 아니, 아수라라면 아무리 스 킬을 하향시키고 능력치를 평준화해 도 다 썰어 먹겠지.’
컨트롤 하나는 그를 따라갈 자가 없다.
그건 조민우 팀장이 인정했다.
하루에도 난다긴다하는 유저들의 영상을 직업적으로 보는 조민우다. 그런 그가 인정할 정도면 도대체 얼 마나 뛰어나야 하는 것일까.
게다가 조민우가 보기엔 아직 현성 은 한계까지 발전한 상태가 아니다.
‘프로들 다 깨지겠네.’
그래도 혹시 모르는 것 아니겠는 가.
지금 프로게이머 중 1위도 참가한 다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조민우 팀장은 현성이 지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쩝,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회사에 는 도움이 될 테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조민우 팀장은 이 미 현성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부터 포기한 상태다. 가장 인기몰이를 해야 할 레벨 100 미만 경기이다 보니 회사에서 거는 기대가 크긴 했으나 현성이 참 가하는 것만으로 이미 회사가 생각 하는 것보다 더 흥행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레벨 100 이상 200 미만인 줄 알 았던 아수라가 레벨 100 미만의 경 기에서 나타나면 얼마나 놀라겠는 가.
게다가 그 아수라와 세계에서 날아 다닌다는 프로게이머들과의 대결.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한데 티켓이 나 시청률이 얼마나 나올지는 조민 우 팀장조차 기대될 정도다.
그러니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그보다 오늘 아니었나?’
대회보다 중요한 날이다.
대회는 내일이었으나 오늘 현성에 게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다름 아닌 DP상점의 쿨타임이 돌 아오는 날.
자각몽을 얻은 덕에 30일이던 쿨 타임이 15일로 줄어들어 이번에 다 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보다 게임을 시작한 지 이제 17 일, 아니, 18일이 되다니.
‘대단하긴 하네.’
고작 18일 만에 레벨 100을 달성 한 것이다.
그것도 대회나 이것저것이 아니었 다면 이미 150은 찍고도 남았으리 라.
만일 신 등급 직업이 아닌 일반 직업이었으면 족히 200은 찍고도 남았으리라.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
‘아직 다음 흔적 퀘스트가 기간제 가 없다는 걸 알면 리베우스를 데리 고 엄청나게 레벨 업을 할 텐데 ……. 개발팀에 문의해서 수정 좀 해달라고 해야겠어.’
현성이라면 조건을 달아두지 않는 다면 리베우스를 데리고 10일 안에 레벨 199까지 올릴 수 있으리라.
‘히든 NPC를 오래 데리고 있는 건 확실히 형평성의 문제가 되니까. 레벨 150이 되면 흔적 퀘스트를 깰 수밖에 없게 해달라고 해야겠어.’
여태까지 현성이 한 것들을 떠올리 면 더 조정하고 싶었으나 그거야말 로 형평성에 문제가 되었기에 레벨 150선이 딱 적당했다.
그때 조민우 팀장은 현성이 DP상 점창을 띄우는 걸 보며 다소 긴장하 며 화면을 봤다.
‘저 유저는 운도 엄청나니까 뭐가 뜰지 모르겠네.’
전부터 느낀 것이었는데 실력은 둘 째 치더라도 운이 너무 좋았다.
마치 신의 사랑을 받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말이다.
‘아. 저 유저, 신 등급 직업이지.’
다른 나라의 신 등급 유저들은 저 정도 까지는 아닌데 왜 저 유저만 유독 운이 좋은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포기한 채로 현성이 DP상점에서 스 킬을 뽑는 것을 봤다.
저번과 같이 단번에 희귀 등급부터 영웅 등급까지 뽑는 현성.
그리고 전설 등급 또한 망설임 없 이 뽑았다.
그걸 보면 확실히 시원시원하긴 했 다.
전전긍긍하는 것보단 고민 없이 확 뽑는 게 보기 좋지 않은가.
‘그럼 뭘 뽑았는지 볼까?’
그리고 목록을 열었을 때.
“씨X! 아니, 저게 뜬다고?” 영웅 등급과 전설 등급의 스킬을 확인한 조민우 팀장이 멍하니 목록 을 봤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미리 시말서 쓰자.”
이번에도 시말서를 쓰게 생겼다.
그것도 이번엔 최소 20장은 쓰게 생긴 스킬이. 그것도 두 개나 터지 고 말았다.
“하아 집에 가고 싶다.”
대망의 대회 하루 전.
그동안 신청이 밀린 사람들로 제국 의 수도는 북적거리고 있었다.
NPC들도 활기를 띠고 있었고, 유 저들도 마찬가지로 활기를 띠고 있 었다.
‘프로랑 싸우는 건 어떨지 진짜 궁 금하네.’
그런 호기심을 가지곤 밀려 있는 줄을 봤다.
빨리 참여하고 싶었으나 줄을 보니 오늘 안에 신청이 가능할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줄이 줄어드는 속도는 빠 른 거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건 한 번씩 줄이 뭉텅이로 빠진다는 것이다.
듣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을 예상해 신청도 시험을 통과해야만 신청할 수 있게 만들었다더니 그런 것치고는 빠르게 줄어들어 다행이었 다.
마음 같아서는 리베우스에게 줄을 서라고 한 뒤에 거의 앞에 갔을 때 쯤 교대하고 싶었으나 그럴 순 없었 다.
‘또 무슨 사건이 일어날 줄 알고.’ 리베우스를 데리고 가는 곳마다 문 제가 일어나지 않았는가.
그래서 지금도 시험을 통해 최대한 떨어질 수 있는 거리인 500m 밖에 있으라고 해둔 상태였다. 이렇게 하 면 그나마 사고가 터지지 않을까 하 고.
‘던전 보스가 보스 방을 빠져나온 건 진짜 의외였다.’
스터디에 처음 들어간 뒤에 보스가 보스 방을 탈출한 건 아직도 생생했 다.
아무리 자유도가 뛰어나도 그렇지 보스 방을 탈출하다니. 재미있긴 했으나 다음에는 그리 겪 고 싶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다음 스터디 모임이 다음 주였나?’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다 같이 모 여서 공부했다.
늘 게임만 하는 줄 알았더니 정상 적으로 공부도 해서 다행이었다.
게다가 생각했던 것만큼 정민의 실 력이 좋아 현성도 꽤 도움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워낙 머리가 좋아 요령을 익힌 뒤 에는 어느 정도 스스로 하게 되었으 나 제대로 공부를 하니 그나마 있던
걱정까지 싹 사라졌다.
이대로라면 현아는 대학을 갈 수 있으리라.
‘나도 진짜 가야 하나?’
처음에는 그냥 귀찮다고만 생각했 다.
현아의 말에 반강제로 시작한 것이 긴 했어도 공부를 하다 보니 흥미가 가게 되었다.
가상현실게임에 대해 좀 더 아는 게 많아지기 시작하니 이데아가 얼 마나 대단한 게임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것도 좋았다.
다만 대학을 다닐 가치가 있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현아 혼자 다니게 하는 것 보단 낫겠지?’
심각한 과보호라 해도 할 말이 없 었으나 불과 1년까지만 해도 마음의 상처 때문에 다리를 쓰지 못했던 아 이다.
그리고 부모님이 눈앞에서 돌아가 시는 걸 직접 목격한 아이다.
그런 아이를 어찌 혼자 둘 수 있 겠는가.
‘회사를 다닐 땐 어쩔 수 없었다고 는 하지만, 이젠 그럴 순 없지.’ 대학을 다니면 분명 귀찮을 거다.
게임을 할 시간이 줄어들고, 그렇 다는 건 수익을 버는 시간이, 레벨 을 올리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얘기 가 된다.
그래도 이번 스터디그룹을 들어가 고 난 뒤 깨달은 게 하나 있었다.
‘나도 좀 그런 젊음을 배워야 해.’
다른 20대와는 다른 길을 걸어온 현성이다.
그들과 비교한다면 무게나 사회경 험으로는 현성이 더 성숙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 인생에 있어서 경험 은 오히려 못하다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친구들이랑 놀 고, 웃고, 떠들고. 그런 게 다 나중 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
이제 25살 먹은 현성이 내년에 대 학에 들어가면 26이다.
아무래도 같은 동기들과 어울리며 지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장 가 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고 그걸 경험할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것만으로 현성은 충분히 값지다 고 생각했다. 게다가 25살이면 아직 젊은 나이 아니던가!
크게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보다 지루하네.’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도 아직 현 성의 차례는 요원하기만 했다.
그러던 그때.
‘이럴 때 쓰는 거지!’
원래라면 신청을 완료하고 여유롭 게 여관에서 스킬을 깔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너무 오래 걸릴 거 같고, 그동안 너무 지루하지 않 겠는가.
지금 스킬을 깐다면 그 스킬에 대 해 연구할 수도 있고, 얼마나 유익 한가. 마음을 굳히자 현성은 바로 상태창을 열어 자신의 DP를 확인했 다.
[DP: 8,941P]
‘와, 언제 이렇게 모았지?’
확실히 자각몽을 얻고 나서 DP의 획득률이 2배로 늘어나다 보니 DP 회수율이 매우 높아졌다.
거기다 최근에는 사냥도 그리 열심 히 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라는 건 앞으로 DP로 골머리를 쌓을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죽음의 안식도 좀 많이 사용해야 겠네.’
그동안엔 DP가 아깝다며 극딜기인 죽음의 안식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 다.
그런데 앞으로 생각한다면 지금부 터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리 문제 될 건 없어 보였다.
‘그럼 까볼까.’
아이템은 정말 급할 때 까자고 마 음먹었다.
당장 가지고 있는 아이템도 여유로 운 편인데 팔지도 못하고 귀속되는 아이템을 늘려봐야 인벤토리만 썩힐 뿐이다.
게다가 저번에 뽑은 ???의 알도 아직 그대로이지 않은가.
그런 아이템을 또 뽑았다간 도움은 커녕 인벤토리 자리만 차지할 뿐이 었다.
‘아이템은 급할 때 뽑자.’
현성은 그렇게 스킬창을 열었다.
CDP 상점〉
[스킬]
?일반: 2DP.
-희귀: 20DP.
?유일: 200DP.
-영웅: 1,OOODP.
-전설: 2.000DP.
(모든 스킬은 랜덤이며 타나노스의 후예에게 귀속됩니다. 모든 등급별 재구입까지의 쿨타임은 현실 시간으 로 15일입니다.)
정말 오래간만에 보는 창.
달라진 게 있다면 쿨타임의 시간뿐 이었다.
잠시 심호흡을 한 현성은 눈을 부 릅뜨며 한 번에 희귀 등급부터 전설 등급까지 차례대로 클릭했다. 정말로 뽑겠느냐는 경고창도 무시 하곤 단번에 전설 등급까지 클릭했 다.
영웅 등급까지 클릭한 뒤 전설 등 급은 잠시 멈칫했으나 그뿐이었다. 그 뒤에 바로 클릭한 뒤 전설 등급 스킬까지 뽑아버렸다.
‘후우, 망설여봐야 좋은 게 뜨는 것도 아닌데 망설일 이유가 없지.’
현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이 뽑은 스킬들을 봤다.
그리고 전설 등급과 영웅 등급에 시선이 꽂혔다.
영웅 등급을 보곤 확실하게 대박이 었다.
그냥 능력 자체만 본다면 영웅 등 급이라기에는 애매했으나 그 옆에 붙은 문구 덕에 그 효용 가치가 달 라졌다.
얼마 전 현성이 1억 5천에 구입한 유일 등급 스킬에도 붙어 있는 문 구.
‘……영웅 등급 성장형 스킬이면 신 등급까지 성장한다는 건가.’
꿀꺽.
미쳤다.
이건 미쳤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 았다.
영웅 등급 성장형 스킬이라니.
그야말로 대박 아닌가. 게다가 능 력 자체도 당장은 애매하긴 했으나 나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 다. 그런데 전설 등급은 쓸모없어 보였다.
‘또 이런 게 떠버렸네, 에라이.’
현성이 그렇게 스킬 목록을 끄려던 찰나.
“어? 잠깐?”
영웅 등급 성장형 스킬에 만족하자 며 덮으려던 찰나 전설 등급 스킬을 읽어봤다.
아무리 봐도 현성에게 쓸모없는 스 킬.
그러다 현성은 점차 두 눈이 커지 더니 이윽고 입마저 쩍 하니 벌리고 그 스킬을 확인했다. 분명 그냥 볼 때는 현성에겐 쓸모없는 스킬이 분 명하다. 그러나.
‘이, 이거 좀만 연습하면…… 어떻 게 되는 거지?’
그리고 현성은 자신의 스킬들을 확 인했다. 방금 뽑은 희귀 등급과 유 일 등급 그리고 영웅 등급들과 여태 현성이 획득한 스킬들을 봤다.
‘이거 기사 아수라 데뷔 영상보다 더 쩌는 영상 만들 수도 있겠는데?’
영상뿐만이 아니다.
‘대회에서 미친 걸 보여줄 수도 있 겠어. 시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안 그래도 상대하기 뭣 같았던 현 성이, 한층 더 뭣 같아진 순간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