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120화
예전에 오락실 게임이 유행했을 때, 한 콤보로 죽이는 것을 흔히 원 콤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진짜 실력자들만이 할 수 있는 원 콤. 그리고 그거에 세계 랭킹 1위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말 았다.
이번 대회가 있던 직후 많은 놀라 운 일들이 많았으나 단언컨대 이렇 게 충격적인 경기는 처음이다.
여태까지 압도적인 경기들이 나오 긴 했으나 원콤이라니. 그것도 모든 능력치가 평준화 된 이 경기장에서 원콤이 라니!
사태를 파악한 관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고, 이내 그 술렁거림은 함성 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 원콤킬!
아수라! 아수라! 관중들은 아수라를 외쳤고 푸른 가 면을 쓴 아수라는 도도하게 마치 당 연하다는 듯 자연스레 고개를 숙이 며 관중들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다시 부활해 멍 하니 자신을 보는 루시퍼에게도 인 사를 하곤 그대로 대기실로 사라졌 다.
-풉, 크흠흠, 크흠. 이제 좀 프로 가 뭔지 알 수 있겠네요.
예선전 인터뷰 때 루시퍼가 말한 말.
프로가 왜 프로인지 모르냐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그걸 들은 관객들이 와하하 웃음을 터뜨리며 루시퍼를 보며 웃었으나 루시퍼는 그저 멍하 니 아수라가 사라진 곳을 봤다.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도 못하고 패 배했다. 그것도 원콤으로.
이게 가능한 일인 것일까.
형평성에 어긋난 것은 아닌가?
그런 수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으나 루시퍼는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그냥 진 것이고 다시 싸워 도 질 것이다. 그걸 깨달은 루시퍼 는 멍한 표정 그대로 대기실로 사라 졌다.
-하아, 이걸 원콤이라고 부르죠? 진짜 대단하네요.
-맞습니다. 아 정말 대단한 선수에 요. 아수라 선수. 영상에 제일 많이 나오고 가장 강력해 보이던 스킬인 검은 벼락을 대회 도중에 단 한 번 도 보이지 않았어요. 게다가 아크 선수와의 경기에서도 2성 이하의 마 법들만 쿨타임과 딜레이가 없어보이 게끔 속인 뒤 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 모든 걸 터뜨린 겁니다. 마도사 아수라, 정말 치밀합니다. 거기다 화 력도 장난이 아니에요.
-너무 빨리 끝난 나머지 분량이 차지 않을 거 같은데요? 하하, 이거 예전에 홍진오 해설위원이 선수 때 삼언벙으로 졌던 그 경기 같네요. 저도 그때 치킨 시켜두고 오기도 전 에 끝났는데 이번에 많은 시청자분 들이 그걸 느끼겠네요!
-크흠. 그 얘기는 왜 흠흠.
중계진들의 말에 관객들은 웃고 떠 들긴 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 금의 그 임팩트를 잊지 못한 채 전 율하고 있었다.
세계 1위를 단번에 압살해 버리는 모습.
거기다 그 오만하던 루시퍼조차 다 시 살아나곤 날뛰기는커녕 패배를 인정하고 대기실로 걸어가지 않았던
가.
-아무튼 엄청난 경기였습니다. 앞 으로 열릴 이데아 대회에서 두고두 고 회자될 경기였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경기는 그 어떤 경기보다 짧고 어떻게 보면 세계 1 위라고 할 수 있는 루시퍼 선수의 패배가 허무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 겠습니다만, 그만큼 그 임팩트가 뇌 리에 깊게 박힌 것 같습니다.
-솔직히 시원하기도 했죠. 이름처 럼 오만한 컨셉을 밀고나가면서 재 수 없게 굴던 루시퍼 선수가 찍소리 도 하지 못하고 패배를 인정했으니 말이죠.
-하하, 홍진오 해설위원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다들 그 말에 공감했다.
실력은 있어도 재수없던 루시퍼의 그 큰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었으 니 속이 다 시원하긴 했다. 모든 사 람들이 전율에 함성을 지르고 있었 을 때. 대기실에서 지켜보고 있던 서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렇게 화려하게 하면 다음 차례인 내가 뭐가 돼.”
투덜거리기는 했으나 서아 역시 다 른 관객들과 마찬가지였다.
검은 화염이 루시퍼를 태우며 검은 벼락 10가닥이 루시퍼를 관통하는 그 장면.
정말 상상도 못 한 장면이었다.
예상도 못한 경기에 서아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경기 뒤에 나가야 한다. 과연 저 임팩트를 이길 만한 경기를 보여 줄 수 있을까?
‘결승전은 카이저 님, 카이저 님을 상대로 저런 압도적인 모습은 힘들 지……
베른과 비슷한 실력인 카이저다.
베른도 나름 쉽게 이겼다고 볼 수 있었으나 아무리 그래도 아수라가 루시퍼를 이긴 것만큼의 임팩트는 주지 못했다.
‘정말 반칙이야. 하아.’
그리고 현성과 싸울 마음이 확 사 라지고 말았다.
지금 싸운다면 무조건 진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 경기장. 능력치가 평준화 된 이 경기장에서는 서아는 현성을 절대 이길 수 없다.
질 게 뻔한 싸움은 하지 않는다. 패배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은 많긴 하지만 질 게 뻔한 싸움에 굳이 도 전하는 것은 용감보다는 무모함에 가깝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직은.
아수라, 그러니까 현성이 더 레벨 이 오르고 자신과 비슷한 수준으로 강해졌을 때. 그때 싸워보고 싶다.
‘그리고 나도 좀 레벨이나 능력치 보다는 스킬에 더 신경 써야겠다.’
고작 30초도 안 되는 경기를 보고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제4경기 결승전.
승자는 당연히 서아였다.
카이저도 강하긴 했으나 그래봐야 베른과 비슷한 수준이다. 린에 비하 면 반수정도 약했기에 서아에게 이 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서아의 표정은 그 리 좋지 않았다.
역시나 아수라의 경기를 보고 난 뒤 자신의 경기가 보잘 것 없게 느 껴졌으니 만족스러울 리가 있겠는 가.
그다지 좋지 않은 표정으로 서있는 서아와 그 옆에 제1경기 우승자, 제 2경기 우승자가 나란히 섰고, 그 사 이에 아수라가 섰다.
자신의 옆에 선 아수라, 현성을 힐 끗 보며 서아가 시치미를 떼며 귓속 말을 보냈다.
[한서아: 우승 축하해요.]
그간 어떻게 먼저 연락을 보낼지 고민하던 서아에게 있어선 절호의 기회.
이 기회를 잘 활용해 귓속말을 보 냈다.
티를 내진 않았으나 속으로 쾌재를 부르던 서아에게 귓속말이 전해졌 다.
[현성: 감사합니다. 서아 님도 우 승 축하합니다.]
왜일까?
저 귓속말을 뒤이어 할 말이 떠오 르지 않았다.
‘어…… 결승전 경기 잘 봤다고 할 까? 아냐 그럼 또 대화 단절되는 거 아니야? 아, 뭐라 보내지?’
속으로 한참 고민하고 있었을 때.
중계진이 아닌 이데아 속에서 경기 를 관리하던 NPC가 목 놓아 외쳤 다.
“지금부터 여행자의 시상식을 시작 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이데아 중계 콜로세움의 모여 있는 유저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함 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NPC의 찬사.
“대륙의 으뜸이시며 가장 위대하시 고, 하나뿐인 제국의 통치자! 철혈 의 군주 카론 디알로스 카린느엘페 폐하의 하해와 같은……(후략).”
한참이나 이어지는 찬사에 유저들 은 다들 놀란 눈으로 그 NPC를 보 고 있었다.
유명 힙합 프로그램에 나가도 손색 이 없을 정도의 말. 거기다 말 하나 하나가 귀에 쏙쏙 잘 박히기까지 한 다.
역시 저런 인물은 아무나 하는 건 아니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NPC가 끝으로 외쳤다.
“따라서! 철혈의 군주 카론 디알로 스 카린느엘페 폐하의 대리로 제국 의 또 다른 하늘! 유리아 님께서 상 을 하사하겠습니다! 모두 정숙하시 오!” 그 외침에 아까까지만 해도 수군거 리며 정신없던 콜로세움이 거짓말처 럼 고요해졌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고요해 진 현장이었으나 우승자들 중 그것 에 의문을 표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유리아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각, 또각, 또각.
그 고요한 콜로세움 속에 오직 구 두소리가 들려왔고 이윽고 허공에서 공간이 갈라지며 유리아가 등장했 다.
그러곤 조용한 그곳을 한번 둘러보 며 만족스러운 것인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시상을 받을 이들 앞으로 걸 어갔다.
또각, 또각, 또각.
원래라면 황제가 상을 하사하는 것 이 맞다.
그렇게 하려고 했었고.
하나 어제 현성을 만났다고 뭐라 하니 계속 삐져있어서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달랜다고 이 상을 하사할 권 리를 넘겨준 것이다.
유리아가 우승자들을 향해 걷는 모 습을 보며 황제는 한숨을 쉬며 고개 를 저었다. 이제는 친구라는 생각보단 무슨 조 카나 딸 하나 키우고 있다 생각하는 게 편했기에 그렇게 생각하곤 있었 으나 그래도 골치가 썩는 것은 마찬 가지였다.
‘사고만 치지 않으면 좋으련만.’
황제의 권위가 실추되는 일만 없으
면 좋겠다며 황제 카론은 조마조마
한 심정으로 유리아를 유심히 지켜
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면 바로
말리기 위해서.
유리아는 그런 황제를 보며 걱정
말라는 듯 황제가 있는 곳을 향해
한 번 윙크를 한 후 우승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푸른 가면을 쓰 고 있는 현성을 봤다.
‘하아, 이렇게 보려고 다음에 보자 고 한 거였나.’
설마 했었는데 정말 시상식에 나타 날 줄이야.
제국의 고위 직책을 가지고 있었으 니 그녀가 이곳에 나타날 가능성도 생각해 두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진 않았지만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공식 석상 앞에서 제자를 거 절하면 망신이 따로 없다. 현성이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화가 날 거 같다. 그런데 그 성질 급하고 괴팍하기로 소문난 유리아는 어떻겠 는가. 절로 한숨이 나왔으나 그걸 간신히 삼킨 후 우승자들 앞에 선 유리아를 봤다.
현성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유 리아.
누가 봐도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모습이다.
‘하. 큰일 났네.’
골치 아프다 생각하던 때. 유리아 는 상을 하사하는 것보다 먼저 현성 의 앞에 다가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물었다.
“안녕?’’
현성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눈앞에 정말 오랜만에 보는 메시지 가 떠올랐다.
[타나노스의 기면증 스킬이 발동 됩니다.]
[강제로 수면상태에 빠지게 됩니 다.]
[강제로그아웃 때까지 캡슐이 망가 져도 캐릭터는 게임에 남아 있으니
접속을 해제해도 됩니다.]
‘어라?’
철푸덕.
기면중으로 인해 그저 쓰러져서 잠 을 자는 것이었으나, 다른 이들이 본 장면은 유리아가 말을 걸자 멀쩡 히 서있던 아수라가 쓰러졌다.
그리고 평소에 나있는 유리아의 소 무
그것이 합쳐지자 그 옆에 서 있던 우승자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서아는 깜짝 놀라 쓰러진 현성을 보곤 진정했다.
죽었다면 저렇게 쓰러진 게 아니라 잿빛이 되어 사라졌어야 하니. 그나 마 서아는 빠르게 진정은 했으나 다 른 이들은 그러지 못했다.
가뜩이나 고요하던 콜로세움이 고 요하다 못해 숨쉬기 힘들 정도로 분 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유리아는 정말 당황스럽다 는 듯이 중얼거렸다.
“아, 아니 나, 나는 그냥 말 건 거 뿐인데…… 심지어 본인조차 무언가를 했다고 착각하는 유리아를 보며 황제는 한 숨을 쉬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쌌 다.
“하아.”
정말이지 골치만 썩히는 유리아였 으나 어쩌겠는가.
그래도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황제는 당장에라도 울 것만 같은 유리아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일을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그밖에 없었으니.
황제가 움직이자 거의 반쯤 울먹거 리는 눈으로 황제를 보며 중얼거렸 다.
“히잉. 나는 그냥 말만 데……
걸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