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110화
16강전이 시작되기 전, 32강전에서 최고를 뽑는 MVP 선정은 린이 되 었다.
서아도 상당한 실력을 뽐내긴 했으 나 린의 상대가 훨씬 강했기에 더 멋있는 경기를 보일 수 있기도 했 고, 한 길드로 추정되는 여섯 명의 비공식 랭커들이 모두 린을 중심으 로 뭉쳐있었기에 자연스레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선정된 것이다.
린도 자연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진짜 엄청난 경기를 보여주셨습 니다.
-감사합니다.
방긋 웃어 보이는 린을 보며 남자 관객이고 여자 관객이고 모두 환호 를 내질렀다.
예은과 닮았기에 린 또한 엄청난 외모를 자랑했고, 예은과 다르게 아 크가 없었기에 여성들도 모두가 환 호를 질렀다.
그런 반응에 린은 긴장하지 않고 인터뷰에 집중했다.
-그런데 홍진오 해설위원님의 말 들으셨나요?
무슨 말인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관객석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진 짜 같은 길드인지를 묻는 말이 너무 나도 많았으니까.
린은 그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물론입니다. 저희는 영웅 길드라 는 길드입니다. 보시다시피 소수정 예를 추구하다 보니 길드원의 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아아, 진짜 길드였다니 정말 놀랍 습니다. 그것도 비공식 랭커들만 있 는 길드라니. 대단하네요.
-감사합니다.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린 을 보며 남자들은 대부분 넋이 나갔 다.
이번 대회는 경기도 경기지만 참가 한 여성 유저들의 외모도 상당히 뛰 어나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흘렸다.
이어지는 인터뷰 질문들에 대답을 하며 마지막으로 김혜원 리포터가 물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길드 가입 조 건은 역시 비공식 랭커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레벨이 낮더라도 직업 등급과 실력이 높다면 누구라 도 영입하는 게 저희 길드입니다.
-그렇군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합니다.
인사를 린을 뒤로 하고 화면이 바 뀌며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중계진으 로 화면이 변했다.
2초정도 멍하니 보던 둘은 아차 싶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말했 다.
-흠흠, 이것으로 제4경기 32강전 을 마치겠습니다.
-저희는 10분의 휴식 후 다시 돌 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꾸벅 인사를 하며 사라진 중계진들을 두고 많은 시청자와 관 객들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한 게 린의 외 모가 그만큼 출중했기에 가능한 일 이었다.
“야, 그런데 그 한서아인가? 그 여 자도 개쩔던데.”
“그니까. 와 씨, 이데아는 성형 10%밖에 못 하지 않냐? 근데 10% 로 그 정도 될 리가 없고 본판이 그렇다는 거 아님?”
“세상 진짜 불공평하다. 저런 여자 들랑 사귀는 놈은 누가 될까?”
“일단 우린 아닐 거다.” 저마다 남자들은 눈물을 머금으며 얘기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10분이 지 나 16강전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도 아니나 다를까 대단한 경 기들을 선보였고, 후반부로 진행이 되었을 때. 맨 마지막 경기에 한서 아와 베른이 경기장으로 올랐다.
와아아아! 예쁘다!
언니! 너무 예뻐요!
경기 기대할게요!
한서아 파이팅-! 언제 봤다고 팬들까지 생긴 한서 아.
그리고 그런 한서아의 앞에 선 베 른은 피식 웃으며 한서아에게 말했 다.
“2개월 만인가?”
“으음? 전에도 저 염탐하지 않으셨 나?”
“이크, 들켜 버렸네. 뭐 사냥터가 겹치니 어쩔 수 없지 않겠어? 메인 시나리오가 진행되지 않아서 락이 걸린 사냥터가 너무 많으니까.”
“맞는 말이긴 하죠.”
이미 알고 있는 사이다.
비공식 랭커들은 사냥터가 겹칠 수 밖에 없으니 은근 자주 보는 편이었 기에 나름 친분이 존재했다.
그리 친하진 않아도 이런 대화를 나눌 정도의 친분은 가지고 있었다.
“그보다 영웅 길드 쪽에서 대부분 나왔네요. 힐러분이랑 중력마법사분 이야 상성이 좋지 않으니 안 나왔나 보네요.”
정확히 핵심을 찌르는 서아를 보며 베른은 질렸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뭐 내가 이길 거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길드원들은 다 8강전 진출한 마당에 맥도 못 쓰고 지는 건 사양하고 싶어서. 거기다 내가 지면 당신 다음 상대가 우리 여왕님 이라서 말이야.”
웃으며 말하는 베른의 눈빛은 차갑 게 빛나고 있었다.
서아 또한 방심할 수 없다는 듯이 나름 진지한 표정이다. 이긴다는 확 신은 가졌지만 절대 만만히 봐서는 안 될 상대다.
“그리고 그때 그 말 아직도 유효한 거겠지?”
“아, 물론이죠. 저 이기면 길드 가 입하겠다는 건 아직도 변함없습니 다.”
“좋아, 그렇단 말이지.”
중얼거리면서 몸을 푸는 베른.
서아는 베른을 보며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현성을 볼 때와는 달리 거대한 낫 을 쥔 서아는 낫을 고쳐 쥐며 말했 다.
“먼저 오세요.”
“그럼 사양 않고 가지.”
베른이 움직였고, 그걸 서아가 봤 다.
낫이라는 무기는 겉으로 보기에 상 당히 멋있기는 하지만 그리 효율이 좋은 무기는 아니다.
공격할 수 있는 궤도나 움직임이 한정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사용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는 무기다. 그러나 그런 낫을 서아가 쥐면 완전히 달라 진다.
‘온다.’
베른은 달려든 순간 거대한 대검을 휘둘렀다.
날의 두께만 해도 성인 허벅지보다 두꺼운 검. 그런 검을 잘도 휘두른 다.
낫과 만만치 않게 사용하기 힘들어 보이는 대검. 그러나 그 무게만큼이 나 공격력이 더해져 천지를 가를 듯 서아에게 휘둘러졌다.
파앙!
믿을 수 없는 광경.
천지를 가를 것만 같은 대검을 얇 디얇은 서아가 휘두른 낫의 날에 의 해 튕겨져 나갔다.
보고도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 으나 베른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빠르게 대검을 휘두르려 했다. 그러 나 그걸 보고만 있을 서아가 아니 다.
석!
압도적인 날의 길이. 저거에 찔리 거나 궤도 안에 들어가 있다면 심상 치 않은 출혈 데미지가 들어오리라.
무조건 막거나 피해야 한다.
그러나 막기에는 이미 스탭이 꼬여 있는 상태.
베른은 과감하게 대검을 들어 검 면으로 낫의 끝을 그대로 막았다.
퉁!
콰지지지지직! 이해할 수 없는 괴력에 의해 뒤로 밀려난 베른.
닿는 순간 스킬을 사용한 모양이 다.
능력치나 스킬들의 위력은 평준화 된 상태. 그럼에도 베른이 힘에서 밀린다는 건 강약조절이 그만큼 완 숙한 경지에 이르렀단 뜻이다.
거기다 스킬을 쓰는 타이밍도 기가 막히다.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스레 느꼈다. 이 여자는 진짜 괴물이라고.
‘넋을 놓고 있을 순 없지.’ 베른도 서아의 못지않은 괴물이라 불려온 사람이다.
여기서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지 않 은가.
그 또한 스킬을 사용하며 달려들었 다.
검은 어둠이 넘실거리며 베른을 휘 감았고, 베른은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과 하나가 되어 순간 이동을 하는 스킬.
서아에게는 처음 보여주는 스킬이 었다.
하나 서아는 놀라기는커녕 침착한 눈으로 몸을 트는 것과 동시에 낫을 휘둘렀다.
후웅!
묵직한 바람 소리가 들리더니 서아 를 중심으로 참격이 원을 그려 경기 장에 퍼졌다.
그리고 중간쯤 갔을 때 참격 안에 갑자기 나타난 베른이 그대로 달려 들었다.
먼 장소도 아니었던 터라 한 번의 도약에 거리를 좁힐 수 있었고, 아 까와 달리 위협적인 어둠이 웅웅거 리며 대검 위를 감싸고 있었다.
아무리 스킬의 위력이 평준화되었 다 한들 맞아선 안 될 거 같이 생 긴 비주얼의 공격이다.
콰가가가가가가강 !
경기장 바닥을 산산조각낸 대검.
그러나 아쉽게도 그 밑에는 서아가 있지 않았다. 서아의 상징인 거대한 낫만 있었을 뿐. 그 순간 서아는 언 제 소환했는지도 알 수 없는 쇠사슬 을 휘두르자 낫과 연결되어 있었는 지 그대로 낫이 움직여 자신에게로 힘껏 당겼다.
서걱!
“큭 ”
낫이 서아에게 딸려오면서 데미지 를 입은 베른은 감탄을 금할 수 없 었다.
‘내가 내려치는 순간 일어나는 먼 지를 이용해 낫보다는 자신에게 시 선을 가게 하다니.’
솔직히 상대지만 대단했다.
이런 심리적인 부분이나 실력 하나 하나가 따라잡기 힘들었다.
단순히 스킬의 타이밍이나 컨트롤 이 좋은 것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상대의 심리를 이용하여 상대를 철 저하게 요리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 다.
베른이 여지까지 봐온 사람 중에 유일하게 서아만이 그걸 행할 수 있
었으니.
‘아니, 이제 둘인가.’
생각을 해보면 아수라 또한 그런 스타일이다.
기사 아수라도 심리를 이용했고, 사냥꾼 아수라는 그것을 철저하게 이용해 상대를 농락하는 스타일이 다.
그러고 보면 아수라의 스타일과 서 아의 스타일은 어딘가 모르게 묘하 게 닮아있었다.
‘잡생각은 그만하자. 경기 중이다.’
데미지를 입긴 했으나 승패에 지장 이 갈만한 데미지는 아니다. 상태이상에 걸린 것이라고는 출혈 밖에 없었으니 문제없다.
그리고 그렇게 움직이려는 순간. 서아는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쇠사 슬을 움직였다.
“……하하.”
그걸 본 베른은 허탈하다는 듯 웃 었다.
낫의 가장 큰 단점인 행동의 제약 이 생긴다. 그러나 서아는 그 단점 을 쇠사슬을 이용한 스킬로 낫을 조 종함으로써 단점을 사라지게 만들었 다.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거대한 낫. 그리고 그걸 자유자재로 다루는 서 아를 보며 베른은 투지를 불태우며 대검을 들어 외쳤다.
“으아아아아압!”
포효와도 같은 외침과 함께 떠오른 낫을 대검으로 쳐내며 서아에게 달 려들었으나 튕겨 나간 낫이 그대로 베른을 사로잡았고 그대로 묶인 베 른은 뛰어오른 서아가 낫을 잡는 것 을 보곤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잘 가요.”
그 말과 함께 서아는 그대로 베른 의 목에 낫을 휘둘렀고, 그대로 베 른은 목이 베였다. 급소와 무기의 특성에 따라 그대로 목이 떨어지며 경기는 끝이 나고 말 았다.
압도적이다 못해 경악스러운 경기.
살벌한 마무리에 관중들은 아무런 말 없이 침을 삼켰다.
적막은 서아가 경기장에서 사라지 기 전까지 이어졌다.
-제, 제4경기 16강전! 이것으로 마 무리하겠습니다.
배송재의 말에 제4경기 16강전 마 지막 경기가 마무리되었다.
MVP는 보나 마나 한서아가 선정 되었으나 인터뷰를 거절했기에 그대 로 정말 끝이 났다.
두 중계진이 인사를 하고 화면에서 사라지자 다른 한편에서 모인 영웅 길드가 대기실에서 되살아나 그들에 게 온 베른을 봤다.
“하하, 이야, 역시 안 되겠더라. 너 무 강해.”
“……보니까 더 강해졌더라고요.”
린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 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 었다. 전에 자신들이 상대했을 때보 다 더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오직 컨트롤만으로 승부하는 경기 인데 더 강해졌다는 게 무슨 뜻이겠 는가.
“아수라 영상을 보고 실력이 늘었 나?”
아이의 말에 다들 그럴 법도 하다 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아수라의 영상을 보면 도움 이 안 될 리가 없다. 영웅 길드원들 도 모두 아수라의 영상으로 실력들 이 조금씩 올랐으니 서아라고 그러 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하아, 나름 영웅 길드 상위권 안 에 든다 생각했는데 너무 맥없이 졌 다. 대신 복수 좀 부탁해, 길드장.”
“예, 맡겨만 주세요.”
모든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으나 참 고할 것이 생겼으니 그나마 나았다.
다음 8강전.
사실상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서아 와 린과의 경기.
린은 두 눈을 감으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 볼게요. 내일 준비하 려면 일찍 자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요.” 제4경기가 워낙 늦은 시간에 시작 했다 보니 벌써 시간이 새벽 1시나 되었다.
다들 린의 말에 인사를 하며 로그 아웃을 했다.
한편 제4경기를 모두 지켜본 현성 은 몸이 근질근질했는지 몸을 부르 르 떨고 있었다.
‘하아, 진짜 나도 제4경기에 참가 하고 싶다.’
프로들과는 다르게 확실히 실력들 이 출중했다.
제3경기에 출전한 선수들도 괜찮긴 했지만 제4경기에 참가한 이들과 비 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나마 아크가 있긴 했으나 그 외에는 그다지 관심 가는 녀석도 없었다.
다들 루시퍼도 대단하다고 떠들고 있었으나 현성의 기억에도 남지 못 한 루시퍼였다.
‘우승하면 황제에게 소원은 제4경 기 우승자랑 경기할 수 있게 해 달 라 해야 하나?’
서아와 비슷한 생각을 한 현성은 피식 웃으며 개인관람석에서 나와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8강전 준비 나 하자.”
파란색 가면을 꺼내며 중얼거린 현 성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은 채 로 스킬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게 도서관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