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188화
던전들마다 가지각색의 특징이 있 기 마련이다.
그중에서도 비슷한 공통점을 꼽는 다면 던전이 깊어질수록 몬스터들이 강해진다는 것이 있다.
던전 초입에서 나온 몬스터와 같은 종이라고 할지라도 레벨이 1~5 이 상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할수록 더 깊은 곳에 위치해 있 다는 것은 유저 모두가 아는 사실일 터. 현성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에 이상함을 눈치챘다.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아무리 아수라가 왔다고 한들 보스 방에 거의 도달한 이곳에 대기하고 있는 인원이 상당했다. 그의 사냥이 라도 보고 싶은 것일까?
하기야 이곳까지 오면서도 여러 사 람들을 보지 않았는가.
거기다 던전 초입부터 많은 이들을 봤으니 그저 보스 레이드를 하는 이 들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 다.
‘내 행동 하나하나를 주시하는 느 낌이야. 뭘 노리고 있는 거지?’
아직까지는 그저 지켜보기만 한다.
그래서 현성은 저들이 무슨 행동을 취하려 하기까지 그저 사냥을 했다.
그 덕에 평소보다 집중력이 떨어져 서 그런 것인지 현성의 생각보다 속 도가 오르지 않았으나 데스에겐 그 게 천만다행이었다.
지금도 저리 숨을 헐떡이며 죽으려 하고 있었으니.
“하악, 하악, 하악.”
쇳소리까지 들려오는 거친 숨소리. 게임 안에서 저리 지칠 수도 있다 는 것을 알려주는 참 좋은 친구였 다.
그러나 현성은 그런 데스를 보며 가면으로 가려진 얼굴에 미소를 그 린 채 입을 열었다.
“데스 님? 좀 쉬었다 갈까요? 힘 들어 보이시는데.”
“으음? 그럴 리가. 그렇게 보였다 면 내 연기에 속은 것뿐이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에 떨리는 목소리.
누가 듣더라도 지친 사람의 목소리 였으나 고집을 피우는 것을 봐라. 현성이 먼저 쉬자고 하지 않는 이 상 계속 저리 고집을 피울 것이 뻔 해 보였다.
그러니 이곳까지 오면서 단 한 번 도 쉬지 않고 사냥을 하며 온 것 아니겠는가.
다른 이들이 본다면 경악할 법한 일이었으나 현성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그래서 데스도 거기에 지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고.
“일단 거의 보스방이 코앞이니 일 단 쉬었다 가시죠.” 현성은 그렇게 말을 하며 주변에 앉았고, 데스도 그 말에 두 눈을 똥 그랗게 뜨며 입을 열었다.
“완전 좋…… 아니, 아수라 그대가 그렇다면 알겠다. 그렇게 하도록 하 지.”
“하하, 네네. 그러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자 그제야 편히 자리에 앉아 쉬는 데스.
하기야 이곳까지 오는 데 게임 시 간으로 무려 10시간 가까이 되었으 니 지칠 법도 했다.
거기다 목소리나 눈매를 보면 꽤 어려 보이지 않던가.
‘어차피 다 왔으니까 슬슬 페이스 를 낮추자.’ 이런 구간은 최대한 빠르게 넘어가 는 게 좋았기에 현성이 스킵하다시 피 빠르게 넘어온 것이지만, 여기까 지 온 이상 그럴 이유는 사실상 없 어 졌다.
거기다 현성도 사람이지 않은가.
이곳까지 오면서 현성도 알게 모르 게 쌓여온 피로를 푸는 게 좋았다.
‘100인 이상 들어가서 잡는 보스인 데 우리는 고작 둘이다. 휴식을 취 하는 건 필수적이지.’
물론 험난한 일을 한 뒤 휴식을 아무리 취해도 피로가 풀리진 않았 으나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 않았기 에 과감하게 나선 것 아니겠는가.
데스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웬만하 면 보스방 앞에서도 쉴 생각이었다.
거기다 다른 길드들도 많은 거 같 으니 기다리기도 해야겠지만.
현성과 데스가 그렇게 자리에 앉아 쉬고 있었을 때. 그걸 지켜보는 몇 몇의 인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어디 로인가로 향했다.
이윽고 현성 일행이 절대 보일 수 없는 곳으로 이동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절대 무리다.”
“저런 괴물을 어떻게 잡아.”
“딜이며 회피, 움직임까지 절대 못 해.”
“거기다 봤어? 스킬도 최소한으로 사용하더라. 저건 일반 상태에서 잡 는 건 불가능해.”
제각기 자신들의 생각을 말했으나 모두 의견이 같았다.
그리고 리더로 보이는 자가 입을 열었다.
“보스방 앞에서 대기 중인 간부님 에게 보고를 올린다.”
“그게 좋지.”
“작전이 변경되겠네.”
“지금 봤을 때는 놈이 레이드를 끝 낸 뒤에 치는 게 가장 효과적이겠 지. 그때가 가장 방심했을 때고 지 쳤을 때니까.”
“아무리 괴물이라도 괴물을 잡은 뒤에 지칠 수밖에 없는 법이지.”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리 더로 보이는 자가 대표로 간부에게 연락을 걸었다.
그리고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 동굴 천장에서 은신과도 같은 효과 를 쓰고 있는 주먹만 한 존재가 그 말을 듣곤 한마디 했다.
“호고곡, 함정이라는 것입니당.” 아주 작은 소리였던지라 아무도 듣 지 못한 이들.
그 주먹만 한 존재는 얼른 자신의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현성이 그 소 식을 듣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유저들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 그것도 랭킹 3위인 길드 아로민에서 말이다.
‘보스 레이드 후에 나를 잡겠다? 어디 한 번 해보라고 해.’
자신감 넘치는 생각을 하며 현성은 데스를 보며 말했다.
“슬슬 일어납시다.”
“ 예?”
너무 놀란 나머지 컨셉이 풀려 존 대를 하는 데스.
그런 데스를 보며 현성이 입을 열 었다.
“쉬려면 보스방 앞에서 쉽시다. 제 가 보기에는 다른 길드 분들도 레이 드를 준비하시고 계신 거 같은데 빨 리 가서 줄이라도 서서 휴식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하하, 내가 말하려 했던 의견과 아주 똑같군. 역시 우린 친구라니 까! 하하하하!” 말하는 데스의 눈동자가 상당히 슬 퍼 보였으나 현성은 기분 탓이겠거 니 넘기며 무기를 쥐었다. 그런 현 성을 따라 두 주먹에 기운을 담은 데스가 고개를 푹 숙이며 생각했다.
‘진짜 힘들다.’
왜 아수라가 강할 수 있는지 깨달 을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미친 듯이 사냥을 하니 능 력치도 남들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 을 터. 거기다 직업 등급마저 높다 고 판단되니. 그 효과가 얼마나 나 겠는가.
역시 천재라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는 걸 느끼는 데스였다.
고개를 절로 저었다.
고작 이런 걸로 지칠 순 없다. 그 리 생각하면서 현성보다 앞서 나가 며 외쳤다.
“나! 최강의 방패 데스가 선봉에 서도록 하지!”
최강의 방패치고 이름이 상당히 불 길하긴 했으나 실력은 이미 잘 알고 있으니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고, 다 시 사냥이 시작되었다.
보스방까지 남은 거리는 앞으로 얼 마 남지 않았다.
보고를 들은 간부는 자신이 들은 정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고개를 저었다.
하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상대는 아수라다.’
상당히 긴장을 한 모습.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아로민 길드 가 노리는 것은 세계적인 플레이어 라 할 수 있는 자다. 그런 자를 잡 는데 일반 유저를 잡는다 생각해선 결코 안 된다.
이미 대기를 하고 있던 인원들을 모두 대기로 돌려놓았고, 혹시 몰라 섭외해 놓은 다른 길드들에게도 알 려두었다.
아수라를 잡는 때는 그가 레이드를 끝내고 난 뒤에 할 것이라고 말이 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아수라 가 레이드에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 을 1도 하지 않았다. 고작 둘이라는 소리를 들었음에도.
아수라의 이름은 그만한 가치를 가 지고 있었으니.
‘온다.’
누군가 오는 기척을 듣자 간부는 긴장을 한 채 동굴 입구를 보고 있 었다.
그리고 얼마 후.
하얀 가면을 쓴 남자와 두건을 두 른 남자가 오는 것을 봤다.
‘아수라다.’
본인을 직접 보고 나니 더 긴장이 되는 것인지 간부의 표정이 굳어졌 으나 이내 금세 풀었다. 이렇게 티 를 낼 순 없지 않은가. 그러곤 아수라를 보며 매우 화색 하는 표정으로 아수라를 보며 반겨 주었다.
“오오! 아수라 님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다소 경계 어린 목소리에 아로민 길드 간부가 정말 반갑다는 듯 웃으 며 말했다.
“하하하, 저는 부족합니다만, 과분 하게도 아로민 길드 간부를 맡고 있 는 폴란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아수라라고 합니다.”
현성도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마찬가지로 폴란 또한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고는 껄껄 웃으며 아수라 를 흘낏 살펴보면서 물었다.
“설마 레이드를 하시려고 하십니 까?”
“예, 저랑 이분이랑 둘이서 하려고 합니다.”
“와…… 진짜 대단하십니다.”
폴란은 어쭙잖게 자신의 공격대에 들어오길 권하지 않았다.
통하지 않으리란 것도 알고 있었으 며 무엇보다 그랬다간 레이드 과정 중 전력이 잃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최상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인 아 수라를 잡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는 가.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 괜히 걸리면 곤욕을 치를 수도 있다.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준비를 했다.
아주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 대부 분의 아로민 길드원들은 레이드를 준비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소모품들을 배분하고, 브리핑을 하 면서 어떤 식의 빌드를 짤지 대화를 나누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면 그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준비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 을
“아직 준비가 덜 끝나신 모양이시 네요?”
현성의 질문에 폴란은 인상을 살짝 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정말 기분 나빠 보이는 표 정으로 입을 열었다.
“늘 준비를 미리 마쳤는데 도중에 문제가 생겨서 말입니다. 그래서 아 직까지 준비할 게 많습니다. 혹시 아수라 님만 괜찮으시다면, 먼저 도 전하셔도 됩니다.”
“오, 그래도 됩니까?”
“물론이죠. 저희뿐만이 아니라 다 른 길드분들도 저희랑 같이 레이드 를 하기 위해 모이신 분들이니 상관 없습니다. 좀 휴식을 하시고 들어가 셔도 충분하실 거 같습니다.”
“하기야, 다른 보스랑 다르게 퀸 키메라 타튤은 바로 리젠 되는 특이 한 보스이니까요.”
“그래서 참 좋죠. 물론 깬 인원들 은 일주일간 보스방에 제 입장이 불 가능하다는 게 있긴 하지만 그게 어 디 입니까.”
자연스러운 대화.
그 대화가 끝난 후 현성은 고개를 깊게 숙이며 감사를 표했고, 아로민 길드 간부 폴란은 그걸 받고는 정중 히 인사를 했다.
그렇게 현성이 데스를 데리고 보스 방 한편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을 보 며 다소 안도했다.
들키지 않았다고.
그러나 전혀 아니었다.
‘알고 보니까 훤히 보이네.’
몇몇 길드원들은 긴장한 채 무시무 시한 눈으로 현성을 보고 있다.
그리고 다른 길드원들도 현성을 곁 눈질로 행동을 살피고 있었다.
눈치가 나쁘더라도 그들이 현성 일 행을 신경 쓴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데스는 너무 지친 나머지 휴식을 취하고 있 던 터라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 지만.
‘대략 1시간 후에 입장하면 되겠 어.’
아무리 지쳤더라도, 1시간 후면 충 분히 회복되었으리라.
현성은 우선 저들의 반응을 살핀 후 지금 공격하지 않으리란 확신을 얻었다.
아까 타나가 알려준 정보대로 레이 드가 끝난 뒤를 노려보려 하는 모 양.
그걸 보며 현성이 아주 사악해 보 이는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 렸다.
‘내가 그리 만만해 보였다면 좀 놀 아줘야겠네. 보스를 잡고 난 뒤에 내가 지쳤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는 지 이해할 수가 없구먼.’
속으로 중얼거린 현성은 눈을 감고 퀸 키메라 타튤의 패턴을 떠올리며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해 온 빌드라면 충분히 기록을 깨고도 남을 것이라고.
100명이서도 1시간 이내로 줄이지 못한 걸 최초로 클리어하고 단 50 명이서 38분이라는 기록을 남긴 신 화 길드의 기록.
그것을 절반 이하로 단축시키기 위 한 빌드. 충분히 통하리라 생각을 하며 현성은 눈을 감았다.
‘깰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최면을 걸다시피 하 고 있는 중에 그 옆에서 쉬고 있던 데스도 생각했다.
‘죽을 거 같다.’ 괜히 허세를 부려서 이 고생을 한 다며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도 피곤한 사냥이었다는 걸 인지하며 더욱 격렬하게 휴식을 취 했다. 아수라라면 이 휴식조차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며 레 이드를 준비하는 두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