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162화
뜀박질을 오래 하다 보면 몇 가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피부에 흐르는 땀이 증발해 증기가 되는 것 같은 착각.
그 증기로 인해 숨이 막혀오는 것 같은 착각.
그리고 그 증기로 인해 몸이 뜨겁 게 달궈진다고 느낀다. 아니, 실제로 뜨겁게 달궈진다.
지금 현성이 그랬다.
“후우우욱.” 길게 내뿜는 숨은 뜨거웠고, 흐르 는 땀은 열기가 가득해 주변을 뜨겁 게 달궜다.
이 충만해진 감각과 피로.
현성은 이 기분이 몹시 좋았다.
모든 근력 운동을 마치고 러닝으로 운동을 끝내는 이 열기.
충만해지는 이 감각에 현성은 눈을 감고 달궈진 몸을 풀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풀렸겠지?’
남이 들었다면 허세라며 손가락질 했을 법한 생각.
여태까지의 강행군은 누가 보더라 도 오버페이스였다. 그런데 그걸로 고작 몸이 풀렸겠다며 생각하고 있 다니.
어처구니가 없는 생각이었으나 현 성은 진심이었다.
이렇게 몸을 달궈야 도장에 가서 할만 했다.
‘워낙 살벌하게 하시니까 이 정도 로 몸을 안 풀면 힘들다니까.’
실전무술학원.
현성이 이 학원을 다닌 것도 이제 한 달이 되어간다.
그 한 달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관장인 화인을 이기 진 못했으나 점점 그 간격이 좁혀져 가고 있었다.
최근 일주일 정도 쉬긴 했으나 오 히려 체력이 붙은 덕에 그사이에 실 력이 많이 발전할 수 있었다.
거기다
‘실전무술을 배우면서 이데아에서 도 확실히 컨트롤이 늘고 있고.’
현성만이 이데아를 하며 운동을 하 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도 신체건강이 뛰어날수록 이데아 속 컨트롤이 증가하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다. 그래서인지 게 이머들이라면 모두 저마다 운동을 하는 편이었다.
현성처럼 무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 더라도 헬스로 인해 몸을 단련하는 게이머들이 대부분. 거기다 실제 무 술을 배우는 이들도 상당했다. 물론 현성과 같이 실전 위주의 무술을 배 우는 이들은 흔치 않았지만.
‘오늘은 다른 분들 계시겠지?’
실전무술학원에 다니는 것은 현성 만이 아니다.
흔치 않지만 실전무술을 통해 이데 아의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어 하는
이들이 없을 리가 없었으니까.
실제로 화인 실전무술학원에 다니 는 원생 중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관장인 화인과 대련하는 것도 나쁘 지는 않지만 편향된 대련은 오히려 독이 되는 법.
현성도 그것을 알았기에 다른 이들 과도 자주 대련을 청하는 편이었다.
‘오늘도 가서 열심히 하자.’
몸이 식지 않기 위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현성은 헬스장에서 나와 곧장 화인 실전무술학원으로 향했 다. 아니, 향하려 했다.
“와! 저 사람 지금 몇 연승 중이 야‘?”
“지금까지 이기면 13연승.”
“대박이네.”
“이 근방에서 하는 사람들 중에 제 일 잘하는 거 같다.”
“저런 사람은 이데아 랭커겠지?”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리고 있는 한 길가.
연승 중이라는 얘기에 혹한 현성이 귀를 기울이며 그곳으로 걸어갔다.
‘뭐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냥 거리였는 데 무슨 싸움이라도 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어느 정도 인파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서 자 길가에 있는 한 가게에 있는 기 계를 하나 볼 수 있었다.
두 개의 캡슐과도 같은 의자와 그 위에 앉아 있는 두 사람.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 나와 있는 한 스크린.
저번에 현아와 같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 했던 가상현실오락기.
이데아보다는 떨어져도 가상현실이 라 할 수 있는 상당히 퀄리티 있는 오락기 중 하나였다.
‘저 사람인가?’
현아와 현성이 싸웠을 때 현성이 한 것과 같은 사무라이 캐릭터.
카타나를 들고 빠른 검술로 승부를 보는 캐릭터를 고른 사람이 그대로 상대를 유린하며 싸우는 걸 볼 수 있었다.
‘잘하는데?’
얼핏 보더라도 상당히 잘하는 실 력.
거기에 상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자.
“아으! 진짜 세다.” 패배한 상대가 뚜껑이 열리고 자리 에서 나왔고, 구경꾼들은 다들 탄성 을 내뱉었다.
패배하긴 했어도 지금 나온 사람도 상당히 잘하긴 했다.
‘ 해볼까?’
호승지심.
흔히 승부욕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발동한 것이다.
무술학원에 가는 길이지만 실전무 술학원도 이 근방이지 않은가. 거기 다 정해진 시간도 없기에 지각도 없 었으니 한두 판 정도는 괜찮으리라.
그가 그렇게 오락기에 다가가자 사 람들은 길을 터주었고, 몇몇 이들은 환호까지 해주었다.
“오! 몸 좋은데?”
“와, 저 사람이라면 연승 깰 수 있 지 않을까?”
“야, 아무리 몸이 좋다고 해도 컨 트롤이 보장되어 있다곤 할 수 없 지. 어느 정도 도와주는 효과만 있 는 거니까.”
“그치.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긴 하지.” 돈을 투입하고 난 뒤 뚜껑이 내려 오는 걸 보며 현성이 고글을 차고 눈을 감았다.
그리곤 그가 고른 캐릭터는 다름 아닌 상대와 같은 사무라이 캐릭터.
화면을 구경하고 있던 구경꾼들은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 미러전이야?”
“오오, 자신 있다는 건가?”
구경꾼들의 말이 들리지 않은 현성 이었으나 들렸다고 한들 신경 쓸 현 성이 아니었다.
그가 지금 신경 쓰는 것이라곤 오 직 하나.
상대의 실력뿐이다.
‘얼마나 잘하려나.’
곧 제자들끼리의 대련이 있을 예정 이다.
그 전에 연습이라 생각해도 좋을 경기. 길게 본 것은 아니었으나 현 성이 본 상대의 실력이라면 아무리 현성이라도 만만하게 봐선 안 될 실 력이 틀림없었다.
더군다나 이데아로 치면 능력치와 스킬이 모두 같은 캐릭터와의 싸움.
이런 것은 또 처음 아닌가.
신나는 마음을 숨기며 게임이 시작 되길 기다리는 현성은 자신의 맞은 편에 선 상대를 봤다.
‘상대도 기대하는 모양이네.’
보통 같은 캐릭터를 한다는 건 그 만큼 자신이 있다는 걸 뜻한다.
현성이 자신과 같은 캐릭터를 고른 걸 보며 상대 또한 현성의 실력을 기대하고 있는 게 표정으로도 보였 다.
‘현아랑 했을 땐 기사 아수라처럼 했지만, 이번에는 내 스타일대로 간 다.’ 요즘 들어 일도류도 배우고 있었기 에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애당초 처음에는 현성 또한 두 손 으로 한 자루의 검만 쥐지 않았던 가.
그렇기에 어색해하지 않은 채로 현 성은 경기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 운을 봤다.
상대 또한 현성과 허공에서 시선이 겹쳤고, 시작이 알리는 벨이 울리자 마자 현성과 상대는 그대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그 순간 그간 뽑지 않았던 두 사 람의 검이 동시에 뽑혀져 나온다.
차캉! 쾌속이라 할 수 있는 발도.
그것이 서로에게 튀어나온 것을 보 며 상대도 현성도 다소 멈칫하며 서 로를 바라봤다.
묘하게 익숙한 느낌.
하나 그런 것에 시간을 팔릴 여유 따윈 둘에게 없었다.
빠르게 검을 휘두르며 상대를 압박 하려는 검술에 현성은 눈살을 찌푸 렸다.
‘묘하게 익숙한 검술이네.’
사방을 좁혀오면서 여러 궤도로 날 아드는 검격.
현성은 그것을 집중하며 보며 피하 고 검으로 흘리며 모든 공격을 피해 냈다.
어차피 능력치 자체는 똑같다.
그러기에 공격을 막으며 간간이 반 격을 하는 것으로 상대의 실력을 알 아볼 속셈이었으나 그것도 그른 모 양.
‘전력을 안 낸다 이거지?’
아까 상대를 압박하던 검술보다는 빨랐으나 그래도 치명적인 느낌은 없었다.
현성과 마찬가지로 실력을 숨기고 있는 모양.
그걸 느낀 현성은 피식 웃으며 뒤 로 물러난 순간 빠르게 검을 몸쪽으 로 당긴 뒤 빠르게 달려들며 상대를 향해 검을 찌르고 들었다.
빠르지만 가벼운 찌르기.
보통이라면 빠른 그 찌르기에 지레 겁을 먹고 공격을 막거나 튕겨내려 했을 터인데 상대는 달랐다.
팟!
옆으로 검을 피한 뒤 현성을 공격 하려 든다.
그걸 본 현성은 피식 웃으며 그대 로 검을 당겨 방어를 했고, 상대와 현성의 발이 교차하며 서로의 복부 를 강타했다.
퍼억!
당황하지 않고 먼저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현성.
상대는 현성의 빠른 판단에 다소 움찔거린 탓에 현성보다 반 박자 늦 어 졌다.
고작 반 박자에 불과한 반응이었으 나 그것으로 인한 차이는 극심했다.
슈육! 서걱! 스윽!
푸욱!
현성은 깊고 빠르게 두 번 상대를 베었고, 상대는 겨우 현성을 한 번 찔렀다.
두 번과 한 번.
어린아이가 보더라도 누가 유리한 지 알 수 있을 법한 차이.
보통이라면 이 패색에 포기하려 들 었겠지만, 상대는 달랐다.
‘싸울 줄 아는 사람이네.’
프로게이머들보다 훨씬 나았다.
그나마 아크 정도가 되어야 이 정 도 재미를 주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상당한 실력.
하나 현성이 보기에는 아크보다 나 은 거 같았다.
‘최대로 집중하는데도 아직 승부를 못 봤어.’
지금 남아 있는 체력은 현성이 60%, 상대가 20%.
현성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상대 또한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인지 상당히 당혹스러워하면서도 즐거운 표정.
뒤이어 이어진 필살기들을 현성은 마찬가지로 필살기로 대처하며 상대 의 필살기를 피했고, 그 뒤 이어진 현란한 컨트롤에 상대는 결국 패배 하고 말았다.
‘50%나 깎였다.’ 만일 아크와 이 오락기로 싸운다면 현성은 그래도 70% 이상 체력을 남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이 상 대는 무려 50%나 깎은 것이다.
‘진짜 잘하네.’
최대로 집중한 컨트롤이었음에도 이런 결과를 보이다니.
솔직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판 더 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상대가 나갔다는 메시지를 봤고, 현 성도 따라 나왔다.
현성이 그렇게 고글을 벗고 밖으로 나왔을 때 구경꾼들은 환호하고 있 었고, 상대는 이미 고글을 벗고 나 와 자리를 뜬 상태였다.
그나마 찾아보려 해도 환호를 하는 구경꾼들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탓에 지금 뒤따라가도 보진 못할 거 같았다.
거기다 따라가서 뭐라 말해야 하겠 는가. 그래도 현성은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으음, 좀 아쉬운데.’
친분을 쌓는 것까진 생각도 안 했 다. 그저 한 판 더 하고 싶었으나 바로 떠난 것을 보고 아쉬워했을 뿌
그래도 재미있는 한판이었기에 크 게 미련은 없었다.
‘다음에 또 있으면 해야겠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실전무술학원 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성이 사라진 그 오락기에 는 사람들도 흥미가 많이 떨어진 것 인지 사람들이 줄어 있었다. 그중 몇몇 사람들은 현성과 남자와의 게 임을 보고 불타올라 서로 게임을 하 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흐음, 제가 간 줄 알고 갔나 보군 요.” 아까 현성과 한판 한 남자가 오락 기 화면을 보며 턱을 쓸었다. 돈이 떨어져 돈을 뽑아 왔건만.
현성이 사라진 것이 안타까운지 혀 를 찼다.
“쯧, 아쉽네요. 그분 진짜 잘하시던 데. 프로게이머신가? 아니, 프로게 이머라도 좀 힘들 텐데. 아쉽네요.”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던 남자는 아 쉽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다시 중얼 거렸다.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뵐 수 있겠 죠? 하하, 그보다 사부님께서 늦었 다고 혼내기 전에 빨리 가봐야겠군 요.” 계속 혼자 중얼거리던 남자가 현성 이 향한 방향으로 가는 걸 보며 몇 몇 이들이 수군거렸다.
“혼잣말 오지게 하네.”
“내버려 둬, 우리 엄마가 아픈 사 람 욕하는 거 아니랬다.”
“푸흡. 크홈 인정한다.”
실력은 몰라도 혼잣말이 참 많은 수다스러운 남자였다.
“하핫, 화인 사부님이 건강하신지 모르겠네요. 이거 얼마 만에 찾아뵙 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