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도 랭커 193화
차 안은 상당히 조용했다.
더위를 달래기 위해 튼 에어컨 소 리만 고요히 울리고 있었다.
쉬이이이이잉-!
차가운 에어컨 바람과도 같은 분위 기.
그 분위기의 중심은 다름 아닌 현 성이었다.
그리고 운전석과 조수석에 탄 재환 과 현아가 현성의 눈치를 보고 있었 이 더운 여름날 밖에서 차를 한참 동안 찾아다녔다. 그리고 진짜 차가 없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휴게소 안 내 데스크에서 전화를 빌려 연락을 해 겨우 차에 다시 탈 수 있었다.
다만 그 시간이 무려 1시간이나 걸렸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쩌지?’
‘진짜 화난 거 같죠?’
둘 다 현성의 눈치를 보며 눈짓을 보내는 둘.
현성은 그런 둘을 보며 중얼거렸 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사람 하 나가 없는지도 모르고 운전을 했을 까?”
역시 아직까지 삐져 있다.
그걸 보며 고개를 젓는 재환.
저 상태에서 돌리려면 무언가 흥미 를 끌 만한 것을 줘야 하는데 지금 마땅한 것이 없었다. 현아도 마찬가 지였는지 고개를 젓는다.
그런 둘을 보며 피식 웃는 현성이 중얼거렸다.
“아까 호두과자만 먹어서 그런지 속이 허하네.”
분위기를 좀 바꿔보려는 현성의 말 에 재환과 현아가 환히 웃으며 고개 를 끄덕였다.
자신들이었어도 상당히 화가 났을 법한 상황이다.
가만히 있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무더위에 이런 일을 겪는다는 건 상 상도 하기 싫은 일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금세 화를 푼 현성 에게 감사하며 큰소리로 답했다.
“좋지!”
“안 그래도 점심쯤 안동 근처로 가 는데 거기서 밥 먹고 갈까?” 재환의 말에 남매가 동시에 반응했 다.
“ 안동?”
“찜닭?”
안동하면 찜닭이고, 찜닭하면 안동 아니겠는가.
단짠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안동 찜닭. 그것도 본고장인 안동에서 먹 을 수 있다니. 현아나 현성이 그것 을 거부할 리가 있겠는가.
둘 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 이자 재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안동에서 고래불해수욕장 까지 대략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사 이 거리니까 좀 자둬. 안 그래도 안 동까지 가려면 한참 멀었어.”
“으음, 알겠다.”
“저는 좀 더 있다가요. 오빠가 자 면 재환 오빠 혼자 심심할 테니까 제가 말동무라도 되어드릴게요.”
그 말에 현성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현아를 봤다.
그러나 무슨 문제가 있냐는 듯 현 성을 보는 현아.
그걸 보며 긴가민가하긴 했으나 현 성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는 자고 있을 테니까 다 오면 깨워줘.”
처음에는 반쯤 장난으로 재환에게 현아를 넘볼 생각 말라는 듯 말하긴 했으나 사실은 크게 연연하지 않고 있었다.
만일 현아가 재환에게 마음이 생긴 다면 오히려 응원을 하고 싶을 정도 였으니.
친구라서 하는 말이 아닌 재환이 진짜 진국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더 욱 그랬다. 오히려 현아가 아깝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재환이 진국이라 는 건 사실이었으니.
그렇게 현성이 다시 침대에 누웠
또 멀미가 심했던 것인지 금세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걸 확인한 현아가 재환을 보며 물었다.
“재환 오빠 그럼 아까 얘기했던 거 진짜 말할 거예요?”
“으음, 고민 중이야.”
“근데 만약에 길드를 만든다고 하 면 오빠한테도 좋지 않을까요? 촬영 도 촬영인데 다른 사람들을 모으면 레이드에서도 정기적으로 모일 수 있으니까 레이드에서도 충분히 좋을 거 같은데.”
“근데 현성이가 그걸 찬성을 할지 가 문제지.”
“하아, 그게 제일 문제네요.”
현성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다름 아닌 현성의 길드 문제.
현아도 현성이 잘되었으면 하는 마 음도 있었고, 현성이 길드를 만들면 바로 린이 도와주리란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현성이 그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그래도 현성에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것을 받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웠다.
아직까지 길드를 만들지 않았다니.
그게 아니더라도 이번에 재환에게 들어보니 레이드를 가기 위해 어떤 사람을 받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럴 바에 길드를 만들어서 믿을 만한 사람을 만드는 게 좋을 텐데 그러지도 않고 말이야.’
동생인 입장에서 그게 참 안타까웠 다.
사람을 잘 믿지 않고, 혼자서 해결 하려는 습관.
왜 그런 습관이 들었는지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으니까.
그게 아팠던 자신 때문이라는 걸 알아서 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 만, 어디 습관이라는 것이 하루아침 에 바뀌는 것이겠는가.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바꾸는 것이 맞다. 하나 지금 현성의 방법도 틀 렸다고는 할 수 없다.
요즘 사람을 어찌 쉽게 믿겠는가.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는 건 어 쩌면 좋은 것일 수도 있으나 늘 외 롭게 지내는 현성을 또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재환이 한 말을 듣곤 번득인 것이고.
“촬영 길드라면 오빠도 싫어하진 않을 거 같은데. 거기다 재환 오빠 랑도 같이 게임을 하는 거니까 나쁘 지 않지 않을까요?”
“그것도 좋긴 하겠지만, 나도 거의 같이 있을 시간도 없기도 하고 촬영 용 계정은 사실상 유저라고 보기에 는 좀 애매한 면이 있어서. 거기다 현아 네 말대로라면 레이드 인원으 로 채워지지도 않고 말이야.”
“하아, 그거는 문제네요.”
지금 현아의 목적은 혼자서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촬영용 계정은 유저라기보 다는 드론에 가깝다.
더군다나 촬영을 끝냈으면 곧장 그 걸 편집할 시간도 아까운 와중에 계 속 플레이를 하라는 건 재환에게도 사양하고 싶은 제안이다.
다만 현성이 혼자가 아닌 길드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이랑도 교류를 해야 한다는 것에는 적극 찬성이다.
문제는 딱히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일까 재환은 재환대로 아쉬 웠고, 현아는 현아대로 아쉬웠다.
“그렇지. 실질적으로 길드에 들어 올 사람이 없는 이상 현성이는 혼자 다녀야 하지. 여러 던전도 못 다니 고 한정될 수밖에 없고.”
“그걸로 꼬신다고 쳐도 오빠의 성 장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 사람도 흔치 않고, 그렇다고 오빠한테 신화 길드 사람을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 고.”
“더 생각을 해봐야겠네.”
길드원으로 들어와도 문제다.
현성의 성격상 그런 것을 관리하는 일보다 본인의 사냥과 레벨이 훨씬 중요할 텐데 길드가 유지될 리가 없 지 않은가.
그걸 생각한다면 믿을 만한 이를 부길드장으로 맡겨야 하는데 재환은 바빠서 패스고, 현아의 경우는 이미 영웅 길드가 있지 않은가.
영웅 길드에서 나와 현성의 길드를 맡아준다 해도 그걸 잘할 자신이 없 었다.
오히려 망치진 않을까 해서 못할 뿐이다.
‘영웅 길드에 들어오면 좋지만, 오 빠는 그걸 원하는 게 아니니까.’
참으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현성을 생각한다면 그냥 지켜보는 것이 맞다.
그러나 마음은 그게 아니니 답답할 수밖에.
그 마음을 이해하는 재환이 현아를 보며 말했다.
“일단 기다려보고 오늘은 그냥 놀 러 온 거니 다음에 얘기하는 게 좋 을 거 같아.”
“그렇겠죠?”
“그치, 너도 놀러 왔는데 일 얘기 하면 좋겠어? 그냥 즐겁게 놀고 가 서 일은 그다음에 생각하는 게 좋 지.” “헤헤, 알겠어요.” 해맑게 대답하는 현아를 보며 재환 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는 티격태격하기는 해도 역 시 우애가 깊은 남매라는 걸 잘 아 는 재환이었기에 흐뭇하게 운전을 하며 점심을 먹기 위해 안동으로 빠 졌다.
안동에서 점심을 먹느라 조금 늦어 지긴 했으나 아직도 태양은 한창이 었다.
시간은 아직도 오후 4시.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시간. 그러 나 놀기에는 딱 좋은 시간이었다.
“와! 바다다!”
고래불해수욕장 근처에 캠핑카를 주차하자마자 뛰쳐나가는 현아가 소 리를 지르자 그걸 한심하다는 듯 보 는 현성이 중얼거렸다.
“대사가 너무 진부하네.”
“참나, 오빠가 무슨 상관?”
티격태격하면서도 둘 다 바다를 보 며 흐뭇하게 웃었다.
재환의 말대로 사람도 딱 적당히 있어 놀기 적합한 해수욕장.
거기다 물도 에메랄드빛보다는 투 명에 가까운 맑은 바다. 그리고 젊 은이들과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힐링 이 되는 기분이었다.
뙤약볕이 쬐는 날씨임에도 불쾌하 기보다 빨리 저 시원해 보이는 바다 에 몸을 맡기고 싶은 기분.
“옷은 캠핑카에서 갈아입으면 되겠 네.”
“그러면 현아 먼저 갈아입는 동안 우리가 망보고 있고, 우리가 갈아입 으면 되겠네.”
“알았어! 나 그럼 옷 갈아입고 올 게!”
빨리 바다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었 는지 재빨리 캠핑카로 들어가는 현 아.
현아를 기다리며 재환도 바다를 보 며 흐뭇하게 웃었다.
“와 물 좋네.”
“어휴 아침까지만 해도 현아 예뻐 졌다고 하더니 금세 눈 돌리는 거 냐?”
“아니, 이놈 보소? 너야말로 아침 에 넘볼 걸 넘보라더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냐?” 티격태격하며 웃고 떠드는 동안 현 아가 옷을 다 갈아입은 것인지 그대 로 캠핑카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보이는 수영복 차림 의 현아.
이제 막 20살이 되어서 그런지 비 키니를 입었음에도 섹시하다기보다 는 풋풋한 느낌과 청순한 느낌이 강 한 모습.
그 모습으로 나온 현아가 말했다.
“짜잔! 어때요?”
존대를 하는 걸 봐서는 현성이 아 닌 재환에게 묻는 말. 애당초 저것을 사러 갔을 때는 현 성이 있지 않았던가. 이미 현성은 질리도록 본 광경이었기에 고개를 저었으나 재환은 아니었다.
“예, 예쁘네.”
반쯤 넋이 나간 재환의 옆구리를 찌른 현성이 헛기침을 했다.
“홈홈, 그럼 우리도 갈아입고 오 자.”
“크흠, 그래.”
이번에는 현성과 재환이 캠핑카로 들어갔고, 현아와 달리 남자라서 그 런지 훨씬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 고 나왔다.
그런데 재환의 표정이 들어갈 때와 나왔을 때의 표정이 현저히 달랐다.
매우 침울한 표정.
둘의 옷의 차이만 봐도 알 수 있 었다.
현성은 자신감 넘치게 반바지처럼 생긴 비치웨어형 수영복만 입고 상 의는 입지 않았다.
그에 비해 재환은 여러모로 티셔츠 도 입고 구명조끼까지 입어 여러 속 살을 가린 모습.
현성의 울퉁불퉁 잔 근육들이 화나 있는 모습과 달리 재환은 오랜 야근 으로 인해 배만 볼록할 뿐이었다.
“……왜 즐거워지려고 왔는데 우울 해지는 걸까.”
아무도 들리지 않게 중얼거린 재환 이었으나 현성과 현아는 재환에게 안중에도 없었다.
빨리 바다에 들어가기 위해 모래사 장으로 달려갔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다.
“내가 파라솔 빌려올게.”
재환이 말했고, 현성이 돗자리를 폈다.
그리고 현아는 몇몇 짐들과 신발들 로 돗자리를 고정했고.
거기에 재환이 빌려온 파라솔까지 더해지니 완벽한 피서객의 모습이 되었다.
“그러면 나는 간다!”
제일 먼저 바다로 달려든 것은 현 성이었다.
내리쬐는 햇볕으로 인해 모래가 뜨 거울 법도 했으나 워낙 단련이 되어 서 그런지 아무렇지 않아 하며 뛰어 들었다.
다른 이들이 했다면 위험해 보일 법한 행동이었으나 현아나 재환은 딱히 걱정하지 않았다.
실전무술학원도 다니는 현성인데 저런 걸로 다쳐봐야 얼마나 다치겠 냐는 안일한 생각. 하나 진짜 다치 지 않으니 그냥 두었다.
“현성이가 수영을 했던가?”
“못할 걸요? 한 번도 배운 적은 없죠.”
“근데 저거는 뭐냐?”
바다에서 접영을 하는 현성.
흔히 버터플라이라 부르는 수영법 으로 파도를 뚫고 접영을 해내는 현 성.
그걸 보며 마치 괴물 보듯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재환은 고개를 저었다.
“현아야, 너는 수영할 줄 아니?”
“네, 재활치료 받으면서 배웠어요. 저도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재환은 그렇게 대답하며 돗자리에 앉아 중얼거렸다.
“응, 나는 짐 지키고 있을게.”
아무도 물어본 사람이 없었으나 혼 자 중얼거렸다.
그리고 문득 든 의문이 하나 있었 다.
“나 진짜 왜 온 거지?”
처량하게 파라솔 그늘에 앉아 멀리 서 접영으로 파도를 뚫는 현성과 시 원하게 바다에 들어가 여유롭게 수 영을 하는 현아를 구경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는 말이 무엇 인지 이해를 할 수 있었으나 왜인지 서글퍼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