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173화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무리는 언제 나 위협적인 법이다.
이 기사들 또한 그랬다.
서걱! 석! 석!
마치 한 몸이 되어 움직이듯 나무 몬스터를 베어버리는 기사들.
썩어가는 죽음의 기사들이 봉인의 뿌리까지 찾아왔다.
마왕의 파편. 그것으로 주인의 힘 을 되찾기 위해.
하나 문제가 있었다.
〈이곳에 있는 원래 인원 때문에 아르젠타와 니르그가 움직였다.〉
<……>
씁쓸한 말이었다.
한때는 이곳을 지배하는 두 보스 따위는 무시해도 되었을 만큼 강하 던 기사단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처지이니 그 얼마나 씁쓸하겠 는가.
하나 단장은 개의치 않았다.
설령 그렇다 한들 주인을 위해 이 한 몸 바칠 준비가 되었으니.
하나 이 넓은 지역을 그들끼리만 탐방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기 위해서는 방법이 필요하다.
〈역병을 퍼뜨려라. 그리고 마왕의 파편을 발견하라!〉
〈예!〉
〈그리고 아르젠타와 니르그에게 들키지 않게 은신을 하도록.〉
〈예!〉
단장의 말에 고개를 숙여 명령을 듣는 기사단은 가슴에 손을 얹는다.
사실 기사가 은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은 단장이 다.
하나 약해진 지금은 어쩔 수 없음 을 안다.
<……이곳의 마왕의 파편을 노리 고 배신자의 후예가 올 수도 있다. 발견하면 즉시 사살하도록.〉
〈충!〉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는 기사들.
은신을 통해 모습을 감추며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단장 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나야, 그 맛있는 게 어디 있는 지 알 수 있어?”
마왕의 파편.
그러나 이 통로만 보더라도 거의 거대한 건물 로비보다 넓은 크기다.
던전 내부 자체가 방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곳에서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마왕의 파편을 찾는 것은 쉽지 않 다.
그래서 현성이 타나에게 물었으나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히잉, 그건 힘들다는 것입니당. 사 방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당.”
방해전파와 같은 느낌인가보다.
하기야 퀘스트가 그리 쉬웠으면 난 이도가 S+로 표기되는 일은 없었을 터.
아쉽긴 해도 예상했기에 별 타격은 없었다.
현성은 어느새 바꿔 쓴 푸른 가면 과 스테프를 쥐곤 타나를 보며 말했 다.
“혹시라도 냄새가 가까워진다든가 진하게 느껴지면 말해줘. 내 어깨에 서 잘 보다가 싸우면 뒤로 멀리 물 러나고. 알았지?”
“호고곡! 당연하다는 것입니당!”
다짐하듯 말하는 타나를 보며 현성 은 피식 웃곤 빠르게 고속비행을 통 해 통로를 날았다.
현성이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검은 가면을 착용하다 마도사 아수 라의 상징인 푸른 가면을 쓴 이유도 이것이다.
달리는 것도 고속이동에 비해 느리 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스테미너가 떨어지 기 때문에 차라리 무아를 이용해 회 복하는 MP를 생각해 고속이동을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거기다가 이런 넓은 던전의 경우 폭격을 이용한 대량 학살이 더욱 효 율적이기에 바꾼 것이다. 또 요즘 들어 너무 사냥꾼 아수라만 하는 것 아니냐는 댓글을 본 것도 한몫했다.
그러던 그때.
“끽긱기긱기기 r
기괴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몬스 터.
이곳이 나무 내부라는 것을 상기시 켜주듯 나무의 몸을 하고 있는 5m 나 되는 나무 거인이 현성을 향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걸 보는 현성이 어이없다는 듯 봤다.
“저게 일반 몬스터야?”
“호고곡, 넘나 크다는 것입니당.”
일반 몬스터치고 상당히 거구인 몬 스터.
예전에 봤던 거대 오크와 비슷한 체구.
거대 오크를 제외하곤 이런 일반 몬스터는 처음 봤기에 새삼스럽게 그 위용에 다소 멍하니 보고 있었 다.
그런 틈을 몬스터가 두고만 보고 있을 리는 없을 터. 거대한 나뭇가 지와도 같은 팔을 휘둘러 현성을 공 격하려 했다.
“블링크.”
단거리 공간이동으로 공격을 피한 후 현성은 재미있다는 듯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화염 마법 중 강력한 8성 마법 지옥의 염화를 발동했다.
검은 불꽃의 꽃이 놈의 심장 부분 에서 피어오르며 순식간에 폭발과 함께 사방을 휩싸이게 만드는 공격.
광범위 공격이 아닌 단일기로서 8 성 마법 중 최강의 딜을 자랑하는 만큼 MP 소모도 상당했으나 저런 몹을 한번에 잡을 수 있다면 그다지 아깝지 않았다.
그런데.
‘경험치가 안 들어왔다고?’
그걸 느낌과 동시에 싸해지는 감각 에 현성은 다시 한번 블링크를 사용 해 거리를 이동했다.
그리고 현성이 있던 자리를 덮쳐오 는 거대한 나무송곳들.
슈슈슈슉!
저 나무송곳들이 뭘 의미하는지는 몰라도 찔렸다간 그리 좋은 꼴은 보 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일반 몬스터가 확실한가 확인해 보 려 현성은 놈의 머리 위에 있는 이 름을 확인했다.
[역병에 걸린 뿌리거인]
‘역병에 걸린?’
어쩐지 몸의 색이 이상하다 생각하 긴 했다.
온 벽면은 모두 고동색에 가까운 느낌이라면 놈의 몸은 모두 회색을 띠고 있었다.
마치 자작나무의 색에서 조금 짙어 진 회색과도 같은 느낌.
근데 이름을 보니 역병에 걸린 뿌 리거인이란다.
무언가 네임드 몬스터라든가 특수 몬스터같은 느낌이랄까.
‘그냥 일반 몬스터는 아니었네.’
현성은 그렇게 판단하고 놈의 상태 를 살폈다.
사실 나무라는 속성은 불에 취약한 법.
그러나 놈은 지옥의 염화가 가진 기본적인 데미지만 입은 것처럼 보 였다. 절대 불에 약한 속성이 아니 라는 듯 말이다.
그걸 본 현성은 뒤로 물러나며 다 양한 마법들을 사용했다.
중력으로 놈을 묶어서 바람의 칼날 로 공격을 한다든가, 땅 계열 마법, 벼락, 등등 여러 가지를 사용해 본 결과 알아낼 수 있었다.
‘마법 면역이나 저항은 아니고, 속 성을 타지 않네.’
모든 마법이 모두 약하지도 강하지 도 않는 모습을 보인다.
즉 무속성이라는 말이다.
‘난감하네.’ 현성이 마도사 아수라를 꺼낸 것도 이런 던전에서는 불에 관련된 마법 이 가장 강력하기에 꺼낸 것이었는 데 이래 봐야 MP만 낭비하고 차라 리 사냥꾼 아수라가 나을 법하지 않 은가.
하지만
‘그동안 너무 사냥꾼 아수라만 애 용하긴 했지.’
MP가 많이 사용되긴 하지만 전투 자체가 시원시원한 임팩트가 있는 마도사 아수라를 찾는 이들도 상당 히 많았다.
이제 현성은 그저 게임을 즐기기만 하는 유저가 아니지 않은가.
영상을 찍는 크리에이터기도 하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효율이 떨어지는 걸 고집할 이유도 없지. 그래서 이 런 걸 미리 준비한 거기도 흐}지, 후 후.’
장난기 가득한 미소.
현성은 그대로 푸른 가면을 벗곤, 새로운 가면과 다른 무언가를 인벤 토리에서 꺼냈다.
그 순간 뿌리거인이 현성을 향해 입을 벌려 나뭇잎들을 쏘아냈다.
“끼이긱긱이직!”
솨샤샤샤샤샤샤샥 !
수많은 나뭇잎들이 칼날처럼 현성 을 덮치는 순간 현성은 다시 블링크 로 그 공격을 피했다.
가면을 바꿔 썼으면서도 블링크라 니.
그리고 다시 나타난 현성은 왼손에 는 스테프를, 오른손에는 싱클레어 를 쥐고 뿌리거인을 노려봤다.
반은 푸른색이 덮여 있고, 또 다른 반은 검은색이 덮여 있는 가면을 쓴 채로.
‘마검사 아수라라고 해야 하나 이 건?’
마도사 아수라와 사냥꾼 아수라를 섞을 생각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다.
컨셉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냥에 있어서 효율은 현성에게 있 어서는 떼어 놓을 수가 없는 것이었 으니.
그러던 중 생각한 것이 바로 이것.
두 가면을 섞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효율도 컨셉도 포기하 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겠는가.
다소 유치한 생각이었으나 현성은
마음에 들었다.
“끼기긱긱기?” 아까와는 조금 분위기가 다른 모습 에 어리둥절한 놈을 보며 현성은 강 력한 중력으로 놈을 묶어놓았다.
쿠궁!
세상 전체가 무거워지듯 압박이 심 해지자 놈의 반항도 거세졌다.
“끼기거어거걱억!”
현성은 그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그대로 자력이동과 천근추로 인해 자체적인 무게를 늘림과 동시에 현 성은 싱클레어의 고유 효과 바람의 검을 발동시켰다.
‘절단, 월검낙화.’
그리고 카론의 검술 절단.
거기다 빼놓을 수 없는 월검낙화.
푸른 달빛의 검기가 검에 물들었 고, 현성은 하나의 유성처처럼 공중 에서 놈에게 떨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유성이라 할 수 있는 무 게와 힘이 담긴 검을 현성이 그대로 휘둘렀다.
콰드드드드드득!
깔끔하게 베이는 소리가 아닌 여러 가지를 베는 듯 수십 개의 나무를 베는 소리가 들려온다. 놈은 중력으로 인해 공격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건만 몸에 있는 무수한 가지들을 움직여 최대한 방 어를 한 모양이다.
‘칫
천근추를 해제한 현성이 뒤로 물러 났을 때 MP의 소모를 신경 쓰던 터라 중력이 풀리고 말았고, 그 틈 을 뿌리거인이 노리고 들어왔다.
쿠구웅!
강하게 발을 구르는 뿌리거인.
그리고 이름처럼 발에서 무수한 뿌 리들이 튀어나와 바닥을 뚫고 그대 로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무수한 송곳과도 같은 뿌리들이 덮 쳐오는 광경에 현성은 그대로 스테 프를 휘둘러 마탄사격을 발동했다.
그렇게 나타난 마탄사격의 수는 어 마어마했다.
10의 MP를 소모하여 5발을 만들 수 있는 마탄사격을 이제는 40의 MP를 만들고 쿨타임과 딜레이 없 이 5발씩 만들 수 있다.
그걸 현성은 한 번에 1000이 넘는 마탄을 만들어내어 모든 뿌리들을 마탄사격으로 요격했다.
퍼 퍼퍼 퍼 퍼 퍼 퍼 퍼퍼 펑 !
마치 SF영화에서나 볼법한 우주전 쟁을 보든 듯한 공방.
현성은 그런 와중에 검에 담긴 달 빛의 검기와 바람의 검 효과로 뿌리 들을 쳐내며 놈에게 달려들고 있었 다.
놈도 뿌리로는 안 될 거 같은지 다시 많은 가지들을 뭉쳐 거대한 주 먹을 만들어 그대로 현성에게 내려 찍었다.
쿠궁!
적중한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다시 한번 세상이 무거워졌다.
“기기긱직?”
의문을 가지고 뿌리거인이 뒤를 돌 아보려는 순간 세상이 검게 물들었 고, 그 틈을 향해 검은 벼락이 내려 쳤고, 그와 동시에 놈의 앞에 나타 난 현성이 검을 휘둘렀다.
서걱.
타나노스의 야상곡에 의해 아무런 말을 남기지 못한 놈이 그대로 목이 떨어지자 마치 버섯의 포자와 같이 잿빛 가루가 사방에 퍼지는 것을 봤 다.
평소 몬스터를 죽였던 것과는 다른 모션에 현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병에 걸린 몬스터는 이런 식으 로 죽는 건가.’
하나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생각해봐야 지금 알 수 있는 것이 없지 않은가.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네.’
어느 정도 가볍게 봤으나 역시 250대의 몬스터다운 위용이었다.
아무리 현성이라지만 레벨 70 정 도 차이 나는 몬스터는 어쩔 수 없 는 모양.
이러다가 몬스터가 때로 몰려오기 라도 하면 난감하기 짝이 없다. 나름 긴장하지 않으면 진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현성이 이것저것을 생각했다.
‘적어도 둘 이상이면 바로 미티어 쏠 수 있게 준비해야겠어.’
현성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 나.
“주인님! 위험하다는 것입니당!”
타나가 외쳤고, 그와 동시에 은신 이 풀린 3명이 현성에게 달려들었 다.
하나는 왼쪽, 다른 하나는 오른쪽, 마지막으로 정면에서 덤벼드는 기사 들. 느닷없이 나타난 놈들을 보며 깜짝 놀란 현성이 두 눈을 부릅뜨자 세상이 무거워지고 어두워졌다.
그래비티 미티어를 생각한 것과 동 시에 무영창의 효과로 바로 발동하 고 만 것이다. 운석이 소환되자마자 타나는 역소환이 되어 펫 전용 공간 으로 사라졌고, 현성과 세 기사는 그대로 머리 위에 떨어지는 운석을 바라봤다.
거대한 운석이 통로 내부를 가득 채웠고, 그와 동시에 현성과 세 명 의 기사들을 휩쓸었다.
강렬한 충격이 통로를 덮쳤고, 그 파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현성만이 허공에 나타나 중얼거렸다.
“와씨 깜짝이야! 너무 놀라서 그래 비티 미티어를 써버렸네.”
새삼 무영창의 힘을 깨달은 현성이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