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184화
벨도른 수도에 위치한 골목길.
유저들은 잘 모르는 위치에 있는 작은 카페에 한 사내가 앉아 있었 다.
종업원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남자를 보고 있었다.
벨도른 수도에서 오래 살았던 NPC들조차 이곳을 잘 알지 못한다.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 길드의 위치 이자, 블랙 스파이 길드의 주력이 되는 곳.
NPC들로 이뤄진 이곳의 위치는 같은 블랙 연합의 이들이라 한들 알 수 없었는데 어떻게 이곳에 찾아온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때.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왔는지 물어 봐도 될까?”
앙칼진 목소리의 여인.
이 정보 길드의 주인이자 블랙 스 파이 길드의 길드장 화린이었다.
사내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런 반 응을 하지 않고 그저 커피의 향을 음미하고 있었다.
모습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진 않았 으나 화린은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지금 도움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화린 이었으니.
‘분위기가 달라졌네.’
예전 제라블의 밑에 있을 땐 성급 한 이미지가 강했다.
넘쳐나는 자신감으로 인한 것이었 다.
실력에 자신이 있으니 다른 것을 안중에 둘 필요가 없었고,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하면 모든 이뤄졌으 니.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겠지만, 적 어도 화린 앞에 있는 남자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었다.
오만하고, 안하무인인.
그러나 거의 한 달 만에 다시 본 이 남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역시 심경에 큰 변화가 있으면 사 람이 달라지는 모양이네? 루시퍼.”
화린의 말에 루시퍼는 입꼬리를 가 볍게 올리며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말이지.”
“흐응?”
예전에는 화린이나 다른 블랙 연합 의 길드장들에게 벌벌 기었던 루시 퍼다.
아무리 루시퍼가 돈을 잘 번다한들 재벌가들의 자제들 앞에선 넙죽 기 었어야 하니까. 그런데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확실히 변하긴 매우 많이 변했다.
그걸 인지한 화린이 속으로 인상을 구겼다.
‘협상하긴 쉽지 않겠어.’
저런 타입의 사람과 협상은 늘 쉽 지 않은 법.
상대가 어떤 걸 원하는지, 어떤 것 에 약점이 있는지, 또 어떤 패를 들 고 있는지를 알아야 협상에서 유리 해진다.
하나 지금 화린은 그걸 알지 못한 다.
하물며 블랙 연합의 자세한 내막을 아는 루시퍼이지 않은가.
이 협상은 화린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걸 잘 이끌어야겠 지?’
미소를 지으며 루시퍼를 바라보자 루시퍼 또한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 었다.
“아수라에 대해 알아보고 있더군.”
“흐응~ 그건 어떻게 알았을까?” 여유로운 척, 그게 뭐 어쨌다는 듯 이 말하고 있긴 했으나 화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비밀리에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중 이었다.
패치가 끝나고 접속을 하자마자 수 소문을 시작했으니 불과 몇 시간 안 되는 짧은 시간. 그 안에 자신이 아 수라를 알아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 렸다?
위험하다.
본능적으로 그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 카페 위치는 또 어떻게 안 것일까.
다른 블랙 연합의 길드장조차 모르 는 이곳을 말이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씩 조합해 보 자 화린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결 론이 내려졌다.
“새로운 스폰서는 어때? 자금력이 빵빵한가 보지?”
강한 척을 하며 말했으나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전문적으로 연기를 하는 이도 아니 거니와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기에 감정을 쉽게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제라블을 버릴 정도로 강력한 스 폰이라는 건데……
제라블에게 모든 위약금을 넘기고 난 뒤 홀연히 떠난 루시퍼이지 않은 가.
거기다 블랙 연합의 자금 규모를 잘 알고 있는 루시퍼다.
그런데도 블랙 연합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면 블랙 연합보다 더 자 금력이 강력한 곳이라는 건 당연하 다.
그 모습에 화린은 초조해졌는지 루 시퍼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거래를 하자는 게 어떤 건 데‘?”
“이제 좀 말이 통하는군.”
“원하는 게 뭔데?”
그렇게 묻는 순간.
아까 화린과 얘기를 했던 간부가 긴급하게 들어와 고개를 숙이며 화 린에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중요한 사항이라.”
그렇게 말하며 간부가 화린에게 쪽 지 하나를 건넸고, 그대로 인사를 하며 나갔다.
이런 상황에서 쪽지? 무슨 긴박한 일이라서 저러는 것일 까.
하며 루시퍼를 보자 루시퍼는 마치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쪽지 를 보라고 손짓했다.
그렇게 열어본 쪽지엔
[라이너 쪽 길드가 돌아섰습니다.]
그 쪽지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루시퍼를 봤다.
그런 화린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 었다.
“우리 쪽으로 와라.”
한때 자신이 들었던 말을 화린에게 건넸다.
떨리는 눈동자.
저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니 화린은 이상하다 생각했다.
자신이 이렇게 떨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니, 정확히는 루시퍼 의 뒤에 있는 게 누구기에 저렇게 나오는 것일까.
그렇게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때.
루시퍼가 입을 열어 말했다.
“한국 서버에서 놀기에는 좀 아쉽 지 않아?”
“??????뭐?”
“말 그대로다.”
그 말에 화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한국의 재벌 중 이데아를 하는 이 들은 상당히 많다.
하나 그들 중 랭커라며 유명인사가 된 이들은 한 손에 꼽는다. 그러나 외국은 다르다.
자금력의 규모 자체가 다른 이들이 한국 서버보다 넘쳐났고, 외국 서버 에선 엄청난 자금력으로 움직이는 이들 또한 엄청나다고 한다.
이제 하나의 산업이 되어버린 이데 아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
그것들을 떠올린 화린이 루시퍼를 멍하니 보자 루시퍼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레벨은 낮 지만 인지도가 큰 아수라를 잡아야 하겠지. 거기다 한국 서버 랭커들이 나, 비공식 랭커들도 아수라를 싫어 하는 이들이 꽤 많더군. 어떤가? 우 리 길드로 들어오겠나? 자금은 걱정 할 필요 없다.”
차라랑.
루시퍼가 그렇게 말하며 인벤토리 에서 꺼낸 큰 주머니.
소리를 들어보니 돈 주머니다.
그걸 본 화린이 눈살을 찌푸리며 루시퍼를 봤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루시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갯짓을 했다.
얼른 열어보라는 듯이.
‘도대체 어디 길래……
그런 생각을 하며 열어보자 그곳에 담긴 자금을 보곤 잠시 멍해졌다.
마법의 주머니.
용량 제한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 방한 그 주머니에 가득 들어있는 금 화들.
하나당 100골드짜리 동전이 무려 10만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 이, 이, 이게 도대체?”
100골드에 현재 시세가 조금 높아 져 1만 2천 원쯤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100골드짜리가 50만 개.
현금으로 친다면 60억에 달하는 금액에 화린조차 멍하니 그걸 봤다.
아무리 재벌이라 한들 이런 자금을 쉽게 운용할 순 없는 노릇. 거기다 돈으로 이렇게 뭉개진다는 것은 처음 느껴본 화린에겐 더욱 큰 충격이었다. 그때 루시퍼는 방긋 웃 으며 입을 열었다.
“이건 우리 길드에 들어올 때 주는 비용이라 생각하면 될 거다.”
화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늘 힘을 휘둘러오기만 한 화린이 다. 자금을 휘두르며 갑질도 서슴지 않게 해오던 그녀가 지금 자금의 앞 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자금을 마치 조카 용돈 주듯 뿌리는 이들은 얼마나 돈이 많기에.
하나 그녀 역시 자존심은 남아 있
었다.
“……어느 나라지?”
“미국이다.”
화린은 조용히 눈을 감으며 말했 다.
“우리가 뭘 하면 되지?
그녀의 자존심은 루시퍼의 말을 듣 고 깨지고 말았다.
넘어온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짓는 루시퍼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마의 모습과도 같았다.
“우선 아수라에 대한 약점은 우리 가 알고 있으니, 그의 위치를 알아 내. 그거면 된다.”
한때 자신의 밑에서 벌벌 기던 루 시퍼에게 명령을 듣는다 하여 수치 스럽지 않았다.
이게 세상의 이치라는 것을 잘 알 고 있었으니.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그 사실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는 화린이었기에 생긋 웃으며 말할 수 있었다.
“응, 알겠어.”
“그럼, 나는 이만.” 그렇게 싱긋 웃으며 루시퍼가 자리 에서 일어났다.
60억 원치의 돈주머니는 그대로 두고.
그렇게 루시퍼가 가게 밖으로 나가 자 아까까지 싱긋 웃고만 있던 화린 이 채찍을 꺼내 사방으로 휘둘렀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악!”
얼마든 굴복은 할 수 있다.
하나 그 깨진 자존심이 상처가 되 지 않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카페를 난장판을 피우고 나 서야 진정한 화린이 거칠게 숨을 몰 아쉬며 외쳤다.
“당장! 아수라 위치 알아내!”
“예.” 어깨까지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는 화린은 비참하다는 듯 눈을 감았다.
하나 미국의 자금.
그것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 수모 는 괜찮았다.
화린은 자신의 앞에 테이블에 놓인 돈주머니를 보며 슬며시 눈을 감았 다.
‘블랙 연합을 버릴 때가 왔네.’
블랙 연합이 아닌 굳이 이곳으로 와 전했다는 건 루시퍼가 전하는 말 은 이미 끝났다는 거다. 다른 블랙 연합은 필요 없다는 것을.
화린이 진정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간부를 불렀다.
“……잘 위장할 수 있지?”
“예, 맡겨만 주십시오.”
“응, 잘 부탁할게.”
한편 암중 세력의 표적이 된 현성 은 콧노래를 부르며 방긋 웃는 얼굴 로 사냥터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옆에 같이 절로 신나 있는 타나.
“룰루루루.”
“우갸갸쟈!”
둘 다 완전 신났다는 듯 중얼거리 던 중 현성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몬스터를 보며 빵긋 웃었다.
그리곤 다소 투박해 보이는 나무 활을 꺼냈다.
하나 그럼에도 활은 빛이라도 나듯 고급스러워 보였다.
“크워어어어억!”
풍성한 털과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 는 고릴라와 같은 몬스터를 보며 현 성은 아무것도 없는 활의 시위를 당 겼다.
그러자.
스스스슥 태양과도 같은 화살이 생겨났고, 현성은 거기에 싱긋 웃으며 마법을 담았다.
현성이 담은 마법은 중력 마법의 최고위라 할 수 있는 블랙다운.
한 점에 중력을 극대화 시키는 아 주 강력한 중력마법.
태양과도 같이 찬란하게 빛나던 노 란 화살은 어느새 검게 물들었고, 그만큼 화살이 무거워지는 걸 느꼈 다.
하나 현성은 그것을 담고 아주 가 벼운 마음으로 시위를 놓았다.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
휘이이이이익!
몬스터는 그것을 보고 피하려 했 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이 무거워지더 니 움직이기 힘들어졌다.
“크워 억?” 무슨 일인지 이해가 안 되는 그 순간.
놈이 날아오는 화살을 팔로 막아섰 다.
그러나.
강력한 중력이 놈의 팔뿐만이 아닌 어깨의 절반을 집어삼켰고, 현성의 눈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치명적인 일격! 상대가 10초간 상 태이상 기절에 빠집니다.]
[타나노스의 악몽이 발동했습니다.]
[붉은고릴라 웨이턴이 상태이상 악 몽에 걸렸습니다. 5초간 환각과 고 통을 느낍니다.]
단 일격에 팔을 날리는 위력.
그걸 보며 현성이 외쳤다.
“크흐! 취한다!”
모든 봉인이 풀려 있어, 강력한 신 기.
현성은 이번에 얻은 디아나를 보며 방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거, 신궁 아수라랑, 격투가 아수 라도 추가되겠는걸?” 흐흐 웃으며 디아나를 봤고, 드디 어 미뤄두었던, 보스 레이드를 빠르 게 진행하는 보스 레이스 컨텐츠를 할 때가 왔다며 옆에서 춤을 추며 신나 하는 타나를 보며 말했다.
“타나야, 오늘 포식하자!”
“호고곡! 찬성인 것입니당!”
암중 세력이 알지 못하는 신기의 등장.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