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102화
경기가 시작되자 대기실에서 준비 하던 선수들이 모두 개별 던전으로 이동되었다.
중계 콜로세움에 나오는 화면에는 중계진들이 소개하는 몇몇 유저들의 영상만 나오고 있었다.
그걸 보며 배송재가 죄송하다는 듯 말했다.
-경기를 중계하기에 앞서 모든 예 선전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영상 을 보여드릴 수 없는 점 양해 바라 겠습니다.
-워낙 참가자들이 많으니 우승 후 보라든가 플레이가 빠른 사람들 위 주 영상을 보낼 수밖에 없긴 합니 다. 그편이 재미있기도 하고요.
-하하, 그렇습니다.
확실히 모든 선수들을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활약하는 선수들 위주로 촬 영을 하면 편집을 한 것 같은 재미 를 줄 수 있는 데다가 각자 레이스 를 하는 착각을 주게 해 박진감 넘 치는 경기를 보여줄 수도 있다. 처음으로 영상을 내보인 것은 다름 아닌 아크 선수였다.
매번 루시퍼에게 말려서 지기는 하 지만, 그렇다 한들 다른 선수들보다 월등한 선수. 랭킹 2위는 그냥 따는 것이 아니다.
3단계로 나눠진 던전의 첫 번째 단계.
다름 아닌 크기는 3m 족히 되는 고릴라였다.
신청시험과는 달리 보스 몬스터의 능력치는 선수들의 비해 월등하다. 그런 보스로부터 살아남는 것이 아 니라 쓰러뜨려야 한다.
-신청시합 때와는 다르게 몬스터 들의 능력치는 선수들보다 뛰어납니 -원래도 보스들은 유저들보다 능 력치가 높을 수밖에 없죠. 저 정도 는 당연한 겁니다.
홍진오의 말이 맞다.
이 정도야 숱하게 경험하는 일.
하나 그것과는 조금 다른 점이 하 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그 몬스 터를 혼자 처리해야 한다는 거죠.
-그게 정말 까다롭죠. 등급이 높 고, 레벨에 비해 능력치가 월등하면 솔플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반 등급 직업인 유저들은 솔플은 상상도 못 하는 게 어쩔 수 없습니다.
-아아, 그렇습니다.
그러나 해설위원들의 설명과는 달 리 아크는 생각보다 훨씬 잘 싸우고 있었다.
쿠웅!
-끼익끽긱긱!
다리보다 기다란 두 팔의 공격을 계속해서 피하는 아크가 마음에 들 지 않는 것인지 괴성을 지르고 있는 고릴라.
그걸 보며 배송재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아크 선수 한 대도 맞지 않고 있 어요!
-미리 올 곳을 예측하고 있는 겁 니다! 모든 격투기 선수들이 그러듯 미세한 근육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피하고 있는 겁니다. 눈썰미가 아주 좋아요.
-역시 대단합니다, 아크 선수!
“꺄아아아아!”
아크가 화면에 잡히자 관람석에 있 는 여자 팬들의 환호가 중계 콜로세 움을 강타했다.
잘 피하면서 공격을 누적시키는 아 크의 플레이는 복싱으로 친다면 아 웃복서의 스타일과 비슷했다.
공격이 날아드는 걸 피한 후 창의 긴 리치를 이용해 상대를 공격한다.
밋밋해 보일 수는 있어도 안정적인 플레이.
더군다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아! 아크 선수 상대가 후속타 를 날리기 전에 반드시 공격으로 흐 름을 끊어놓고 있습니다! 저거 짜증 나는데요.
-프로끼리의 경기였음 끝나고 상 대 선수에게 욕바가지로 먹는 전술 이기도 하죠. 하지만 효과가 그렇게 좋은 만큼 해내기도 쉽지 않은 방법 입니다. 그냥 안다고 해서 다들 할 수 있음 다들 아크 선수처럼 성적을 냈겠죠.
-네! 그렇습니다!
중계진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밋밋하던 영상이 대단해 보이기 시 작했다.
“와아아아! 아크 가라!”
“그대로 쓰러뜨려라!”
“오빠! 파이팅!”
여러 함성이 들리며 경기장은 난리 도 아니었다.
그때 아크의 영상이 넘어가며 다른 선수의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프로 선수들도 선전하고 있긴 했으나 아크와 같은 움직임을 보여 주진 못했다.
-아아, 이젤 선수 좀 아쉽네요.
-저기서 허리를 틀었으면 피할 수 있는 건데, 아! 저기서 후속타까지? 아아 저건 아프겠네요.
-상태이상까지 걸리면 끝입니다만 다행히 다음 공격은 피한 이젤 선 수. 하지만 데미지가 커 보여요.
-공격을 최대한 예측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영상 화면들은 사람들이 흥미를 유 지할 수 있게 절묘하게 보여주었다.
너무 이기는 영상만 보여주면 짜릿 할 순 있어도 박진감 넘치는 모습은 보여줄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번 선수들이 당하는 영 상이 나온 뒤에 루시퍼의 영상이 나 왔다.
아크와 마찬가지로 선전하고 있는 루시퍼.
이미 1단계 보스의 몸은 상처투성 이가 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보스의 체력은 딱 절반이 었다. 다른 이들은 3분에 1도까지 못한 상황에서 혼자 절반 이상을 깎 아놓았다니.
-아아, 루시퍼 선수 대단하네요.
-확실히 실력 하나는 발군입니다. 다른 선수들이 고전하고 있을 때 혼 자 50% 이상 까다니. 솔직히 놀랍 긴 합니다. 아크 선수는 얼마나 깠 죠?
홍진오의 말에 루시퍼 영상 옆으로 아크의 영상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크가 상대하는 보스의 체 력은 아직 65%.
다른 선수들에 비한다면 압도적인 실력이긴 하다.
하나 그래도 루시퍼에 비한다면 아 직도 부족하긴 했다.
‘그래, 이래야지.’
선수들은 저마다 중계를 들으며 경 기에 임할 수 있다.
그걸 거절할 수도 있지만 루시퍼는 거절하지 않고 중계진의 말을 모두 듣고 있었다.
간혹가다 홍진오의 말이 거슬리긴 했으나 지금 봐라.
그조차 자신을 이제 인정하지 않는 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에 선 고릴라 보스를 보며 다시 몸을 움직였다.
‘이런 고릴라 따위 아무것도 아니 지.’
-끼이이익!
자신을 내려다보는 루시퍼의 눈을 보곤 화가 난 듯 괴성을 지르는 고 릴라 보스.
그러나 루시퍼는 인상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놈의 공격을 피한 뒤 몸을 최대한 틀면서 검을 휘둘렀다.
서걱!
강렬하게 허리가 베인 놈을 보며 낄낄거리며 웃었다.
‘흐름을 말리게 하는 건 기본으로 해야 하는 거고, 이런 강약조절을 해야 프로인 거다. 애송이들아.’
지금 말을 해봐야 가뜩이나 나빴던 이미지만 더 나빠진다.
그래서 애써 참으며 낄낄거리며 웃 곤 고릴라에게 계속해서 공격을 넣 었다.
강약조절.
이렇게 능력치가 평균화가 되었을 때 남들보다 앞서기 좋은 기술이다.
가상현실이다 보니 육체를 이용할 줄 아는 이들만이 사용할 수 있기에 기술이라 불릴 만했다. 연습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몸 을 쓸 줄 알아야지만 가능하다.
그런 것을 생각했을 때 확실히 루 시퍼는 천재에 속한다.
-진짜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 지만 대단하군요.
-역시 루시퍼 선수라고 해야 할까 요? 모든 능력치가 평준화된 와중에 압도적인 데미지로 보스를 공략하고 있습니다. 저건 어떻게 하는 겁니 까?
-이데아를 해보시는 분들이라면 가끔 그런 경험 있으실 겁니다. 평 소와 같이 때린 거 같은데 더 손에 감기는데? 라는 경험 있으시죠?
대부분 있을 거다.
이데아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몸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공격하는 때가 없을 수가 없으니까.
보통은 위급한 상황이나 정말 컨디 션이 좋은 상황 때 한두 번씩 나오 는 드문 경험이긴 하나 한 번도 경 험하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배송재도 홍진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도 이데아를 하는 유저로서 그런 경험 가끔 있었습니다. 정말 드문드문 느끼는 경험이죠.
-지금 루시퍼 선수는 그걸 사용하 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예? 그게 가능합니까?
-흔히 강약조절이라 말할 수 있는 데 몸에 있는 근력들을 모두 활용하 면서 데미지를 높이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그걸 쓰고 있으니 저런 말도 안 되는 데미지가 나오는 거죠. 물 론 원하는 때 무조건 나오게 할 순 없을 겁니다. 아무리 루시퍼 선수가 대단해도 그건 힘듭니다.
홍진오의 말에 루시퍼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늘 데미지를 폭 발적으로 내게 할 순 없다.
기껏해야 3번 중 한 번이다. 근데 그것만으로 지금 이런 차이를 보이 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법한 일.
-아직 1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50%나 까다니. 다른 경기를 통틀어서 1위를 하는 건 아닐까 조 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하기야 저런 플레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아무리 레 벨 300 이상 경기에 랭커들이 많다 해도 저런 기록을 낼 수 있는 사람 은 거의 없을 겁니다. 홍진오의 말에 배송재도 고개를 끄 덕였다.
루시퍼의 기록을 깬다면 이미 프로 게이머를 하고 있어야 한다.
프로게이머. 그것도 세계 1위라는 루시퍼와 기록이 비슷한데 다른 직 업을 하고 있다? 그거야말로 웃기는 일이다.
물론 이데아 랭커들의 수입을 잘 모르는 중계진이기에 그렇게밖에 생 각하지 못했다.
‘우승은 뻔하고, 기록 1위는 떼 놓 은 당상이군. 이거 너무 시시하네.’ 원래라면 이런 경기 따윈 나오지도 않았을 거다.
규모 자체는 크지만 걸려 있는 상 금이 약했으니. 그러나 자긴 이미 계약을 했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이번 기회로 인지도를 쌓은 뒤에 길드에 들어오라고 했었지.’
프로에서 벌던 돈에 3배를 더 받 는 계약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참가해서 우승을 한 뒤 계약한 길드로 들어갈 생각이 었다. 그게 홍보도 확실히 되기도 했으니.
자신 말고도 다른 놈들도 이미 계 약된 프로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 다.
‘뭐 당연한 거지만. 안 하는 놈이 X신인 거지.’
지금 대회에 참가한 프로 중 길드 와 계약되지 않은 이들은 프로게이 머 랭킹이 낮은 선수들과 아크밖에 없었다.
‘그런 돈은 받지 않겠다고 했던가? 실력이 없는 주제에 자존심만 세가 지곤. 그보다 그 새X는 보이지도 않네.’
피식.
신청시험 때 1위를 한 아마추어 녀석.
레벨 100 이상 200 미만 경기에 나올 거라 예상된 아수라가 나오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뻔했다.
‘아마추어 근성이 어디 가겠어? 유 튜브로 인기 좀 끌었다고 기고만장 하는 놈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속으로 아수라를 비웃으면서 고릴 라의 공격을 피하곤 놈의 팔을 밟곤 놈의 목을 노리면서 검을 휘두른다.
모습은 멋있으나 여태까지 공격한 것과는 달리 데미지는 그리 좋게 들 어가진 않았다.
-오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모습!
-저런 걸 보면 멋있긴 하지만 데 미지가 들어간 걸 보면 막상 별거 없죠. 흔히 저런 걸 보고 겉멋이 들 었다고 합니다.
홍진오의 말에 루시퍼는 인상을 와 락 구길 뻔했으나 신경 쓰지 않는 척 무시하고는 계속해서 고릴라를 공격했다.
‘슬슬 끝내주마.’
이제 1단계가 시작한 지 5분이 되 어간다.
아무리 루시퍼라도 10분은 걸릴 만한 몬스터. 300 이상 경기에서 누 가 나올지 모르니 이젠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슬슬 전력을 다해 기록을 내야 할 때.
그렇게 그가 움직이려는 순간, 중 계를 맡은 배송재가 이상한 반응을 내보였다.
-아, 뭐? 진짜?
누가 보더라도 방송사고다.
그러나 배송재의 눈에는 경악과 놀 라움만이 가득 찬 채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 지금 믿을 수 없는 속보 때문에 그랬습니다.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영상 띄워주 시죠!
배송재의 말과 함께 루시퍼의 영상 이 내려가고 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영상에서는 보스와 싸우 고 있는 유저의 모습이 아닌 한 메 시지를 읽고 있는 유저의 모습이 나 오고 있었다.
[1 단계를 클리어하셨습니다.]
그 메시지를 본 배송재가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아니, 고 작 4분 31초 만에! 1단계를 클리어 하고 2단계로 진입합니다!
-아, 아니.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 요. 미친.
중계를 하는 와중에 욕설을 담았 다.
징계를 받아 마땅했으나 그 누구도 홍진오를 뭐라 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장면이었으니까.
중계에 있어서 프로인 배송재도 흥 분을 감추지 못한 채 홍진오를 보며 물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제1경기 와 제2경기인 레벨 100 이상 200 미만, 200 이상 300 미만의 경기에 서 최고 성적이 1단계에 23분 34초 입니다. 그런데 4분 31초라요! 이게 가능한 것입니까?
-……아까 말씀드린 강약조절을 원하는 때마다 사용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근데 그게 가능하다 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중계진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패닉 에 휩싸였다.
아니, 그런 유저가 존재하다니.
도대체 누구인가.
몇몇 관중들이 그 유저의 행색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익숙한 모습. 그러나 레벨 100 미만의 경기에서 볼 것이라고 상상도 못 한 유저.
왼손에는 단검을 쥐고 오른손엔 장 검을 쥔 가면을 쓴 남자.
그때 배송재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 다.
-늦게 전달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현재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선수의 닉 네임은 아수라입니다!
-뭐? 아니, 아수라가 왜 100 미만 경기에?
-아니,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어? 그러고 보니 출전한다 했지 100 이상 200 미만 경기에 나온다 는 말은 없었음.
-야, 그러면 그동안 그 영상들이 전부 100 미만의 유저가 한 영상들 이었다고?
L……대박.
L……할 말이 없네. 그냥 미쳤다 고밖에 못하겠다.
-미쳤다! 진짜!
-근이 미쳤다!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중계되고 있 는 댓글들이 난리가 났다.
중계 콜로세움에서도 마찬가지.
“아수라라고? 미쳤다!”
“대박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환호성이 난리가 났을 때.
오직 루시퍼만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