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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자도 랭커-111화 (111/472)

잠만 자도 랭커 111화

현실 시간으로는 오후 2시부터 시 작한 시합이었으나 이데아 안에서는 아침부터 시작해서 늦은 오후까지 이어진 경기.

제1경기부터 제4경기까지 모두 지 켜봐 온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노여워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벌벌 떠는 신하들은 무시한 채 황제 는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황실로 들어갔다. 아무 말 없이 돌아선 황제의 모습 에 신하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소문만으로는 심기가 뒤틀리면 수 백을 숙청한다는 철혈의 군주 카론 이다. 그러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하나 신하들의 생각과 달리 황제는 상당히 만족하는 중이었다.

‘여행자들은 그렇게 싸우는군.’

확실히 이세계 주민들과는 전투방 식이 달랐다.

목숨이 무한한 만큼 과감한 면이 있는 데다 재미있는 방식들이 꽤 여 럿 보였다.

실망한 것도 있었다. 예를 든다면 제1경기와 2경기.

그 두 경기는 전체적으로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놈들 만 보였기에. 그러나 제3경기와 제4 경기는 확연히 달랐다.

전체적으로 봤을 땐 제4경기가 더 재미있었으나 눈길이 가는 놈은 제3 경기의 녀석.

‘싸울 줄 아는 놈■이었어.’

전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놈.

여행자들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여행자들의 특징이 있었 다. 목숨이 무한한 나머지 과감한 것까진 좋다. 하나 너무 긴장감 없 이 싸운다. 마치 스포츠라도 즐기는 마냥 말이다. 제3경기에 나온 대부 분의 여행자들이 그런 경향이 심했 다.

전투라기보다 스포츠라는 느낌.

그러다 보니 제4경기도 실력 있는 이들이 많았으나 크게 흥미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단 한 명만은 달랐다.

‘이곳의 주민과도 같은 모습이었 다.’ 최선을 다한다. 말은 쉽다. 하나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른 여행자들이 전력을 다한다고 말하고 있을 때 오직 그놈만이 모든 것을 내놓으며 싸웠다. 목숨이라도 건 것처럼.

그 모습이 마음에 든 것이다.

‘아수라라고 했던가.’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항상 근엄하게 있던 황제의 입가에 웃음이 터져 나오다니.

그것도 신하들이 있는 앞에서 말이 다.

도대체 이게 얼마 만인지.

‘싸울 줄 아는 놈이야. 보아하니 그놈이 우승할 거 같은데 소원은 무 얼 빌지 기대가 되는군.’

다른 놈들이 아수라를 이길 거 같 지 않다.

모든 것을 내걸고 싸우는 자와 스 포츠를 즐기는 자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었으니.

황제는 기대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처소로 들어갔다.

신하들도 들어올 수 없는 황제 혼 자만의 공간.

그곳에서 황제가 입을 열었다.

“그놈에 대해 알아오너라.”

_예.

황제가 말하자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니 금세 사라졌다.

그러곤 소파에 앉아 오늘의 경기를 회상했다.

두 차례 시합에서 보인 각 스타일 이 완전히 달랐다. 황제는 그것들을 떠올리며 자신이 상대했다면 어땠을 까 하며 상념에 젖었다.

‘하얀 가면을 썼을 때는 다소 몸을 사렸헜지.’

회피와 공격이 상당히 깔끔한 모 습.

심지어 검술 또한 뛰어나 틈을 정 확히 파고드는 예리함까지 갖췄다. 비유를 한다면 하나의 검과 같은 모 습이 었다.

그러나 검은 가면을 썼을 때는 완 전 돌변한다.

“검은 가면을 썼을 때는 몸을 아끼 지 않고 덤벼들었지.”

사냥꾼, 아니, 사냥개에 가까운 모 습.

상대를 철저히 사냥할 줄 아는 맹 수의 자질을 지는 놈이다. 어떻게 해야 상대를 무방비하게 만 들지,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을지. 철저히 그것만 생각하는 모습이 확 연히 느껴졌다.

긍지 높은 전사도, 효율을 중요시 하는 암살자도 아니다.

그저 전투에 미친 무인. 딱 그랬 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자신과도 같 은 모습에 흥미를 느꼈다.

‘남들이 나를 볼 때 그런 느낌이었 겠군.’

절대 건들고 싶지 않은 존재.

적이 되고 싶지 않은 존재.

그게 바로 현성과 황제의 공통점이 었다. 투지조차 물어뜯어 버리는 광 기.

자신과 비슷한 존재에 황제는 미소 지었다.

‘고놈 참 탐나는군. 제자로 삼으면 심심할 틈이 없겠어.’

황제의 명을 듣고 움직인 그림자.

이름도 없는 그저 그림자라 불리는

인생이나 그가 황제에게 바치는 충 성만큼은 의심할 여지 없다.

명을 내린다면 생각할 이유도 없 다. 그저 수행하기만 하면 된다.

그림자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현 성이 묵고 있는 여관.

특수한 스킬과 추격에 특화된 직업 이다 보니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너희들은 뒤쪽으로 가라.’

어찌 보면 간단한 임무라고 봐도 무방한 임무다.

현성, 그러니까 아수라를 납치하거 나 제거하라는 명도 아닌 그저 정보 를 알아오라는 명. 그림자 부대를 굳이 데려오지 않아 도 될법한 임무였으나 그는 신중하 다.

어떤 명이건 최선을 다하는 그였기 에 당연히 전력을 다해 자신의 부대 를 이끌고 나왔다.

그를 따르는 다섯 명의 최정예 그 림자 요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여 관의 뒤편으로 이동했다.

‘여행자들은 자신의 몸체로 차원을 이동하기에 알아낼 수 있는 건 한정 적이다. 여관을 뒤진다 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을 터.’

그러나 그것이라도 건져가야 한다.

그것이 임무였으니.

부하들을 보낸 후 자신이 직접 여 관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저라면 그러지 않을 텐데요?”

상당히 나른하면서도 웃음기 가득 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림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식은땀을 흘렸다.

제국 최고의 어쌔신인 자신이다.

그런 자신이 뒤를 잡혔다. 거기다 뒤에 있는 자가 말하기 전까지 기척 을 느끼지 못했다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아수라라는 자는 아니다. 그와 관 련된 잔가?’

그림자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저 황제의 명에 따르기만 하면 된 다.

하나 지금 같은 상황은 예외다.

늘 황제의 곁을 지키는 그가 뒤를 잡혔다. 그렇다는 것은 황제를 암살 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된다는 뜻이다.

철혈의 군주 카론이 암살자에게 당 할 존재가 아님을 누구보다도 잘 아 는 그림자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을 없 애는 것이 신하 된 도리. 그림자는 스킬을 사용해 사라졌다. 어쌔신의 비기라고도 할 수 있는 그림자이동.

바로 자신의 뒤를 잡은 자의 그림 자에서 나타난 그가 단검으로 제압 하려는 순간.

딱-!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온 몸이 마비가 되었다.

“이, 이게 무슨.”

시간이 얼어붙기라도 한 듯 움직이 지 못하는 그림자.

그를 바라보는 남자는 검은 사제복 을 입은 사제였다.

“이래서 충직한 개들은 곤란하다니 까요. 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 지만, 제가 무슨 공격을 했습니까? 아니면 황제를 죽인다고 했습니까? 왜 덤비는 건지 이해가 하나도 안 되네요.”

검은 사제복을 입은 사제.

다름 아닌 리베우스였다.

현성이 머무는 여관에 지내던 도중 갑작스레 접근하는 그림자를 느끼곤 이렇게 나선 것이다.

그림자는 리베우스의 말에 두 눈을 부릅뜨며 뭐라 말하려 했으나 리베 우스는 이제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 았다.

“하아, 말해봐야 또 ‘감히! 황제 폐 하를!’ 하면서 구시렁거릴 거 같아 서 입을 잠깐 막았습니다. 뭐 상관 없으시겠죠?”

대답을 바라고 물은 건 아니었는지 리베우스는 계속해서 말을 했다.

“그보다 이건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까요? 그냥 죽여 버릴까요?”

그 말과 함께 그간 감고 있는 것 같은 눈을 살며시 떴다.

공허와도 같은 검은 눈동자가 그림 자를 훑었다.

그 눈을 보자 그림자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었다. 마치 죽음과 마 주한 어린 짐승처럼 떠는 그림자.

단순한 공포가 아니다. 무언가 영 혼을 훑은 것 같은 착각까지 드는 섬뜩함. 그걸 느끼고서야 리베우스 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인지 두 눈은 경악과 공포로 물들어 있었다.

빨리 이 사실을 황제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 다.

그런 그림자를 보며 리베우스는 다 시 아까와 같은 나른한 표정을 지으 며 말했다.

“우후후후, 농담이랍니다. 아무리 저라도 황제의 최측근을 죽이면 골 치 아파지거든요. 그러면 황제에게 가서 이렇게 전하십시오.”

리베우스의 말에 그림자의 두 눈은 마치 꿈을 꾸듯 생기를 잃었다.

몽롱한 두 눈을 바라보며 리베우스 는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무슨 용건인지는 몰라도 우리 죽 음과 잠을 모시는 저희들과 싸우고 싶지 않으면 정중히 찾아와 주십시 오’라고 전해주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착하기도 해라.” 리베우스는 그렇게 말하며 박수를 두어 번 치자 먼저 여관에 들어갔던 그림자 부대원들도 모두 몽롱한 눈 을 하곤 창문으로 나와 그림자와 함 께 다시 황실로 향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리베우스는 고개 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하아, 일이 귀찮게 됐네요. 주인님 을 위해서라도 교황 성하에게 연락 을 드려야겠군요. 사도님이야 어디 계신지 알지 못하니.”

게다가 현성이 사도를 끔찍이 싫어 했으니.

리베우스는 후후 웃으며 메시지를 보냈다.

“교황 성하? 접니다, 리베우스. 다 름이 아니오라 철혈의 군주께서 주 인님을 탐내는 거 같사옵니다.”

그 연락이 닿은 지 얼마 되지 않 아 교황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결코 전쟁은 안 된다. 절대!

메시지를 들은 리베우스는 잠시 고 민을 하던 중 이해를 했다는 듯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아하! 결코 전쟁은 절대! 전쟁은 절대적이란 말씀이시군! 교황 성하 께서 전쟁을 원하신다!” 리베우스가 그렇게 외치고 얼마 지 나지 않아 다시 메시지가 발송이 되 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단 더 긴 메시지였 다.

-전쟁하려고 하면 아무리 사도께 서 말씀하셨다고 해도 네놈 말고 다 른 사제를 주인님에게 붙일 거니 그 런 줄 알아라.

“쩝, 여전히 재미없으시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투덜거렸 다.

하나 교황의 말은 절대적이다.

신의 대리인이자, 사도와 성녀를 제외하면 가장 직위가 높은 존재. 게다가 리베우스의 상사라 할 수 있 는 존재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요? 이미 황제 에게 경고를 날렸는데, 헤헤.”

현성이 이걸 봤다면 교황을 상당히 동정했으리라.

-후우, 일단 황제의 반응을 봐야겠 구나.

“그럼에도 황제가 주인님을 탐낸다 면 어쩌시겠습니까.”

아까와는 달리 장난기가 쏙 빠진 진지한 어투.

거기에 교황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뭘 묻느냐? 그땐 전쟁이지.

“오우!”

-그 전까진 나서지 마라. 만일 주 인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경거망 동해선 안 되는 건 알고 있겠지.

“물론이옵니다! 세상은 주인님의 뜻대로 이뤄지게 하시어 진정한 잠 과 죽음을 이루리라.” -그래, 알겠다. 주인님을 충실히 보필하라.

“당연한 순리이옵니다.”

교황의 말에 대답한 리베우스. 그 대답에 교황도 더 뭐라 하지 않고 연결을 끊었다.

연결이 끊어진 걸 확인한 리베우스 는 눈을 뜨며 황실이 있는 쪽을 노 려보며 중얼거렸다.

“만일이라도 주인님에게 해가 될 시 제국은 그대로 사라질 줄 알고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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